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좋은 생두를 고르고 갓 볶은 것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소비하는 것이 좋다. 로스팅을 한 원두는 대체로 보름에서 한 달 반 정도가 지나면 맛이 떨어진다. 따라서 신선한 커피를 즐기려면 그 기간 안에 자신이 소비하는 커피의 양을 알아보고 그만큼만 준비하고 보관하는 것이 가장 좋다. 또한 커피 기구들도 청결하게 관리해야 한다. 음식을 먹고 나서 다음 끼니를 위해 우리가 늘 설거지를 하는 것처럼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이용했던 기구들 역시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커피를 음식으로 생각한다면 음식을 만들고 먹는 이들이 지켜야 하는, 지극히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차원에서의 관리이다.”(13쪽)
커피 로스팅 공장이자 커피 관련 연구개발(R&D)과 기업 컨설팅을 하는 ‘로스팅마스터즈’ 대표이자 『커피 마스터클래스』의 저자 신기욱이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준다. 커피향이 가득하다. 좋다. 한 모금씩을 머금자 맛있다는 감탄사도 터져 나온다. 지난 9월 8일이었다. 서울 당인동의 로스팅마스터즈에는 신기욱 대표의 향기로운 커피를 마시게 된 운 좋은 독자들이 모였다. 『커피 마스터클래스』 개정판 출간기념으로 마련한 커피토크. 신 대표는 커피를 내려주면서 자영업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풀었다.
“자영업 2년 내 생존율이 5% 내외라는 통계가 있는데, 20명 당 1명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서울대 경쟁률이 15대1인데, 15명만 제친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자영업도 마찬가지다. 자영업은 정말 독하게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커피를 해보자, 플라워를 해보자,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곤 하는데, 어떤 일이든 5년 이하로 일한 사람이 성공하긴 어렵다.”
그는 커피도 요식업의 하나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여느 요식업처럼 재료와 요리, 손님 반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재료를 좋은 것을 쓴다고 전제한다면 어떤 요리를 줄 것인지가 가장 중요하다. 그것은 하루아침에 그게 되지 않는다. 오랫동안 (손님) 반응을 보면서 맞출 줄 알아야 한다. 커피도 마찬가지. 커피가 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나 이를 감안하면 그렇진 않다.
“유기농식당이라고 하면 대개 맛없는 집이라고 찍힌 경우가 있다. 커피든 다른 음식을 제공하든 (손님의) 삶을 책임지는 건 아니다. 위로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그래서 손님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커피를 잘 만드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즐겁게 먹도록 만들 것인가를 연구하는데 좋은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그것을 위해 첫째 깨끗하면 된다. 즉 위생이다. 위생을 유지하고 약품을 쓰는 방법이다. 둘째 손님의 취향에 맞는 커피를 만드는 방법을 연구한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커피를 맛없게 만드는 방법도 연구한다.”
그는 대학교 근처, 큰 잔에 커피를 파는 가게 대부분이 쓰고 맛없게 만드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맛있게 만들면 약 먹은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이란다. 커피를 마셨을 때 확연하게 쓰고 괴로워야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갖는단다. 그가 대표적으로 꼽은 곳이 노량진. 커피가 부드러우면 장사가 안 된다는 것. 노량진에 위치한 로스팅마스터즈의 거래처가 있었다. 처음에는 부드러운 커피를 썼다. 매출이 잘 나오지 않자 거래처에서 커피를 태워 달라고 요구했다. 맛이 없어졌음에도 이 거래처의 매출은 두 달 만에 4배 높아졌다. 맛있고 좋은 커피가 아니었지만 그곳에 맞는 커피였다.
커피의 향미는 어떻게 발현되는 것일까
신 대표는 이날 드립 방식으로 커피를 추출했다. 드리퍼만 있다면 집에서도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커피 추출방식이다. 일본식 드립과 미국식 드립이 다르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크게 다를 바는 없다고 말했다. 미국식은 물을 많이 붓고, 일본은 물줄기를 조심스럽게 붓는 차이가 있다는 견해에 대해 그는 의미 없다고 전했다. 커피 가루가 나오지 않게 만든 것이 드립 방식이며 다만 손으로 하므로 할 때마다 다른 맛이 난다는 것. 그렇다면 커피의 향미는 어떻게 나오는 것일까. 로스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녹색이나 갈색의 생두가 로스팅 되면서 캐러멜라이징, 마이아르 반응을 보인다. 캐러멜라이징은 당류, 과당 등이 열을 받아 색깔이 변하는 것이다. 여기서 당의 양은 우리가 느껴질 만큼의 양이 아니다. 마이아르 반응은 비효소적인 갈변이라고 말하는데, 빵 껍질이 구워지는 반응이라고 보면 된다. 당과 아미노산, 유기산, 지방산 등이 결합해서 나타난다. 이는 요리에서도 드러나는데 고기를 구울 때가 대표적이다. 누룽지도 마이아르 반응이 나타난다.”
