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북콘서트는 민음사로서도 창립 이래 최초의 사건이었다. 자사에서 출간한 소설 외에 출판사 문지와 창비에서 출간된 소설이 함께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3개 출판사의 소설과 작가가 함께하는, 좀처럼 보기 드문 행사였기에 관심 역시 뜨거웠다. 참가를 희망하는 독자의 수가 예상을 훨씬 웃돌아 장소를 변경해야할 정도였다.
함께 초대받은 평론가 강유정의 진행으로 솔직하고 유쾌한 세 작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어느 소설가의 작품이 착하고, 나쁘고, 또 이상한지 궁금하다면 직접 확인하시기 바란다. 세 명의 작가와 한 명의 평론가, 그들을 사랑한 독자들이 함께한 그날의 이야기를 옮긴다.
오늘 저는 ○○ 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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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착한소설 나쁜소설 이상한소설>, 참 재미있는 네이밍인데요. 자신의 소설에 대해 착하다, 나쁘다, 이상하다고 명명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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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 좋아요. 별 불만은 없구요. 뭐가 이상한 건지는 저도 잘 모르겠거든요. 이 짧은 시간동안 얼마나 더 이상해질 수 있는가, 여기서 어떻게 이상하다는 걸 표현해야 될지 난감하기도 하네요(웃음).
안보윤 : 처음 북콘서트 이름을 보고 ‘아, 내 소설이 나쁜 소설이구나.’ 약간 세뇌당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웃음). 사실 소설 상으로 제 소설이 착하거나 이상한 건 아니니까요, 저는 컨셉에 순응하려고 하구요. 다만 사람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 것이 이번 시간에 저의 목표입니다(웃음).
김미월 : 저는 늘 사람들한테, 착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척 할 수는 있지만 착하지 않은 사람이 착한 소설을 쓸 수는 없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요. 제가 착한소설 배역을 맡고서 보니까 이제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 이런 반성을 하게 되었구요(웃음). 북콘서트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 너무 재밌어서 혼자 방에서 소리 내어 웃었었거든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컨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희열, 표현, 안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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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작가들끼리 술자리나 뒷자리에서 만났을 때 가장 묻지 못하는 말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묻지 못하는 말인데 독자로서는 제일 궁금한 거거든요. 왜 작가가 되었는가, 어느 순간 작가가 되고 싶어졌는가, 하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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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 이런 질문을 전에도 몇 번 받은 적이 있어서 같은 대답을 하기가 조금 민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렸을 때 동화를 많이 읽잖아요. 그런데 동화책을 읽을 때 너무 재미있었던 거에요. 예를 들면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에서 그 거지가 사실은 왕자였다는 게 밝혀지는 순간, 그럴 때 저도 동화 속의 인물로 들어가 있는 것처럼 너무 긴장되고 떨리고. 이 세계의 모든 것이 사라지고 책과 나만이 남은 것 같은 그런 순간을 느낄 때 희열이 너무 좋아서 동화책 읽기를 좋아했어요. 그런데 모든 책에는 끝이 있잖아요. 그 끝이 있다는 게 너무 아쉬워서 끝이 없는 책은 없을까 생각하다가, 끝이 없는 책이란 건 사실 존재할 수 없으니까 ‘내가 써야겠구나, 내가 끝을 내지 않으면 영원히 이야기가 이어지겠구나.’ 그런 어린 마음에 처음으로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 자라면서 근근이 이어져 왔던 것 같습니다.
안보윤 : 저는 작가라는 직업이 있다는 생각을 사실 해보지를 못했었구요. 소설을 그냥 잘 쓰고만 싶었어요. 제가 어릴 때 말을 굉장히 많이 더듬었어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말더듬이 조금 심했고 발표를 한다거나 이런 걸 전혀 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걸 누군가한테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지금은 굉장히 많이 좋아진 편이지만, 그때도 일기 쓰거나 편지 쓰는 걸 굉장히 좋아했었거든요. 제가 생각하는 거 혹은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들을 글로써 쓸 수 있다는 거, 내가 하나하나 다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문장으로 표현해낼 수 있다는 것이 굉장히 색다르고 놀라웠어요. 그래서 소설을 써보고 싶었고 소설을 잘 쓰고 싶었구요. 지금 작가라는 이름도 그래서 얻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김태용 : 이런 질문을 종종 받았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때마다 회피를 했던 것 같아요. 사실 할 말도 없고,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이것밖에 할 게 없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 들어서 그리로 간 건데요.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될 수는 없겠죠. 사실 전 어렸을 때 말을 안 한 시절이 상당히 있었습니다. 중학교 때 생각이 나는데 ‘사람이 하루 종일 말을 안 하고 살면 어떻게 될까.’ 실험해 보려고 하루 종일 수업시간에 말을 안 해서 사람들이 저를 이상하게 봤던 기억이 나요. 어렸을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아요. 혼자 생각을 하고 공상하고 망상하고. 혼자 있는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게 영화도 있고 음악도 있고 책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소설이라는 장르, 사실 소설보다 시에 더 경도가 됐었던 것 같은데 그게 유일한 안식 같은 거였죠. 나를 좀 풀어주고, 아무것도 되는 게 없지만 그걸 할 때 기분이 좀 좋았던 것 같아요. 그거를 계속 하루하루 열심히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것 같습니다.
