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식기에 대한 로망이 있죠. 조금씩, 매번, 시기별로, 품목별로, 예를 들자면, 크고 작은 접시에 꽂혔다가(접시도 사이즈 별로 쓰임새가 다르기 때문에 지름이 몇 cm 인지가 중요하죠. 음... 그릇에 관심 없는 분들은 뭔 소리야? 싶으시죠? 하하, 다양한 머그잔에 꽂히기도 하고, 여름이면 투명한 유리컵이나 저장용기에 자꾸만 눈길이 가죠.
한동안 커트러리 세트가 사고 싶어 숟가락, 포크, 나이프 세트만 보면 모니터가 뚫어져라 보기도 했다니까요. 그리고 여자들의 로망이죠. 내 손목이 뽀~~~사지는(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갖고 싶은, 하지만 하나 구비하기에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 주물냄비! 저도 몇 년 고민하다가 얼마 전 가까운 아울렛에서 1주년 기념으로 50% 세일 소식을 듣고 달려갔더라 했답니다. 그리고 데려왔어요.
둔탁한 듯 멋스러운 이 주물 냄비를요. “으엉차!!!” 들 때마다 “에고에고~” 소리가 저절로 나지만, 가스레인지 위에, 식탁 위에 떡~허니 자리 잡고 있는 욘석을 보면 므흣한 웃음이 저절로 나오는 건, 조금 오타쿠스럽긴 하지만 제가 천생 여자(?)였음을 알려주는 또 하나의 추임새라고 해두죠. ^^;;;
어찌 됐든, 주물냄비를 득템하고 난 뒤 판매하는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께서 “잘 길들이셔야 해요~”라며 요모조모 설명을 해 주시더군요. 다른 주의사항은 다 흘려들었는데, 잘 길들여야 한다는 말은 그 뒤에도 머릿속에 맴맴 거리더군요. ‘이 나이에 냄비까지 길들이며 살아야 하나?’ 싶은 것이 왠지 자조적인 짠~함이 마음속에서 일렁이는 게 말이죠. 길들인다는 말을 참으로 오래간만에 들어서였을까요? 사람은 누군가에 의해 길들여지고, 또 누군가를 길들이며 살아가지만, 우린 가끔 길들여짐에 대한 깊이를 잊고 살지 않나 싶은 생각이 문득 들더군요.
“안녕! 나랑 놀자. 난 아주 쓸쓸하단다.”
“난, 너랑 놀 수 없어. 우린 서로 길들이지 않았으니까.”
“‘길들이다’가 뭐니?”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너는 나에게 있어서 아직 몇 천 몇 만 명의 어린아이들과 다르지 않은 아이에 불과해.
나는 네가 필요 없고 너는 내가 아쉽지도 않아.
너에게 있어서 나는 몇 천 몇 만 마리의 똑같은 여우에 지나지 않아.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 거야.
너는 나에게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아이가 될 거고,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여우가 될 거야.”
- 생텍쥐페리 『어린왕자』 中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 왕자와 여우의 만남 속 길들여짐에 대한 대화는 읽을 때마다 새롭고, 마주할 때마다 깊이의 한없음에 놀라곤 합니다. 그만큼 길들여진다는 의미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인연의 깊이가 더해지면 더해질수록 우리에게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는 얘기겠죠? 엄. 훠. 나. 이렇게 또 멀리 와 버렸네요. 주물 냄비 길들이기에서 말이죠. 하하하!!!
자, 주물냄비 길들이기에 돌입해 볼까요? 무쇠를 길들인다는 것은 기름을 잘 먹이는 것이 중요한데요. 그러려면 튀김 요리가 제격이겠죠? 일단 미지근한 물로 세척을 한 뒤, 마른행주로 물기를 닦고, 키친타월로 기름칠을 충분히 한 뒤 약 불에서 5분 예열하고, 기름 투하!! 오늘은 '바삭바삭 크리스피한 감자새우마요'와 맥주 한 잔을 준비 해 볼까 합니다. 사실 전 새우튀김하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는데요.
일본 영화 <남극의 셰프>에서 보통 회로 먹는 이세에비(랍스터와 비슷하게 생긴 금닭새우)로 에비후라이를 만들어 달라며 “에비후라이! 에비후라이! 에비후라이!”를 외치며 보채는 대원들에게 정말 거대한 바닷가재 튀김을 내놓아 황~당해하는 표정은 정말 압권이었는데 말이죠. 음... 오늘은 거대바닷가재튀김은 아니지만, 나름 튼실한 새우로 준비해 봅니다.
# 바삭바삭 크리스피한 감자새우마요튀김
재료:
중간 정도 새우 13마리(but!!! 먹고 싶은 만큼 준비하세요. 나머지 재료는 각자 가감해서 준비하시고요. ^^), 청주 1큰 술, 소금과 후추 약간, 계란 1개, 튀김가루 : 전분가루=1:1, 감자 1개, 식용유, 와시비(고추냉이)마요소스 재료: 마요네즈 200ml, 생크림 요플레 3큰술, 와사비 가루 1/2큰 술, 꿀 2큰 술, 레몬즙 또는 발사믹 글레이즈나 화이트와인 식초 약간
1. 와사비(고추냉이)마요소스 재료는 거품기로 잘 섞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세요.
2. 새우는 머리 떼고 등 쪽의 내장을 제거해 주세요.
3. 청주 1 큰 술, 소금, 후추로 밑간을 하고,
4. 튀김가루 : 전분 가루를 섞어놓은 가루에 새우 옷을 입히고, 계란 물에 퐁당!
5. 180도에서 바삭하게 튀겨내세요.
6. 감자는 정말 얇게 채를 썰어 찬물에 두세 번 헹궈 전분 기를 빼고 키친타월에 물기를 제거해 주세요.
7. 감자 역시 바삭하게 튀겨내는데, 노릇해질 때까지 젓지 마세요. 저으면 감자끼리 서로 달라붙어요.
8. 냉장고에서 와사비(고추냉이)마요소스를 꺼내 한 김 식힌 새우를 넣고 버무린 후,
바삭하게 튀긴 감자를 묻혀내면 끝!!!
9. 레몬을 뿌려먹어도 좋고, 발사믹 글레이즈나 화이트 와인 식초를 뿌려 먹어도 좋아요~
와사비(고추냉이)가 들어가 찡~해오는 마요 새우와 바삭한 감자의 조화, 어떠세요?
제 요리에 길들여지실 것 같으신가요? ^^ 하하
“손을 뻗치면 무엇인가가 만져지고, 그 무엇인가의 따스함이 느껴지는 것, 그것은 멋있는 일이었다.
나는 자신도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상당히 오랫동안 그런 감촉을 상실하고 있었던 것이다.”
- 무라카미 하루키, 『태엽 감는 새』 中
우린 언제나 온전하게 누군가를 길들이고, 또한 온전하게 누군가에게 길들여지길 간절히 원하며 살아갑니다. 그 대상이 누가 됐든 말이죠. 하지만 우린 미흡하게도 누군가를 온전히 길들이고, 누군가로부터 온전하게 길들여지기 위한 준비에 익숙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그럴 땐 불쑥, 급작스레, 느닷없이, 먼저 손을 내밀어 보는 건 어떨까요? 길들인다는 건, 단단한 무쇠도 “쓰담쓰담” 쓰다듬을 수 있는 다정함을, 분명.. 품고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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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라
요리도 좋아하고, 책도 좋아하고, 여행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고,잡다한 것에 손을 뻗어가며, 매일매일 가열!!!차게 살아가고 있는 프리랜서 잡가(?)
해신
2014.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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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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