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경호, “춤추는 로커? <댄싱 위드 더 스타>는 나에게 소중한 기회”
스스로를 표현할 때, ‘대중의, 대중에 의한, 대중을 위한 로커’라고 말하는 가수 김경호. 책을 낼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싶어 과거의 일들을 담담히 써내려 갔다.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는 로커 김경호의 존재감이 튼실한 이유를 증명한다.
2013.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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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록이어야만 하나?’. 오디션을 보러 간 음반사마다 김경호는 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제작사들은 록을 고집하는 뮤지션을 비아냥거리는 ‘록부심’을 논하며 김경호에게 수 차례 다른 장르로 도전할 것을 권했다. 오로지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한 김경호. 그는 기타 연주 아르바이트, 버스킹을 하며 무대에 설 날을 기다렸고 음반 제작사에서 막내 일을 도맡으며 가수를 준비했다. 1997년 2집의 타이틀곡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큰 인기를 얻으며 로커로 자리잡았지만, 가수로서는 치명적인 성대결절에 소속사와 불화까지 겪고 그는 점점 대중에게 잊혀졌다. 7집으로 복귀를 시도했지만 ‘대퇴골두 무혈성 괴사증’이라는 희귀병은 김경호를 또 한번 절망시켰다. 의도하지 않게 갖게 된 휴식기. 대중으로부터는 멀어졌지만 스스로에게는 단단한 자아를 만드는 시간이었다.
김경호가 무대에 서는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스물 중반에 나는 수천 명의 청중 앞에서 노래했다. 오로지 나만을 보기 위해 비싼 티켓을 구입하고 찾아온 관객들이었다. 이쪽에서 저쪽까지 몇 번 왕복하면 숨이 찰 정도로 넓은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열정을 불살랐다. 시간이 흘러 마흔이 가까워진 어느 날, 나는 조그마한 소극장 라이브 무대에 서 있었다. 짧지 않은 공백 기간을 깨고 다시 팬들과 만난 자리였다. 오랜만에 참 행복했다. 나를 무대에서 떠나게 만든 것은 결국 나였다. 어쩌면 나는 가수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먼 길을 돌고 돌아 제자리로 왔다. 혼자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제야 가수가 된 것 같아’.(p.5) | ||
제안을 받은 지는 1년이 훨씬 넘었는데 계속 거절했었다. 내가 아직 인생을 많이 살아본 사람도 아니고 아픈 기억들도 많고, 또 그 이야기들을 서술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게 동정표를 얻게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책 자체가 부정적으로 흐를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걱정이 됐고. 하지만 힘든 과거를 겪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내용들을 담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방송에서 언급하면 문제가 될만한 예민한 일들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책을 쓰면서 좋았던 기억보다 안 좋았던 기억들이 더 생생하게 떠올랐다. 완성본을 읽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다만 내가 많은 사랑을 되찾았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전히 일을 하고 있으니까, 담담한 마음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평소 일기나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었는지.
내가 의외로 단순한 편이라서 두 가지 일은 잘하지 못한다. 그나마 기록하는 버릇이 있어서, 예전에 일기처럼 써놓았던 노트가 몇 개 있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많이 도움이 됐다. 문장이 세련되지는 못한 것 같다. 한꺼번에 이야기를 많이 해야 하는 작업이다 보니, 담금질을 하는 데 시간이 다소 걸렸다. 하지만 김경호에게 세련된 표현을 기대하진 않을 거라 생각했다. 팬들과는 자주 소통하지만 독자들과는 첫 만남이라 쑥스럽고 민망한 기분이다.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제목이 진지하고 무겁다. 직접 지은 제목인지? 로커로서의 다짐이 깃든 문장 같다.
