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학부 내내 ‘칼 마르크스’, ‘자본론’, ‘공산당 선언’이라는 단어는 단 한번도 듣지 못했다. 대신 ‘케인즈학파’,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시장논리’, ‘보이지 않는 손’등의 단어들로 강의 시간은 채워졌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교수진 모두 미국 대학에서 이른바 주류 경제학을 전공하고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었다. 경제학을 공부했으면서 자본론을 잘 몰랐던 이유를 이 정도로 변명해보겠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독일, 영국, 중국 등지에서 자본론 다시 읽기 열풍이 불고 있다는 기사를 신문 국제면에서 종종 보았다. 하지만 ‘자본론’은 ‘북한식 공산주의’를 싫어하는 나로서는 뭐랄까.. 불온서적이었다. (읽으면 빨갱이가 될거야 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자본론이 왜 뜬 거지?
하지만 그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자본론 다시 보기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2011년,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이 출간되고 사회분야 베스트에 들며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얻기 시작하였다. 그 무렵 거대 자본의 중심인 뉴욕이나 맨하튼에서 상위 1% vs 하위 99%의 불평등에 대항하는 ‘점령하라’(occupy) 시위가 일어났고 『분노하라』가 인기를 끌었다. 작년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그의 저서 『불평등의 대가』 를 통해 극심한 부의 불평등을 경고하였다. 그리고 2014년, 록스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이 열풍을 일으키며 함께 자본론에 대해 관심도 치솟기 시작한다. ‘오.. 좀 궁금한데?’라는 생각이 들 무렵. 이 책을 만나게 되었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다루마리’의 도전
우선 책 표지 일러스트레이션부터 귀엽다. 고소한 빵냄새가 폴폴 날 것 만 같은 그림들. 하지만 내용은 운명론적이고 급진적이다. (자세한 책 줄거리는 해당 도서 상세페이지를 참고하셔요) 저자는 앞날을 고민할 때 잠결에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이라는 한번도 만나본 적 없는 할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빵만들기를 배우기 시작했다.(와 너무나도 운명적이다! 따다다단) 수련하던 빵집에서 겪었던 노동자로서의 고통, 깨끗한 먹거리로써의 빵을 고민하다 직접 자본론에 나온 자본주의 문제점들을 짚는 실험을 시작한다. 몇 가지를 소개하자면 ‘돈이 부패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므로 돈은 모으지 않는다.’ ‘쉼이 중요하다. 주 4일 근무, 연중 한 달은 장기휴가’, ‘멀리서 오는 재료보다 건강하게 자란 지역 농산물을 쓴다.’ 저자 ‘와타나베 이타루’와 그의 부인 ‘마리코’의 이름을 딴 빵가게 ‘다루마리’의 도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아.. 나도 빵 배울까?
열심히 읽었다
직장인, 노동자가 공감할만한 실용 자본론
현대를 사는 보편적인 직장인, 노동자라면 공감할만한 자본론의 내용과 이타루씨의 짧은 생각도 몇 가지 소개하고자 한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자본가가 좋아하는 이윤이 생기니 노동자는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의 노동력을 떼어 팔기 싫다면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을 가져라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中
일(노동력)을 값싸게 만들기 위해 음식(상품) 값을 내려야 한다. 생활필수품의 가격이 싸지면 노동의 가격은 계속 떨어질 것이다. -『자본론』中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임금을 현금으로 받으면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 착취는 끝난다. 하지만 그 순간 그들에게는 또 다른 부르주아 계급이 달려든다. 다름 아닌 집주인, 소매상인, 전당포 등이다." -『공산당 선언』中
자본주의 경제는 부패하지 않는 돈을 늘리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일과 먹거리를 파괴하기 바쁘다. 왜 그래야 하는가?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中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마르크스는 1800년대 중후반 산업혁명으로 자본주의 선진국이 된 영국의 노동자들의 비참함을 눈으로 목격하고 ‘자본론’을 쓰게 됐다고 한다. 그때보다 확실히 편리해지고 물자도 넘치지만 노동자의 밥벌이를 위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여전하다.
책을 읽으면서 2년 전 영화로 개봉해 재조명받은 『레 미제라블』이 생각났다. 빅토르 위고가 묘사한 150여년전 프랑스 서민들의 삶에 사람들은 공감하며 책도 영화도 인기를 끌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레미제라블 OST』 를 귀에 꽂아본다. 그리고 나의 ‘다루마리’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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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저/정문주 역 | 더숲
기존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활도 지켜나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출간 후 일본 아마존 사회?정치, 경제 분야에서 단숨에 1위를 차지하였고,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격려,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심 있는 자본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불안정하고 모순 가득한 현실을 애써 피하며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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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곱
무리하지 않습니다.
앙ㅋ
2015.02.27
서유당
2014.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