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국에선 나름 잘 나가는 PD였는데, 요리학교에서는 꼴찌” - 이욱정
11월 14일, 서울 용산구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 이욱정 PD셰프가 나타났다. 자신의 저서 『쿡쿡』을 품은 독자들과 만나기 위해서다. 양파 하나를 못 썰던 음식 다큐PD 이욱정은 르 코르동 블뢰에서 500일을 좌충우돌하면서 한 사람의 온전한 셰프가 됐다. 이욱정은 다큐 <셰프의 탄생 - 500일의 레시피>를 독자들에게 선보이며 자신의 레시피를 하나둘 공개했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2.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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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란 건물을 짓는 사람이 아니라 건축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연과의 조화를 도모하는 ‘유기적 건축(organic architecture)’을 주장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건축이 그저 ‘짓는 것’이라는 인식이 ‘때려 부수고 그럴듯하게 지어 팔기만 하면 된다’는 토건족을 낳았다. 생각하지 않는 그들을 건축가라고 부를 순 없다. 그건 건축도 아니니까. 라이트의 말, 요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요리사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음식에 대해서 늘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욱정 PD셰프가 세계 최고(最古)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에서 생존한 기록, 『쿡쿡』(이욱정 지음|문학동네 펴냄)은 그것을 증명한다. 철학자 펠릭스 가타리는 주방(부엌)은 물, 불, 음식, 쓰레기 등의 흐름이 교차하고 어우러져 마치 웅장한 오페라 공간처럼 재창조된다고 말했다. 창조는 생각과 사유 없이 불가능하다. 요리를 그저 단순한 노무로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새로운 맛에 대한 호기심은 삶의 활력이다. 생각만으로도 짜릿하다. 침이 고인다. 인간은 몇 시간동안 차를 몰아 맛집을 찾아가는 비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종족이다. 또한 지구에서 가장 다양한 음식을 먹는 잡식성 동물이다. 진화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은 고도로 발달된 언어와 문명사회를 이룩하게 만든 것이 ‘요리’라고 주장한다. 즉, 우리 안에 요리 본능, 있다! 요리 없이 인류 없다. 사실 생각해보라. 음식 속에 맛을 배치한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 제각각 다른 맛을 배치해서 새로운 맛을 만드는 것. 요리사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마술사다. 그러한 배치를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식재료, 그전에 식재료를 품은 자연을 알고 고마워할 줄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은 그래서다. 이욱정 PD가 셰프로 거듭나면서 깨달은 것은 그런 것이었다.


세계 최초의 요리학교 ‘르 코르동 블뢰’에 입성하다


“국제적인 요리학교인 르 코르동 블뢰의 학생들은 국적과 나이뿐 아니라 이력 또한 다양했다. 여러 분야에서 이력을 쌓은 사람들과 어깨를 부딪쳐가며 공부할 수 있는 교육환경은 르 코르동 블뢰의 장점이다.”(p.42)
이욱정 PD셰프, 유학 첫날부터 놀랐다. 워낙 다양한 나라의 사람들이 모였다는 점 때문. 그건, 많은 르 코르동 블뢰의 캠퍼스 가운데, 런던을 간택한 이유이기도 했다. 여러 나라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 그것은 요리유학에 굉장히 중요한 장점이었다. 교실에서 많은 다른 나라의 친구들과 사귀고 배우는 것이 플러스 알파로 작용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르 코르동의 수업은 철저 혹은 빠듯했다. 수업은 8시 시작. 방송사PD로 출근이 비교적 자유로웠던 그로선 적응이 쉽지 않았다. 집에선 6시에 나와야 했다. 더구나 지각 3번이면 퇴장, 결석 2번은 낙제. 동기들을 둘러보니, 만만치 않았다. 레스토랑에서 일한 경험을 가진 이가 절반이요, 기본적으로 요리에 미친 사람들. 어떻게 견뎌낼까 싶었다. 교과서도 여느 요리책처럼 친절하지 않았다. 재료가 나열돼 있고 수치만 있을 뿐, 수업을 통해 자기 식으로 이해해야만 했다. 기초단계에선 50~60년 축적된 서양요리의 알파벳을 가르쳤다. 서양요리 전반의 기본을 몸과 머리로 숙달하는 과정. 좌충우돌, 뒤죽박죽. 셰프의 길은 멀고 험했다.

