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장편소설 펴낸 윤대녕, 왜 피에로였을까
저 자신 또한 그동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차례 심각하게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그 원인은 너무나 고유하고 다양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제 경험이 어느 정도는 주인공에게 투사돼 있다고 봐야 되겠죠.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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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상징과 시적인 문체로 존재의 구원 가능성을 탐색해온 작가 윤대녕의 신작 장편소설 『피에로들의 집』이 출간됐다. 삶의 의미를 향한 허기, 이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과 고요히 찾아드는 희망을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바탕으로 그려낸 작품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 이후 꼭 11년 만의 장편소설이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왜 ‘피에로’였을까. 윤대녕 작가에게 『피에로들의 집』을 집필하게 된 이유와 소설 속 인물과 배경, 그리고 그들의 관계에 대해 물었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삶의 의미를 탐구한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2005년) 이후 11년 만의 장편소설입니다. 그사이 소설집 『제비를 기르다』(2007년), 『대설주의보』(2010년) 『도자기 박물관』(2013년)과 산문집 『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2014년)을 출간하기도 하셨지만, 장편소설로서는 무척 오랜만입니다. 그간의 근황과 집필 계기 및 과정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장편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출간한 후로 약 8년 동안은 주로 중단편 소설만을 써온 셈입니다. 그사이 공간을 주제로 한 산문을 월간 문예지에 연재하기도 했습니다. 이 기간에도 물론 장편소설에 대한 자기 요구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 차례 시도를 거듭했지만 결과적으로 힘을 한 데로 끌어 모으지 못했다고 봐야죠. 장편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자료 조사와 취재를 비롯해 거기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생생한 친연성을 확보해야 합니다. 단편과 달리 집필에 필요한 숙성과 지속의 시간이 그만큼 필요하다는 거죠. 

 

『피에로들의 집』을 집필하게 된 동기는 최근 십 년 사이에 우리 사회의 결속과 유대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매일매일 언론 보도를 지켜보면서 가정과 학교에서의 폭력은 물론이고 지나친 생존 경쟁 시스템에서 오는 타자 간의 경계심과 적대감이 임계 상황에 이르렀음을 자주 느끼곤 했습니다. 또한 이후의 우리 공동체를 이끌어갈 청년들의 불안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에 기성세대로서 느끼는 부채감과 자책감도 이 소설을 쓰게 된 동기의 일부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당대의 현실과 풍속에 대한 작가로서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쓰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이 없지 않았습니다.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가 시작될 즈음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이후 상당 기간 글에 손을 대지 못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는 다른 작가들도 상황이 같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찌어찌 2회분 원고를 쓰긴 했는데,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 결국 연재를 한 회 거를 수밖에 없었죠. 그리고 작년 1월 말에 캐나다의 한 대학에 방문학자로 가게 되면서 글을 다시 이어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소설의 후반부는 캐나다에서 쓰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여름호에 연재를 마치고 나서 올해 1월에 귀국할 때까지 시간을 두고 수정작업을 계속했습니다. 원고의 최종 교정은 귀국한 후에 봤고요. 

 

성북동에 위치한 ‘아몬드나무 하우스’가 마치 실존하는 공간처럼 리얼하게 다가왔습니다. 1층의 북카페 안에 걸린 그림과 그곳에 흐르는 음악 때문인지 직접 방문해보고 싶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이처럼 공간에 대한 선생님의 묘사는 치밀하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 안에서 공간이 대단한 비중을 차지하면서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아몬드나무 하우스’라는 곳을 구상하고 집필하시면서 특별히 염두에 둔 점이 있으신지요?

 

이야기를 구성하는 데 있어 공간의 디테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물이 활동하는 실제적인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서사의 리얼리티와도 직접적으로 관계돼 있습니다. 또한 고현학이라고 할까, 당대의 풍속을 드러내는 데 공간과 배경의 묘사는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 저는 성북동을 몇 차례 취재한 다음 이야기 구조에 맞게 공간을 재구성했습니다. 성북동을 주무대로 삼은 이유는 주인공 ‘명우’가 전직 연극인인데 활동무대인 대학로와 가까운 지점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또한 ‘마마’가 입원해 있다가 생을 마감하는 서울대병원과도 거리상의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서울대병원 앞에 있는 창경궁 역시 소설 속에 등장하는데, 취재를 하면서 위치 간의 거리를 병산했죠. ‘아몬드나무 하우스’는 앞서 밝혔듯이 취재 후 재구성한 공간입니다. 집필에 들어가기 전 도표를 그려가면서 등장인물의 동선과 그 연결성을 염두에 두고 거기에 맞게 공간을 배치했습니다. 주택의 이름은 고흐의 작품 <꽃 핀 아몬드나무>에서 빌려온 것이고요.  

