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서로를 상처 입힌다. 인터넷에서는 가족, 친구, 연인에게 상처 입었다 호소하는 글들이 넘쳐나고, 서점에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결혼생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들을 담은 책이 범람한다. 하나의 문화 키워드가 된 ‘힐링’도 ‘자존감’도 생각해보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힘내라, 혹은 상처받지 않도록 단단한 사람이 되라 말하는 것들이다. 정신적 질환에 대한 현대인의 관심은 어마어마한 셈이다.
문제는 ‘인간을 인간이 치유할 수 있는가’이다. 인문학자, 대학 교수, 철학자, 종교인 등 많은 사회적 명사와 전문가들이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고, 이런 책과 강연은 사회적 트렌드가 된다. 하지만 이런 시류에 대한 반발이 만만찮은 것도 사실이다. 결국 뻔한 이야기라는 소리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을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것 뿐 아니냐, 혹은 너무나 주관적인 경험이라 성토하는 반박은 꽤 설득력 있게 들리곤 한다.
노희경의 <괜찮아, 사랑이야>는 이런 질문을 위해 준비된 드라마처럼 보인다. 짧고 한정된 삶, 인간의 정신적 질환을 치유할 수 있는 자격을 인간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 과연 인간은 인간을 치유할 수 있는 존재인가? 드라마를 이루는 인물들의 면면은 각양각색이다. 주인공 지해수(공효진)는 정신과 의사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치유할 자격증을 가진 바로 그 정신과 의사. 그런데 이 사람, 가만 보면 본인부터 건강치 못하다. 아픈 아버지를 뉘어놓고 아버지 친구와 바람을 피운 어머니 때문에 불안장애와 관계기피증을 앓고 있고, 300일 넘게 사귄 남자친구와 아직 잠자리도 함께 하지 못했다. 30대 초반 신체 건강한 남녀의 연애상황이라기엔 믿기지 않는다.
정신과 의사가 정신 질환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은 얼핏 모순처럼 보인다. 병을 고치는 의사가 그 병을 갖고 있다는 소리는 어쩐지 그의 전문성에 의구심을 갖게 하니까. 하지만 조동민(성동일)은 이런 편견을 예상이라도 하듯 볼멘소리를 내뱉는다. “그래 나, 마음 아픈 환자들 고치는 놈이 마음 아파서 상담 좀 받았다, 어쩔래? 야 니들 외과, 암 고친다고 암 안 걸려? 내과, 니들 감기 환자 고친다고 감기 안 걸려? 신경외과 니들, 뇌종양 안 걸려?”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라도 충분히 아플 수 있다고, 그도 결국 의사이기 전에 한 사람의 인간일 뿐이라 그는 말한다.
이는 극중 지해수의 캐릭터에 대한 항변인 것처럼 보인다. 그녀는 ‘멘토’가 아니다. 오히려 정신과 의사라기에 부족하고 편협한 모습도 종종 보인다. 호감을 표시하는 장재열(조인성)에게 날을 세우고, 상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막말을 내뱉기도 한다. 남의 성기만을 그리는 환자에게는 네 엄마가 불쌍하지도 않느냐고 윽박지르며 상처를 준다. “나는 진짜 이럴 때 정신과가 좋아, 세상의 편견을 깨잖아?”하고 말하지만 오히려 중요한 건 상대방의 의사를 묻는 것 아니냐고, 당연한 상식을 지적하는 재열의 반문에 말을 잃는 장면은 약간 당황스러울 정도다.
출처_ SBS
그렇다고 작가 장재열이 ‘멘토형’ 캐릭터인가하면 그것도 아니다. 물론 그는 해수에게 종종 시야의 사각을 일깨워주고 그녀보단 훨씬 더 열린 사고를 한다. 남의 성기를 그린다는 소년이 뭐가 나쁘냐 말하기도 하고,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자식에게 상처를 주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한다. 하지만 정작 그야말로 결함투성이인 캐릭터다. 아버지의 살인사건과 관계된 과거의 진실은 그렇다 치더라도, 당장 눈에 보이는 편집증과 강박은 대단하다. 특정 색깔에만 집착해 집의 소품은 같은 색으로 통일시키고, 몇 개월마다 집을 옮겨다니면서도 항상 같은 인테리어를 고집한다. 재열의 팬을 자처하며 항상 그를 쫓아다니는 한강우(도경수)가 재열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시청자들은 모두 경악했다. 강우가 쓴 소설이 재열의 이야기였던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강우의 상처는 재열의 결핍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아버지의 반복되는 학대와 불우한 어린 시절은 재열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강우의 얼굴에 선명하게 남은 상처는 재열이 아직도 어린 시절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물며 투렛 증후군을 앓고 있는 박수광(이광수)이나 괴팍하기 이를 데 없어 학부 때부터 ‘똘기 총집합’이 별명인 조동민은 말할 것도 없다. 둘 모두 등장인물 모두를 아우르고 가야 할 길을 제시해주는 캐릭터는 아니다. 등장인물 모두가 나름의 흠결과 상처를 가진 것이다.
<괜찮아, 사랑이야>의 등장인물들은 정신과 의사는 물론이고 인간의 삶을 관찰하는 작가, 학생과 평범한 직장인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이런 인물들이 모두 모여 가족처럼 한 집에서 사는 광경은 꽤 독특한 감회를 남긴다. 이들이 각자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대안 가족의 좋은 예처럼 보인다. 각자의 가족에게 상처를 입은 인물들이 가족 이상의 위안을 주는 타인과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사는 것.
드라마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 이유도 그래서가 아닐까.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수광은 해수에게 말이 필요 없는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내는 사람이고, 해수에게 호감을 표시하는 재열은 강력한 ‘행동치료’도 서슴지 않는다. “성실하고 착한 사람은 자식한테 상처 안 줘? 천사 같은 우리 엄마도 가끔 나한테 상처 주는데.” 결코 사려 깊진 않았지만 그래서 더욱 해수의 마음을 파고드는 조언을 남기기도 하고.
드라마는 여기서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은 인간에게 위로가 되는 존재다. 서로를 치유할 수도 있는 존재다. 다만 그것이 처방전을 써줄 수 있는 의사에게만 있는 권리는 아니다. 극은 그가 작가라서, 혹은 그녀가 정신과 의사라서 누군가를 치유하고 보듬어 안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이 사회적 지위와 관계없이 흉터 가득한 사람들임을 강조하고, 학력도 자격증도 상관없다, 모자라고 결점 가득한 사람이라도 가끔은 존재만으로 누군가에게 커다란 울림이 될 때가 있다고 말한다.
노희경 최초의 로맨틱코미디라는 홍보와 조인성, 공효진이라는 화려한 조합에 얼핏 제목의 ‘사랑’이 그들만의 이야기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드라마는 상처 입은 사람들이 표류하다 내려앉은 곳, 해수와 동민과 수광과 재열의 집에서 이젠 괜찮다고 이것이 바로 사랑이라 속삭인다. <괜찮아, 사랑이야>라는 제목은 이런 관점에서 매우 흥미롭다. 결국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사람 사이 사랑이라, 미리 따뜻한 결론을 내놓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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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우
사람과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길어 주절거리는 것이 병이 된 사람. 즐거운 책과 신나는 음악, 따뜻한 드라마와 깊은 영화, 그리고 차 한 잔으로 가득한 하루를 보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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