소설가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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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대부분 토크쇼들을 보면 근황부터 묻더라구요(웃음). 어떻게 보면 뻔한 질문이겠지만 요즘 근황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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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 큰 건 없구요. 그냥 계속 글 쓰고 있어요. 첫 번째 단편집이 나오고 나서 ‘뭔가 나도 작가가 됐으니까 삶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그랬는데 전혀 반응이 없고. 그러다가 4~5년 시간이 지나서 두 번째 단편집이 나왔으니까 ‘그래도 두 번째인데 조금 더 반응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전히 반응이 없는 그 상황 속에서 지내고 있구요(웃음). 그냥 계속 글 쓰고 있고 별다른 거 없는 것 같습니다. 장편도 좀 써야할 것 같고, 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안보윤 : 저도 별다른 일 없이 글 쓰고 있구요. 3월 즈음에 책이 나왔어요. 사실 책 나오고 나서가 제일 좀 우울하고 혼란스럽고, 뭐가 손에 안 잡히는 때인 것 같아요. 아마 앞서 (김태용 작가가) 말했던 그런 기대인 것 같아요. ‘뭔가 반응이 오려나?’ 했는데 없고, ‘반응이 왔구나!’ 하고 펴봤더니 별로 안 좋은 반응이고(웃음). 저는 나쁜 소설이니까요 나쁜 반응을 주시더라구요. 그래서 오히려 지금은 약간 침울해 있는, 무기력해 있는 상태구요. 그러면서 또 글은 계속 쓰고 있으니, 이래서 계속 나쁜 소설이 나오는 것 같아요(웃음).
김미월 : 두 분께서 계속 글을 쓰고 있다는 요의 말씀을 하셨는데, 사실 저는 지난 1년 동안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았거든요. 어쩌다보니까 안 쓴 지 1년이 되었는데요. 굉장히 신기했던 건 소설을 쓸 때는 ‘아, 소설을 쓰는 동안에 이렇게 세월이 흘러가는구나.’ 라는 걸 느낄 때가 많았는데 소설을 안 써도 세월은 똑같이 잘 흘러가더라구요. 너무 당연한 건데 그게 새삼스럽게 와 닿았구요. 소설가는 소설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지난 1년 동안 저는 소설을 안 쓰는데도 어디선가 사람들이 저를 소개하거나 제가 저 자신에 대해서 설명해야 될 일이 있을 때에는 여전히 소설가라고 말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이래도 되나?’ 싶은 게 뭔가 사기를 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약간 죄책감 비슷한 그런 느낌에 시달렸던 기억도 나구요. 그래서 ‘이 계절이 지나고 나면 이제부터 다시 마음을 잡고 소설을 쓰기 시작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저의 근황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착한 습관, 나쁜 습관, 이상한 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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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글 쓸 때 습관 같은 것 없으신가요? 저는 책상에 앉기가 힘들더라구요. 앉으면 의외로 엉덩이가 힘이 되잖아요(웃음). 잘 안 풀릴 때 하는 습관이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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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윤 : 저는 오히려 잘 앉아요. 일어나면 책상 앞에 잘 앉는데 시작을 하지를 않구요. 앉아서 할 수 있는 모든 딴짓을 다 끝내고 문자, 카톡, 페이스북, 트위터 다 확인하고 웹서핑 다 돌고, 아는 사람들을 다 지분거린 다음에 시작을 하는데요. 그래서 앉아있는 시간은 굉장히 긴데 나중에 결과를 보면 달랑 세 줄 썼고, 정말 처참할 때가 많아서요. 어떨 때는 인터넷을 끊어보기도 했어요. 인터넷을 끊었더니 요즘 또 휴대폰이 좋잖아요(웃음). 이제는 그냥 놀만큼 논 다음에 쓰라는 건가보다, 하고 노는 시간을 조금씩 줄이고 있구요. 습관 같은 거는 먹을 게 잔뜩 있어야 돼요. 커피, 차, 음료처럼 특히 마실 거가 있어야 하고 초콜릿을 굉장히 많이 먹어요. 초콜릿이나 사탕이나 과자 같은 군것질을 잔뜩 쌓아놓고 그걸 다 먹는 타입이에요. 예전에 이 얘기를 했더니 어떤 분이 당뇨가 있냐고(웃음). 그런 건 아니구요, 그냥 글 쓸 때의 습관인 것 같아요.
