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서 뭘하고 있나요?”
어린왕자가 신입사원에게 말했어요.
신입사원은 서류 한 무더기와 유에스비가 꽂힌 컴퓨터를 앞에 놓고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
신입사원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일을 왜 하나요?”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야.”
어린왕자는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어요.
“왜 대출을 했나요?”
신입사원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고백했어요.
“대학교 학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왜 대학을 나왔는데요?”
어린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야!”
신입사원은 말을 끝내고 입을 꾹 다물어버렸어요.
어린왕자는 당황해서 그 별을 떠났어요.
(「어린왕자와 신입사원의 별」, 『사축일기』 82쪽)
사축(社畜),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 이 새로운 인류의 생존 방식을 어린왕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회사에 길들여진다는 건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 되는 일이니까. 장미가 아닌 게임 아바타를, 사랑과 정성만으로는 모자라 캐시템까지 동원해가며 키우는 이유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옷은 비싼 걸 사봐야 입고 나가 놀 시간이 없고 기운도 없고 너라도 좋은 걸 입고 다녀라”는 눈물겨운 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축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고 친구의 것이고 가족의 것이다. 퇴근 10분 전 일거리를 던져주는 대리를 보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배우는 건 일상다반사다. 퇴근 후에 팀장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 ‘지금 통화 괜찮아?’라는 일곱 글자를 보면서, 그 짧은 순간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간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이유는 ‘요즘 것들이 해이해서’라고 믿는 부장님도, 퇴사한 후배를 대신해 없던 일까지 떠안게 된 사수도, 모두가 익숙하다.
한참 동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이따금씩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사축일기』의 책장을 넘긴다. 문득, 우리 사는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오는 한편 쩝쩝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고단한 사축의 삶을 멈출 수 없는 나와 그대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 괜찮은 건가, 하고.
그를 만나야 했다. 『사축일기』의 저자, 강백수. 인디밴드 ‘강백수밴드’를 이끄는 음유시인이자, 2008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나 아직 세상에 첫 시집은 내어놓지 않은 진짜 시인. 강백수는 “당신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축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 속에 담아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깨달았다. 강백수의 시선은 사축들의 삶 바깥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지금까지 그의 음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해 발표한 산문집 『서툰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와 우리의 일상은 분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제쯤 번만큼 쓰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사축이라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걸 아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이 직장인을 호명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 아니라, 직장인들 스스로가 만든 말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안쓰럽기도 했어요. 사실 그런 말들이 많지는 않아요. 어떤 세대나 계층을 지칭하는 은어가 발생했을 때 자신들을 자조하거나 비하하는 의미로 그 말을 쓰는 경우는, 저는 사축이랑 군바리 밖에 못 봤거든요. 정말 특수한 은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별명을 만들었는데 그게 멋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초라한 말인 거예요. 사축이라는 말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감하고 있잖아요. 그건 그만큼 자신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긍지나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뭔가 애잔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죠.
작가님은 직장인이 아니신데, 사축 친구들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1년 남짓 학원 강사로 근무하셨던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일했던 곳이 입시학원이라 다른 직장이랑 다른 면이 없지 않지만, 저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한 게 아니라 학원에 소속된 전임 강사로 일했었거든요. 아무래도 일반 직장이랑 비슷하게 운영되는 조직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인디밴드로 생활하시는 것과는 많이 다른가요?
아니요. 오히려 직장생활 하던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것들보다, 지금 현재의 상황을 직장에 대입해서 쓴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카톡 지옥」 같은 글도 그랬어요.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카톡방이 형성되는데, 또 하나의 사무실이 차려진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문제는 이 사무실은 퇴근이 없다는 거죠(웃음). 프로젝트 별로 카톡방이 생기는 경우에는 조금 더 여러 군데의 사무실에 출근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분들 못지않게 고충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제3자의 눈으로 보시기에 직장이란 어떤 곳인 것 같으세요?
프리랜서가 직장인보다 제일 좋은 점은 일하기 싫은 사람이랑은 일 안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직장인들은 좋으나 싫으나 한 사람이 직장을 포기하고 월급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같이 가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그 관계 속에서 생기는 부조리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프리랜서 같은 경우에는 권위적인 누군가에 대해서 굴복할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세상에 클라이언트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굴복해야 되는 순간이 있죠.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 주어졌을 경우라든가. 그런데 직장인들은 그런 일들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거죠.