“팸플릿에는 요리를 모르는 사람도 된다고 나와 있다. 그것만 믿고 갔다. 막상 가보니, 절반은 레스토랑 경험이 있고 나머진 요리를 잘 하는 친구들인 거다. 입으로 요리한 나 같은 사람은, (웃음) 칼질부터 모든 게 서투른데, 수업 스피드는 또 굉장히 빠르다. 처음 요리하는 사람은 정신 못 차린다. 어느 정도 해본 사람도 정신없으니까. 그것이 스트레스를 받는 요인이다.”

그곳은 르 코르동 블뢰였다! 세계 최초의 요리학교. 이 PD셰프가 본 것은 럭셔리한 시설이 아닌 키친의 노하우였다. 그것으로 전 세계에 글로벌캠퍼스를 지었고, 학생들에게 요리 전반을 생각하게 만들며, 전 세계의 요리사와 교류할 수 있게 만든 힘이었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단순히 프랑스 요리 레시피를 만들었다면 지금과 같은 성공을 못했을 것이다.”

그런 요리학교다보니, 더욱 엄격한 것이 있었다. 창의성 발휘한답시고, 정도를 벗어나면 혼났다. 기본기의 철저한 숙련 뒤에야 창의성이 나온다는 것. 기본적인 것을 반복했다. 정신을 빠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됐다. 점수를 매길 때, 늦게 요리를 만드는 것이 가장 큰 감정요인이었다. 못 만들어도 늦으면 안 됐다. 그러니 경쟁도 펼쳐졌다. 먼저 낸 학생이 공부를 잘하는 것처럼 인식되는 분위기. 경쟁적으로 빨리 했다. 그런데, “빨리 하는 친구들 것을 먹어보면 맛이 없는 경우도 있더라고(웃음).”


요리하는 사람, 요리하는 문화에 새로 눈을 떴다


셰프가 되기 위한 열망은 하나였지만, 그들의 출신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었다. 변호사, 간호사, 프로그래머 등 다른 직업에서 셰프가 되기 위해 그들은 모였다. 이 PD셰프가 요리프로그램을 만든 PD라는 것도 그들에겐 흥미로운 사안이었다. 그 덕분에 요리수업 외에 또 하나의 작업을 해야 했다. PD답게 다큐팀을 만들었고, 카메라를 들었다는 점도 종종 장점으로 작용했다. 이들이 학교를 온 동기도 그만큼 다양했다. 그만큼 르 코르동 블뢰는 종합적이고 다양했으며, 다른 여러 나라 사람들과 교류하는 즐거움도 있었다.

“학교 밖에서 배우는 것이 파티다. 요리학교 학생들의 파티를 가면 다 주방에 모인다(웃음). 주방에 모여서 요리하는 걸 본다. 다른 나라 요리를 맛보면서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언제 브라질이나 헝가리 요리를 먹어보겠나. 파티에서는 그게 가능하다. 먹으면서 생각하고, 맛이나 요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게 재미다.”

물론 어려운 점도 상당히 많았다. 육체적인 고단함은 기본이었다. 거의 하루 종일 서 있는 경우도 많고 긴장을 풀 수도 없었다. 수업 중에 조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점심시간이 30분도 안 될 정도로 요리 수업은 빡빡했다. 시험은 하나하나의 고비였다. 한 학기에 2번 시험을 보는데, 제비뽑기를 해서 2,3개 메뉴를 정했다. 복불복이었다. 잘 하는 게 뽑히면 좋으나, 재수 없으면 연습 한 번 하지 않은 메뉴가 걸리기도 했다.

“시험 3시간이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지 모른다. 너무 긴장해서 물도 한 모금 못 먹고. 시험에서 제일 무서운 건 시간을 넘기는 것이다. 치명적인 실수를 하면 낙제인데, 그 스트레스가 엄청나다. 시험 압박감은 초급 과정에서 심하다. 시험 끝나고 우는 친구들 많고, 점수를 볼 때는 너무 떨리더라. 주방에선 특히 군대식으로 교육하고 선생들도 웃지 않는다. 그래야 다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방은 늘 안전사고의 여지가 있기 때문에 긴장이 팽배했다. 그러다보니 친구끼리 싸우는 경우도 있었다. 실습 중 서로 다툼이 생겨 퇴학을 당했던 경우도 봤다. 학교 쪽에선 봐주는 게 없었다. 주방은 위험한 곳이며, 직업상 팀워크가 중요하기 때문에 자기감정이나 분노를 제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치도 봐주는 것이 없었다. 학기 시작하고 처음 한 달 동안 1년 반창고가 다 나간다는 말도 있었다. 그도 처음 요리학교에 갈 땐 겁이 났었다. 무수하게 베이면서 알았다. 칼을 잘 갈아놓으면 안 벤다. 칼을 제대로 안 갈면 사고가 난다.