김태용 : 앉기가 정말 힘든 것 같아요. 우스갯소리로 소설을 엉덩이로 쓴다고 하는 건 진짜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끔 드는데, 버티는 거잖아요. 저는 그래서 집에서 소설을 쓸 수 없으니까 고시원에서 몇 년 째 글을 쓰고 있는데, 거기 가면 쓰게 되는 것 같아요. 별다른 거 없고. 거기 가서도 사실은 바로 나오지는 않겠죠. 몇 가지 복장을 갖다 놨는데 환자복을 훔쳐가지구요 소설이 안 써질 때 환자복을 한 번 입어보고, 헬스장에서 헬스복을 하나 훔쳐서 입고. 뭔가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거긴 아무것도 할 게 없거든요. 뭔가 엉뚱한 짓을 하긴 하는 것 같아요, 계속. 스스로 좀 옥죄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거기서 그렇게 글을 쓰는 것 같습니다.
김미월 : 방금 말씀 들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진짜 이상한 분이신 것 같아요(웃음). 저도 사실 이상하기로는 어디 뒤지지 않는, 이상한 면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이긴 한데요. 특별히 튀는 버릇 같은 건 없어요. 평소에도 정리정돈 청소하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 작정하고 ‘글을 써야지.’ 할 때는 특히 더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완벽하게 정리해 놓고 깔끔하게 청소를 해요. 나중에는 그것도 모자라면 컴퓨터 안의 폴더들도 다 정리를 하는데요. 뭔가 불필요한 것들이 눈앞에 보이지 않게 다 치워야 되는 그런 버릇이 있구요. 저도 앉기까지가 되게 힘든데 앉아서도 딴 짓을 되게 많이 하거든요. 그 중에 하나가 아이돌 그룹의 뮤직비디오, 댄스 가수들의 뮤직비디오 보는 걸 되게 좋아하는데요. 원래 노래와 춤 보는 걸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말 너무 열심히 추는구나, 너무 열심히 부르는구나, 너무 열심히 랩을 하는구나.’ 그런 게 이상한 감동을 줄 때가 있더라구요. 그런 순간을 누릴 만큼 누린 다음에 글을 쓰는 버릇이 있습니다. -
강유정 : 최근에는 누가 눈에 들어오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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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월 : 저는 원래 아이돌 중에서는 빅뱅을 되게 좋아하는데, 샤이니 노래도 좋아하고 투애니원도 좋아하구요. 사실은 거의 모르는 아이돌이 없을 정도로 꿰고 있는데, 좋아하는 아이돌은 많지 않습니다.
강유정 : 김미월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오늘 이 네이밍이 맞네요. 몸에 나쁜 버릇을 가지고 계신 것 같고, 이상한 습관이 있는 것 같고, 그나마 청소가 제일 착한 것 같긴 하네요(웃음).