직장인의 애환을 들으면서 ‘직장인이 아니라 다행이야’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었나요?
친구들이랑 저는 항상 서로 부러워했다가 안쓰러워했다가 반복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사축일기』에서는 주로 친구들의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제가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위주로 쓰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직장인들에게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너무나 큰 메리트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친구들이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일의 자유도 면에서는 제가 훨씬 더 편하게 지내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책에 실린 「사원과 바다」라는 글이 기억나네요. 산티아고가 ‘급여’라는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월세, 학자금 대출금, 생활비를 내느라 “통장에만 작은 흔적이” 남잖아요.
집사면 대출금 갚느라 뜯기고, 자녀들 교육 자금 모으느라 또 뜯기고, 노후 대비하느라 또 뜯기죠. 친구들을 보니까 연봉을 받아도 정작 주머니 속에 있는 돈,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가 얼마를 벌고 있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걸 보면서 ‘언제 행복해지나’ ‘우리는 언제 번만큼 쓰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미래를 대비했는데도 그 미래에는 과거에 진 빚을 갚거나 아니면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데 번 돈을 다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물론 저도 그런 고민들이 많아요. ‘들쭉날쭉한 수입이지만 그렇게 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고, 저게 뭐야 라는 생각도 들고요. 「뭐가 맞는지」라는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이, 다들 그 고민 사이에서 지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기 A가 동기 B를 흉본다.
“야, 쟤 봐라. 한 달에 50 남기고 다 적금 붓는대.
저게 사는 거냐? 적금 넣는다고 술 한번을 안 사잖냐.
구두는 저거 하나인가? 젊어서 좀 즐기는 거지 나이 들어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동기 B가 동기 A를 흉본다.
“우리 나이에 중형차가 가당키나 하냐? 쟤 입사해서 4년 동안
얼마 모았다는지 알아? 천만 원도 못 모았단다. 늙어서
돈 없으면 서러워지는데 진짜 한심하지 않냐?”
글쎄, 나는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사축일기』 99쪽)
힘든 회사 생활, 왜 하는 걸까?
‘지금 행복할 것인가, 나중에 행복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로 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만의 대답은 찾으셨나요?
저는 음악을 하고 글을 쓰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어느 정도는 편향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위주로 지낼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지는 않죠. 그래서 조금 대비를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주변에 너도 대비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는 부분들도 있고, 그런데도 계속 마음에 걸리기도 하죠. 저희 나이 때의 사람들이 다들 하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축일기』를 보면서 ‘이렇게 힘든데도 나는 왜 회사 생활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대부분 회사 생활의 이유는 회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회사 밖에 있죠. 가족이나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위해서 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축일기』의 내용이 괴로운 이유는 회사 안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추구하는 더 중요한 가치들이 회사 밖에 존재하니까요. 이 사람들이 자꾸 불행해지는 이유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다른 걸 하고 싶어서 돈을 버는데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거죠. 주변에 그런 친구들도 많았어요. 조금 덜 벌더라도 덜 일하는 데로 이직하고 싶다고요. 보너스도 필요 없고 인센티브도 필요 없고 무조건 칼퇴하고 싶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친구들 보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하고, 다른 눈치도 봐야 되고, 심지어 회식도 일처럼 해야 되고, 이런 걸 다 순하게 따라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회사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 라는 생각도 들죠. 자신들이 월급을 준다고 해서 집에도 안 보내주고, 돈은 주는데 돈 쓸 시간은 안 주잖아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근무 시간이 가장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축일기』에는 얄미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웃음). “별을 먹은 슈퍼마리오처럼 종횡무진”하는 사장님 아들도 있고 “왜 안 돼요? 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금수저, 모든 일의 이유를 “요즘 것들이 해이해서”라고 믿는 부장님도 있어요. “인센티브를 가로채며 살아남기 위해서 비열해진다는” 팀장님이나, 현금이 없다며 매일 커피 값을 ‘삥’ 뜯는 박 대리도 있고요.
이 책에 대한 피드백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게 있는데요. 제 친구가 말하길, 자기가 진짜 얄미워하는 상사가 있는데 『사축일기』를 보면서 공감을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자기가 책에 나오는 얄미운 상사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거죠. 자기의 얄미운 상사만 보이는 거예요. 책에 무능한 후배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 후배만 보이는 거예요. 제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직장인한테 당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소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직급에 상관 없이요. 자기 상사는 호랑이나 여우에 비유하고요. 자기가 소라고 여기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는 여우일 수 있고 호랑이일 수 있는데, 다들 자기가 제일 뼈 빠지게 일하고 부려먹음을 당하고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있더라고요.
