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5일 홍대 살롱드팩토리에서 소설가 박상과 함께하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됐다. 애초에 공개하기에는 박상 원맨 밴드가 토크와 콘서트를 모두 진행하는 것이었으나, 소설가의 지인인 범준범준이 자리를 빛냈다. 독자 20여 명과 함께한 이날 행사는 ‘예테보리 쌍쌍파티’라는 이름으로 열렸다. 이름에서 보듯, 박상이 최근에 낸 장편소설 『예테보리 쌍쌍바』의 출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예테보리 쌍쌍바』는 그가 3년 만에 낸 장편소설이다. 작품 속 주인공인 신광택은 자본주의 하층에서 하루 일해 하루를 벌고 사는 노동자다. 그가 했던 일로는 세차, 중국집 배달, 설거지 등 저임금 육체노동이다. 한국사회는 신광택과 처지가 비슷한 노동자가 많다. 비정규직이 만연하고, 정규직도 비정규직으로 몰리는 이 시대, 우리도 다를 바 없다. 이런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소설가도 처지는 다르지 않았다. 소설을 쓰기 위해 일하고, 돈이 모이면 소설 쓰는 생활을 반복했다. 단기 육체 노동이 주였다. 그는 이런 경험을 함으로써 『예테보리 쌍쌍바』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박상이 쓴 문장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장난스럽다. 이날에는 장난기가 진지함을 능가했는데, 첫 인사로 건넨 말이 “박상이 뭐라고 소중한 금요일에, 찾아와 주시다니 감동적이다. 나중에 돈 많이 벌면 얼굴 기억했다 맛있는 거 사드리겠다.”였다. 이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풀어놓은 그는 크게 2가지를 말했다.
스뽀오츠 정신의 다른 말은 페어플레이
첫째는 스뽀오츠 정신이다. (박상은 스포츠 정신이 아니라 소설에 쓴 대로, 스뽀오츠 정신이라 강조한다) 갈수록 독서 인구가 줄고, 순수문학 쪽은 독자층이 더 얇아졌다. 황폐한 불모지에서 소설을 쓴다는 의미를 그는 스뽀오츠 정신에서 찾았다. 불모지에서 꽃이 피면 아름다울 것이고, 그 꽃을 보고 다른 작가도 소설을 쓸 것이라는. 그래서 언젠가는 박상도 꽃을 피우고 싶다고 덧붙인다.
“일반적으로 스포츠 정신이라 하면 페어플레이 정신, 정정당당한 걸 바라고, 꼼수를 쓰지 않는 걸 말한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이랬다. 우리 사회가 정정당당한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한국의 경제 규모는 커졌다고 하는데 내가 일했던 쪽에서는 20년 전에도 100만 원 조금 넘는 월급을 받았고, 지금도 그대로다. 매년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정도로 살아야 하는가, 에서 소설이 출발했다. 사회 전체가 꼼수를 쓰고 부패한 방정식으로 승리를 가져가는 방식에 대항하고 싶었다. 어떻게 대항할 것인가, 하면 스뽀오츠 정신이다. 사람이 한계를 맞이했을 때, 발생하는 순간적인 에너지가 있다. 이걸 스뽀오츠 정신이라 명명했다.”
박상은 스뽀오츠 정신은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하철 계단 오르기, 마늘 까기, 방 청소하기 등등. 심지어 소설 쓰기에도 스뽀오츠 정신을 발휘할 수 있다. 이른바 ‘마감 매직’. 마감이 한 달 남아도 소설이 써지지 않는다. 보름까지도 안 써지지만, 3일이 남으면 기적적으로 써진다.
구조를 바꾸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이런 스뽀오츠 정신이 페어플레이 하는 사람은 바보취급되는 분위기에서 개인에게 조촐하게 위안을 줄 수는 있으리라는 게 소설가의 설명. 그는 특히 비정규직을 거론했다. 똑같은 일을 해도 중간에서 띄어 먹고, 정작 일하는 사람은 돈 얼마 받지도 못하는 건 스뽀오츠 정신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강함보다는 부드러움
스뽀오츠 정신에 이어 이야기한 건 부드러움이다. 박상은 『예테보리 쌍쌍바』가 정말 안 팔리고 있다며, “엽기적”이라는 표현까지 동원했다. 출판사 담당자에게는 미안해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부드럽게 넘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잘 팔리는 게 소설이 얻어야 하는 위대한 결과는 아닐 것 같고. 평단에서 극찬받는 것도, 무조건 좋은 결과라곤 할 수 없을 것 같다. 독자 한 분이라도 재밌게 읽었으면, 성공한 결과가 아닐까.”
