“교실을 반으로 쪼개 전국의 교실 수를 2배로 늘리자”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 왔고, 대선까지 앞 둔 선거의 해라지만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교육을 두고 진지한 성찰을 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학교폭력과 공교육 부실에 따른 사교육 과잉 등 최악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 교육이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글ㆍ사진 황정호
2012.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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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이 코앞으로 다가 왔고, 대선까지 앞 둔 선거의 해라지만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의 교육을 두고 진지한 성찰을 하는 정치인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학교폭력과 공교육 부실에 따른 사교육 과잉 등 최악의 문제에 직면한 우리 교육이 올바른 길을 찾기 위한 해법은 무엇일까. 정권 교체 이후 도래 할 새로운 시대를 앞두고 두 교육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얼마 전 학교폭력 문제가 대두되며 교육문제에 쏠린 여론의 관심은 어느새 정치 이슈로 옮겨졌다. 덕분에 한시가 시급한 교육개혁은 다시 뒷전으로 물러나 있다. 한마디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이 무색한 상황이다. 한국 사람은 모두가 교육 전문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백가쟁명의 교육 개혁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정작 실체적 문제에 접근하는 대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러한 때에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창비 인문카페에서는 의미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새로운 교육 대안을 제시하는 고교교사 이기정 선생과 교육평론가이자 서울교육청 정책 보좌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범 씨가 만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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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문제를 직시하고 그 해법을 모색하는 이번 대담은 그간 우리 교육이 안고 있는 다양하고 고질적인 문제들이 언급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두 사람 모두가 한때 사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를 테면 ‘숲 밖에 있었기에 숲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기존 교육계에서는 들을 수 없었던 다양한 아이디어를 쏟아놓은 이기정 선생과 교육계에 존재하는 기득권 세력의 실체를 지적하는 이범 씨의 대담을 통해 진정한 교육 개혁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짚어봤다.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핵심은 학교의 무능이다, 이기정

현재 서울 북공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인 이기정 선생은 최근 창작과 비평 봄호를 통해 ‘교육의 2013년 체제를 만들자’라는 글을 발표했다. 이는 그가 집필했던 저서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를 통해 제안했던 아이디어 중 ‘Big 3’를 정리한 것이다. 대담에 나서는 그는 서두에서부터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핵심은 학교의 무능’이라는 말로 심각성을 일깨웠다.

“흔히 우리나라의 경우 모든 잘못을 입시에 돌리고 있어요. 제가 봤을 때는 근본원인은 학교의 무능입니다. 입시교육마저도 학교는 학원과 경쟁에서 무능을 보여 왔어요.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고 인성을 기르는 교육에서도 무능함을 보이고 있죠. 좋은 교육을 못하는 것이 다 입시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절반의 진실이라 봅니다. 사실 학생들의 창의력을 기르는 교육은 상당히 고차원적인 교육이고 입시교육보다 더 많은 역량이 필요하거든요. 입시교육에서도 무능을 보이는 학교가 입시가 사라지면 그 고차원적인 교육을 할 수 있다는 건 어불성설입니다. 결국 학교의 무능이 해결되어야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말이죠.”

그는 우리나라 교육을 1차원에서 4차원까지로 분류했다. 4차원 이상의 교육은 입시가 사라져야만 가능하지만 1차에서 3차원의 교육은 입시제도 안에서도 가능하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나라 학교 교육의 현실은 몇 차원일까.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우리나라 학교교육을 1차원적이라고 평했다.

“1980년대 학력고사라는 게 있었죠. 교과서 밑줄치고 암기하는 시험공부였어요. 수업도 대개의 경우는 교사가 일방적으로 교과서 분석하고 정리하는 식의 수업이 이뤄졌죠. 아직 학교 수업은 입시제도안에서도 좀 더 차원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력고사 패러다임을 못 벗어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대학입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도 3차원 교육까지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가 제안한 교육 개혁 아이디어는 그러한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교육계에서 정책을 이야기하면 공격을 받는 경우가 빈번한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대개의 경우는 추상적 차원의 교육 원론과 당위성만을 이야기하는 선에서 그치고 만다. 하지만 그의 경우는 그러한 비판까지도 모두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일부 의문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이디어는 대담성과 가능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 중에서 그가 대담을 통해 언급한 것은 ‘Big 3’라 일컫는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 학급당 학생 수 20명으로 감축, 교육중심의 학교제도 구축’, 세 가지다. 우선은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을 제안한 이유를 들어봤다.