 

작품 안에서 가장 연장자로 등장하고 있으며,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마마’라는 인물이 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주인공인 김명우를 비롯하여 상처 입은 인물들을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불러들인 장본인인데요. 선생님께서 특별히 공들여 다루고 있는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척 생생했습니다. 이 ‘마마’라는 인물을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주인공이자 화자는 ‘김명우’이지만, 이 소설에서 주축 인물은 ‘마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난민을 거둬 보살피는 대모’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마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고 봐야겠죠. 언급하신 것처럼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통과해온’ 인물을 염두에 두고 ‘마마’라는 인물을 형상화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생으로 설정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그런데 우리 현대사라는 것이 알다시피 고난에 찬 세월이 아니었습니까? 전후의 피폐함은 말할 것도 없고 독점적 경제개발 시대와 오랜 군사정권하에서 살아오면서 전통적 미풍양속이 모두 해체되고 생존을 위한 과도한 경쟁 체제만 생선 뼈처럼 앙상하게 남게 되었습니다. 이를테면 사회가 수직적 구조로 바뀌면서 타자와의 유대와 결속이 그때부터 이미 해체되고 있었던 거죠. ‘마마’는 그 시대를 관통해 현재까지 살아오면서 자책감과 깊은 회한에 사로잡혀 있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만년에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집으로 하나씩 불러들여 유사 가족 형태의 공동체를 만들어갑니다.  

 

김명우는 연인과의 어쩔 수 없는 이별(실종)로 상처받은 인물, 그러니까 관계에서 비롯된 고통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지만 배우이자 극작가로, 즉 예술가로서 우울과 불안에 빠진 인물이기도 합니다. 소설 초반에 이와 같은 그의 전사(前史)가 압축적으로 그려져 있지요. 예술가에게 슬럼프란 특별한 계기 없이 찾아오는 것이기에 이러한 질문이 우문(愚問)이겠습니다만, 그 이유를 여쭤봐도 될까요? 예술가로서 김명우가 맞닥뜨린 운명 혹은 과제에 대한 이야기를 여쭤보고 싶습니다. 

 

이 소설은 한편 ‘예술가 성장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주인공 ‘김명우’는 슬럼프에 빠져 수년간 피폐하게 지내다, 어느 날 ‘마마’를 만나 ‘아몬드나무 하우스’로 들어가면서 한 인간으로서나 예술가로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을 겪는 인물이기도 하죠. 저 자신 또한 그동안 작품활동을 해오면서 여러 차례 심각하게 슬럼프를 경험했습니다. 그 원인은 너무나 고유하고 다양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한 제 경험이 어느 정도는 주인공에게 투사돼 있다고 봐야 되겠죠. 이 소설에서 주인공 ‘김명우’는 타자의 고통을 받아들이면서 오랫동안 자신을 가두고 있던 어두운 자의식에서 벗어나 가까스로 삶의 감각을 되찾게 됩니다. 삶의 감각이란 타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만 가능한 또다른 자아의 발견이 되겠죠. 저는 언제나 그 지점에서 삶이 발생한다고 봅니다. 예술은 말할 나위도 없겠죠. 요컨대 타인의 고통을 감각하고 그것을 자기화하려는 능동적 의지 말입니다.

 

이야기 안에서 유독 부드러운 활력과 생기로움을 뿜어내고 있는 인물인 윤정을 통해 “삶의 생태를 복원”하는 일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이는 그동안 선생님의 작품세계가 추구해왔던 문학적 지향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인간과 인간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맺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한 설명을 좀더 듣고 싶습니다.  