『포주 이야기』『우선 멈춤』『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
그 이야기 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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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정 : 사실 제가 개인적으로 세 작가를 정말 좋아하고, 특별히 오늘 얘기한 작품집과 장편소설은 되게 애착을 갖고 있는 작품이기도 해요. 『포주 이야기』를 현대문학이었나요, 월간지에서 읽었을 때 굉장히 전율이 일었던 기억이 나구요. 『아무도 펼쳐보지 않은 책』 역시 제가 계간지에서 본 것 같은데 너무 재밌게 읽었구요. 『우선 멈춤』도 거의 초고 상태에서 읽었을 때 ‘이 작가 참 독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밀어붙일까.’라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작품에 있어서 에피소드를 묻고 싶어요. 어느 부분에서 막혔다거나 반대로 그 분이 오신 듯이 너무 잘 써졌다거나, 아니면 쓸 때 심혈을 기울였던 구절이나 장면들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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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 항상 힘들게 쓰는 스타일인 것 같은데요. 저는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힘들게 쓰는데 여러분들은 힘들게만 읽으시는 것 같아서 아쉬운데요. 『포주 이야기』는 사실은 그 말이 어느 날 문득 떠올랐어요. 저는 사실 첫 문장을 오랫동안 신경 쓰고 담아두는데요. 핸드폰에 저장하고 머릿속으로도 계속 되뇌면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포주 이야기』도 솔직히 말하면 너무 성의 없는 글인데, 왜냐하면 같은 문장이 계속 나열되잖아요. 문장을 줄이면 사실 소설이 2/3 정도로 줄어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문장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나는 포주였다.’라는 말이 그 문장이 왜 좋았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그 문장이 계속 기억에 남아서 쓸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다른 작품도 그랬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첫 문장이 소설을 끌고 나가려고 하는 어떤 힘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안보윤 : 혹시 읽어보신 분이 있다면 아시겠지만, 불에 탄 것 같이 굉장히 많이 일그러지고 아프고 고통당하고 이런 사람들이 단체로 모여 있는 이야기에요. 굉장히 좁은 공간 안에, 가족이라는 약간 폐쇄된 공간 안에 하나하나 너무나 심각한 문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다 들어있는 이야기어서 사실 캐릭터를 짤 때도 힘들었고 문장 하나하나를 쓸 때도 너무 많이 힘들었구요. 그래서 그 인물들 이야기를 쓸 때마다 굉장히 문장이 많이 멈췄었어요. 쓰고 지웠던 부분도 굉장히 많구요.
아까 굉장히 독하다고 얘기를 하셨는데 사실 초고는 지금 완성돼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독한 부분이 더 많았었고, 더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부분이 많았었기 때문에 초고 쓸 때만 해도 너무 힘들게 썼었구요. 그 중에서도 심혈을 기울여서 썼던 부분이, 거기 나오는 여고생이 불법 낙태수술을 받고 돌아오는 장면이 있어요. 이 아이가 화장을 하고 갔다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비 내리고, 울고, 땀나고 해서 얼굴이 뭉개져서 다른 사람 얼굴처럼 된 얼굴을 거울에서 보는데요. ‘나는 이 타인의 얼굴인 채로가 좋겠다. 나는 이대로 나가야 되겠다.’ 라고 생각해서 수술했던 여관방에서 씻지 않고 엉망이 된 얼굴로 나가는 장면을 그렸었거든요. 저는 그 장면이 제 스스로 굉장히 많이 쓸쓸했고, 아팠고, 인상 깊었던 장면이었던 것 같아요.
김미월 : 『아무도 펼쳐 보지 않은 책』 마지막에 실려 있는 「프라자호텔」이라는 단편이 있는데요, 그 단편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제가 프라자 호텔에서 하룻밤 자보고 쓴 글이에요. 제가 버스를 타고 호텔 앞을 지나가다가 교통체증이 심해서 잠깐 버스가 호텔 앞에 서 있었어요. 프라자 호텔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저녁이어서 창에 불들이 다 꺼져있었어요. 그런데 어느 창 하나에 불이 반짝 켜지더니 사람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더라구요. 호텔방의 창가를 누군가 내다볼 수 있겠지만 잠깐 그러다가 다시 사라질텐데, 그 그림자는 계속 거기 붙박여 있었거든요. 교통체증 때문에 제가 타고 있는 차도 계속 그 자리에 붙박여 있구요.