친구분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저는 되게 신이 났어요. 이 책이 제가 할 수 없었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자기 상사가 『사축일기』을 보면서 공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얄미운 상사인 걸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나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건 제가 생각지도 못한 기능이라서 그런 가능성을 봐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책 말미에 실린 「사축 소설 1 - 영업2부 표류기」는 설정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웃음). 직원들이 다 함께 무인도에 갇히잖아요.
조금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극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팀 안에서 존재하는 라인과 부당한 권력 같은 것들을 보여준 건데요. 사실 그런 욕망들이 있잖아요, 계급장 같은 거 떼어보고 싶다는. 그래서 계급장을 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 번 던져본 거예요. 그런데 높은 사람들은 그 계급장이 아직까지 자기한테 붙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이야기를 보고 어떤 분들은 통쾌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읽고 나서 더 답답해지셨다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통쾌했어요. “아니 씨발, 여기가 사무실입니까?”라고 반기를 드는 부분이요(웃음). 만약 현실이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겠죠.
그렇겠죠. 「나는 무슨 죄」도 반기를 든 상황을 담은 에피소드인데요.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갔는데, 오히려 고생하는 건 내 동료였던 거죠. 그들에게는 고려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꿈이나 야망이 없어도 당신은 완성된 사람이에요
직장 내에서 갑의 위치에 계신 분들은 『사축일기』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한탄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 너희가 너무 약해 빠져서 이런 이야기하는 거야’라고요.
그런 분들 많이 봤죠. 취업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도 ‘노오오오오력’을 안 해서 취업이 안 된다고 하고요. 그런데 사실 경제성장률 지표가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 분들도 많거든요. 대학 때 별로 열심히 안 했는데도 시대를 잘 만나서 쉽게 취업하고, 그때 나라 경제도 활황이었으니까 회사에서도 순탄하게 지내다가, 지금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런 분들도 나름의 애환이 없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 애환은 조금 더 극대화되는 거고, 마치 지금의 성공이 있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처럼 왜곡돼서 기억 되겠죠. 시대가 변한 걸 생각 안 하고 그 상황 그대로 신입사원이나 사회 초년생들한테 적용하다 보니까 그렇게 이해가 결여된 발언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그런 분들이 ‘신세한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답변하실 것 같으세요?
이 책을 읽고 ‘어쨌거나 아이들이 힘든데도 착하게 하고 있구나’라는 것만 알아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따뜻한 마음이라도 한 번 가져주신다면 직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축일기』을 읽고 기성세대들과 사회초년생들이 같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실마리만 되어준다고 해도 이 책이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에필로그에서는 일종의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우리를 둘러싼 거창한 이야기들에 대한 건데요. 열정과 긍정, 성공을 말하는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은 거죠.
사람이 계속 열정적이면 정신병자라고 생각해요. 휴대폰도 충전을 해야 되고 자동차 엔진도 식히는 시간이 필요한데, 계속 열정만 강요하는 게 맞는 건가 싶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정말로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사축일기』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않고, 푸념투성이잖아요. 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건 진짜로 불건전한 책이고 쓸모 없는 책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모든 것들이 다 쓸모 있나, 쓸모 없는 시간도 필요하고 시간낭비도 필요하고 숨을 돌리면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책이 그렇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에 함께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하셨을 때도 ‘꼭 꿈이 있어야 하나’ 하고 반문하셨어요. 반드시 어떤 위치에 올라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네. 그냥 그냥 사는 사람들, 원대한 꿈이나 야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절대로 잘못 됐다거나 미완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대로 완성된 사람들인데,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괜히 채찍질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매스미디어나 서점가의 이상한 책들이 말이죠.
첫 번째 앨범이 네이버 ‘이 주의 발견’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김성대 한국대중음악성 선정위원은 “앨범 [서툰 말]은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지우는 데 나름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작가님에게는 문학과 음악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제 음악은 문학처럼 읽혔으면 좋겠어요. 말에 소리를 보탠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옛날에 분명 그런 음악들이 있었어요. 문학 같은 음악들이요. 그런데 점점 그런 걸 하는 분들이 드물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 저는 그 안에서도 계속 그런 걸 해나가고 싶어요. 또 제가 할 수 있는 게 문학성을 가진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해보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 또 할 수 있는지.
