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겼다. 정말 정말. 내가 퍽 웃겨(?) 하는 사람이 페이스북에서는 엄청 멋진 이미지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어쩌다 보니, 그가 내게 페친을 신청했다. ‘투명친구’가 아니라 얼굴을 아는 사람의 페친 신청은 100% 받는다는 신조 하에 수락했다. 그와 내가 이제 페친이 되었다. 대부분 ‘전체 공개’로 글을 올리는 그와 거의 ‘친구 공개’로 올리는 나. 슬쩍슬쩍, 그의 포스팅을 즐겨 읽게 되었다. “어머나, 세상에. 내가 오프라인에서 본 모습은 이게 아니었는데. 이런 면이 있었어?” 조금은 호감을 갖게 됐다.
페이스북에 가입한 건, 2010년 7월이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5년 전. 트위터를 살짝살짝 하는 중이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너도나도 “너 페이스북 가입했어? 아직도 안 했어?”라고 물었다. 당시에는 페이스북에서 “Facebook에서 당신을 찾는 친구가 있습니다”라는 메일을 폭발적으로 뿌리는 시기였다. 이 메일을 더 이상 받지 않으려면 가입을 해야 했다. 친구를 맺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내 메일주소를 저장하고 있는 오래된 친구 혹은 전 직장 선후배였다.
일주일에 한 두 개. 정말 인상 깊은 책을 읽었거나 남편이 팬케이크를 굽다가 홀랑 태워버렸을 때, 또는 여행을 갔을 때, 큰 파일의 사진을 저장하고 싶을 때 페이스북에 들어갔다. 친구들이 눌러주는 ‘좋아요’는 암묵적으로 “잘 지내지? 그런 것 같아. 앞으로도 쭉 잘 지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나 역시, ‘좋아요’를 누르면서 친구들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내가 적극적으로 페이스북에 들락날락한 건, 올해 봄부터다. 동기는 ‘페친 뉴스’가 꽤 퀄리티가 좋았기 때문이다. 페친들의 포스팅, 또는 공유해주는 기사들은 포털 사이트 주요 뉴스보다 내 관심사를 더욱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뉴스 공급처가 ‘나의 페친’이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무렵 나는 “‘투명친구’와는 페친을 맺지 않는다”는 신조를 버렸다. 페친들이 출처를 밝히며 공유하는 원문의 저작자가 꽤 궁금했기 때문이다. 슬금슬금 친구 신청을 하기 시작했고 페친 인맥이 조금씩 쌓였다. (정말 조금, 지금도 조금)
페이스북을 통해 저자 인터뷰를 요청하기도 하고(페북 애용자들은 답변이 정말 빠르다), 출판시장에 대한 흐름도 읽고, 친구들의 관심사도 살펴보면서 나는 ‘페북 애찬론자’까지는 아니지만 ‘출판사 또는 마케터들은 정말 페이스북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저자를 발굴할 수 있는 비밀의 통로?)
“페친 뉴스가 꽤 쓸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 무렵, 페북 스타(팬 수 5000명 이상)들의 포스팅을 몇 개 읽었다. “팬 수가 너무 많아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부터 페북 이용자로서의 갖가지 소회를 밝혔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꼭 저렇게 의미 부여를 해야 하나? 팬 수가 그렇게 중요하신가? 그나저나, 당신! 페북 친구 말고 오프라인 친구는 많아요?”라고 묻고 싶었다. 당연히 그 글에는 ‘좋아요’를 누르지 않았다.
‘팬 수’와 ‘좋아요’, 이 두 개에 커다란 의미 부여를 하는 건 웃긴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따져보니, 나는 꽤 신중하게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른 사람이, 여기도 ‘좋아요’ 저기도 ‘좋아요’를 누르는 걸, 목격하면. “아 뭐야? 다 좋아? 그런 거야?”라며 가장 극심한 의미 부여를 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한 페친이 내 글에 유독 ‘좋아요’를 연달아 눌러주는 걸 보게 됐다. 내가 꽤 솔직하게 털어놓은 이야기, 조금 깊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쓴 포스팅이었다. ‘좋아요’는 “맞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의미가 내포되었으니, 뭔가 ‘동병상련’ 비슷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댓글 한 번 오가지 않은 사이인데, 뭔가 깊은 뜻을 서로 나눈 기분이랄까? (물론, 나 혼자일지도) 문제는 사방팔방 ‘좋아요’를 누르는 사람들이다. 정말 이 글 저 글, 다 읽고 좋아하는 거라면 하루 종일 페이스북만 하시나? 싶었다.
두 달 전, 페이스북에서 뜨겁게 논란이 됐던 포스팅이 있었다. 데이트 폭력에 관한 한 페북 스타의 포스팅이었는데, 나는 전혀 동의할 수 없는 글이었다. 그런데 내가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페친이 그 글에 ‘좋아요’를 딱 누르신 것 아닌가. 허걱, 난 소리 없이 친구를 끊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함부로 ‘좋아요’를 누르면 안 되겠구나. ‘좋아요’에도 가치관이 들어있겠구나”라고.
다시, 맨 처음 에피소드로 돌아간다. ‘좋아요’를 통해 한 사람의 가치관을 평가하는 건, 정확하지 않을지 모른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사까지 거짓으로 포장할 수는 없는 것 같다. 내가 현실에서 본 그 사람의 특이한 모습도, 페이스북 세상 속의 꽤 멋진 모습도 다 그의 얼굴이다. 어쩌면 페이스북 세상이 더 솔직한 공간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믿기로 했다. 적어도 내 페친들은 가면을 쓰지 않았으리라고.
채널예스 페이스북을 만들었습니다. 피로한 포스팅은 하지 않고요. 웬만하면 하루에 2개 이상 포스팅은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팬 수에 집착하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좋은 글, 좋은 책을 공유하는 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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