그래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오랫동안 저 창가에서 뭘 내려다보고 있을까?’ 생각하다가 갑자기, 어쩌면 저 사람은 20년 전에 태어나자마자 외국으로 입양되었다가 오늘 처음으로 스무살이 돼서 고국을 찾아온 그런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신을 버린 비정한 나라의 서울을, 시청 중심부를 온갖 감상에 젖어서 내려다보고 있는 게 아닐까?’ 혼자 그런 상상을 했었거든요. ‘20년 만에 고국을 처음 찾은 입양아의 눈으로 내려다보는 서울 거리는 어떤 기분일까?’ 이런 걸 혼자 상상하면서 저기서 한 번 자보고 싶다, 그렇게 생각을 했는데요. 친구한테 지나가듯이 그 얘기를 했더니 어느 날 호텔 방을 예약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떨결에 친구랑 거기서 하룻밤을 보냈는데, 그 날 호텔에서 보낸 하루의 기억이 오래 남아서 나중에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소설가가 되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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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하시기 전과 등단하시고 난 후에 글 쓸 때의 감정이 똑같으신지, 다르시다면 어떤 점에서 달라지셨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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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용 : 달라진 것 같습니다. 생각이 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등단하기 전에는 무조건 글을 잘 쓰면 된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구요. 그런데 막상 등단을 하니까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잘 쓰는 친구들이 너무나 많잖아요. 선배들도 많고. 거기서 내가 계속 글을 쓸 수 있으려면 나름대로의 어떤 내 색깔도 필요했다는 생각이 드는 거에요.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이상한 소설을 쓸 줄 몰랐어요, 사실은. 너무나 따뜻하고 아름다운, 김미월 작가를 능가하는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웃음). 저는 내면이 그렇지 않으니까 안 되겠지만. 어쨌건 나름대로 좀 바뀌고 ‘내가 어떻게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계속 글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많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안보윤 : 저는 등단 전에 글 쓸 때하고 지금하고 많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아요. 등단하기 전에도 굉장히 매달리듯이 글을 썼었고 항상 필사적으로 글을 쓰는 타입이었기 때문에 데뷔를 한 이후에도 역시 필사적으로 글을 썼는데요. 그 끝에 있는 것은 약간 달랐던 것 같아요. 데뷔하기 이전에 글을 쓸 때는 굉장히 필사적으로 글을 쓰면서도 그 마지막에 항상 절망적이었어요. ‘내가 이렇게 쏟아내듯이 다 썼는데 결국 이 소설은 묻혀지겠지, 없어지겠지, 아무것도 되지 않겠지.’ 라는 죽어야 할 것 같은 소설을 쓰는 기분이었어요. 죽은 아이 낳는 것처럼 그런 어두움에 닿아있는 필사적인 것이었구요. 지금 같은 경우는 똑같이 필사적이지만 ‘내가 이걸 책으로 낼 수 있을거야, 나는 이걸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어, 누군가 한 명은 이걸 읽어주겠지.’ 라는 식의 약간은 희망적인 느낌이에요. 사실 쓰는 입장이나 습관 이런 것은 거의 똑같은데 지금은 데뷔하기 전보다 조금 더 행복하고 조금 더 보람차죠.
김미월 : 저도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은데요. 등단을 하기 전에는 글 이라는 것, 소설가, 문단, 이런 것들이 제 손이 닿지 않는 뭔가 좀 높은 곳에 있는 저쪽 세상 같았구요. 굉장히 신선하고 특별한 것이라는 느낌이 있었는데요. 얼떨결에 제가 운 좋게 그쪽에 발을 들여놓게 되니까 그냥 이쪽 세상이 된 것 같아요. 뭔가 격하된 것 같은, 어떤 신성한 부분이 있었던 것이 생활의 일부로 주저앉은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구요. 사실 제 습작기간이 되게 짧아서 등단 전이라는 시기를 이름 짓는 것도 애매한데,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쓰고 싶은 글을 즐겁게 쓸 수 있었는데요. 등단 후에는 독자가 한 명이든 두 명이든 아니면 없든, 어쨌든 활자화 되니까 보이지 않는 가상의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좀 움츠러들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할까요. 설령 이 세상에서 두 세 명이 본다고 하더라도 그 시선을 자꾸 의식하게 돼서 움츠러들게, 겁이 많아지게 됐다고 할까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 김미월 저 | 창비
2011년 제29회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하며 촉망받는 젊은 작가로서의 저력을 확인한 김미월이 신작 소설집이다. 소설집 『서울 동굴 가이드』와 장편소설 『여덟번째 방』에서 이 시대 청춘들의 아픔과 고민을 보듬어온 작가는 두번째 소설집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에서 한층 물오른 필력과 젊은 감각, 더욱 깊어진 통찰이 돋보인다. 김미월의 소설에는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아무도 펼쳐보지 않는’ 책을 ‘남몰래 펼쳐보는’ 이 작가의 섬세한 눈길은 남다른 온기를 머금고 있다.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인생이라고 해서 섣불리 보잘것없는 삶으로 재단해서는 안된다는…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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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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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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