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여 잘 있어라』, 당신은 내 종교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은 남녀 사이의 단순한 연애는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당신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지고 희생하고 싶어지고 봉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듯 사랑하면서 삶의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던 마음을 찾아내는 것은 아름다운 기적에 가깝습니다.
글ㆍ사진 임재청(서평가)
2014.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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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은 용기를 갖고 오면 세상은 그런 사람들을 꺾기 위해 죽여야 하고, 그래서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 이 세상은 모든 사람을 부러뜨리지만 많은 사람은 그 부러진 곳에서 더욱 강해진다. 그러나 세상은 부러지지 않으려 하는 사람들을 죽이고 만다. 아주 선량한 사람들이든, 아주 부드러운 사람들이든, 아주 용감한 사람들이든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고 공평하게 죽인다. 당신이 그 어디에 속하지 않는다 해도 이 세상은 당신 역시 틀림없이 죽이고 말겠지만, 특별히 서두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무기여 잘 있어라』



2할 3푼 타자


야구를 보면서 많이 하는 이야기이지만 어떻게 공을 때릴 수 있는가,라는 의문입니다. 투수가 던진 공을 타자가 맞힐 수 있는 시간은 0.4초입니다. 더구나 타자는 0.2초 만에 투수가 던진 공이 직구인지 변화구인지를 구별해 ‘딱’ 소리 나게 쳐야 합니다. 타율이 3할인 수위타자들은 손맛을 제대로 느낀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 안 되는 것이 머리싸움도 해야만 가능합니다. 헤밍웨이의『무기여 잘 있어라』에서 전쟁에 참여한 프레데릭은 자신의 타율이 고작 2할 3푼에 불과한 평범한 이류 타자라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적어도 용감한 군인이라면 타율이 3할이 되어야 하는데 자신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나타냈습니다. 이유인즉 자신은 생각하도록 태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함은 굳이 골치 아픈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사람의 품위(品位)를 이성적으로 완성할 수 있으니까요. 가끔씩 우리는 영광이나 명예를 그 밖에 인간에 부여된 정의를 복잡하게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추상적인 말들도 생각의 속도감을 따라가지 못한다면 마치 빗속에서 듣는 것처럼 공허해지지 마련입니다. 영광이니 명예니 용기니 신성이니 하는 추상적인 말들은 마을의 이름이나 도로의 번호, 강 이름, 연대의 번호나 날짜와 비교해 보면 오히려 외설스럽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생각의 문제이더라도 용기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비겁한 군인은 천 번 죽지만 용감한 군인은 단 한 번 죽는 것처럼.



당신은 내 종교


그가 간호사 캐서린을 처음 만났을 때 어땠나요? 군인과 간호사라는 방정식이라고 하면 사랑할 만한 경우의 수가 있었나요? 타율이 2할 3푼인 그에게는 너무나 뻔한 게임이다 보니 굳이 사랑의 방정식을 풀어야 할 까닭이 없었습니다. 당분간 그녀에게 친절하면 그만이었습니다. 비록 그가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지만 진심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친절함의 유효기간이 길어지면서 어느 순간 그는 이상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그녀를 만나러 왔다가 막상 만나지 못하면 기분이 여간 쓸쓸하고 공허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녀와 사랑에 빠지리라고는 정말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께 진심으로 사랑에 빠졌다고 맹세했습니다. 


놀랍게도 그녀에게도 사랑은 이상한 삶이었습니다. 그녀는 그를 간호해주면서 그가 원하는 것만 해 준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곧 그녀가 원하는 것이며 자신의 존재는 더 이상 없으며 오직 그가 원하는 것만 있을 뿐입니다. 그녀는 이미 자신의 존재는 없으며 자신이 바로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행복하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아무것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당신 곁을 떠나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당신은 내 종교예요. 당신은 내가 가진 전부라고요.


사랑이라는 소중한 감정은 남녀 사이의 단순한 연애는 아닙니다. 사랑을 하면 당신을 위해 뭔가 하고 싶어지고 희생하고 싶어지고 봉사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듯 사랑하면서 삶의 방향 감각을 잃어버렸던 마음을 찾아내는 것은 아름다운 기적에 가깝습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뭐냐고 했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는 얼마나 희망적인지 모를 정도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투명한 느낌이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랑은 나름의 운명을 갖고 있다는 말을 믿으며 아낌없이 사랑하게 되는, 가슴을 가득 채우는 이름이 당신의 모든 것이 된다는 것을.