책을 쭉 쓰다 보니 이 제목이 생각났다. 누구나 공백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하차라고 표현하긴 싫고, 본의 아니게 중도에 활동을 쉰 적이 있다. 사실 가수나 연예인들은 활동을 쉬게 되면 오히려 더 힘들 때가 많다. ‘나도 한 때는 20,30만 명 관객을 앞에 두고 공연을 했던 사람인데’ 라는 생각도 들고, 결국 나 자신이 만든 늪에 빠지기도 한다. 요즘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면 학기 초에는 모두 의욕이 충만하다. 하지만 결국 한 두 달이 지나고 보면 50명이었던 학생들이 15명도 채 남지 않는다. 너무 쉽게 중도에 포기하는 거다. 강의를 하다 보면 너무 잘하고 있는 학생들은 조급증 때문에 오디션을 보러 가버린다던가 학교보다는 학원 같은 곳에서 트레이닝을 받으려고 한다. 하지만 반면 꾸준히 열심히 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렇게 눈에 띄는 학생들에게 정이 가는 것처럼, 팬들도 언제까지나 나를 기다려주기만을 바라지 않는다. 내가 활동을 하고 어딘가에 가서 노래를 부르고 있어야 내 음악을 좋아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책에서도 나오지만 데뷔 초,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존심도 상했고. 하지만 가늠해보고 싶었다. 내가 성대 결절도 겪고 예전 소속사와 힘든 점도 있었지만, 로커로서 변함없이 무대에 서고 있다는 것. 그 진심을 보여주고 싶었다.
김경호는 언제나 ‘대중 가수’를 지향하고 있다. 보통 로커들은 ‘록부심’이라는 말도 있을 만큼 스스로에 대한 음악에 대한 자부심이 크지 않은가.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한다는 것도 중요할 텐데.
평소 신조가 겸손이란 건, 지나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후배들한테 자주 하는 소리가 우월감을 표출하면 음악이 순수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대중의 입맛에 맞추는 게 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인지 모르겠다. 음악을 과시하고자 하니까 대중들에게 비아냥을 받는 거 아닌가. 대중들의 수준을 뒤에서 욕하느니, 좀 더 대중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할 음악을 하는 게 낫지 않나. 밴드 멤버들에게도 늘 이야기한다. 우리는 음악을 과시하러 온 게 절대 아니다. 평가 받기 위해 나온 거라고. 후배들은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이빨 빠진 호랑이’ 같은 소리를 하냐고 한다. 하지만 결국 알게 된다. 대중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 자만하게 되고 중심을 잃는 동료들을 많이 보는데, 그 분들이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는 대중들과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나와 관련된 모든 기사와 글들을 찾아서 보신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 얼굴이 먹칠하는 일은 절대 안 하려고 한다. 내가 김종서를 바라보며 꿈을 키웠듯이 누군가도 나를 보며 꿈을 키울 수 있으니 불미스러운 일은 절대 만들지 않으려고 한다.
최근 부모님 두 분이 전직 아나운서였다는 사실이 방송에서 공개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를 보면 부모님의 교육열이 다소 높았던 것 같다. 책을 읽으신 반응은 어떤가?
많이 놀라셨다. 많이(웃음). 어릴 적에 모든 면에서 뛰어났던 형과 많이 비교가 되기도 했고, 내가 무척 소극적인 아이였다. 어릴 적, 어머니가 주변에 공부 잘하는 수재들을 모아서 독서토론회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내가 그 정도로 발표력도 없고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내가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면 신기해 한다. 내 뒷모습을 보면서 그 때 왜 이렇게 다른 집 아이들과 비교를 했었는지, 미안해 하시기도 하고. 하지만 그런 과정들이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어준 것 같다.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평범했을 거다. 재주도 없었을 거고. 유혹이 많은 직업이지만 중심을 잃지 않는 걸 부모님을 통해서 배웠다.
생각해보면 끝이란 것은 없다. 내가 서 있던 무대의 환호가 어느 순간 야유로 바뀌는 일도 있었고,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이상한 루머가 되어 돌아오는 일도 겪어봤다. 형제처럼 믿었던 동료가 나의 돈과 나의 음악을 앗아가는 배신도 당해봤다. 진심을 다해 사랑했던 연인이 내가 가진 것만을 원하다가 떠나가는 모멸도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잊지 않는 팬들이 있었다. 연변에서 내 노래를 들으며 꿈을 키워가는 소년도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내 손을 잡고 끝까지 재기를 위해 노력하는 동지도 있었다. 이제 예전 같지 않은 헤드뱅잉에도 환호하고 더 힘을 내라고 큰 박수를 쳐주는 사람들…. 모든 것이 더욱 소중하게 제자리로 돌아왔다. (p.265) | ||
팬들에게 ‘노친돌’로 불리는 일 행복하다
<댄싱 위드 더 스타3>에 출연 중이다. 가장 의외인 출연진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로커 김경호가 댄스에 도전한다는 소식을 듣고 팬들도 많이 놀라지 않았을까. 두 번이나 우승을 했으니, 부담감도 적지 않겠다.