이번 책 이전까지는 박상도 부드러움의 미학이 아니라 강함의 미학을 따랐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책을 내면 격심한 우울과 허탈감에 시달렸다. “최선을 다했는데, 왜 아무도 안 알아주지? 도대체 난 왜 쓴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유하자면, 아무리 잡아당겨도 안 열리는 문을 겨우겨우 열었는데, 그 안에 아무도 없는 느낌이었다. 생각해 보니. 자신의 잘못이었다. 너무 힘을 많이 준 것. 힘을 세게 줄 게 아니라, 부드럽게 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깨달았다. 여기서 작가는 작품의 한 대목을 낭독했다.
“구앙트액 씨, 요즘 왠지 위태로워 보여요. 접시들과 싸우고 있어요.”
“제가요?”
“설거지의 세계에선 일반인을 파이터가 이기고, 파이터를 기술자가 이기고, 기술자를 아티스트가 이기지요.”
“무슨 뜻이죠?”
나는 민머리 매니저의 넓은 이마를 올려다보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전 스톡홀름의 칼 구스타프 워싱업 컴페티션 삼 회 연속 우승자예요.”
(중략)
프레데릭 라르손도 내게 답을 보탰다. 그의 작품 『예테보리 쌍쌍바』에 있는 대사 중 하나였다.
- 내가 왜 당신에게 졌지?
- 이기려고 하니까.
- 당신을 이기고 싶어 죽겠어.
- 그러지 말고 스스로 멋진 존재가 되면 어떨까. 그럼 나와 대등해질 텐데.
그 문장은 굉장히 ‘후까시’를 잡는 말로 들렸지만 어쩐지 이해가 되었다. 멋진 존재가 되면 이기고 지는 문제를 벗어나는 것이다. 직업이 무엇이든, 돈을 얼마나 벌든, 사람이 멋지면 되는 문제라는 것 같았다. 남의 것을 빼앗으며 탐욕을 부리려 하면 이기려 하는 자가 된다. 프레데릭 라르손에 따르면 그들은 끝내 이기지 못할 것이다. 정말 훌륭한 선수란 이길 필요 없이 스스로 멋있게 존재하는 것이다 (197~200쪽)
이어서 박상의 감성 돋는 보컬을 들을 수 있는 <썩는다>가 이어졌다. 노래가 끝난 뒤, 그는 근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다른 작가처럼 강의를 한다거나, 다른 기술이 있어 벌이가 있지는 않았기에 항상 일을 하고, 돈이 생기면 관두고 소설을 썼다. 돈이 떨어지면 다시 일을 구했다. 이런 패턴으로 사는 것도 나쁘진 않다고 하는데, 문제는 점점 나이 제한에 걸린다는 점. 그래도 여전히 할 만한 일이 있을 거라고 말하며 박상은 자신의 이야기를 거뒀다.
독자와 나눈 대화
소설가가 안 됐다면 뭐가 됐을까?
글은 특별한 존재가 쓰는 게 아니더라. 그 과정을 견디고 만들어내는 사람이 쓴다. 그렇게 본다면, 소설을 안 썼다면, 글쎄. 뭔가를 견뎌서 다음 게 나오는 직업? 비행기 조종 잘했을 듯하다. 서사도 비슷하다. 안전하게 끌고 가야 한다. 중간에 뭐라고 터뷸런스 같은 걸 만나도 어떻게든 해쳐서 나가서 결말까지 착륙을 시켜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비행기 조종 잘했을 듯. 연봉도 많이 줄 텐데. (웃음)
영감은 어디서 얻나.
『예테보리 쌍쌍바』는 사회에서 영감을 찾았고, 보통은 혼자서 가만히 생각해 볼 때 많이 떠오르더라. 특히 혼자 술 마실 때. 멍하게 음악 틀어놓고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갑자기 이야기가 떠오른다. 여행 가면서도 생각난다.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욕망이 소설을 만들어내는 동기다.
-
예테보리 쌍쌍바 박상 저 | 작가정신
한국 문단의 이단아 박상의 신작 장편소설『예테보리 쌍쌍바』가 출간됐다. 세상과의 승부,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펼치는 한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당신은 일반인인가? 아니면 선수인가?”라고 묻는다. 박상의 사전에서 선수란 “단순한 투지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멋진 승부를 펼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재미도 없고 공평하지도 않은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선수가 되어 일반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다.
[추천 기사]
- 전(前) 세계챔피언 복서와 문학 청년이 만들어가는 이야기
- 박범신 “노작가가 쓸 수 없는 파격 소설? 글쎄…”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
kenziner
2014.08.21
메롱
2014.08.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