“제가 작년에 창동고교 3학년 담임을 했습니다. 수학시간에 40명 중에서 30명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더군요. 그중 일부는 다 아니까 학원가서 공부하기 위해 자는 학생도 있지만 대부분은 알아들을 수 없어서 자거나 떠드는 겁니다. 이런 문제는 수학이 제일심하고 영어, 과학, 사회, 국어 과목 순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단순히 못 알아듣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좌절과 무기력을 배운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 보면 일부 학생을 위한 철저한 들러리 시간이라는 이야기죠. 제 생각은 학습능력이 좋은 학생은 높은 단계까지 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자신이 공부할 단계를 선택하게 하게 하자는 것이고 이것이 제도적으로 인정되어야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의 이런 주장은 현 상황의 내신제도에 상충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로인해 진보 교육계의 반대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학생 대부분이 수업에 참여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개개인의 학습능력과 속도가 고려되는 수업의 필요성은 꽤나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두 번 째로 주장하는 학급당 학생 수를 20명으로 감축하는 안은 더욱 파격적이다. 다름 아닌 현재의 교실을 반으로 쪼개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보면 꽤나 실현가능성이 높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학급당 학생 수를 단계적으로 줄이면 실패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구감소현상을 고려해야 하지만 단순하게 이야기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단계별로 학생 수를 줄이면 교실부족과 교사부족문제가 닥칩니다. 물론 교실 층수를 늘리면 되겠지만 몇 년 동안 전국 학교가 공사판이 될 겁니다. 운동장을 줄여도 되고요. 하지만 우리나라 운동장은 학생들이 뛰어놀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공간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는 현 교실을 반으로 쪼개 단번에 교실을 2배로 늘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선생과 학생이 상호작용을 하는 수업을 하려면 20명이 적정 인원입니다. 학생들이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가능하다는 거죠. 교실이 좁아도, 낡아도 관계없습니다. 이것이 수업이 미치는 영향은 작습니다. 그러나 학급당 20명으로 줄었을 때 수업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거죠. 혹여 먼 훗날 인구감소로 인해 학생 수가 자연스레 줄게 되면 그때는 반으로 쪼개놓은 학급을 다시 하나로 합치면 되죠. 다행히 우리나라 학급의 형태는 문이 2개인 것 아시죠. 반으로 자르는 것은 쉽고 다시 합치는 것도 쉽습니다.”


세 번 째 안인 ‘교육중심의 학교제도 구축’ 역시 스스로 교사로 일해 오며 느낀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교육이 아닌 교무행정이 중심이 되는 교사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는 그의 얼굴에는 절절한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이범 선생님은 제가 구구절절 이야기했던 이야기를 짧게 잘 요약하시더라고요. 바로 ‘우리나라 학교는 교육기관이 아니라 행정기관’이란 말입니다. 교장 선생님으로 승진을 결정하는 것도 교무행정 업무입니다. 교사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것이죠. 자기들의 삶이 업무부서에서 이뤄지니 중심이 업무가 되는 겁니다. 이러한 업무 중심의 학교 체제 문화를 수업중심, 교육중심의 문화로 바꿔야합니다.

아무리 훌륭한 교장선생님도 업무에 삶을 바치는 것이 현실입니다. 훌륭했던 선생님도 교육적 감각이 현저히 낮아진 상태에서 교장이 되는 것이죠. 전국의 모든 교장선생님은 상당부분 학교를 행정 중심으로 운영합니다. 이것을 국민들은 대부분 업무 경감이라는 프레임으로 봅니다. 이렇게 접근하는 순간 업무 경감이라는 것은 사소한 것으로 치부되죠. ‘철밥통, 방학이 있는 교사, 퇴근도 빠른 교사…… 그들의 업무를 왜 줄여줘야 하나’라는 생각하는 거죠. 단순히 업무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보면 맞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학교의 문화와 조직체계, 교사의 승진제도를 전부 바꾸려면 학교와 교사의 삶이 교육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해야 합니다.”