“무딘 칼이 위험하고 날 선 칼이 안전하다는 것, 뜨거운 것이 두려울수록 더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것. 주방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그 아이러니를 먼저 배워야 한다.”(p.71)
그에게도 최악의 날이 있었다. 이탈리아 음식 메뉴를 만드는 날이었다. 그날따라 선생이 뭔가 기분이 안 좋았는데, 친구들은 이미 검사를 맡고 있는데 이 PD셰프만 끝나지 않았다. 촬영 때문이었다. 카메라를 든 친구가 계속 물어오고, 연출까지 겸하느라 거의 패닉상태였다. 그렇다고 선생들이 촬영한답시고 봐주지도 않는다. 그날 엎친데 덮쳐서 경고장을 받았다. 몇 번 결석을 몇 번 했는데, 결석을 더 하면 패스하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우울했다.

“나름 방송국에선 잘 나가는 축이었는데, 여기선 제일 못하는 거다. 처음엔 심리적으로 컨트롤이 안 되더라. 요리학교에 가려면 그런 심리적인 대비가 있어야 한다. 요리에 잔뼈가 굵은 친구들도 많고, 무시당하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시간이 필요하고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또 유학이 갖는 스트레스까지. 육체적으로도 힘들었다. 첫해 겨울에 우울증에 걸린다는 얘기도 있었다. 잘 극복하는 게 중요한데, 내겐 그걸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친구들 덕분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가장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것이다. 요리 하는 사람, 요리 하는 문화에 대해 새로이 눈을 떴다는 것. 요리사의 자세와 태도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가 보기에, 요리사는 재료의 처음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 어떤 땅에서 나고, 어떻게 자랐는지 등 좋은 요리사는 좋은 농부여야 한다.

“요리는 칼질을 잘하거나 레시피를 꿰고 있는 게 아니라 생각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전설적인 요리사들은 칼질이나 테크닉이 좋아서가 아니라 자기만의 철학이 있다. 자연, 재료, 음식에 대한 철학. 요리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다.”


이욱정 PD에게 묻고, 이욱정 셰프가 답하다


갑자기 요리유학을 간 이유가 무엇인가?

음식에 관심이 많았다. 제대로 된 음식프로그램에 대한 갈망의 결실 중 하나가 <누들로드>였고, 프로듀서로서 음식 프로그램을 전문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에 이론적인 것, 책 읽고 촬영하는 것만으론 성에 안 차더라. 그 세계에 들어가 몸으로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것도 보일 거라고 여겼고, 결과적으로 판단을 잘했다. 어떤 분야에서 일했든 요리를 하는데 장점이 있다. 컴퓨터를 하다가 요리하는 것도 장점이 된다. 요리학교를 나와서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 아니다. 컴퓨터를 했다면, 요리나 레스토랑 관련 소프트웨어를 만들 수 있다. 프로그램 만들 때 무엇이 필요한지 알 거든. 이전에 한 컴퓨터 분야가 (요리와) 동떨어졌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어느 분야든 음식과 다 연결이 된다. 법대를 나왔다면 음식 관련 특화된 변호사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요리학교를 간 것은 음식 전문 프로듀서로서 제대로 해보자, 이런 생각이었다.

“대학도, 직업도, 결혼도, 노후도 남들 하는 레시피대로 그냥 똑같은 접시에 똑같은 음식을 만들다 끝이 난다. 나는 그게 싫었다. 내 밥상은, 내 인생만은 나만의 레시피에 따라 요리하고 싶었다.”(p.10)
24개국에 40여 개의 르 코르동 블뢰가 있는데, 굳이 영국을 택한 이유는?

지금은 파리 르 코르동 블뢰 고급반에서도 영어로 수업한다. 내가 갈 때만 해도 파리에선 영어로 수업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영국은 요리 프로그램을 가장 잘 만든다. 유명 텔레비전 셰프는 대부분 영국 사람이거나 영국 프로그램이다. 영국 방송사가 요리 프로그램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영국에서 TV를 켜면 요리 아니면 축구다. 유학 갈 당시 파운드보다 유로가 더 비쌌다는 점도 작용했다.