 

‘삶의 생태 복원’이란 주제는 첫 책(『은어낚시통신』, 1994년)을 낼 때부터 지금껏 가슴에 품고 있는 저의 문학적 지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그것이 평론가들에 의해 ‘시원(始原)에의 회귀’라는 말로 표현됐는데, ‘태양 컴퍼스’로 대변되는 우주의 운행과 질서에 인간이 포함돼 있다는 당연한 인식에서 출발해 이를테면 ‘존재의 본질을 회복’하자는 것이었죠. 그것을 저는 ‘삶의 생태 복원’이라는 말로 이따금 언급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맺음’이라는 말도 제가 생각하는 의미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리는 지금 근대 이후의 시간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인간은 자연의 순환 체계에 따라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 순환작용을 두고 어쩌면 ‘삶’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대학 때부터 신화에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왔는데, 실제로 신화의 서사 패턴은 대부분 자연의 리듬 체계를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최고의 비평가로 불리는 미국의 비평가 노드럽 프라이의 ‘신화 비평’ 이론에서도 이를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 제가 ‘삶의 생태 복원’이라고 말할 때는 ‘타자와의 관계와 공동체의 유대 회복’이라는 의미를 더 염두에 두고 씁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실제적인 감각으로 순수한 타인에 대한 감정을 회복하고 있는 중”(109쪽)이라는 김명우의 말이 유독 마음에 남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유대감”의 회복을 말하는 장면들도요.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상처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데, 그 상처조차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맺으면서 극복되는 것이라고 읽혔어요. 하지만 역시 타인을 이해하고 그와 연결된다는 것에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관계 맺음의 철학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이란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얼마나 타인에 대해 둔감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타인의 상처나 고통을 유희적으로 바라보는 본능을 지니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죠. 그런데 인간은 혼자서는 결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타인의 존재가 없으면 ‘내’가 누구인지를 영영 알 수 없으니까요.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서로 연루돼 있고 또한 하나로 연결돼 있습니다. 언젠가 저는 다른 소설에서 ‘모든 타인은 또 다른 나’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 일은 상처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데, 그 상처조차 역설적이게도 관계를 맺으면서 극복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합니다. 타인의 상처나 고통을 자기화하려는 의지, 이 지점에서 비로소 관계가 비롯되고 삶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유대와 결속 말이죠. 모든 존재가 떠안고 있는 삶의 무게는 동등합니다. 그러므로 매 순간 상대의 입장에서 ‘나’를 상상하는 일이 우선되고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서로 공평한 관계를 유지하며 삶을 꾸려가는 조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피에로들의 집』에서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부분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이 책의 담당 편집자는 이야기의 후반부에 이르러 ‘아몬드나무 하우스’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사진작가 ‘박윤정’의 인사동 전시회에서 만나 서촌에 있는 식당으로 옮겨가 함께 고기를 구워먹는 장면이 인상에 남는다고 말해주더군요. 소설 속 ‘아몬드나무 하우스’에서는 육식이 금지돼 있는데, 말을 잃고 지내던 고등학생 ‘정민’이 처음으로 자기 의사를 밝히며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한 장면이거든요. 앞으로 각자의 삶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에서 아슬아슬한 유대를 확인하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죠. 편집자의 말을 듣고 저는 기뻤습니다.

 

그런데 역시 저로서는 소설의 끝부분을 얘기하고 싶습니다. ‘마마’의 장례를 치르고 나서 주인공 ‘김명우’가 목포로 내려가 경전선을 타고 부산으로 이동해 기장 대변항의 북카페에서 ‘박윤정’에게 전화를 거는 대목입니다. 이 부분을 쓰기 위해 저는 이 년 전 여름 경전선을 타고 기장 대변항으로 취재를 갔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나오기 며칠 전에 다시 그곳에 다녀왔고요. 그러고 나서야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마침내 헤어질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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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들의 집윤대녕 저 | 문학동네
2014년 여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1년간 계간 <문학동네>에 연재(당시 제목은 ‘피에로들의 밤’이었다)되었던 이 작품은 본연의 얼굴을 잃은 채 거짓된 표정으로 살아가고 있는 존재들, 때문에 언제나 진정한 정체성에 대한 갈망을 숨길 수 없게 되어버린 우리, 바로 그 ‘피에로’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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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피에로들의 집 #장편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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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uiu22

2016.03.17

기사를 읽다 보니 소설이 궁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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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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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