그는 이러한 방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교원 성과급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성과급을 업무전담 직원 5만 명을 고용하는데 사용하자는 것. 이른바 빅딜제안이다. 허나 문제는 이러한 주장이 정작 교사들의 반대에 부딪힐 수 있다는 점에서 깊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수직적 다양화와 더불어 수평적 다양화도 고려해야 한다, 이범

오래전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스타강사에서 교육평론가로 변신한 이범 씨는 서울교육청 곽노현 교육감의 정책 보좌관 소임을 맡으며 그간의 구상을 현실화하는데 힘써오고 있다. 그러나 최근 교육감을 둘러싼 우여곡절의 상황 속에 혁신적인 개혁안들이 답보상태에 있는 실정이다. 교육개혁에 대해 누구보다 목소리를 높여왔던 그이기에 이기정 선생의 주장에 공감하는 바도 크다. 그러면서도 한층 더 깊은 논의를 끌어낸다. 바로 수평적 다양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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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선생님께서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이 ‘Big 3’의 내용이 추구하는 하나의 가치는 쉽게 말하면 학교의 기초체력을 높이자는 거죠. 유능한 조직으로 변모하게 만드는 핵심적인 방안을 말씀하신 겁니다. 저 역시 두 번째와 세 번째, 학급당 학생 수를 대폭 감축하는 것과 교육중심의 학교제도를 구축하는 것은 학교의 기초체력을 높이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첫 번째인 ‘중고교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은 그런 기능을 부분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다른 측면에서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교육을 어떻게 하면 다양한 교육으로 변모시킬 수 있냐’ 하는 문제죠.

예를 들어 ‘학생별로 수학을 어디까지, 어느 정도의 속도로 공부할 수 있는지가 다르니까 거기에 맞는 것을 제공하자’, 이것은 수직적 다양화라고 볼 수 있죠. 사실 이것은 교과부가 고교를 학점제 체제로 변화시키려고 준비하는 것과 상당히 비슷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사실 무학년 학점제와 같은 것은 수평적 다양화라는 또 다른 좌표축에 놓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그는 우리나라 교육이 다양성을 갖추지 못하고 획일화 된 이유를 ‘자유주의의 부재’로 진단했다. 보수나 진보 모두 자유주의에 취약하다는 것.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서 그는 우선 우리나라 교육의 획일성을 여러 형태로 분류했다.

“하나는 방법론상의 획일성이 있어요. 쉽게 이야기하면 수업평가방식의 획일성입니다. 주입식 수업을 하고 객관식 평가를 하는 거죠. 물론 서술형 평가가 있다고 하지만 외워 쓰게 하는 것인 이상 객관식 평가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 원인은 학년별 평가제도입니다. 1, 2, 3 반을 A선생이 가르치고 4, 5, 6반을 B 선생님이 가르친다고 했을 때 과연 A 선생님은 몇 반을 평가해야 맞을까요. 당연히 교육학 원론 상으로 A 선생님은 1, 2, 3반만 평가해야 맞는 겁니다. B 선생님은 4, 5, 6반만 평가해야하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게 불가능하죠. 왜냐하면 전체 학급의 석차를 학년별로 매겨야 하니까요. 결국 모든 학생이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어야한다는 거고, 당연히 A교사와 B교사는 똑같이 가르쳐야 한다고 합의해야한다는 거죠. 어떻게 똑같이 가르칩니까. 가능하지도 않고요. 사실 바람직하지도 않죠. 교사가 녹음기는 아니니까요.

결국 교과서에 있는, 늘 봐온 내용을 가르치고 시험 문제를 전형적으로 낼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 전형적 문제는 이미 학원에서 족보라는 이름으로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열심히 참여를 안 해도 학원가서 시험공부를 할 수 있는 거죠. 이게 우리나라가 내신 반영비율을 높여도 사교육이 줄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교사 개개인의 자율성이 없는 거죠.”