“영국이 전 세계에서 텔레비전 요리 프로그램을 가장 잘 만든다는 데 마음이 끌렸다. 나로서는 요리를 공부하더라도 프로듀서로서의 감을 잃으면 안 됐다. 영국은 방송과 음식이 결합했을 때 얼마나 다양한 형태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곳이다.”(p.29)
지금 신용카드 회사를 다닌다. 회사를 그만두고 요리를 배우려는데 무엇을 준비하면 되나?

우선, 꿈을 꼭 이뤘으면 좋겠고. 앞일을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마라. 좋아하고, 감당할 수 없는 대출을 받지 않아도 갈 수 있다면 해야 한다. 요리학교 가면 굶어죽진 않는다(웃음). 먹는 건 마음껏 먹을 수 있다. 아는 분 주방에 들어가서 일을 배우는 것도 좋다. 요리학원보다 현장이 더 좋다. 유학 가려면 언어는 해 놓아야 한다. 요리 프로그램도 많이 봐라. 목표를 호텔에 들어가거나 레스토랑 개업에 두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을 목표로 두지 말고 사업적으로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미래를 넓게 생각하고 가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나는 켄을 통해 요리와 관련된 길이 셰프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레스토랑 경영자가 되기 위해서, 푸드 라이터가 되기 위해서, 레스토랑을 설계하고 디자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음식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연출하기 위해서, 요리를 배울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p.26)
진짜 잘 만들었다 싶은 요리, 자신 있는 요리가 있다면?

요즘은 피자. 피자를 굉장히 많이 연습한다. 화덕이 있어서. 또, 닭이나 오리로 하는 요리. 요리학교를 나와서 좋은 게 뭐냐면, 어떤 요리책을 봐도 그림이 그려진다. 양식 뿐 아니라 다른 나라 음식도. 요리에는 공통분모가 있다. 재료를 다루고, 소스를 만든다. 다른 요리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지금 만들고 있는 프로그램이 8부작 <요리인류>다. 빵, 고기, 향신료 등을 다룰 것이다.

나는 인류의 식문화는 피라미드나 만리장성 등 위대한 예술품 이상의 소중하고, 거기엔 인류의 모든 지혜와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유가 들어있다고 본다. 그러나 안타깝게 그런 것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식재료도 종 자체가 줄고 있고, 그런 것을 사라지게 하는 게 맥도날드 등과 같은 거대한 힘이다. 인류의 식문화 안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위기는 먹을거리의 위기다. 요리사라는 직업은 그래서 음식을 만들고 파는 이상의 중요성을 갖고 있다. 가장 일상적인 행위인 요리 안에 인류,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다 있다.


요리를 처음 시작했을 때, 힘든 것과 행복한 것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나?

힘든 건, 테크닉이 전무한 상태라 굉장히 힘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적응하는 건 어렵지 않았는데, 기술을 따라가는데 힘들었다. 행복했던 건, 요리학교의 사랑스러운 점인데, 동지애 같은 게 끈끈하게 생긴다. 신경이 날카로워질 때도 있지만, 함께 팀을 만들어서 요리를 완성하고 얘기를 나눌 때가 가장 행복했다. 요리를 통해 얻는 기쁨이라면, 그것을 누군가가 먹고 즐거워했을 때다. 그때의 만족감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깨끗이 비운 접시가 주방으로 돌아오고, 음식을 먹은 사람이 잘 먹었다고 했을 때, 다른 어떤 직업도 가질 수 없는 행복이 있다.


가장 좋아하는 요리 프로그램, 요리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에게 도움이 될 프로그램이 있다면?

일단 <누들로드>가 있고(웃음). 제이미 올리버 프로그램은 굉장히 잘 만든다. 고든 램지도 뛰어난 요리사이긴 하나, 제이미 올리버의 요리 프로그램엔 철학이 있다. 사람이 있고, 음식에 대한 애정, 자연 등이 제시된다. 앞으로 내가 만들고 싶은 요리 프로그램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것도 있고, 자연에서 좋은 재료가 뭔지 배우고 그 재료로 심플하지만 제대로 맛을 내는 프로그램 같은 것을 하고 싶다.

셰프가 목적이었기보다 PD로서 요리학교를 다닌 것 같은데, 국내에서 할 수도 있었는데, 시간이나 돈을 들여서 한 목적이 더 있나? 방송사에서 지원이 있었나?

