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에 대해 알고 있다. 아니. 알고 있지만 아는 사이라고 하기는 무색하다. 그는 오십 대가 넘었다고 짐작될 뿐 정확한 나이를 알기 어려운 얼굴이었다. 검고 깡마르고 작았다. 그는 한 오피스텔 건물의 경비원이었고, 나는 그곳의 입주자였다. 그곳은 일 층에는 음식점과 부동산, 편의점이 입점해 있고, 이층부터는 실 평수 열두 평의 원룸형 공간이 나란히 늘어선 아주 평범한 빌딩이었다. 주거용으로 쓰는 사람들도 많았고 나처럼 작업실이나 사무실 용도로 쓰는 사람들도 꽤 되는 듯했다. 그곳으로 출근하던 첫날부터 나는 후회를 시작했다. 주차장 때문이었다.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기 위해 차를 차량용 승강기에 진입시켜야만 하는 기계식 주차시설이었는데 그 차량용 승강기의 폭이 무척 좁았던 것이다. 전후좌우 어디에도 흠집을 내지 않고 거기에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어쩌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조차 제대로 따져보지 않고 덜컥 계약을 했는가. 나의 어리숙함 혹은 어리석음에 대해 화가 날 지경이었다. 상어처럼 입을 떡 벌린 기계 앞에서 가속페달을 밟지 못하고 멈추지도 못하고 주춤대고 있을 때 그가 나타났다. 꽤 더운 날씨임에도 그는 긴팔 군청색 유니폼을 아래위 제대로 갖춰 입고 있었다.
그는 조심스런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몇 호 가시죠?” 곧 내가 새로운 입주자임을 알게 되자 눈빛이 좀 누그러졌다. 그는 사이드미러를 접으라는 충고를 먼저 했다. 그리고 손짓으로 나더러 내리라고 했다. 상어의 입천장에 긁히고 싶지 않았으므로 나는 서둘러 그렇게 했다. 이윽고 그는 나대신 운전석에 올라타더니 정확한 각도로 핸들을 움직여, 내 차를 그 좁은 주차장에 무사히 집어넣었다. 그와 교대하여 다시 차에 오르면서 나는, 나에게는 불가능한 일이 누군가에겐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후 수개월이 흐르는 동안 나는 매일 그의 도움을 받아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가 보이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는 언제나 묵묵했다. 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으나 화내는 모습을 본 적도 없었다. 주차장에 자리가 있느냐는 말 외에 다른 말을 나눠 본 기억도 거의 없었다. 내 차가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면 그는 늘 어디선가 나타났고, 나와 교대를 했고 승강기 안에 차를 무사히 넘으면 차에서 내리곤 했다. 자신의 놀라운 운전 실력에 대해 으쓱해하는 것도 공치사를 하는 것도 전혀 들어보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성실하다는 형용사를 들으면 나는 그를 떠올렸다. 어떻게 그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육 개월쯤 흐른 어느 날이었다. 오피스텔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떤 차 한 대가 차량용 승강기에 삼분의 일쯤 엉덩이를 걸친 채 어정쩡하게 멈춰 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려던 건지 밖으로 나오려던 참인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경비실 옆에 그가 있었다. 어떤 사내에게 멱살을 움켜잡힌 채였다. 아마도 평소처럼 입주자의 차를 대신 승강기에 넣어주다가 접촉 사고가 났던 모양이었다. 그의 멱살을 틀어쥔 사내는 차주일 터였다. 자기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젊은 사내에게 멱살을 잡힌 그는 어, 어 같은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쩌자고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어쩌자고 나도 그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그리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한 일주일 간 작업실에 나가지 못했다. 다시 출근하던 날, 그는 보이지 않았다. 새로 온 경비원은 훨씬 젊은 남자였다. 그 좁은 승강기 상자 안에 차를 집어넣으려고 진땀을 흘리는 내 모습을 흘낏 보고도 못 본 체 했다. 나는 그를 이해했다. 전임자의 사정을 알고 있다면, 이제 어떤 새로운 경비원도 남의 차를 대신 움직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하게 오랫동안 그가 가끔 생각났다. 얼마 전 김찬호 선생의 『모멸감』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때 그의 눈동자에 어렸던 감정이, 그리고 그와 잠깐 눈이 마주치고 말았던 나에게까지 전염되었던 감정이 모멸감이었음을 알았다. 내가 오래도록 곱씹어온 건 그의 모멸감이었다. 김찬호 선생은 문학작품과 영화 속에 드러나는 다양한 모멸감의 형태를 이야기하는데,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이 고골의 단편 「외투」다.
「외투」의 주인공은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다. 그는 인생에서 주인공의 자리에 서 본 적 없는 사람이다. 관청의 말단 직원인 아카키는 간단한 서류를 베껴 적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동료들의 놀림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은 채 그는 자신의 일에만 묵묵히 몰두한다. 어느 날 아카키는 자신의 외투가 너무 낡고 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외투는 너무 낡아 수선이 불가능했고 그는 새 외투를 맞출 수밖에 없다. 외투를 살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매일의 지출을 극도로 줄인다. 저녁마다 마시던 차를 끊고, 촛불도 켜지 않고, 심지어 저녁을 굶는 것에도 익숙해지기에 이른다. 이런 절약으로 일상은 전보다 궁핍해졌지만 새로 생길 외투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신의 삶에 어떤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느낀다.
하지만 새 외투를 처음 입은 바로 그날, 강도에게 외투를 빼앗기게 되고, 외투를 되찾기 위한 고통의 여정이 시작된다. 우리는 이미 잘 안다. 그가 결코 외투를 찾을 수 없음을.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새 외투를 찾지 못한 채 죽은 남자 아카키 아카키예비치. 그의 사인은 어쩌면 모멸감일 것이다.
이 시대의 한국인에게 모멸감은 일상적으로 경험되는 감정이다. 언제 끝날지 모를 영원한 모멸감을 견뎌야 하는 이곳에는 아카키들이 너무도 많다. 아카키는 밤마다 페테르부르크의 유령으로 나타나 사람들의 외투를 빼앗는다. 누가 그것을 강탈이라 할 수 있을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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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
샨티샨티
2014.07.13
kami2001
2014.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