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랐던 나?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 뮤지컬 <지킬앤하이드>
선과 악, 이중성을 분리해내는 실험을 하겠다는 지킬 박사.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는데, 당시 종교의 지붕 아래 살던 세계에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을까? 맨 처음 원작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이야기를 썼을 때, 1990년 미국에서 공연이 초연됐을 때의 분위기를 상상해봤다. 전회 매진, 전회 기립박수 등 매회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고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그 명성만큼이나 굉장히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2013.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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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히 오랫동안 소망해온 일이 있다면 누구나
선과 악, 이중성을 분리해내는 실험을 하겠다는 지킬 박사.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는데, 당시 종교의 지붕 아래 살던 세계에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을까? 맨 처음 원작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이야기를 썼을 때, 1990년 미국에서 공연이 초연됐을 때의 분위기를 상상해봤다. 전회 매진, 전회 기립박수 등 매회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고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그 명성만큼이나 굉장히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음악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 <오페라의 유령>, 아름답고 추한 것, 자유로움에 관한 이야기 <노트르담의 꼽추>,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개인들의 이야기 <레미제라블> 모두 명성만큼이나 개성 있는 뮤지컬이고, 볼 때마다 격하게 감동했지만, <지킬앤하이드>의 감동은 완전히 달랐다. 모든 인물 개개인에게 절절하게 공감하고,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잊을 만큼 극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이었다. 아마, 인간의 본성,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작가의 고민, 그것을 매혹적으로 표현해낸 무대와 음악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 오랜 시간 간절히 소망해온 일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들으며 마음이 떨리지 않을 리 없다. 한때 좋았던,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꿈 같은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때는 꿈에>와 함께 추억이 밀려올 테고, 내 모든 것을 내 걸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당신이라면>은 얼마나 설레는 사랑 노래인가. 캐릭터 하나하나의 간절함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한 번쯤 누구나의 마음에서 피고 질법한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들은 관객을 압도적으로 사로잡는다. 여기에는 우리 입말에 맞게 잘 번역된 한국어 가사도 한몫을 한다.
모두가 말려도 갈 수 밖에 없는 길
“내 육신마저 내 영혼마저 다 걸고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모두가 말렸지만 그럼에도 지킬 박사는 실험해야 했다. 그에게는 운명이었다.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의 용기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자기의 소명에 눈뜬 자들은 그 길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말년에 정신병을 앓고 지옥을 헤매는 모습에 상처를 받은 지킬은 인간을 지옥에서 구원해내야겠다는 필생의 사명을 갖게 된다. 자기만 할 수 있는 일, 자기라서 할 수 있는 일을 가진 자는 자기만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그가 진정으로 기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그 길에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독한지만 볼 수 있을 뿐, 그 안에 내제된 기쁨과 환희는 길 위에 선 자만을 사로잡는다.
사실 지킬박사의 도전은 신의 영역에 던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뛰어난 지성으로 통제 불가능한 것(악)을 통제하겠다는 시도였으나, 지킬박사에게 아니 인간에게 그것은 무리한 시도였다. 지킬 박사조차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면의 악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두꺼운 가면을 써서 그 악을 억누르고 사는지 미처 몰랐을 테다. 실험은 패기 넘치게 시작했지만, 지킬은 점점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할 뿐이다.
내가 나를 실제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닌가?
지킬이 지금 이 순간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품위 있고 아름답고 고결한 엠마와의 약혼식 날 저녁, 지킬은 친구들에게 이끌려 술집에 가서 루시를 보게 된다. 그때 그 선비 같은 지킬의 마음이 루시의 매력에 흔들린다. 자신의 내면에도 유혹에 굴복하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체감한 지킬, 더는 실험을 미룰 수 없다. 급기야 자신의 팔에 주사 바늘을 꽂는 데에는, 자신을 극복하고 싶은 이런 인간적인 갈등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 치밀어 오르는 분노, 표현하고 났을 때 시원함보다 먼저 밀려오는 부끄러움, 내가 스스로 작아지고 미워지는 순간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실망하지? 내가 나를 너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실제보다 훨씬 더 괜찮은 척하고 사는 건가?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악은 위선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거나, 억눌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새어나간다. 점잖은 척 하지만, 어린 소녀들을 성추행하는 신부, 사랑을 부르짖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귀족들을 향해 사람들은 그 허울(facade)을 꼬집는다. 정말 선과 악의 분리가 필요한 사람은 그들이었을 테고, 그들과 어울리는 지킬은 자상한 표정 속에 그들을 처벌하고 싶은 욕망이 있던 모양이다. 지킬 안에 하이드가 가장 먼저 심판한 것이 그 귀족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윽고 지킬의 여리고 순수한 영혼은 악으로 뭉친 하이드에게 잠식당한다. 하이드의 거침없는 살인 행각에 지킬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연인을 잃어버린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결국 더 많은 걸 잃게 되는 지킬 앞에서 관객은 연민할 수밖에 없다. <지킬앤하이드>의 세계는 냉혹하다. 현실적이다. 누구보다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보다 아프게 넘어지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다.