레시피나 스킬만 배우려고 유학을 간 건 아니다. 그건 독학해도 된다. 세계적인 요리학교에 갔을 땐 그 이상 배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했다. 요리학교를 다룬 방송다큐는 사비를 들여 제작해 나중에 방송사에 제안해서 방영한 것이다. 나는 휴직을 하고 가서 방송사의 지원은 없었다. 월급이 또박또박 들어오다가 끊기는 순간, 두 달만 지나면 월급이 얼마나 굉장한지 안다. 요리학교의 많은 친구들은 돈을 모아서 온다. 그리고선 주말 내내 일하고. 정말 안 됐다.

“요리학교에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요리를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이에요. 당근을 똑같은 크기로 재빨리 채 썰 수 있는 요리사는 많지만, 당근으로 새로운 레시피를 생각해낼 수 있는 요리사는 드물지요.”(p.27)
나는 거기서도 방송 관계된 일도 했다. 해외에서 찍어야 하는 것들이 있을 때, 조금씩 일을 했다. 마침, 북한 김정일의 친구가 요리사로 오스트리아에서 일하는데, 방송사에서 전화가 와서 그를 인터뷰하라고 해서 찾아갔다. 나도 요리사라고 했더니 좋아하면서 인터뷰를 해주더라. 그게 특종이 됐다. 요리학교 다닌 덕을 본 거지. 대부분 사람들은 힘들게 요리학교를 다닌다. 밤에도, 주말도 일하고. 그런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엄청난 실력을 갖게 된다. 남들보다 2~3배 실력이 느는 거지. 학교 아닌 곳에서 배우는 게 있다.

<누들로드>가 성공한 이유에 대해 담당PD로서 말한다면.

요리학교를 나와서 프로그램을 하면서 나의 시각이 달라졌다. 음식을 다른 관점에서 보게 되고, 요리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존경심을 갖게 됐다. 지금은 좋은 요리를 만든 요리사를 존경한다.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거든. 그런 면에서 요리사는 겸손한 사람들이다.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늘 주방에서 땀 흘리고, 한 접시를 만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안다. 앞으로 만들 프로그램에 그런 것이 배어날 것 같다.

“르 코르동 블뢰에 다니면서 요리에 진정한 열정을 가진 사람일수록 남에 대한 배려심이 많고 말보다 실천이 앞선다는 걸 깨닫는다. 요리사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는 인품이 아닐까. 제 입부터 챙기는 이기적이고 게으른 사람이 남을 위해 음식 만드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기는 어려울 테니 말이다.” (p.106)
영국에서 요리유학을 하면, 이민이 가능하나?

영국은 어렵다. 그런 나라들이 있을 것이다. 영어권 나라에서는 현재 뉴질랜드가 가능하다. 현지에서 취업할 수 있다는 건 굉장히 좋다. 영어는 중요하다. 좋은 요리학교를 나오고 영어를 할 줄 알면, 전 세계 레스토랑이 자신의 일터가 될 수 있다. 미슐랭에서도 한국 사람이 요리를 잘 하는 것을 안다. 독종이고 어떻게든 배우려고 하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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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쿡
이욱정 저 | 문학동네
‘명품 다큐멘터리의 탄생’이라는 극찬과 함께 다큐멘터리 피디로서 최고 전성기를 누리던 그때, 프로그램을 연출한 저자는 런던의 르 코르동 블뢰로 요리유학을 떠났다. 요리 프로그램의 연출자가 되려면 그 과정을 직접 배우고 체험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 책의 장점은 현장을 고스란히 전하는 사진과 더불어 위트 넘치는 글과 시각적인 묘사에 있다. 다큐멘터리 피디답게 모든 상황을 객관화해서 시각적으로 묘사하는 솜씨는 쿡쿡 거리며 웃게 만들다가 멍하니 생각에 잠겨 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든다. 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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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욱정 #쿡쿡 #요리 #누들로드 #르 코르동 블뢰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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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커피좋아

2012.12.31

다큐멘터리를 잘 만드는 PD들의 노력이란 이런 세세한 부분까지 포함하는 것이었네요. 그런 노력이 재미있는 다큐로 나온 거라니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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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코

2012.12.05

누들로드 재밌게 봤는데 이번에 책도 내셨군요. 관심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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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

2012.12.04

요리는 정말 누구에게나 늘 로망 그 비슷한 게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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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