커피에는 이렇듯 캐러멜라이징, 마이아르 반응을 하는 성분이 있는데, 이를 효과적으로 꺼내기 위해선 물이 필요하다. 또 커피는 로스팅을 거치면서 카페인 성분이 나온다. 카페인은 어지간한 열에 파괴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 로스팅을 강하게 했다고 없어지는 건 아니나 아주 뜨거운 물에는 카페인 입자가 오징어처럼 비틀어질 수 있다. 이것이 비틀어지면 독특한 향이 생기는데 너무 높은 온도에 추출하면 타이어나 고무 타는 향이 나므로 주의해야 한다. 신 대표는 커피를 추출하기 위한 이상적인 온도는 92도라고 설명했다. 92도를 넘으면 변성이 시작되며, 추출률은 좋지만 커피를 맛있게 만드는 온도는 아니라는 것.
“카페인이 든 음료 중에 녹차가 있다. 커피보다 카페인 변성이 적은데, 전기포트의 물을 팔팔 끓자마자 부으면 녹차 맛이 씁쓸하다. 녹차는 84도 이상이면 카페인이 변성된다. 홍차는 98도면 카페인 변성이 일어나는데 높은 온도에서 추출해야 충분히 성분을 끌어낸다. 이것만 알아도 음료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발효된 차는 높은 온도, 발효되지 않은 차는 낮은 온도에 추출하면 좋다.”
그렇다면 커피는 어떻게 하면 맛있게 추출할 수 있을까. 커피의 양과 물의 온도도 중요하지만 커피 향미를 조절하는 중요한 요소는 분쇄(굵기)다. 만약 커피콩을 분쇄하지 않고 달인다면 구수한 차가 나온다. 반면 분쇄할 때도 굵기에 따라 향미가 판이하게 달라진다. 그래서 추출 방식에 맞는 적절한 굵기가 중요하다. 드립으로 내릴 때는 깨 한 알 정도의 굵기, 커피를 잘 컨트롤 할 수 있다면 깨 반쪽 정도라도 좋겠단다.
“커피의 ‘맛’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자신의 취향이나 개성을 살리기 위한 방법은 꼭 이상적인 기준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커피 맛은 로스팅 정도, 커피 입자의 굵기, 물 온도, 추출 시간 등 여러 가지를 조절함으로써 달라지는 것이다.”(14쪽)
반면 에스프레소용 커피는 설탕입자보다 가늘게 분쇄를 한다. 에스프레소를 뽑기 위해 필요한 압력은 9기압이다. 이는 300kg의 힘이다. 드립커피는 그런 압력이 없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만큼 갈아서는 효율(맛)을 낼 수가 없다. 따라서 에스프레소만큼 가늘게 분쇄하지 않고 그보다는 굵게 분쇄한다.
“에스프레소는 높은 압력으로 기포조차 밀어낸다. 크레마는 가스가 밀려나오면서 기름과 함께 나오는 것이다. 드립커피보다 에스프레소가 향이 강하고 맛이 쓴 이유가 지용성 성분까지 뽑아내기 때문이다. 삼투압은 물이 이동하는 것이고 확산은 용질이 농도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것인데, 에스프레소는 확산이 일어나서 진하다.”
물붓기가 중요한 이유
물을 잘 붓는 것만으로도 커피를 맛있게 만들 수 있다. 커피를 고르게 적셔주고 커피와 물이 효율적으로 만나야 한다. 만약 드리퍼에 담은 커피의 같은 자리에만 물을 부으면 잘 우려지지 않아서 나무 맛만 날 뿐이다. 즉 팬 놈만 패는 건 좋지 않다는 것. 지그재그건, 별모양을 그리건, 원을 그리건 물과 원두를 잘 섞어주면 좋은 향미를 낼 수 있다. 커피 추출 단계별로 맛을 보면 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맛이 나오지 않는다. 좋은 성분은 앞에서 녹아나고 시간이 지날수록 쓴맛이 더 많이 나온다.
“커피 향미는 추출할 때 앞선 단계에서 좌우된다. 뒤는 잡미, 쓴맛 등을 담당한다. 커피를 맛있게 내리려면 확산이 앞에서 강하게 일어나야 한다. 앞을 효율적으로 추출하고 뒤의 것을 줄이면 된다. 물을 때려 부어도 된다. 30초 동안 사전추출하고 확산 준비를 한 뒤 물을 확 부으면 확산과 용해가 한꺼번에 일어난다. 1분 10초 내에 끝나게 해보자. 물에 닿은 시간이 많지 않아서 나무 맛이 약할 수밖에 없다. 커피는 정성들여 뽑기보다 어떻게 뽑아낼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커피 맛의 형태를 알고 설계해서 어떻게 그 맛을 끄집어낼 것인지가 중요하다. 정확한 시간에 정확한 물 양만 있으면 반응하는 것이 커피라는 물질이다.”