관객 내면에 숨겨진 하이드까지 자극하는 강렬한 연출
<지킬앤하이드>는 OST가 아름답고, 이미 잘 알려진 노래가 많아, 뮤지컬을 평소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흡사 갈라 콘서트를 보는 기분일 테다. 노래는 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함과 동시에 서사도 가열차게 밀고 나간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사랑받는 노래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지킬이 내면의 하이드와 대결(Confrontation)하는 곡이다. 한 자리에서 연기만으로 두 가지 인격을 표현해내는데, 음악도 빠르고 가사도 많아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곡이다. 인기나 역량, 가능성을 인정받은 배우들을 지킬 역할로 만날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번 공연은 양준모와 윤영석이 지킬 역을 맡는다. 이날 관람한 공연에서 양준모는 지킬과 하이드를 연기나 가창력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인상적으로 표현해낸다. 꼿꼿이 서 있는 지킬의 모습과 달리 하이드때는 허리를 둥글게 말아 흰 셔츠로 상체를 한껏 부풀려서 헐크와 같이 우락부락한 자세를 취한다. 점잖던 사람이 셔츠를 찢어대며,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난 악마의 편에 서겠어. 다 파괴하겠다. 다 심판하겠다”고 날뛸 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양준모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돼 내 안에 꼭꼭 숨겨진 하이드가 그를 보고 아는 척을 하는 양 꿈틀거렸다. 특히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달라진 연출을 선보이겠다고 한 제작진의 말처럼, 살인, 유혹 등의 극단적인 감정의 표현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충분히 심적 근거를 가진 행동과 연출이라서, 계속되는 살인, 거침없는 유혹에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킬앤하이드>는 인물마다 탄탄한 이야기를 하고있어, 주인공 지킬 뿐 아니라 대부분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허스키한 보이스의 선민은 루시의 관능적인 매력을 거침없이 발휘했고, 상냥하고 지혜로운 부인 엠마 역의 정명은은 엠마의 고결함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노래 넘버들로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인물들에게서도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끌어내는 작가와 연출가에게 탄복했다. 클럽에서 춤을 추고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 루시의 내면에 누구보다 건강하게 빛나는 영혼이 있다는 것,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잘하는 엠마에게도 때론 남자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루시와 엠마도 결국 우리 내면의 한 사람 아닐까? 막이 내리면 무대를 바라보던 눈을 돌려 내 안을, 더 깊숙한 내 내면을 응시하게 하는 작품이다.
선과 악, 이중성을 분리해내는 실험을 하겠다는 지킬 박사. 지금 생각해도 놀라운 발상이 아닐 수 없는데, 당시 종교의 지붕 아래 살던 세계에서는 얼마나 충격적인 이야기였을까? 맨 처음 원작자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이 이야기를 썼을 때, 1990년 미국에서 공연이 초연됐을 때의 분위기를 상상해봤다. 전회 매진, 전회 기립박수 등 매회 폭발적인 반응으로 이어져 오고 있는 고전 뮤지컬 <지킬앤하이드>는 그 명성만큼이나 굉장히 흡입력 있는 작품이다.
