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지 않을 때조차 악몽과 별다르지 않았네 - <악몽> 가사 중에서
요새 좀 심심했는데 가위눌리는 재미로 산다. 어제는 군대에 다시 가는 꿈까지 꿨다. 참 거지 같았다. 로또에 걸렸는데 장난이었다며 돈 못 받는 꿈도 꿨다. 정말 핵 억울했다. 아이유 양과 밀월여행을 떠났는데 장기하에게 딱 걸리는 꿈도 꿨다. 그 준수한 남자가 너 지금 맞자. 아 당장 맞자. 라며 내 멱살을 틀어쥐었다. 아끼던 셔츠가 늘어나 경악하다 깼다.
그렇지만 다행이다. 세계의 모든 음악이 사라지는 꿈이나 모든 뮤지션이 컨트리 송만 발표하는 꿈은 아직 꾸지 않았으니까.
이 시국에 꿈에서라도 좀 유쾌하게 살고 싶은데 가위라니. 일상의 넌덜머리에 지쳐 몸이 허해진 겐가. 이럴 때일수록 더욱 웃음이 필요하지. 빵빵 터지면서 기력을 회복해야 한다. 웃음은 개떡 같은 생을 버티는 필수 에너지원 중 하나 아닌감. 진지할 땐 진지해야겠지만 그건 일상의 앱들을 돌리는 힘이고, 충전은 유머로 해줘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요즘 정말 너무 안 웃기긴 하다. 세상 돌아가는 꼬라지 얘기다. 뉴스엔 실소를 자아내는 소식들만 넘치고 인류가 자기도 모르게 바보 같은 국면의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웃기는 거로 순위를 다투던 내 주변의 개그캐릭터들도 현재 하나같이 피식피식 김빠지는 소리로만 웃는다. 우리가 헬조선에 살기 때문이다. 헬조선이라는 용어부터가 상당한 저질 개그다. 말만 들어도 자꾸만 더 기가 빨리면서 허해지는 기분이다.
아아 그러나 당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웃는 게 안 되면 기력 보충에 좋은 또 다른 특단의 조치가 있다. 시끄러운 헤비메탈 되겠다. 듣는 순간 시끄러워서 기력이 빵빵 차오르는 음악이 존재하는 것이다.
희한한 논법이지만 그런 의미로 오늘은 진짜 시끄러운 옛날 음악을 들고 왔지롱. 1993년에 발매된 뉴클리어의 「악몽」이라는 곡이다. 들어나 봤나 뉴클리어? 필자가 미친 듯이 좋아하는 밴드다. 잘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만약 모르는 분이 계신다면 일단 추천하고 보는 시끄러운 밴드다. 일단 들어볼까요.
들어보시다시피 <뉴클리어>라는 밴드는 사뭇 희한한 음악을 했다. 앨범 달랑 한 장 내고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 족적이 짧고 굵었다. 처음 들을 때 '뭐여 이 묘하게 촌스런 사운드는' 이라고 생각했다가 테이프가 늘어질 때까지 들었고 20년째 듣고 있다. 내 첫 상이 틀렸거나, 너무 많이 들어서 세뇌 당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신 차리고 자세히 들어보면 촌스러운 건 내 고막이고 그들의 음악은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 세련되게만 느껴진다.
오늘의 주제곡 「악몽」이라는 곡은 더욱 서정적이고 유머러스하다. ‘크게 소리 질러도 들리지 않아 공허한 외침일 뿐이야’ 라는 가사를 크게 소리 지르면서 불렀다. 그들은 아이러니를 안다. 그리고 현실의 내 모습도 악몽과 별다르지 않았네 라고 자조한다. 그 노랫말이 오늘날 헬조선에 사는 우리를 대변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그들의 음악이 요즘 더욱 좋은 것인가. 쭉 듣다 보니 역시나 헤비메탈이다. 빨렸던 기가 다시 충전되면서 세상의 풍파 나부랭이와 견디고 맞설 기운이 짱짱해진다.
거지 같은 사회를 살며 기력이 쇠하는 데 대처하는 방법은 천팔백 가지 정도 있겠지만 그중 하나인 헤비메탈은 특히 효험이 빠를 것이며, 뉴클리어의 「악몽」이 우리 신세를 크게 대변하며 다시 용기를 북돋워 줄 거라고 자신한다.
또 다른 곡 「절벽에서」는 조난을 당해 죽어가는 심정을 박진감 넘치는 롹넘버로 표현해 빚더미에 깔려 신음하는 우리를 위안하고 「묵시록」에선 뭐라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세상이 차가운 안개로 뒤덮인 것 같은 답답함을 함께 견디는 듯한 시각을 보여준다. 어째서 93년에 나온 앨범이 2016년을 사는 내게 이토록 공감대를 주는지 것 참 신기하다. 세상이 그만큼 거꾸로 갔나.
아무튼, 다섯 번째 트랙엔 「슬픈 음악인」이라는 곡도 있다. 내용이 이렇다. 옆집에 뮤지션이 사는지 어김없이 지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떤 날 워어어 슬픈 음악을 한다. 듣고 보니 풋내기는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을 이해하고 싶었지만 도저히 참기가 힘들어 '그만둬!' 라고 외친다. 아아 이 얼마나 서정적인 헤비메탈 발라드인가. 특히 중간에 시끄럽다며 비명을 지르는 부분이 가장 서정적이다. 슬픈 음악에 공감해 들어가는 자신에게 그만두라고 소리치는 아이러니 하며, 마치 화가가 자화상을 그리듯 자기 자신들의 모습을 자화곡(?)으로 만든 것 같은 유머 감각이 넘친다.
그들은 우리에게 앨범 단 한 장밖에 남기지 않았다. 대체 왜 사라진 건지 아무도 모른다. 나 같은 소수의 마니아와 함께 어디선가 아무도 모르게 나이를 먹고 있을 것 같다. 쓸쓸한 감정이 깃든다. 3인조였던 기타의 이석재, 보컬 & 베이스 이태영, 드럼 박상필 님, 진짜 어디서 뭘 하십니까? 설마 이민 가셨나요? 지금 헬조선엔 님들의 음악이 또다시 필요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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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 (소설가)
소설가.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 『말이 되냐』,『예테보리 쌍쌍바』와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을 냈다.
iuiu22
2016.03.04
시골아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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