결국 학년별 평가제도가 교사들의 수업방식을 제한하고 수업평가방식의 하향평준화라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제시하는 방법론상 획일성의 두 번째 요인과도 연결 돼 있다. 바로 교육당국의 과도한 통제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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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요인은 교육과정의 내용이 국가에 의해 너무 세밀하게 통제돼 있고 분량도 과다하다는 겁니다. 현재의 분량으로 한 사람의 교사가 어느 세월에 탐구학습을 하고 토론을 시킬 수 있겠습니까. 주입식 교육도 아니고 그야 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식 교육이 되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규격화된 정답을 요구하는 평가가 지배적이라는 겁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일제고사 형식이죠. 대표적으로는 우리나라의 학업성취도 평가와 수능이 있어요. 국-영-수 중심의 객관식 위주 시험이 유럽이나 미국과 굉장히 중요한 차이입니다. 물론 미국 역시 SAT(Scholastic Assessment Test)라는 일제고사 비슷한 시험이 있죠. 그러나 학교에서의 평가는 100% 논술형 아니면 수행평가입니다. 미국에서는 고등학교에서 SAT 문제집을 안풀어줘요.

흔히 우리나라 진보적인 분들이 입시에 종속되지 않은 고등학교의 정상적이고 고유한 교육과정을 강조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이뤄지는 나라가 미국입니다. 비록 미국에 SAT라는 시험이 있다지만 학교에서 평가방식은 전혀 다르죠. 전통적 자유주의가 뿌리박혀있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학교에서의 평가, 국가에서 하는 학업성취도평가, 수능도 모두 일제고사 형태에요. 굉장히 획일적이죠.”


이어 그는 또 다른 차원의 획일성을 언급했다. 바로 교육과정의 획일성이다. 이는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바로 실업계를 기피하는 인문계 획일성, 국-영-수 획일성과 더불어 교육과정에서 편성권을 가지지 못하는 학생과 교사의 상황이다.

“실업계와 인문계를 나누는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 독일, 핀란드인데 이들의 경우는 그리 잔인한 제도가 아닙니다. 원하면 전학도 가능하니까요. 이 나라들의 학생들이 실업계를 선택 할 수 있는 이유는 실업계에 가서 직업교육을 받아도 내가 2등 국민이라는 인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보다 좀 더 평등한 사회니까 가능한 거죠. 또한 국-영-수와 같은 공통필수과목이 거의 없다는 것도 특징입니다.

영국의 경우는 대학에서 뭘 전공하고 싶은지를 정하면 이 범위 내에서 몇 과목을 고르게 합니다. 자기가 고른 과목과 내신과목을 선택해서 그걸 중심으로 수업을 듣죠. 독일도 일부 지역에 딱하나 있는 공통과목이 독일어에요. 미국 SAT도 사실 선택과목이 20개가 넘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학생은 자기 교육과정을 스스로 구성할 수 없습니다. 과목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이죠. 교사도 마찬가지에요. 이기정 선생님께서 창비 봄호를 통해서도 언급하셨고 아까도 말씀하신 내용인 ‘중고교 무학년 학점제 단계별 수업’의 세부내용 중에 교사의 교과서 자유발행제 및 자유선택제가 그래서 상당히 중요한 제안입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선발이나 입시를 ‘필요악도 아니고 악도 아니다’라고 규정했다. 문제는 입시제도가 대학서열화와 학벌주의를 통해 과도한 과잉의미부여가 돼 있다는 것. 그리고 현재 국가에서는 이를 통제할 의지를 상실한 상태라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따라서 우선 필요한 노력은 중요한 의문이 드는 몇 가지, 예컨대 내신교육과 대학입시와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설계할 것이냐는 문제 등을 사회적 토론을 통해 정립해야 한다는 것. 그러한 토대가 갖춰지고 나서야 비로소 입시제도에 대한 굴절된 인식이 바로 잡히고 교육을 받는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정상적인 과정으로 인식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두 사람의 논의는 교육계의 문제를 심화시키는 주체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다양한 이야기가 논의됐지만, 대표적인 문제로 언급된 것은 교육계 내-외부 기득권층의 암묵적인 카르텔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제도가 학교 현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다. 이러한 두 사람의 대담을 지켜보면서 청중의 질문 역시 이어졌다. 그 중 몇 가지 핵심적인 내용을 Q&A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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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이기정 선생님의 제안 중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눈에 띄었다. 국가에서 통제하는 검?인정 교과서의 기준 중에 ‘특정가치가 개입 되서는 안된다’는 항목이 있는데, 그런 항목이 있어야 할 명분은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천편일률적인 교과와 특정가치가 개입되면 안되는 교과를 어떻게 구분해야 하는지가 궁금하다.