음악과 사랑에 대한 열정을 노래한 <오페라의 유령>, 아름답고 추한 것, 자유로움에 관한 이야기 <노트르담의 꼽추>, 역사 속에서 고통받는 개인들의 이야기 <레미제라블> 모두 명성만큼이나 개성 있는 뮤지컬이고, 볼 때마다 격하게 감동했지만, <지킬앤하이드>의 감동은 완전히 달랐다. 모든 인물 개개인에게 절절하게 공감하고, 무대와 관객의 거리를 잊을 만큼 극 속으로 빠져드는 경험이었다. 아마, 인간의 본성,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이 있는 작가의 고민, 그것을 매혹적으로 표현해낸 무대와 음악 덕분일 것이다.
누군가 오랜 시간 간절히 소망해온 일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을 들으며 마음이 떨리지 않을 리 없다. 한때 좋았던, 다시 되돌아가고 싶은 꿈 같은 순간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한때는 꿈에>와 함께 추억이 밀려올 테고, 내 모든 것을 내 걸고 사랑하고 싶은 사람 앞에서 <당신이라면>은 얼마나 설레는 사랑 노래인가. 캐릭터 하나하나의 간절함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고, 한 번쯤 누구나의 마음에서 피고 질법한 감정에 호소하는 노래들은 관객을 압도적으로 사로잡는다. 여기에는 우리 입말에 맞게 잘 번역된 한국어 가사도 한몫을 한다.
모두가 말려도 갈 수 밖에 없는 길
던지리라 바치리라
애타게 찾던 절실한 소원을 위해
지금 이 순간, 나만의 길
당신이 나를 버리고 저주하여도”
모두가 말렸지만 그럼에도 지킬 박사는 실험해야 했다. 그에게는 운명이었다. 남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은 그의 용기가 남다르기도 하지만, 자기의 소명에 눈뜬 자들은 그 길을 피해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존경하는 의사였던 아버지가 말년에 정신병을 앓고 지옥을 헤매는 모습에 상처를 받은 지킬은 인간을 지옥에서 구원해내야겠다는 필생의 사명을 갖게 된다. 자기만 할 수 있는 일, 자기라서 할 수 있는 일을 가진 자는 자기만의 길을 갈 수밖에 없다. 외롭고 고독하더라도 그가 진정으로 기쁨과 열정을 느낄 수 있는 순간도 그 길에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그 길이 얼마나 위험하고 고독한지만 볼 수 있을 뿐, 그 안에 내제된 기쁨과 환희는 길 위에 선 자만을 사로잡는다.
사실 지킬박사의 도전은 신의 영역에 던지는 것이었다. 인간의 뛰어난 지성으로 통제 불가능한 것(악)을 통제하겠다는 시도였으나, 지킬박사에게 아니 인간에게 그것은 무리한 시도였다. 지킬 박사조차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내면의 악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평소에 얼마나 두꺼운 가면을 써서 그 악을 억누르고 사는지 미처 몰랐을 테다. 실험은 패기 넘치게 시작했지만, 지킬은 점점 자신의 나약함을 발견할 뿐이다.
내가 나를 실제보다 더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던 건 아닌가?
지킬이 지금 이 순간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흥미롭다. 품위 있고 아름답고 고결한 엠마와의 약혼식 날 저녁, 지킬은 친구들에게 이끌려 술집에 가서 루시를 보게 된다. 그때 그 선비 같은 지킬의 마음이 루시의 매력에 흔들린다. 자신의 내면에도 유혹에 굴복하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걸 체감한 지킬, 더는 실험을 미룰 수 없다. 급기야 자신의 팔에 주사 바늘을 꽂는 데에는, 자신을 극복하고 싶은 이런 인간적인 갈등도 자리 잡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욱하는 감정, 치밀어 오르는 분노, 표현하고 났을 때 시원함보다 먼저 밀려오는 부끄러움, 내가 스스로 작아지고 미워지는 순간에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왜 실망하지? 내가 나를 너무 생각보다 괜찮은 사람으로 착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실제보다 훨씬 더 괜찮은 척하고 사는 건가? 사람들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내 안에 존재하고 있는 악은 위선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거나, 억눌려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새어나간다. 점잖은 척 하지만, 어린 소녀들을 성추행하는 신부, 사랑을 부르짖으며 가난한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는 귀족들을 향해 사람들은 그 허울(facade)을 꼬집는다. 정말 선과 악의 분리가 필요한 사람은 그들이었을 테고, 그들과 어울리는 지킬은 자상한 표정 속에 그들을 처벌하고 싶은 욕망이 있던 모양이다. 지킬 안에 하이드가 가장 먼저 심판한 것이 그 귀족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이윽고 지킬의 여리고 순수한 영혼은 악으로 뭉친 하이드에게 잠식당한다. 하이드의 거침없는 살인 행각에 지킬은 속수무책으로 자신을, 연인을 잃어버린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어 시작한 일인데, 결국 더 많은 걸 잃게 되는 지킬 앞에서 관객은 연민할 수밖에 없다. <지킬앤하이드>의 세계는 냉혹하다. 현실적이다. 누구보다 큰 용기를 가진 사람이, 누구보다 아프게 넘어지는 걸 우리는 본 적이 있다.