매니저를 맡고 있는 황 이사가 처음에 “형, <댄싱 위드 더 스타3> 출연할래?”라고 물었는데, “너 미친 거 아니냐?”고 했었다. 너는 나를 뻔히 알면서 그걸 제안이라고 받아들인 거냐고 호통을 쳤다. 그랬더니 황 이사 대답이 이랬다. “아니, 형이 결정은 하는 건데 나는 보고만 드릴 뿐이에요. 그런데 왜 형은 말의 앞뒤가 안 맞아요? 이거 댄스 프로그램이잖아요. 형도 공연하면서 춤 추시잖아요. 로커는 왜 춤 추면 안되냐고 말한 것도 형이고. 평소 뮤지컬도 하고 싶고 춤도 배우고 싶다고 했는데, 이런 좋은 기회를 왜 안 잡아요?” 이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다. 내가 겁을 먹고 있었구나 싶었다. 일주일에 하나씩 춤을 배우고 무대에 서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인지, 무척 걱정이 됐지만 지금은 재밌고 즐겁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어린 선생님이 파트너인데, 나를 일으켜 세워주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 나이가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선생님이지만 스승으로 모시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다. 무엇보다 기쁜 건 다들 좋아하시고, 나에게 이런 끼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는 거다. 이 미션을 수행하면 내 공연에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뮤지컬 무대에 서본 적이 없나? 섭외가 많았을 것 같은데.
예전에 제안이 왔는데 다리를 수술하기 전이었다. 회복하려면 6개월이 걸린다고 해서 거절을 했는데 그 때 이후로 제안이 끊겨 버렸다. 보여줘야만 믿으시는 것 같다(웃음).
최근 10집 앨범 <共存-part 01-sunset>이 발매됐다. 4월 27일에 콘서트도 연다.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됐는데, 가장 힘든 건 앨범이 나와도 노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여전히 많지 않다는 거다.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야 사람들이 ‘이 가수가 앨범을 발매했구나’를 안다. 아직 라이브 컴백 무대를 세 번밖에 하지 못했다. 주변에 물어보면, 그나마 나온 음악 프로그램은 아무도 안 봤고, 토크쇼만 다 봤더라(웃음). 현실이라면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또한 좋아질 거라 믿고 앞으로 주어진 음악 프로그램이 있으면 최선을 다할 거고, 콘서트를 통해 팬들을 만날 거다. 여름 시즌에 part 2를 공개할 계획이라서 무척 바쁘다.
유독 안티 없는 가수이기도 하다. 본인도 느끼는가? 팬들이 ‘노친돌’이라고 부른다던데 기분은 괜찮나?
<나는 가수다> 이후에 신생 팬들이 많이 늘었다. 예전에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 히트했을 때는 인기를 실감할 겨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주 깊숙이 느껴진다. 단 한 사람의 팬도 감사하고. 십 수년 지켜온 팬들도 있다. 불혹을 넘긴 중견 가수이지만 교복을 입는 학생 팬도 있고 어머니, 아버지 팬들도 있으니 가수로서 정말 행복하다. 팬들이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지켜줄 테니 오빠는 음악만 하라고. 노친돌이라는 별명도 맘에 든다.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긴 어렵지 않나, 아저씨는 너무 했고(웃음). 노친이라고도 부르고 노친돌이라고도 부른다. 내 팬들은 마치 나를 지켜주는 수호천사 같다. 하물며 나에게 너무 조심스럽게 방송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들이 알아서 지켜줄 거니까 걱정 말라면서(웃음). 어떻게 안티 팬이 없겠나. 있긴 하겠지만 내 눈에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쓰더라도 기껏해야 피곤해 보인다는 이야기다. 자극적인 글을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만약 그런 분들이 많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을 거라 생각하니까, 개선할 거다.