답변

이기정 - 교과서 자유발행제의 정신을 살리면 된다고 본다. 교과서 쓰는 사람의 재량권을 인정한 인정제도를 폭넓게 확산시키고 인정제도를 개량해서 더 문턱을 낮추는 것도 대안이다. 중요한 것은 교사들이 오랫동안 수업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교과서를 쓰는 것이 가능해야한다는 것이고 또 그것을 교사들이 선택하는데 큰 제약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을 통해 대안을 이야기한 것이 교과서 신고제다. 다만 여기서는 신고 된 교과서의 거부권을 심사자에게 주지만 90%반대가 나와야 거부가 가능하다는 제도적 장치를 정하면 될 듯하다. 그렇다면 아주 이상한 교과서나 보편적인 상식과 가치에 크게 벗어난 교과서는 거부되면서도 참신한 교과서는 발행 가능할 것이라고 본다.

이범 - 현재 교과서 검?인정 기준 자체가 얼마나 황당한지를 몰라서 하는 말 같다. 그 엄격함이라는 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를 테면 내가 잘 아는 영어 교과 교수 한분이 중학교 영어교과서 한 챕터를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를 집어넣으려고 했는데 불가능했다. 현행 기준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을 쓰지 못하게 돼 있기 때문이다. ‘특정가치가 개입 되서는 안된다’는 기준은 추상적 수준에서 필요할 수는 있는데, 그것이 구체화될 때는 얼마나 심각한 제약으로 작용하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김연아가 다른 나라 교과서에 실리지만 우리나라 교과서에는 실릴 수가 없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뭘 써야하고 말아야할지를 아주 세밀하게 규정하고 있는데, 그게 심각하게 비합리적인 수준이라는 거다.

질문

교육이 굉장한 카르텔에 휩싸여있다는 말에 동의를 한다. 그러면서 과연 이러한 제안들이 얼마나 실행될 수 있는지 실행력에 대해서 묻고 싶다.

답변

이범 - 한번 가정법으로 이야기해보자. 만약 정권이 바뀌면 과연 어느 정도 변화가 가능할까. 나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제일 어려운 것이 경쟁의 경감인데 부분적으로는 대입전형과 연관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대학시스템을 뜯어고치는 것과 연관이 크다. 사회적인 개혁과도 연관이 있다.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을 어떻게 금지할 수 있느냐, 노동시장이나 승진 과정 등에서 심지어 문화적으로 그런 차별을 어떻게 금할 수 있느냐, 대학서열화가 너무나 심각한 수준인데 이걸 어떻게 고칠 수 있겠나와 같이 하나 하나가 이 사회의 아주 핵심적인 기득권과 충돌하는 부분이다. 제일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제일 어려운 것이 경쟁의 경감을 위한 사회적 개혁, 대학 시스템의 변화라고 본다.

정치인들에게 기회가 있으면 틈나는 대로 이걸 강조하지만 사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이 부분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다. 좌절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지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들은 국-영-수 중심의 비합리적인 제도하의 승리자들이다. 기본적으로 교육문제에 대한 이해도 부족하고 의지도 없다고 보인다. 결국 대대적인 국민 계몽 및 토론 운동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차기 정권에서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하는 것은 계급장을 떼고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민 대 토론을 1~2년 쯤 해봐야 가닥이 잡히지 않겠나.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학습을 하게 되지 않을까. 그런 학습이 없이는 교육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본다.

