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여자들이 마주치는 이상한 남자의 유형 4가지 - 김태경『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몇몇 성공한 여성 리더들에 의해서, 또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상적 여성상이 부각되며 언젠가부터 우리사회는 남녀평등의 단계에 돌입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힘겨움 속에서도 직장 상사와 남편에게 언제나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남성의 약육강식 시스템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2012.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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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성공한 여성 리더들에 의해서, 또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하는 이상적 여성상이 부각되며 언젠가부터 우리사회는 남녀평등의 단계에 돌입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떤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힘겨움 속에서도 직장 상사와 남편에게 언제나 갑이 아닌 ‘을’의 입장에 서 있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남성의 약육강식 시스템이 지배하는 정글에서 여성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어스름한 퇴근 무렵의 오후, 대학로의 한 갤러리에 소박한 자리가 마련됐다.『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의 저자 김태경 씨가 마련한 독자와의 만남이다. 그런데 부제로 붙은 이름이 ‘멘토링’이다. 알고 보니 남성들 중심의 전쟁터 같은 현실에서 병들어가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저자의 직설적 조언이 준비 돼 있는 자리였다. 조금 과장하자면(아마도 이정도 과장은 저자 역시 이해해주리라) 영문도 모르고 연인, 혹은 아내와 동석한 선량한(?) 남성 몇과 더불어 기자 역시 남자로서의 원죄(?)를 깨달아야 했던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화살이 남자만을 향해 있던 것은 아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에 100% 반박할 수 없는 상황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가장 흔히 저지르는 잘못과 자기모순, 쓸데없는 고민과 갈등, 인생을 낭비하는 나쁜 습관과 집착 역시 그녀의 날카로운 지적을 피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런 지적을 가능하게 한 저자 본인의 삶은 어땠을까. 역시 현실에 순응하는 보통의 경우와는 사뭇 달랐다.
김태경 씨는 광고대행사 MBC애드컴에서 AE로 일하며 혹독하기로 유명한 광고판에서 청춘을 보냈다. 현재는 SBS 콘텐츠허브 부장으로 재직 중이며 ‘SBS생방송브라보나눔로또’의 책임프로듀서를 맡고 있는 24년차 베테랑 커리어우먼이다. 일 하나는 끝내주게 완벽한 타입이라 그간 대종상영화제, 국토대장정, 인천공항 개항 콘서트 등 굵직한 행사와 이벤트를 직접 기획, 제작한 경력의 소유자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대학교수로 후학을 가르치고 있고 아이들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제몫을 다 해내고 있다.
그러나 그녀는 스스로를 ‘절대 잘난 사람도 아니고 성공한 것도 없다’고 말한다. 그저 오늘 당장 할 일을 야무지게 하려고 했으며 자신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을 뿐이란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조금의 파도에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과 스스로의 능력을 믿는 ‘자신감’을 양손에 쥐고 살았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얻은 그녀의 노하우는 쉽지 않았던 직장 생활에서 남성의 벽을 뛰어넘고 여성의 한계를 극복한 대가인 셈이다.
그릇을 크게 가져라
소수정예랄까, 스무 명 남짓한 독자가 모인 자리는 이내 김태경 씨가 준비한 맥주 캔으로 채워졌다. 보통의 독자와의 만남과는 시작부터 다른 분위기가 아닐 수 없다. 퇴근 후 맥주와 함께 허심탄회한 대화가 곁들여 있는 자리는 마치 편안한 회식 자리 같다. 20대 대학생부터 40대 직장여성까지 그리고 동행한 몇몇 용기 있는(?) 남성들을 포함해 모두 일면일식도 없던 사람들의 모임이지만 저자의 말을 시작으로 하나 둘 자신의 상황과 고민을 털어 놓는다.
『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는 저자가 3년간 20~3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그녀들이 앓고 있는 마음의 병을 인터뷰한 결과물이다. 그녀 스스로는 “킨제이보고서에 맞먹는 대한민국 젊은 여성들의 속병과 불안심리보고서”라고 정의 내린다.
“불과 20년 전만해도 여성의 사회생활은 결혼으로 끝이었죠. 하지만 최근 들어 직업을 가지는 여성이 당연한 시대가 되면서 삶이 대단히 고달파졌어요. 일과 살림, 육아까지 병행하며 마음의 병이 깊어졌죠. 저는 그 병을 파헤치고 싶었어요. 지금도 우리 여성들은 어릴 적 부모님이나 어른들에게 들었던 ‘여자는 조신해야한다’는 사고방식에 주눅 들어 있는 상태에요. 가만히 있는 게 본전이란 생각을 하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항의를 하면 ‘시끄럽다, 수다스럽다’는 소리만 듣고요. 그러면서 점차 생기와 에너지를 잃어가는 거예요.”
