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디자인에서 좋은 디자인 감식하기
『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저자는 좋은 디자인을 좇기에 앞서 좋은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한다. 지난 11월 20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저자와 독자가 함께하는 ‘디자인 인문학 산책’이 펼쳐졌다.
글ㆍ사진 김이준수
2013.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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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디자인을 산업의 전면으로 내세워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지만, 좋은 디자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디자인을 단순히 경제의 언어로만 해석하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된 디자인』 은 ‘좋은 디자인’에 대해 묻고 사유하게 만든다. 박현택 저자(국립중앙박물관 디자인 실장)는 좋은 디자인을 좇기에 앞서 좋은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것을 권한다. 더불어 산책 역시. 지난 11월 20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저자와 독자가 함께하는 ‘디자인 인문학 산책’이 펼쳐졌다.

“최고나 제일, 뛰어난 디자인, 경쟁력이 난무하는 세상이어도 정작 중요한 것은 사소할 수도 있는 삶,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삶을 보다 의미 있게 이끌어 가는 방편이어야 한다.”(p.9)



나만의 시선으로 보는 디자인의 가치

이중섭은 유화나 담배를 싼 종이에 그림을 그린 ‘은지화’를 남겼다. 드라마 <결혼의 여신>에서도 이중섭은 남녀주인공을 잇는 중요한 소재였다. 『이중섭 1916-1956 편지와 그림들』라는 책도 소개됐다. 저자도 그것을 언급했다. 저자에 의하면, 이중섭은 유학을 다녀왔음에도 향토성, 민족성이 강했다. 저자는 시간을 견뎌낸, 오래된 것에 대한 이야기를 이었다.

“이슬람권 관광이나 여행을 하면, 이슬람이 사막에서 기원한 문명인데, 카펫이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이슬람사원 어디에나 있는 것이 연못, 분수, 수반이다. 그건 오아시스를 상징한다. 사막을 떠돌다보니 오아시스를 갈구했고, 그걸 예술적으로 펼쳐놓은 거다. 오아시스의 식물과 새가 어우러진 풍경을 형상화 시킨 것이 아라베스크 문양이고, 그것을 짠 것이 카펫이다.”

우리의 오래된 것에 대한 이야기가 잇는다. 조선은 성리학이 지배했던 시대, 즉 유교가 지배했다. 유교의 기본 미학은 소박하고 중후했다. 저자는 청동으로 만든 수병을 보여준다. 스님들이 정화수 등을 담았던 것이다. 청동? 저자는 옛서울역 돔의 색깔을 떠올리라고 권한다. 청동은 녹이 슨다. 바깥에 녹이 슬면 코팅제 역할을 해서 안은 더 이상 녹이 슬지 않는단다. 청동은 암모니아 성분이 만나면 빨리 산화가 된다. 사실로 확인된 것은 아니나, 옛서울역 처음 공사할 때 인부들이 돔에 소변을 봤다는 그런 ‘설’도 전해준다.

“이중섭의 은지화도 보면 은지를 파고 흑연을 집어넣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물관 유물을 보면 유물 전문가들은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사소한 단서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수 백 년 동안 흘러 보전된 것인데, 우리가 알 수 없는 무엇이 누적돼 있다. 그것을 알아내는 것이 감상자의 몫이다. 형태, 문양, 색깔, 질감, 두께 등 다양한 접근법으로 도자기를 감상한다. 소리로 감상할 수도 있다. 내 맘대로 보면 된다. 다만 감상하기 전에 역사적인 사실을 공부하면 도움이 된다.”

저자는 청화백자(청자)를 보여준다. 청화는 코발트다. 이슬람권에서 수입돼 중국을 넘어 한국으로 왔다. 코발트는 비싸다. 그래서 많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단속도 했다고 한다. 유명한 여학교 교복에 파란물감을 뿌리면 미세한 파란 빛이 드는데, 그것을 영청빛이라고 불렀다. 달빛에 어린 청. 청화가 그 영청빛의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청화의 시원함을 증폭시키는 요인이다.

“평소 길거리를 돌아다니다가 재밌는 디자인을 봤다. 경희대 청소부 아저씨들이 들고 다니는 쓰레받기를 봤는데, 정말 잘 만들었더라. 이런 것이 잘 만든 디자인이다. 유명한 냉면집 ‘을밀대’에 가면 바깥에 사람들이 줄을 길게 늘어서있다. 그 사람들이 서 있는 곳에 파이프를 통해 에어컨이 나온다. 이것이 생활 속 디자인이다.”