반항적인 로커가 아니라 바른생활 사나이로 보인다(웃음). 스스로에게 냉정하고 혹독한 사람인가? 방송에서는 무척 부드러운 사람으로 느껴졌는데.
자신에게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서 나쁠 건 없다고 본다. 예전에는 노래만 잘하면 성공했지만 요즘은 팬들이 연예인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본다. 오죽하면 종합 엔터테이너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나. 노래를 아무리 잘하는 사람이라도 히트를 안 되는 사람이 있고, 괜스레 정감이 가는 사람이 있다. 호감 가는 인상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혹독하고 겸손한 사람이 사랑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후배나 제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꼰대가 이상한 이야기를 한다고 하지만, 난 죽을 때까지, 믿을 때까지 그렇게 잔소리한다. 나도 물론 예전에 선배들이 이야기할 때는 이해가 안 됐다. 하지만 이만큼 살다 보니 그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닫는다. 이 나이가 되니까 그 때 선배들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 책에도 언급했듯이 내가 말한 것에 대해 책임을 질 거다. 내 이름을 건 장사 같은 건 안 한다. 샤우팅 갈비? 안 할거다. 대신 내 이름을 건 실용음악아카데미는 꼭 만들고 싶다.
로커 김경호의 인생, 후회하는 부분은 없나? 다시 태어난다면 다른 장르를 선택할 가능성이 있을까?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록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것이다. 첫 단추를 너무 잘 끼웠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1집을 만들었는데, 그게 댄스뮤직이었으면 아찔했을 거다. 나에게 잘 맞는 음악이 밴드 음악이고, 강인한 성대를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한다. 다시 태어나는 생애가 있다고 하더라고 나는 로커가 될 거다. 작은 무대이든, 큰 무대이든 어디서 음악을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고 선배로서 귀감이 되고 싶다. 장르 음악이 버겁다는 생각을 안 할 수 있게 노력할 거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지금이라고 생각한다. 인기를 올리려고 하는 게 아니라 지속할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 음악을 할 거다. 차인표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더라. ‘받은 만큼 되돌려 줘야 한다’고. 나도 꼭 그렇게 하고 싶다.
<댄싱 위드 더 스타>도 <나는 가수다>와 마찬가지로 경쟁 프로그램이다. 관객에게 점수를 받고 다음 참가 여부를 묻는다. 그러나 나는 그 프로그램을 통해 합격만을 원하는 지망생들에게 본보기가 되고 싶다. ‘봐라! 장애인 5급도, 그것도 다리에 장애가 있는 사람도 춤을 출 수 있다’라고. 합격과 성공 이전에 도전하고자 하는 정신이 우선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강변하고 싶다. 온전한 몸으로 표현하는 춤사위에 비해 나의 춤은 그리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탈락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할 것이다. 도전하는 것이 인생의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을 조금 더 보여주기 위해서다. (p. 269) | ||
- 멈추지 않으면 끝나지 않는다 김경호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1990년대 말, 혜성과 같이 등장해 대한민국의 음악 지형도를 바꿔 놓았던 가수가 김경호다. 4옥타브를 넘나드는 가창력과 폭발적이면서도 감미로운 샤우팅 창법으로 대한민국을 사로잡았던 그는 2000년 초부터 홀연히 모습을 감추었었다. ‘나는 가수다’를 통해서 대중에게 가수 김경호를 다시 알리기까지, 그는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 긴 슬럼프와 희귀병을 극복하고 자신의 한계를 시험할 수 있는 무대를 찾아 ‘멈추지 않는 도전’을 즐기고 있는 가수 김경호. 이 책에서 그는 삶의 여정이 주는 교훈을 깨우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걷는 사람이 ‘꿈의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7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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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엄지혜
eumji01@naver.com
앙ㅋ
2014.07.12
감명깊은 구절이네요.
뭐꼬
2013.06.30
뽀로리
2013.05.30
급호감인 김경호 씨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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