그녀는 이런 현실에 당당히 맞설 것을 강조하고 나섰다. 뭔가는 얻어내기 위해서는 말하지 않는 것 보다 말하는 편이 더 효과적이라는 것. 여성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하는 분위기에 그녀의 그러한 주장은 ‘정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남자 상사들 중 자칭 성공했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공통점이 있어요. 말이 많고 좌중을 휘어잡으려 하고 과시가 심하죠. 그런데 문제는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게 돼 있다는 겁니다. 요구를 안 하고 애길 안하면 아무도 안 들어줘요.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건 정말 맞는 말이에요. 요즘에는 암탉이 울어야 집안이 살거든요. 기죽는 순간 인생은 끝납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당당한 것과 ‘불친절한 것’의 구분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젊은 여성들 중 간혹 불친절한 것을 ‘쿨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꼬집은 것이다.
“한 후배가 유명인이 방송 출연 때문에 방문했는데도 자기가 관심이 없다는 이유로 불친절한 행동을 해서 문제가 됐던 적이 있어요. 친절하지 못한 것을 여자다움이라거나 자존심을 세우는 것으로 오해하는데, 저는 진짜 잘난 사람이 불친절한 것을 본적이 없어요. 잘되고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굉장히 친절하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자면 친절은 자기가 잘 되기 위한 표상이에요.”
인생의 진정한 승리는 베푸는 것
많은 직장 여성들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하나 제대로 마무리 짓지도 못한 채로 쓸데없는 일에 시간을 소비하고 욕심을 내는 것이 현실이다. 여자 스스로가 자신을 피곤하게 만드는 요즘 상황을 보며 김태경 씨는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불필요한 것에 시간을 많이 씁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회사를 갈 때 왜 머리를 가꾸는데 한 시간을 소비해야 하죠. 제 경우는 편하게 관리하기 위해 일부러 파마를 안해요. 제 주변을 보면 또래 여성들은 골프나 찜질방, 쇼핑에 상당한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면 자랑할게 없을까를 생각하죠. 남편이 사줬다는 친구의 명품 가방을 보면 또 슬퍼지고요. 그런 욕심이 교육으로 이어질 때는 더 난리가 나죠. 한 돌밖에 안된 아이에게 영어 테이프를 틀어주고 몇 백 만 원짜리 유모차에 위안을 얻기도 하고요.”
그녀의 눈에 그런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이해할 수 없다. 나름대로 좋은 직장에서 능력을 인정받는 커리어우먼으로 자리매김하며 적지 않은 연봉을 받는 그녀지만, 절약은 일상의 습관과 같다. 기계치라는 핑계로 운전면허를 따지 않았으니 당연히 자가용도 없다. 대신 그녀가 아끼지 않을 때가 있다. 바로 친구 혹은 후배들에게 베푸는 순간이다. 이른바 사람 재테크다.
“오늘 이런 행사를 한다고 하니 한 후배는 독자들에게 선물할 공연 티켓을 제공하더군요. 맥주도 다른 후배가 보내준 거예요.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은 정말 맞아요. 이런 주위 사람들의 관심과 배려에 힘이 나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것이 인생의 승리가 아닐까 싶어요. 꼭 내가 도움을 준 사람이 아니더라도 다른 곳에서 보답은 꼭 돌아옵니다. 학생 때 세계 일주를 하며 참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는 의사 부인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제가 어떻게 그리 열심히 봉사를 할 수 있냐고 물으니 하는 말씀이 ‘그래야 나에게 행운이 오지 않겠나’라고 하더군요. 그때는 무심코 들었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그것이 진정한 삶의 진리 아닐까 생각되더라고요.”
비정상적인 남자들 속에 여자의 중심잡기
저자는 책을 통해 직장에서 마주치는 이상한 남자의 유형을 4가지로 짚었다. 열등감이 깊은 유형과 여자를 연애상대로만 보는 유형, 여직원을 질투하는 유형, 사이코패스 유형 등이다. 문제는 그런 남자들이 전체의 70%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남자의 입장에서 좀 억울한(?) 감도 있지만 완전 부정할 수 없을 정도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도 많다.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남자들은 편들어 줄 사람이 없는 여자들에게 35세가 넘은 여자는 여자도 아니라는 막말을 서슴지 않죠. 또 지위가 높아지면서 모든 여자들을 연애상대로 취급하는 경우도 있고요. 자기는 서른 살 이상하고는 잠자리를 안 한다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하고 다니죠. 사실 그런 남자들에게 여자가 많이 꼬이는 것도 무시 할 수 없어요. 일부 몰지각한 여자들이 남자의 후광을 이용해 편안한 삶을 살려고 하는 측면도 있으니까요.”
