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급 예술의 완벽한 승리 <바스터즈>
예술영화건, 블록버스터건, 웰 메이드 상업영화건, 모든 장르와 방식을 섭렵하고 만들어낼 수 있지만, ‘어허, 그런 건 관심없어’ 하는 투로 성실하게 ‘B급 영화’를 탄생시키는 것 같다. 말 그대로, B급 예술의 승리다.
글ㆍ사진 최민석(소설가)
2014.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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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짓 영사기를 연재하면서 줄곧 생각해온 것이 있다. 한 번쯤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감독을 밝힐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것이었다. 나는 쿠엔틴 타란티노를 상당히 좋아한다. 특히, 이 칼럼의 첫 회를 쓸 시점이 마침 영화 <장고>가 개봉한 때라,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정말 즐기는 마음으로 원고를 썼다. 작품 이야기를 무진장 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표방한 삼천포식 전개(즉, 언제나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는 태도)를 실현하기 어려웠기에 애를 쓰며 참았다. 


오늘은 간만에 애정을 표출하려하니 배가 산으로 가지 않더라도 부디 이해해주시길(그나저나, 나는 왜 이런 걱정을 해야 하는가. 보통의 멀쩡한 글이라면 배가 산으로 갈까봐 걱정을 해야 하는 게 마땅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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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타란티노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가 가지고 있는 B급 정서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작품의 완성도가 B급이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마시길. 그의 영화는 지루하고 엄숙한 영화에 반기를 드는 듯 한 통렬한 쾌감이 있다. 마치 과거 통속 소설에나 나올법한 인물 등장이 그러하다. 예컨대, 영화 <바스터즈>에서 ‘휴고 스티글리츠’라는 인물이 등장할 때 그 전형이 잘 드러난다. 일반적 영화라면 한 인물이 등장하면, 그 인물이 등장한 후 읊는 대사나 행동을 통해 관객에게 캐릭터의 성격과 역사를 전달한다. 타란티노는 그런 정공법을 과감하게 거부한다. 마치 3,40년 전의 영화나 통속 소설에서나 썼을 법한, 즉 지금은 어느 감독도 구사하지 않는 시대의 종언을 받은 양식을 적극적으로 차용한다. 갑자기 어디선가 뜬금없이 등장한 해설자(즉, 소설로 치자면 전지적 작가 혹은 전기수)가 “휴고 스티글리츠! 그는 누구인가!” 하며, 그의 지난 인생을 마치 인간극장의 포맷처럼 보여주는 것이다. 이 뜬금없는 개입은 분명 서사의 흐름을 끊기 마련이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현대 영화에서는 대부분 활용하지 않지만, 타란티노는 이것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따라서 오히려 이런 개입이 없으면 외려 기다려지고,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런 개입이 없다면 섭섭해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사실 타란티노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작가적 역량이다. 비록 타란티노와는 여러면에서 비교조차 될 수 없는 나이지만, 나 역시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다. 따라서 이야기에 중점을 두어 영화를 보고, 이야기가 탄탄한 영화가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타란티노는 소설가가 부러워할 정도의 이야기 구성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에는 그러한 장점이 오롯이 부각되는데, 이 영화는 마치 소설처럼 1장, 2장, 3장 식의 구조를 띠고 있다. 아울러, 이러한 소설이 그러하듯 1장의 주인공과 2장의 주인공이 다른 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즉, 두 인물에 동등한 무게중심을 두고, 사건을 병렬식으로 전개한다. 그러다 결론부에 도달해서는 두 인물이 같은 사건에 개입되며 이야기는 폭발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소설의 챕터 구성방식중 하나다. 이러한 구성은 문체나 분위기 중심의 소설 보다는 명백히 서사 중심인 소설에서 그 빛이 발하기 마련인데, 타란티노의 영화 역시 그러하다.

 

게다가 그는 명확히 ‘분위기를 아는 창작자’다. 영화 <바스터즈>에서 유태인 학살이 일어나는 씬 전에 등장하는 고즈넉한 프랑스 시골의 풍경은 그가 서사와 대사의 긴장감뿐 아니라, 서정성과 폭력성을 기묘할 정도로 적절히 배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장고>에서도 그러하고, <바스터즈>에서도 그러하고, 그가 보여주는 총격씬이나 대화씬이 묘한 긴장감 속에 흥미롭게 이어질 수 있는 것은 그가 택한 배경들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바스터즈>에 등장하는 프랑스의 작지만 고풍스러운 극장, 어두컴컴한 지하에 오래된 벽돌로 둘러싸인 펍, 그리고 이 공간을 빛내주는 음악과 대사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결과들의 재료들이 상당히 이질적인 것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 위태로운 조화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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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바스터즈 : 거친 녀석들> 스틸컷

 

사실 나는 에세이는 간결하게 쓰되, 소설은 장황하게 쓴다는 나름의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타란티노의 영화는 그야말로 장황하되 간결하다. 무슨 말이냐면, 장황하지만 결코 그 장황함이 지루하지 않다. 그 이유는 바로 그의 대사 때문이기도 한데, <바스터즈>의 도입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영화에선 유태인을 숨긴 프랑스인의 집에 나치 장교가 찾아오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나치 장교는 ‘쥐’이야기를 하는데, 마침 유태인이 집의 마룻바닥 아래에 숨어 있는지라, 관객들은 행여나 나치 장교가 “쥐는 말이야. 마룻바닥에 살지”라는 말이라도 할까봐 조마조마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긴장감을 타란티노는 장광설 같은 대사를 통해 큰 원을 그리며, 서서히 원의 지름을 줄여가며 관객과 등장인물을 압박한다. 다른 영화에 비해 대사가 긴 그의 씬들이 결코 지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외에도 그 누구도 쓰기를 꺼려하는 촌스러운 자막을 혁신적으로 재해석해내는 용기, 선과 악을 명징하게 드러내 자신의 영화 속에 투영된 폭력을 기어코 납득하게 만드는 설득력, 등장시킨 음식과 맥주, 자연풍경 등의 완벽한 조화 등, 그리고 모두가 이야기 하는 그의 선곡(選曲) 능력, 그에 관한 격찬은 지면이 부족할 정도다. 마치 예술영화건, 블록버스터건, 웰 메이드 상업영화건, 모든 장르와 방식을 섭렵하고 만들어낼 수 있지만, ‘어허, 그런 건 관심없어’ 하는 투로 성실하게 ‘B급 영화’를 탄생시키는 것 같다. 말 그대로, B급 예술의 승리다. 특히 <바스터즈>에서 보여준 그의 이야기 구성력과 완성도는 그가 자신이 ‘하고 싶기 때문에 이 길을 택한 것’이라는 것을 완벽히 증명한다.

 

사실, 이 모든 것보다 가장 매력적인 것은 그의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도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어허. 나도 이런 이야기가 있는데, 이거 어떻게든 찍고 싶군’ 하고 만드는 게 그의 힘이다. 가장 매력적인 창작자는 독자와, 청자와, 관객과의 거리를 두는 이가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창작자로 만드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
그러면, 쿠 감독님은 완벽하냐고요? 그럴 리가요. 그의 연기를 한 번 보세요. 우리에게 자신감을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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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석(소설가)

단편소설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제10회 창비신인소설상(2010년)을 받으며 등단했다. 장편소설 <능력자> 제36회 오늘의 작가상(2012년)을 수상했고,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썼다. 60ㆍ70년대 지방캠퍼스 록밴드 ‘시와 바람’에서 보컬로도 활동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