중앙박물관을 탐방하는 시간

박현태 저자와 함께 중앙박물관을 탐방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선사ㆍ고대관부터 발걸음을 향했다. 문화재라고 시리얼넘버(호적)가 매겨져 있다. 저자는 시리얼넘버가 없다고 문화재 지정이 안 됐다고 나쁜 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문화재로서 다 의미가 있다는 것.
“인류 역사에서 석기 시대니 청동기 시대니 하는 시대를 가름하는 기준은 주로 인류가 사용한 도구의 재질이나 사용 수준과 연관되어 있다.”(p.107)
주먹도끼가 눈에 띈다. 아무렇게나 생긴 것 같지만, 기능성을 고려한 모양이다. 복합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것. 선사ㆍ고대관의 것에는 미술, 회화 등 예술 장르의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는다. 삼국시대 후기 즈음이나 고려 이후 미술, 회화 등으로 장르를 구분한다. 농경문청동기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앞면에 솟대를, 뒷면에는 농경의례를 표현한 청동기로서 생산과 풍요를 비는 의식에 사용됐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류 최초의 도구로 여겨지는 것이 바로 주먹도끼다. 주먹도끼는 주먹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한 손에 쥘 수 있는 정도의 크기여서 주먹도끼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p.107)
신라시대로 넘어갔다. 북한산 진흥왕순수비 앞에서 멈췄다. 이 비석은 진흥왕이 한강 유역을 차지한 후 이 지역을 둘러본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추사 김정희가 비문을 조사한 후 비석의 옆면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돌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는 것은 오래된 DNA인가 보다.

“옛날에는 글씨는 황제만 쓰던 것이었다. 백성들은 글을 쓰지 못하게 했다. 글을 알면 말이 많아지고, 정권에 위협에 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시황이 그래서 분서갱유를 했다. 글자의 흐름은 돌을 보면 되는데, 중국 서안의 비림박물관에 가면 한자 석판들이 모여 있다. 그 시대 선비들이 글씨를 보고 따라했다. 심지어 과거 문제로도 출제됐다.”
“조선 오백 년의 글씨의 역사는 김정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도 한다. 그는 중국을 포함한 다양한 선대의 글자에 대한 연구와 실험, 또한 글쓰기 실험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이로써 추사체라는 이름이 붙은 자신만의 독자적인 서체를 정립했다.”(p.80)
2층으로 향했다. ‘사랑방’이 꾸며져 있다. 조선의 목가구가 전시된 곳. 대영박물관에도 사랑방 모형이 전시돼 있단다. 영국인들도 되게 좋아한다고 저자는 전했다. 이곳에서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지점이 있었다. 서안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독서나 공부를 하는 책상이다.
“조선 시대의 일상생활은 대부분 좌식으로 이루어졌다. 때문에 선비들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 사용하는 책상들도 거의 앉은뱅이 책상이었는데, 이것을 서안이라 한다. 선비의 일상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일은 바로 독서였고 그 곁에는 반드시 서안과 연상이 자리하고 있었다.”(p.27)
“검소하고 소박하며 단순한 성리학적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서안이다. 약간 멋을 부린 것이 경상이다. 양쪽 끝에 졸다가 책이 떨어지지 말라고 말려 올라가 있다. 원래 사찰에서 스님들이 사용한 책상인데, 사랑방에서도 서안 대신 많이 사용했다. 서안 옆에는 연상이 있었다. 붓, 먹, 벼루 등을 넣어두는 것으로, 나도 이걸 하나 갖추려고 알아보고 있다. 조선 목가구를 보면 마음이 평안해지고 흐뭇해진다.”

저자는 3층 공예실의 조선백자를 마지막으로 보자며 독자들을 인도했다. 특히 저자가 좋아하는 끈무늬 백자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끈무늬 백자의 정식 명칭은 ‘백자 철화 끈무늬 병’이다. 형태는 단순하다. 술병 모양으로 위는 좁고 아래는 펑퍼짐하다. 병에 흐르는 무늬가 끈무늬다. 국화나 모란 같은 그림이 아닌 끈무늬를 그려 넣은 것이 신선해 뵌다.

“달항아리라고도 불리는데 그냥 항아리가 맞다. 의무감을 갖고 문화재를 보거나 대할 필요는 없다. 느낌대로 봐주면 좋겠다. 끈무늬병은 보물 1060호다. 내가 장악할 수 있어야 좋은 것 아니겠나. 개인적으로 끈무늬 백자를 참 좋아한다. 잘 생겼다. 집에 놓기도 좋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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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저 | 컬처그라퍼
이 책은 오래된 것 또는 오래 지속되고 있는 것에 대한 관심과 존경으로부터 시작한다. 박물관에 근무하는 디자이너인 저자는 시공을 초월하여 예술적 작품으로 인정받는 대상들을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거기에 담긴 삶의 지혜와 통찰을 읽어 낸다. 오래되고 지속되어 온 대상을 통해 좋은 디자인을 좇기에 앞서 좋은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고 권한다. 아울러 이러한 문화적 감성과 수준이 어떤 식으로 계승되는지에 대한 적합한 사례를 들고, 치열한 삶의 태도와 인간사유의 집적들이 결국 품격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는 원동력임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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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디자인 #박현택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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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