이기정 - ‘현실 가능할 것인가’라는 생각은 자꾸 바뀐다. 『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라는 책을 쓸 당시만 해도 가능하리라 봤다. 적어도 그 책을 쓸 때 나는 철저하게 현실론에 입각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다. 여기서 ‘Big 3’를 이야기했지만 한때는 하나도 실현이 안 될 거라 좌절하고 절망하는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다시 힘을 낼 때 세 번째로 말한 것, 교원 성과급제 폐지라는 빅딜 제안을 통해서 이것만은 실현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오늘 용기를 내서 다시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게 실현가능성에 대해서 용기를 가지기도 하고 절망하기도 한다.

질문

제도적인 개선점에 대해서 이야기했는데, 그와 함께 교사들의 질적 향상을 위한 노력도 어떻게 해나가면 좋을지에 대한 방안이 있나.

답변

이기정 - 오늘 이야기한 것은 어떻게 보면 거시담론이다. 실현가능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가 꿈을 상당부분 낮추고 ‘조금이라도 좋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란 관점에서 보면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만 좀 더 잘해도 좋아지는 면이 있다. 교장만 조금 더 잘해도, 교사가 좀 더 잘해도 좋아지는 부분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교과부는 물론 교장, 교사들에게도 좀 더 학생들을 배려해달라는 요구를 해야 한다. 물론 대부분은 “입시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한다. 분명히 절반은 맞다. 그러나 사실은 입시에 도움이 되면서 학생들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것도 꽤 많다. 그런데 교과부의 무능, 교장의 무관심, 교사들의 무사안일 때문에 버려지는 것이 분명히 있다. 이것을 바로잡고 현 체제 속에서 교육계가 좀 더 잘해야 할 필요가 있고 나 역시 반성하고 있다.

질문

현실적으로 방학이라는 시간이 존재하는데 학부모들이 답답해하는 것은 방학 중을 활용해 교사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노력이 가능하지 않냐 는 것이다.

답변

이기정 - 방학 중에 교사들이 갈고 닦으면 된다는 말인데, 실질적으로 다양한 연수프로그램이 있다. 그런데 그 연수가 사실상 도움이 안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런 것을 꿈꿔본다. 만약 교사가 교과서를 자유롭게 집필할 수 있고 선택권이 주어진다고 했을 때, 교과서 저자가 연수에서 강의자로 나온다면 그 교과서를 채택한 교사가 열정을 가지고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되면 살아있는 교사연수프로그램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범 - 연수가 제 기능을 못하는 이유는 승진을 위한 점수획득 방법으로 활용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수업개선을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연수는 어려워진다. 그 보다는 비교적 적은 노력을 들여 점수를 획득할 수 있는 연수를 택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연수를 통해 교사가 수업능력을 개선해봐야 학교에서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가르치는 게 불가능한 상태기 때문에 해봐야 써먹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패배감이나 무력감은 심각한 수준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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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을 잡는 자가 대권을 잡는다 이기정 저 | 인물과사상사

대한민국 공교육이 많은 문제를 품고 있다는 것은 굳이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국민 대부분이 공감하는 사실이다. 우왕좌왕하는 공교육 정책의 희생양인 학생들과 이들을 뒷받침하는 학부모 집단은 물론 학교 내부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큰 테두리 안에서 규칙만 조금씩 바꾸는 식의 교육 정책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학교개조론』『내신을 바꿔야 학교가 산다』등의 저자 이기정은 교육의 큰 테두리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구성하는 전복적인 교육 정책 제안서를 내놓았다…

 




#교육 #이기정 #이범
4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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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2012.05.06

특히나 올해는 국회위원 선거도 있었고, 또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치루어질 예정이지요. 그렇기에 교육에 대한 언급도 더 많아질 것인데, 정작 문제는 언급만 많아졌을 뿐이지 제대로 된 해법이 도출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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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e^ve

2012.04.03

이대로는 안 된다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지만, 부모들의 형태는 그대로 따라가고 있지 않는지 자성해 봐야 될 것 같네요~참교육에 휘둘리는 건, 누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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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kem

2012.04.03

대학이라는 문을 통과하기 위한 교육이 아무래도 문제인데요... 그것은 어느 대학이냐에 따라 대우받는 사회와도 연관됩니다. 선진국들의 교육은 우리와는 많이 다르지요. 그들도 입시에 힘들기도 하지만, 이것이 아니면 안 된다 식의 교육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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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