노래하실 때 가수 윤종신 씨 못지않게 발음이 분명하시더라고요(웃음). 의미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윤종신 선배님께서도 국문과를 나오셨더라고요. 분명히 가사에 대한 자의식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가사를 다 들려주고 싶으신 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사축일기』는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잖아요.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 「남자사람」은 어떤가요?
각색이 있죠(웃음). 상황은 온전히 사실이 아닐 수 있는데요. 감정은 제가 느꼈던 거예요.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죠.
노래 속에 ‘오빠 남자 새끼들은 다 그런가요’라는 가사가 있는데요(웃음).
남자들은 다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웃음). (노래 속) 그 남자는 착하잖아요. 안 착한 사람들도 많죠. 어디에나 예외는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신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내해야 되잖아요(웃음). 향후의 관계라든가 윤리적인 것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적어도 남자들한테만큼은, 특히 그런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남자들에게는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이번 싱글은 가수 토니 안, 김재덕 씨와 함께한 첫 번째 작업입니다. 많은 분들이 세 분의 만남을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작업은 어떠셨어요?
일단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지지해 주셨어요. 약간의 방향성만 조금씩 제시해 주셨고, 디테일한 부분들을 챙겨주셨고요. 어쨌거나 제가 쓴 노랫말이나 멜로디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제 개성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해 주셨어요.
작가님은 계속 인디 음악을 해오셨고. 두 분은 상업적 음악의 최전선에 계셨던 분들이잖아요. 서로 잘 맞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우려보다는 의외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요. 저도 그 의외적인 상황이 흥미로웠어요. 같이 있을 때 제가 뭘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서 시작하게 된 것도 있었어요.
결국은 시인이고 싶은 거예요
다음에 출간하는 책은 반드시 시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현재 집필 중이신가요?
시는 항상 있어요. 시집으로 엮어도 남을 만큼이 항상 있는데, 계속 욕심인 거죠. 조금 안 좋은 작품은 더 쳐내고, 더 좋은 시를 또 써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계속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예요. 열정의 차이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첫 시집이 가지는 의미 때문에, 첫 시집에 대해서 엄격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시집을 반드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제 마음 속에서는 흔들리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시는 안 쓰나?’ 하고 우려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전에도 산문집이 나왔고 이번에는 『사축일기』를 썼으니까, 다음 책이 또 산문집이라든가 다른 종류의 책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이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시집을 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결국은 시인이고 싶은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선보이신 음악과 책에 비추어서 ‘아마 시집도 비슷한 색깔일 거야’라고 예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그렇게 예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틀에서 벗어날 거거든요. 예상을 뛰어넘고 싶은 거죠. 제 시에는 조금 더 많은 상상력이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어떤 상황을 통해서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 그러면 제 마음 속에는 그 감정이 남아 있잖아요. 그걸 더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다른 상황을 만들어서 시를 쓰고 있어요. 상황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요. 방식 자체를 다르게 하고 있어요.
“김광석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 김광석 선배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 저도 훗날 제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시인도 많고 존경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 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없어요.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지금은 시를 쓰지 않으시지만, 유하 시인님이에요. 지금은 감독님이죠. 석사 논문도 그 분 작품으로 썼고요. 너무 좋아해요. 왜냐하면 시 속에서, 사람도 사람이지만, 시대의 냄새가 나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까지의 냄새를, 그게 좋은 향이건 역한 냄새건,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노래에 대한 평론에는 늘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요. 의도하신 건가요?
제가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그 단어를 듣고 나니까 그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학도 리얼리즘 문학들을 좋아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축일기』를 내고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작가가 직장인이 아니라서 이 이야기들을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요. 그게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인 것 같아요. 쉽게 하고 싶었거든요. 슬프지 않게. 독자들에게 ‘너도 힘들지? 나도 그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주변에 그런 애들 되게 많아, 네가 힘든 게 이상한 게 아니야, 이 시스템이 이상하고 이 세상이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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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강백수 저 | 꼼지락
사축(社畜)이란,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뜻한다.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게 된 이 단어는 주인에게 길들여진 가축처럼, 직장인은 회사에 길들여졌다는 자조를 담은 말이다. 우리나라의 직장인들 역시 크게 공감했던 것일까. ‘사축’이라는 키워드는 소개된 즉시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축일기]는 사축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한마디로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보여주는 글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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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