조상(彫像)


그들은 아이를 낳으며 멋진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출산의 고통을 견디지 못하면서 용기마저 완전히 부서져 버렸습니다. 초산이라는 자연의 이치 때문이라고 하겠지만 그녀가 이렇게 괴로움을 당하는 것은 뜻밖이었습니다. 사랑해서 얻게 된 우연의 결과는 거짓말처럼 맴돌았습니다. 불행이 따라오지 못할 거라 믿었지만 오히려 그녀는 지나치게 일찍 세상을 떠납니다. 사랑 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 갈 수 없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그가 사랑의 덫을 만들다니, 무엇보다도 이러한 덫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 갑자기 미아가 되어버려 다고 하여 이것이 사랑의 종말이라고 할 수 없겠지요. 이 소설에서 우리는 사랑의 가해자가 되어버린 사람이 어떻게 상처를 버티는지 보게 됩니다. 그는 죽은 그녀에게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는 것을 마치 조상(彫像)에게 하는 것 같다고 고백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그녀뿐이라고 말해 놓고 이제 와서 조상(조각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나 비열하고도 용기 없는 행동이라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합니다. 그럼에도 그가 사랑의 끝에서 절망을 바라보지 않으려고 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현실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거듭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사랑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겠지요. 다시 말해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며, 이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생의 바깥이라고 해서 그것으로 인생의 끝이라고 하는 것은 온전한 사랑일까요? 호세 오르테가는『사랑에 관한 연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온전한 사랑이라면 환경과 거리상의 장애가 충분한 애정을 공급하는 걸 방해하여 애정의 굵은 선이 가는 선으로 바뀔지는 모르지만, 말라비틀어진 상태에서도 감정의 동맥은 사랑을 끊임없이 담아 심장으로 옮기는 법이다. 그게 제대로 된 사랑의 운명이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한다고 해서 감정의 동맥이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심장에 사랑이 있다, 없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목숨을 놓지 마세요. 타율이 2할 3푼에 그치고 맙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랑이 있습니다. 그중에 종교적인 감정이 아니고는 무엇인지 헤아릴 수 없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당신은 내 종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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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여 잘 있거라어니스트 헤밍웨이 저/이유정 역 | 더클래식
《무기여 잘 있거라》는 그가 젊은 날 쓴 두 번째 장편 소설이자 처음 쓴 자전적 소설로 그 이전까지 쓴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등의 작품이 대중적으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에 비해 엄청난 인기와 더불어 작품 자체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작가 자신이 열아홉 나이에 이탈리아 전선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무기여 잘 있거라》는 초판이 4만 부나 팔리고 출간한 지 약 4개월 만에 8만 부나 팔리는 엄청난 인기를 누리게 된다. 그리고 자전적 경험에서 생생하게 전해지는 전쟁터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와 사실적이면서도 감정이 배제된 건조한 문체는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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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청 #무기여잘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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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청(서평가)

책만 보는 바보. 그래서 내가 나의 벗이 되어 오우아(吾友我)을 마주하게 되지만 읽은 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때만큼은 진짜 외롭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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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네스트 밀러 헤밍웨이

1899년 7월 21일 미국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현재의 시카고)에서 태어났다. 의사 아버지와 성악가 어머니 사이를 두었고, 여섯 남매 중 장남이었다. 평생을 낚시와 사냥, 투우 등에 집착했으며, 다방면에 걸쳐 맹렬한 행동을 추구하고, 행동의 세계를 통해 자아의 확대를 성취하려 했다. 그러한 인생관은 그의 작품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고등학생 때 학교 주간지 편집을 맡아 직접 기사와 단편을 썼으며,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1917년 [캔자스시티 스타]의 수습기자로 일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이던 1918년 적십자 야전병원 수송차 운전병으로 이탈리아 전선에서 복무하기도 했으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고 귀국했다. 휴전 후 캐나다 [토론토 스타]의 특파원이 되어 유럽 각지를 돌며 그리스-터키 전쟁을 보도하기도 했다. 1921년, 해외 특파원으로 건너간 파리에서 스콧 피츠제럴드, 에즈라 파운드 등 유명 작가들과 교유하는 등 근대주의적 작가들과 미술가들과 어울리며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23년 『세 편의 단편과 열 편의 시(詩)』를 시작으로 『우리들의 시대에』, 『봄의 분류(奔流)』,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발표했다.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삶을 그린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 소설로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그후 1920년대 ‘로스트 제너레이션(잃어버린 세대)’를 대표하는 ‘피츠제럴드’와 ‘포그너’와 함께 3대 작가로 성장하였다. 그의 첫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를 1926년에 발표했는데, 헤밍웨이의 대다수 작품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50년대 중반 사이에 발표되었다. 전쟁 중 나누는 사랑 이야기를 다룬 전쟁문학의 걸작 『무기여 잘 있거라』(1929)는 그가 작가로서 명성을 얻는 데 공헌했으며, 1936년 『킬리만자로의 눈』,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1940)는 출판되자마자 수십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린다. 이후 10년 만에 소설 한 편을 발표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가 1952년 인간의 희망과 불굴의 정신을 풀어낸 『노인과 바다』를 발표하여 큰 찬사를 받았으며, 퓰리처상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를 통해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인간은 파괴될 수 있지만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속삭인다. 그러나 이 해에 두 번의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데, 말년에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우울증에 시달리고, 집필 활동도 막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행동의 규범에 철저한 만큼이나 죽음과 대결하는 삶의 성실성과 숭고함을 작품에 투영하려 노력해왔다. 1959년에는 아이다호 주로 거처를 옮겼고, 1961년 여름, 헤밍웨이는 신경쇠약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1961년 케첨의 자택에서 엽총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대표작으로는 1929년 『무기여 잘 있거라』, 1940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952년 『노인과 바다』 등이 있다. 그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후 10여 년 넘게 긴 침체기를 겪었지만, 인생의 절망과 희망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신념을 잃지 않으면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