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에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무엇이 가장 늘었어요?” 라고 묻는다면, 고민하지 않고 대답해줄 수 있다. “적당한 가격대에, 가격 대비 훌륭한 식사가 나오는 음식점을 찾는 검색 능력이요.” 그렇다. 나는 비즈니스 미팅을 위해서 과도하게 비싸지 않은, 하지만 너무 저렴해 계산하는 내가 민망하지 않을 식당을 찾아 떠나는 하이에나 같은 업무를 하고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부서 내에서 막내 생활을 오래 했던 터라 식당 예약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었고, 일정 나잇대 사람들의 입맛을 추측하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그리하여 2016년의 나는 지역만 정해주면 어떤 음식점이 나을지 열혈모드로 검색하고, 내 머릿속의 레이더망을 풀가동한다. 그럼, 그 영업비밀 좀 풀어보라고 채근하는 독자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에서 ‘솔직히 꼽아본 광화문 맛집들’은 너무 하수 중 하수가 아닐까 싶어 접었다. 대신 사회생활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된 중식에 관해 써보고자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중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제일 처음 맛본 중식은 바로 국민음식 ‘짜장면’. 춘장이 적절히 밴 짜장 소스를 제대로 버무리지 않으면 짜장면은 참 맛이 없다. 아쉽게도 내가 처음 먹었던 짜장면은 내 건강을 과도하게 수호하고 계시는 어머니 덕분에 밍밍한 밀가루 맛이 나는 그것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어머니가 음식 차리기 귀찮을 때마다 시키는 짜장면이 참 맛없었다. 무엇이든지 ‘처음’은 강렬하니까. 중식의 세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 불운한 유년시절을 지내온 나는 어느새 소개팅에서 소개팅남이 물으면, 0.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소개팅남 : 한식, 중식, 일식, 양식 중에서 어떤 종류가 좋으세요?
나 : 중식 빼고 다요.
물론 대학시절 ‘양꼬치’를 먹기 위해 서울대입구역까지 가서 유명 맛집에서 친구와 울면서 먹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건 양고기가 좋아서였지, 중식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양꼬치와 곁들인 연태고량주와 칭따오가 좋았다, 라고 할 수 있겠다.) 큰 목소리 내어 ‘느끼하고 밀가루 맛으로 범벅진 중식’을 제창해왔기 때문인지 아무도 나에게 섣불리 중식을 권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술술 흘러 있었고, 대학생 꼬꼬마였던 나는 학생티를 못 벗은 채 회사에 취직해 있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가 아닌 이전 회사에서 모신 부장님과의 첫 만남은 본사 근처에 위치한 큰 중국집에서 이루어졌다. 때는 점심시간이었다. 내 인생에서 처음으로 ‘중식당’스러운 식당에 들어가니 주변이 온통 새빨갰다. 낯선 한자들 사이 속에서 부서 막내로 들어온 나는 내 맞사수가 될 대리님 옆에서 부장님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 채, 쭈뼛쭈뼛 앉았다. 고풍스러운 메뉴판을 받아 들고 한참을 고민했다. ‘짜장면 알고, 짬뽕 알고, 볶음밥 알고…’.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는데, 부장님이 물어왔다. “좋아하는 요리로 하나 골라봐라.” 내가 반문했다. “이거 다 요리 아닙니까?” 내 질문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내 맞사수가 될 대리는 친절하게 메뉴판에서 ‘일품요리’ 메뉴를 펴주었다. 편다고 무엇을 알리. 내가 아는 요리는 탕수육, 깐풍기 정도였고, 나는 탕수육을 골랐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나는 총알처럼 쏟아지는 부장님의 질문에 입에 잘 배지 않는 ‘다나까’ 어투를 구사하며 짧게 대답했다. 드디어 탕수육이 나왔다. “먹으렴.” 부장님이 조용히 권했다.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 진짜 중식당에서 만드는 탕수육은 씹는 순간, 튀김옷과 고기즙부터 다르구나. 소폭이 절로 들어가는 맛이었다. ‘어머니, 왜 저에게 그동안 이런 중식당을 소개시켜주지 않으셨나요?’ 나는 속으로 재차 어머니를 울부짖으며 탕수육을 먹었다.
