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는 날들이다. 아니다. 입이 있으므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수학여행을 가던 안산 단원고 학생 수백 명을 태운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것은 지난 4월 16일 수요일 아침이었다. 그 전날인 15일 밤 나는 안산에 있었다. 안산시 산하 도서관이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 행사에 초대된 것이다. 일반적으로 그런 자리에는 20~30대 젊은 독자들이 주를 이루게 마련인데 그날 객석은 좀 달랐다.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이 함께 계셨다. 무엇보다 10대로 보이는 앳된 얼굴들이 여럿이었다.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 이야기를 가장 열심히 들어준 것도 그들이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인근 중학교의 문예반 여학생들과, 국어선생님을 따라 온 남학생들이라고 했다.
그 나이의 소년소녀들과 가까이에서 한참 눈을 맞춘 것은 퍽 오랜만이었다. 그들은 조금은 수줍게 웃었고 밝은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고왔다. 참 고운 아이들이었다. 나는 그들이 봄 나무 같다고 생각했다. 청신하고 맑은 4월의 나무. 높은 하늘을 향해 여린 가지를 힘차게 뻗어 올리는.
<괴물>스틸컷
다음날 아침 일찍, 진행하는 팟캐스트 녹음이 잡혀 있었다. 차 안의 라디오에서, 제주도를 향해 가던 여객선에 문제가 생겼는데 전원 구조되었다는 뉴스를 얼핏 들었다. 큰일 날 뻔 했는데 다행이라고 스치듯 생각했다. 전화기를 끄고 지하 녹음실에 들어갔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한낮이었다. 그제야 그 지독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원 구조, 라는 것은 오보라고 했다. 오보, 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사람처럼 나는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지난 밤 만났던 소년소녀들의 얼굴이 속절없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의 언니나 오빠나 형이나 누나가 세월호에 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월호의 아이들은 누군가의 언니이며 오빠이며 형이며 누나이고, 아들이고 딸이다. 새봄의 꽃망울을 막 피워 올린 어린 나무처럼, 생생한 목숨이다.
엄청난 사고가 일어났는데, 일이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갔다. 선장과 승무원들은 재빠르게 대피했다고 하는데, 선실에 그대로 머물라는 안내 방송을 그대로 따라한 아이들은 결국 배를 빠져나오지 못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왜 초기에 승객들을 제대로 구조하지 못한 것인지 나 역시 알지 못한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모든 언론들이 진도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나는 실종자 가족의 모습이 텔레비전 화면에 잡히는 모습을 애써 피했다. 볼 자신이 없었다. 한 아버지의 목소리만은 피하지 못했다. 그분은 내 예상보다 훨씬 담담한 음성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빠가 제일 친한 친구라고 말하던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과의 인연이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 안 합니다.” 단호했다.
그랬다. 그는 끝이라고 믿지 않았던 것이다. 내 아이가, 저 깊고 찬 바닷물 속에 살아 있으리라는 확신, 아빠가 구조하러 오기를 변함없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확신이 그를 강인하게 단련시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제 새끼의 변고 앞에서 부모는 다만 그런 사람이다. 실낱같은 믿음을 동아줄처럼 잡는 것밖에 할 수 없는, 맹목적인 사람이다. 비로소 나는 울기 시작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았을 때 그것이 현실의 어떤 상황에 대한 거대한 메타포라고는 생각했지만, 리얼리즘 영역의 창착물이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2014년 4월, 이 믿기지 않은 거대한 참사 앞에서, 아무도 제대로 책임지지 않고 주먹구구식으로 돌아가는 듯이 보이는 사후 수습 과정 앞에서 내 견해를 수정해야 했다. <괴물>은 현실적인 재난을 다룬 리얼리즘 영화였다.
한강공원의 매점을 운영하는 강두는 남들 눈에 꽤나 한심해 보이는 사내다. 손님 안주로 내가던 마른 오징어 다리를 하나 몰래 끊어 어금니로 질겅이는 모습이 보여주듯 그는 철도 없고 미래도 없는 중년 남자다. 그런 사내에게도 인생에 오직 하나, 반짝이는 보물 같은 게 있으니, 바로 열 네 살짜리 딸 현서라는 존재다.
<괴물>스틸컷 중 강두와 현서
그런 딸이 한강에 출몰한 괴물에게 잡혀갔다. 이 가족에게 닥친 기막힌 비극 앞에서 어떤 공권력과 시스템도 이들을 돕지 않는다. 심지어 위험 요소로 낙인찍어 격리시키려 할 뿐이다. 딸이 아직 죽지 않았으며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믿는 강두와 그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그러므로 단 하나 밖에 없다. 피눈물을 삼키며 자력으로 돌파하는 것. 즉 예기치 못한 사회적 참사의 당사자가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으며, 오로지 자력갱생 혹은 각자도생의 방법만으로 ‘납치된 내 새끼'를 구하러 가야하는 것이다. 분명한 건 이 위태로운 세계에선 누구라도 갑자기 강두 같은 당사자, ‘총을 들고 괴물을 겨누는 아비’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내 울부짖음을 아무도 들은 척 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믿어주지도 않는다면 누군들 그러지 않겠는가?
안산(安山)은 어디에 있는가. 어쩌면 우리는 평범하기만 하던 시민을 하루아침에 투사로 탈바꿈시키는 곳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떤 세월도 곧 잊힌다고들 한다. 그러나 새벽 세 시, 울다 지쳐 멀고먼 청와대를 향해 아니 더 높은 곳을 향해, 걸어서라도 가야겠다고 길을 나선 착한 어미아비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꼭 그럴 것이다.
- <세 번 결혼하는 여자>를 보며 떠올린 영화, 그리고 남자
- 만 번을 흔들려도 견뎌야 하는 시간, 어쨌든 그게 중년(中年)
- 솔직하지 않았던, 비겁한 <색계>의 그 남자
- 봄이 되면 <4월 이야기>를 봐야 한다
-이거 혹시 나만 모르는 쇼 아니야?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Daisy
2014.04.25
자목련
2014.04.24
kami2001
2014.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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