관객 내면에 숨겨진 하이드까지 자극하는 강렬한 연출
<지킬앤하이드>는 OST가 아름답고, 이미 잘 알려진 노래가 많아, 뮤지컬을 평소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흡사 갈라 콘서트를 보는 기분일 테다. 노래는 인물들의 감정을 잘 표현함과 동시에 서사도 가열차게 밀고 나간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사랑받는 노래이지만, 이 작품 속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지킬이 내면의 하이드와 대결(Confrontation)하는 곡이다. 한 자리에서 연기만으로 두 가지 인격을 표현해내는데, 음악도 빠르고 가사도 많아 배우의 역량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곡이다. 인기나 역량, 가능성을 인정받은 배우들을 지킬 역할로 만날 수 있는 건 우연이 아니다.
이번 공연은 양준모와 윤영석이 지킬 역을 맡는다. 이날 관람한 공연에서 양준모는 지킬과 하이드를 연기나 가창력뿐만 아니라 몸으로도 인상적으로 표현해낸다. 꼿꼿이 서 있는 지킬의 모습과 달리 하이드때는 허리를 둥글게 말아 흰 셔츠로 상체를 한껏 부풀려서 헐크와 같이 우락부락한 자세를 취한다. 점잖던 사람이 셔츠를 찢어대며, “위선자! 위선자! 위선자! 난 악마의 편에 서겠어. 다 파괴하겠다. 다 심판하겠다”고 날뛸 땐,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
양준모의 거침없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고스란히 전달돼 내 안에 꼭꼭 숨겨진 하이드가 그를 보고 아는 척을 하는 양 꿈틀거렸다. 특히 이번 서울 공연에서는 달라진 연출을 선보이겠다고 한 제작진의 말처럼, 살인, 유혹 등의 극단적인 감정의 표현이 구체적이고 감각적이다. 자극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충분히 심적 근거를 가진 행동과 연출이라서, 계속되는 살인, 거침없는 유혹에도 충분히 납득 가능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지킬앤하이드>는 인물마다 탄탄한 이야기를 하고있어, 주인공 지킬 뿐 아니라 대부분 캐릭터의 매력을 한껏 드러내는 무대로 구성되어 있다. 허스키한 보이스의 선민은 루시의 관능적인 매력을 거침없이 발휘했고, 상냥하고 지혜로운 부인 엠마 역의 정명은은 엠마의 고결함을 한껏 돋보이게 하는 노래 넘버들로 참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무엇보다, 이 인물들에게서도 ‘내가 몰랐던 나’의 모습을 끌어내는 작가와 연출가에게 탄복했다. 클럽에서 춤을 추고 거친 남자들을 상대하는 루시의 내면에 누구보다 건강하게 빛나는 영혼이 있다는 것, 알아서 척척척 스스로 잘하는 엠마에게도 때론 남자에게 의지하고 기대고 싶은 욕망이 있다는 걸 무대 위에 자연스럽게 드러내 보인다. 어쩌면 우리는 루시와 엠마도 결국 우리 내면의 한 사람 아닐까? 막이 내리면 무대를 바라보던 눈을 돌려 내 안을, 더 깊숙한 내 내면을 응시하게 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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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의 댓글
필자
김수영
summer2277@naver.com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연답게 잘, 헤쳐나가고자 합니다.
rostw
2013.02.10
치즈
2013.01.15
marie23
2013.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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