이후로 나는 회사 사람들과 함께 중식을 엄청나게 많이 먹으러 다녔다. 이렇게 남은 생애를 중식만 먹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가장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중식이라는 사실을 점차 알아갔다. 많은 사람들이 추우면 백주 한잔과 함께 완탕면을 먹고, 새콤한 중국냉면과 냉채도 함께 곁들인다는 것도. 중식이 좋았는지 모든 게 신기하던 신입사원 시절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게 여러 가지 메뉴를 하나씩 정복해갔다. “야야, 막내야, 네 먹고 싶은 거 시켜봐라!”며 경상도 사투리로 내게 메뉴판을 건네주는 부장님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수도. 아직도 나는 ‘캡틴’이란 단어를 생각할 때마다 중식당의 무거운 메뉴판이 떠오른다.
일정 선입견처럼 중식에는 느끼한 음식도 많지만, 울면, 기스면과 같은 따듯하면서도 가벼운 면류도 있고, 같은 새우가 들어갔다고 믿기지 않을 만큼 끝내주는 멘보샤와도 만날 수 있었다. 예약을 오래 전에 해야지만 먹을 수 있는 동파육, 광둥식 오리구이도 좋은 날 팀원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거기에 배달음식처럼 먹어왔던 만두의 세계는 얼마나 넓은지. 딤섬은 지금 나의 독보적인 술친구가 되었다. 단순히 메뉴를 터득해나가는 데에 그치지 않고, 음식이 있는 자리에 음식의 기원에 관한 에피소드도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한 번은 부서 전체가 호텔 중식당에 간 적이 있었다. 한 과장님의 승진 축하자리였다. 내가 처음 와봤다고 고백했더니 부장님은 ‘그럼 더 여러 가지 요리를 먹어봐야 해.’ 라며 비싼 코스를 시키셨다. 내가 먹어온 우리나라 중식은 산둥식에 가깝다는 점. 하지만 광둥식이 덜 느끼하고, 재료의 맛을 충분히 살린다면서 옆에서 설명도 잊지 않으셨다. 확실히 이전 곳에서 먹었던 중식보다는 약간 심심한 맛이긴 했으나 부장님 말마따나 부담되지 않는 끝맛이었다. 찜이나 탕 종류가 많이 나와 입이 달지 않았다. 즐거운 축하 자리였고, 연이틀 이어졌던 야근의 피곤함은 한순간에 몇 잔의 백주, 그리고 훌륭한 음식 덕분에 싹 사라져버렸다.
첫 회사생활을 마치고 지금 회사에서는 오히려 내가 중식을 찾는다. 중식은 내게 첫 회사의 하드트레이닝이 남겨준 보너스 같은 존재랄까. 가끔씩 오향장육이나 가지볶음 요리에 고량주를 곁들일 때마다 첫 회사에서 나를 위로해줬던 추억들이 떠오른다. 음식이란 참 신기한 존재다. 깐풍새우를 시켜놓고 눈물을 흘리며 달게 혼났던 기억도 떠오르고, 주말 근무 끝에 부장님께 결재를 받아서 잘했다고 선물로 데려간 식당에서 처음 먹은 메로찜도 그때 맛보았던 것처럼 여전히 황홀한 맛이다. 메뉴 하나하나마다 그때 시간과 공간, 공기까지 기억나는 것 보면 나도 참 무언가를 잘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싶으면서도 다행이다 싶다.
중식당에서 빠지지 않는 백주 마시기. 사진 속 술은 공부가주다.
지금은 누구보다 중식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 회사생활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 미팅 장소를 잡을 때도 괜찮은 중식당부터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으니 신기할 노릇이다. 아직까지 “전 중식 빼고 다 좋아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어 다행이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맛있고 기름도 적절히 밴 가지 요리를 먹는 걸 좋아한다. 가지 요리는 뭐니뭐니해도 중식에서 빛을 발한다. 어향가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된장 가지볶음은 신이 내린 나의 안주라고 여기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비록 첫 회사는 떠나왔지만, 나에게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중식의 진정한 맛은 점점 깊어져 가고 있다. 그러니 나와 함께 백주와 중식을 먹는다면, 그건 내가 그 상대방을 좋아한다는 충분한 증거. 나는 되도록 많은 사람과 즐겁게 백주를 주고받으며, 시시껄렁한 농담 속에서 내가 모른 맛을 가진 중화요리를 좀 더 많이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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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리(문학 MD)
드물고 어려운 고귀한 것 때문에 이렇게 살아요.
감귤
2016.0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