“흔히 물을 부을 때는 커피층이 무너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물줄기를 조절해서 물을 부어주어야 한다고 한다.(중략) 물을 붓는 것 자체가 커피를 잘 섞어주는 것이기 때문에 커피를 고르게 섞어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물을 붓든 커피 맛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145쪽)
머그잔이 탄생한 배경
신 대표는 여담으로 커피 잔에 얽힌 이야기도 풀었다. 커피 잔은 지금의 머그잔보다 작았다. 손잡이에 손가락이 들어가는 잔은 없었다. 표준 잔은 120mm로 진하게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산업혁명 이후 노동자들이 물 대신 커피를 마시면서 큰 잔이 나왔다. 큰 잔에는 손가락이 들어갔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기름기가 묻은 장갑으로 잔을 만질 수는 없었다. 장갑을 낀 손이 들어갈 수 있는 손잡이를 가진 잔이 등장한 것이다.
“과거에 손가락이 들어가는 잔은 천한 잔이었다. 높은 분들은 손가락을 넣지 않았다. 품위 있는 잔은 손가락을 넣지 않았다. 머그잔 문화는 미군이 진출하면서 본격적으로 나왔다. 과거 우리나라도 원두커피가 먼저 들어왔다. 이상의 제비집도 원두커피를 팔았다. 미군이 진주하면서 인스턴트커피로 대체됐고 인스턴트 문화와 함께 손잡이가 달린 머그잔이 퍼졌다. 고급스러운 유럽의 잔을 갖다놓아도 왜 손가락이 들어가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몰라서 그렇다.”
커피에 설탕을 넣으면 촌스럽다거나 세련되지 못하다는 인식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마시는 사람의 취향이다. 예부터 커피에 뭔가를 섞어서 마셨다. 과거 설탕이 귀했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설탕을 넣어서 마시는 것은 고급스럽고 사치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유럽과 미국에서 설탕을 넣어 커피를 마시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다만 신 대표는 단맛과 매운맛의 유행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단맛과 매운맛의 유행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있다. 요즘 여자들의 40% 정도가 맛을 볼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통각인 매운맛에 반응한다. 혀가 아린 맛인데 정상적인 미각으로는 엽기떡볶이나 불닭을 먹을 수 없다. 미각을 상실했다는 의미다. 단맛을 좋아한다는 건 느낄 수 있는 미각이 없어서다. 첫 번째 이유가 호르몬 불균형 때문이다. 생존을 위해서 먹는다. 한국은 상시적인 다이어트 시대로 들어섰는데 체질량 지수가 떨어지면서 상시적인 생리 불순에 시달리면서 호르몬이 불균형 상태를 보인다. 지금 음식이나 음료 설계에서 당도를 엄청 올리는 이유다. 그렇지 않으면 불만이 나온다. 음식을 밖에선 조절할 방법이 없다. 특히 매운맛은 쓰기 때문에 쓴맛을 없애려고 달게 만들 수밖에 없다. 지금은 맛에 대한 개념이 무너져서 외식산업이 어렵다. 음식문화가 퇴행했고, 상시적인 다이어트 상태라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신 대표는 전 세계의 커피 관련 빅4(네슬레, 크래프트, 프록터 앤 갬블(P&G), 사라리)에 대한 이야기도 언급했다. 네스카페, 폴저스, 유반, 맥스웰하우스, 맥심 등 이들의 브랜드는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다. 전 세계 커피공급량의 7~80%를 차지하는 이들의 영향력은 어마무시하다. 이들은 식품 관련 초대기업이기도 한데, 자신의 이익과 이윤을 위해서 어떤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런 한편으로 우리는 식품에 대한 오해의 장막 속에서 산다. 생존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인지 우리는 유독 식품과 관련한 불안이나 공포증을 조장하는 정보에 약하다.
“식품은 위험한 존재다. 되레 식품 첨가물은 안전하다. 안전하지 않으면 바로 쇠고랑을 차기 때문이다. 식품은 그만큼 어렵다. 첨가물 문제로 감옥에 가기 싫긴 때문에 사실 첨가물은 알려진 것만큼 나쁘지 않다. 식품은 그만큼 어렵다. 커피도 거짓말이 잘 통한다. 어쨌든 다시 커피로 돌아와서 커피를 내릴 때 행위에 집착하지 마라. 커피 추출의 메커니즘은 물의 속도, 온도, 굵기 등이 중요하다. 커피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물이 더 필요하고 덜 필요한가, 빨리 혹은 천천히, 뜨거워야 하나 차가워야 하나를 명확하게 하면 추출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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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마스터클래스신기욱 저 | 클
커피콩이 원산지에서 재배, 가공되어 로스팅되고 추출되기까지 커피에 대한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이 책의 가장 큰 특장점은 각 과정을 소개하고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바탕이 되는 원리를 실험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에 담긴 다양한 사진과 그래프들은 10여 년에 걸친 저자 신기욱의 치밀한 연구 결과를 독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커피 마스터 클래스]는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더 깊은 세계로 인도해주는 안내서가 될 뿐만 아니라, 커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한 차원 더 높은 지식을 원하는 중급자에게도 유용한 교과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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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