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길다! 1981년 판본을 보면 제목이 표지의 4분의 1을 차지할 정도다. 이에 비해 분량은 길지 않아서 해설과 작가소개까지 다 합쳐도 97쪽밖에 안 되는 작고 얇은 책이다. 한국어로 번역된 적은 없으며 앞으로도 결단코 번역 출간될 것 같지 않다. 이유는 대단히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작품 내용은 사실 소비에트 농업정책 보고서나 농업경제학 논문에 더 가깝다. 줄거리 전개 방식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Utopia, 1516)나 에드워드 벨라미의 『뒤를 돌아보며』(Looking Backward, 1888) 등 고전적인 유토피아 소설의 장르 관습을 따른다. 작품 안에서 이런 고전 작품이나 유토피아 사상가, 작가들이 직접 언급되기도 한다.
주인공 알렉세이 크렘뇨프는 허구의 국가기관인 세계 소비에트 농업분과에 근무한다. 1921년 10월 27일, 공산혁명 3주년을 맞이한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그는 혁명 기념 성명서와 향후의 농업정책 등 쌓여있는 일거리에 밤늦게까지 시달리며 유토피아의 진정한 의미를 고민한다. 그러다 알렉세이는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을 느끼고, “이전에는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소파에 쓰러지듯 주저앉아 그대로 잠들었다가 1984년 9월 5일에 같은 자리에서 깨어난다. 그리고 1980년대 러시아가 제목대로 농민 유토피아로 변모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의심할 바 없이 여기는 모스크바였지만 새롭게 변모한, 개명한 모스크바였다.
“진정 내가 유토피아 소설의 주인공이 되었단 말인가?” 알렉세이는 외쳤다. “솔직히 이건 상당히 바보 같은 상황이군!” (25쪽)
작품 곳곳에 유토피아 문학 장르 관습을 겨냥한 이런 유머가 숨어 있다. 그리고 저자는 각 챕터마다 장(章) 구분 아래 챕터 내용을 요약하는데, 제 11장에는 “9장과 대체로 비슷함”이라는 내용 요약이 붙어 있다. 이런 유머가 내용의 지루함을 조금은 보완해 준다.
60여 년의 잠에서 깨어난 알렉세이는 역시나 유토피아 문학의 장르 관습에 따라 ‘안내인’이 보여주는 대로 새로운 이상사회의 여러 훌륭한 면모를 구경하게 된다. 이런 ‘관광객 컨셉’은 대표적으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부터 나타나는 오래된 장르 특징이다.
알렉세이는 자신이 잠들어 있던 60여 년 사이에 소비에트 러시아 전체에서 도시가 철거되고 공장은 철도를 따라 국토 전체로 흩어지는 대규모의 개혁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농업을 위한 농지 확보와 농민의 권리를 중심으로 국가 전체가 개편된 것이다. 이전에는 “도시가 국가의 중심이고 농촌은 그 도시를 떠받치는 받침대”였지만, 농민 유토피아로 변모한 새로운 ‘러시아 농민공화국’에서는 그 반대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촌에 거주하고 농업에 종사한다. 도시는 농민들이 오가며 만나서 교류하고 거래하고 사회활동과 문화활동을 영위하는 지점이지만, 그저 경유지일 뿐이다. 작품 속 허구의 1980년대 모스크바를 낮, 즉 근무시간 중에 방문하는 사람 수는 5백만 명을 상회하지만 상주하는 인구는 10만 명에 불과하다. (참고로 실제 모스크바 인구는 2025년 기준 1천 3백만 명 정도로 서울보다 조금 더 많다.)
알렉세이는 이렇게 농민 유토피아로 변모한 모스크바를 구경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아름다운 여성과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하기만 할 것 같았던 유토피아 생활에도 위기가 닥쳐온다. 처음 알렉세이가 잠에서 깨었을 때부터 주위 사람들이 그를 “찰리 멘”이라는 미국인으로 착각했는데 알렉세이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작품 속에서 난데없이 독일이 ‘러시아 농민공화국’을 침공하고 알렉세이는 스파이로 의심받아 체포당한다. 다행히 미래 러시아의 발달된 기술로 독일군은 순식간에 격파당하고 전쟁은 하루 만에 끝난다. 알렉세이는 자신이 시간여행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려 애쓰지만 작품 속 농민러시아 정부는 믿어주지 않는데, 그래도 전쟁이 끝났기 때문에 알렉세이는 풀려난다.
너무 많은 일을 겪어 지치고 기운 빠진 채 그는 천천히 베란다 계단을 내려가, 아는 사람도 가진 것도 없이, 거의 알지 못하는 유토피아 국가에서 살아가기 위해 홀로 걸어갔다. (91쪽)
이 마지막 문장에서 유토피아의 본질, 인간과 유토피아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엿볼 수 있다. 유토피아는 관광객 입장에서 구경할 때는 멋지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면 그저 낯설고 외로운 타지인 것이다. 절대적인 유토피아란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삶은 언제나 불안하고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작가 알렉산드르 차야노프(Александр Чаянов, 1888-1937)는 농업경제학자였다. 모스크바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농업 협동조합을 연구했으며 모스크바 시립대학을 거쳐 모교인 모스크바 농업대학, 페테르부르크 농업대학 등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920년대에는 소련 국가토지위원회와 국가경제계획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농업정책에 대해 활발한 의견을 펼쳤다. 그러나 1937년 스탈린의 대숙청이 시작되자 체포당해 카자흐스탄으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현실의 소련은 농업 디스토피아로 변해갔다. 볼셰비키가 주창한 공산혁명의 주역은 노동자, 농민, 군인(귀족이 아닌 평민 사병)이었지만 현실에서 혁명 시기부터 소비에트 러시아의 모든 정책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레닌은 러시아 전체에 발전소와 댐 등 기간시설을 건설하고 기술자를 양성하여 소련을 과학기술 강국으로 육성하려 했다. 1924년 레닌 사망 이후 권력을 이어받은 스탈린도 공장과 노동자 중심의 정책에 치중했다.
그리고 스탈린은 1928년 농지 국영화를 단행한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소유했던 땅과 가축, 농기계 등을 모두 빼앗기고 이에 저항하면 ‘부르주아 농민’으로 낙인찍혀 처벌을 받았다. 이후 국영농장은 낙후되고 모든 조건이 열악한 곳으로 전락하여 청년층은 전부 농장을 떠나 공장으로, 도시로 향하게 된다. 차야노프가 꿈꾸었던 농민 유토피아는 오지 않았고, 1941년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면서 작품 속 상상의 전쟁이 현실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20세기는 유토피아보다는 디스토피아의 시대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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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라
SF와 환상 문학을 쓰고 번역도 한다.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선정됐다. 지은 책으로 『문이 열렸다』, 『죽은 자의 꿈』 등의 장편 소설과 『저주토끼』 『왕의 창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