이처럼 ‘이상한 남자’들의 틈 속에서 대부분의 여성들은 지치고, 상처받으며 때론 심한 우울증을 겪기도 한다. 그런 여성들의 상황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가는 것은 소위 성공한 여성 리더라 불리는 예외적 상황의 여성들이다. 저자는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심하고 약게’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여자들도 동등한 상황이 됐으니 하려고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여자들은 조직생활을 경험해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아니면 의사나 심리학자들인 경우가 많죠. 그러나 과연 우리가 동등할까요. 실제 20년이 넘게 직장생활을 한 여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못해요. 이미 지쳤거든요. 그런 상황을 이기기 위해서는 내 편을 만들어야 해요. 그리고 ‘제도 별것 아니야’하는 여유를 가져야 상대가 두렵지 않아요. 겉으로 보이는 배경이 좋다고, 나보다 좋은 학벌이라고 기가 죽으며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 없어요. 인간은 다 똑같아요. 돈은 많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지만, 인간의 머리라는 것은 좋아야 IQ 150이고 나빠야 IQ 100 정도죠. 50정도의 편차는 자기관리만 잘하면 충분히 상쇄할 수 있어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저는 그리 좋은 학벌이 아니었어요. 게다가 여자에 유부녀, 먹는 것도 잘 먹고 시끄러우니 얼마나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겠어요(웃음). 그러나 제가 자신 할 수 있는 것은 일은 정말 잘했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든 미루지 않고 확실하게 처리했죠. 지금 제가 일을 하면서도 강의도 나가고 책도 쓰면서 대학원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성실함이 아니면 불가능했어요. 그렇다고 또 정신없이 산 것은 아니에요. 골프 안치고 쇼핑 안하고 드라마 안보고 남 험담 안하며 살면 시간은 충분하거든요.”
한 마디로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소리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중심을 잡는다고 해도 곤혹스러운 것이 있다. 회식 자리에서 치근대는 남성 상사와 직면할 때다. 앞에서 언급한 이상한 남자 유형 중 하나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치근거림에 정면으로 대응할 경우 여자에게 더 큰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 때문에 저자는 좀 더 지혜롭고 유연한 방법을 주문한다.
“저는 힘 좋고 돈 많다며 치근대는 것을 귀엽게 보며 넘겨요. 하지만 그렇지 못하고 흥분하는 여성들도 많죠. 하지만 그걸 보는 사람들의 반응은 대개 ‘저 정도도 넘기지 못하냐’는 식이에요. 나이 들어 내공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남이 술 먹고 토하는 것, 주정하는 것도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이죠. 대신 따끔하게 이야기하는 것은 술을 깬 다음날이에요. ‘나야 받아주지만, 다른데 가서 그러면 큰일 난다’고 말하면 그 다음부터는 치근거리지 못해요. 그런데 간혹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좋아해서 그런가’하는 생각을 하는 여성도 있어요. 절대 그런 생각은 금물이에요.”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여자는 직장생활을 시작함에 있어 어쩔 수 없이 남자들과 다른 출발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군대라는 조직을 경험한 남자들에게도 배워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극복하고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는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어떻게 하면 현실적으로 뚫고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따라서 저자는 비교와 자기비하 대신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만의 매력과 개성을 키우기 위한 몰입에 빠지라고 충고한다.
“저는 좋은 기를 받고 싶을 때는 왁자지껄한 시장 통을 가요. 삶에 대한 생존욕구에서 오는 치열함을 느끼죠. 또는 좋은 강연을 듣거나 음악을 듣거나 그림과 같은 취미도 즐기고요. 집중을 할 때 머리가 맑아집니다. 자신의 위한 일들에 몰입을 하면서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거죠. 나쁜 남자들에게 빠지는 여자들에게는 한탕주의가 있어요. 파랑새는 없습니다. 굳이 야기하자면 내 자신이 파랑새죠.”
- 우리는 같은 병을 앓고 있다 김태경 저 | 쌤앤파커스
직장과 연애, 가족, 결혼, 육아를 모두 짊어지고, 지금도 어딘가에서 온몸으로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여성들을 위한 책이다. 물론 30대 초반에 중역이 되었다는 슈퍼우먼들의 허황된 성공담이나, 억대연봉 받는 법을 알려주는 커리어 지침서는 아니다. 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들의 치열함과 고단함, 실질적이고 내밀한 아픔들에 대해 그 어떤 텍스트보다 깊고 진한 공감과 울림,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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