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을 비틀어 새롭게 보기가 일종의 트렌드가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가 언제나 신선한 것만은 아니다. 비틀기의 신선함도 잠시, 점점 꼬이는 이야기와 점점 더 강해지는 이야기 사이에서 ‘새로움에의 강요’는 피로함을 누적시켜온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사람들의 취향은 가지각색이다. 클래식의 우아함과 규칙성을 좋아해, 얼마나 원작에 더 가까운지로 성공 여부를 판단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점에서 케네스 브래너의 신작 <신데렐라>는 고전적 우아함과 변함없는 가치를 선호하는 사람들을 더욱 만족시켜주는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여기에서 좀 헷갈리기 시작한다. 대체 <신데렐라>의 원작을 무엇으로 봐야하는가? 1697년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의 원작으로 알려진 <신데렐라> 이야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맞다. 반면 그림형제의 ‘유혈이 낭자하는’ 잔혹한 <신데렐라> 버전도 있다. 전 세계적으로 오페라 버전만 6개, 드류 베리모어가 적극적인 신데렐라로 변신한 1998년의 <에버 애프터> 등을 포함 영화, 드라마 버전도 십여 개가 넘는다. 스핀 오프 형태로 모티브를 따온 영화, 드라마로만 따지자면 그 수를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오리지날일까? 의외로 답은 간단하다. 우리가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신데렐라> 이야기가 우리 기억의 원판, 오리지날일 것이다. 당연히 세계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는 신데렐라 이야기는 1950년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신데렐라>라는 사실에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디즈니, 21세기의 클래식을 꿈꾸다
디즈니는 이미 65년 전에 20세기를 대표하는 <신데렐라> 이야기를 만들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신데렐라와 계모, 왕자와 쥐, 그리고 요정의 이미지는 모두 디즈니의 것이다. 샤를 페로의 원작 동화보다 디즈니의 그림책이 우리에겐 더욱 친숙하다. 그리고 자그마치 65년 만에 디즈니는 <신데렐라>를 실사판으로 만들었다. 과연 얼마나 새로울지, 얼마나 많은 기술력이 동원되었을지 사람들이 기대에 들떠하는 사이, 디즈니의 고민은 기술이 아니라 클래식한 원전 그 자체에 있다는 듯 정공법을 택한다. 1989년 슬픈 원작동화를 발랄한 해피 엔딩으로 바꾸면서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역사를 썼던 <인어공주>과 정반대의 노선을 택한 것이다. 그렇게 디즈니는 톡 쏘는 청량감 대신 오래 묵어 풍부하고 향이 진한 와인 같은 <신데렐라>를 만들어낸다. 애니메이션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쉽게 받아들여지진 않겠지만, 2015년의 <신데렐라>가 실사판 신데렐라 이야기의 클래식이 될 거란 디즈니의 자부심은 곳곳에 살아있다.
그 우아한 자신감을 실현 시킨 것은 케네스 브래너 감독이다. 명문 로얄 연극아카데미 출신으로 그 자신이 셰익스피어 극에 정통한 배우이면서 <헨리 5세>, <헛소동>, <오텔로>, <햄릿> 등 여러 편의 셰익스피어 원작을 연출했다. 이런 작품들을 통해 그는 소란스럽지만 기품을 잃지 않는 영국식 이야기의 우아함을 선보인 바 있다. 2015년 <신데렐라>는 원작의 정서를 살리면서, 품위를 잃지 않는 케네스 브래너 감독 특유의 섬세함을 이식받는 작품이 되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신데렐라의 이미지 그대로 영화 속 신데렐라는 착하고 선한 마음씨를 가지고, 계모와 언니들의 학대에고 굴복하지 않는다. 하지만 선한 마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살라는 생모의 유언을 깊이 품고 따뜻한 마음과 스스로에 대한 존경심을 잃지 않는다. 그리고 폭발하지는 않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인상을 쓰거나 화를 낼 줄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못되고 조금 덜 떨어진 언니들인 아나스타샤와 드리젤라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1세기 <신데렐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계모이다. 뭔가 새로운 것이 없었다면 케이트 블란쳇이란 배우를 기용하지도 않았겠지만, 케네스 브래너는 사악한 계모의 내면에 조금은 풍성한 결을 새겨 넣었다. 여전히 허영심 강하고 악랄하지만, 케이트 블란쳇은 자신의 캐릭터에 ‘생존’에의 갈망과 ‘젊음에 대한 질투’, 그리고 끝내 남편과 의붓딸의 ‘마음’을 얻지 못한 허전함까지 품어낸다. 여기에 세계적인 프로덕션 디자이너 단테 페레티가 가세해 만들어낸 영화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신데렐라>의 또 다른 캐릭터가 된다. 또한 실컷 이용할 수 있는 기술력을 가졌음에도 자제할 줄 아는 케네스 브래너의 연출력은 <신데렐라>의 이야기의 완급을 조절한다. 동거하는 쥐들은 최소한의 움직임만 주어 CG인지 실사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마무리하고, 요정이 나타나 마법을 부리는 순간에는 아껴둔 기술력을 모두 쏟아 붇는 식이다. 그렇게 탄생한 신델레라의 변신 장면은 모두의 기대를 만족시키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환상적이다.
<신데렐라>는 복고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쉬운 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고전 작품이 지닌 경건하고 우아한 가치와 그 품격을 과시하고 드러낸다. 너무나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이야기를 여전히 익숙한 방식으로 풀어가지만, 그 속에는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과 로맨스가 있다. 용기와 따뜻한 마음이 가지는 선량한 힘이 마법처럼 중요하다는 이야기 때문에 낯 뜨겁거나 질리는 순간이 찾아올 법도 한데, <신데렐라>는 우아함과 어느 순간에도 잃지 않는 기품으로 그런 순간들을 매끈하게 걷어낸다. 어쩌면 있으리라 기대했던 반전이 끝내 없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반전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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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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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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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