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현 교수 “트라우마 없는 사람은 없다”
트라우마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걸 잘 극복하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생활을 잘 영위하기 때문에 밝다는 인상을 주는 거죠.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을 거고 모두들 고통을 느낄 거예요.
글ㆍ사진 신연선
201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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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출간된 『그림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넨 김선현 교수가 새 책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를 냈다. 책은 명화를 감상하고, 트라우마 이해를 돕는 심리학적 설명을 듣고, 독자가 직접 ‘나에게 보내는 편지’를 작성해, 김선현 교수가 더한 해설을 읽는 순서로 구성한 ‘워크북’이다. “누구나 정신적 상처 한두 개쯤은 품은 채 살아갑니다.”(16쪽) 라고 적은 것처럼 아픔을 겪은 많은 사람들에게 변함없는 응원과 위로를 보내고 그림으로 치유를 돕는 김선현 교수. 지난 4월 21일 논현동 북티크에서는 김선현 교수와 함께 트라우마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처를 직접 그림으로 표현해보는 미술치료 워크샵이 진행되었다. 상처를 없앨 수 없다면 상처를 잘 이해하고 상처와 화해하는 것, 그것이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이란 사실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이었다. 

 

워크샵에 앞서 강의를 진행한 김선현 교수는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사용된 시기를 세월호 때부터로 설정했다.

 

“2년 전 세월호가 터졌어요. 그 전에는 사람들이 ‘트라우마’라는 말을 많이 쓰지 않았어요. 전문 용어기 때문에요. 그런데 그때부터 갑자기 트라우마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2001년, 9.11 테러 당시 미국은 피해자뿐 아니라 피해자의 가족, 주변인들에게까지 심리 지원을 했다. 그것을 본 김선현 교수는 국내에도 그와 같은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세월호를 거치면서 교수가 책을 출간하게 된 이유도 같은 맥락이었다. 제목처럼, 누구에게나 트라우마는 있기 때문이다.

 

“트라우마 없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걸 잘 극복하고, 타인에게 피해 주지 않고 생활을 잘 영위하기 때문에 밝다는 인상을 주는 거죠. 누구에게나 아픔은 있을 거고 모두들 고통을 느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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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는 왜 발생 하는가

 

최근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큰 지진이 일어나 해당 지역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지진 발생 직후 김선현 교수는 현장으로 가 심리 지원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여진이 계속돼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혼란과 공포로 가득찬 상황. 교수는 그곳을 “지진에 대한 트라우마가 일본 사람들의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상태로 설명했다. 쓰나미와 같은 자연재해로 사람들이 한꺼번에 너무나 많은 죽음을 경험하게 되면서 트라우마를 갖게 된다는 것이었다. 뿐만 아니다. 교수는 영화 <베테랑>에 등장하는 인물인 배기사의 아들에게서도 트라우마를 보았다.

 

“아이 눈에 비친 아버지의 모습은 불쌍하잖아요. 맞고요. 재벌은 강해요. 그걸 본 아이가 성장했을 때 무엇을 느낄까요? 재벌을 보는 인식, 사회를 보는 눈, 이런 것들이 굉장히 무서운 트라우마로 남을 겁니다. 이처럼 사회 구조적으로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계속해서 다른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란 무엇일까. 트라우마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트라우마는 어떤 사건이 생겼을 당시에 느끼는 것이고요. 한 달이 지난 후 정신적 진단명으로 PTSD라는 용어를 쓰게 됩니다. 개를 보면 너무 무서워, 이건 정신질환이 아니고요. 어떤 사건을 경험했을 때 한 달 이상 그 증상이 나타나서 병원에 가면 PTSD라는 질환으로 판명이 나게 되는 거예요. 이건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아야 해요. 또한 느끼는 정도에 따라 평가도 달라질 수 있어요. 짧게 겪는 사람이 있고, 일평생 가는 경우가 있는데요. 특히 어린 아이 같은 경우 청소년기 시작부터 트라우마가 굉장히 오래 작용을 해요. 이때 트라우마를 겪으면 성인이 되었을 때도 일상생활이 굉장히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성폭력이나 큰 재난을 겪었을 때 특히 보호를 받아야 하는 이유예요.”

 

갑작스런 일이 닥치면 사람은 인지기능이 마비된다. 평소와 같은 상황 파악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증상을 통해 이를 이해할 수 있다. 집중력 장애, 우울, 불안감 등은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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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헬조선!

 

김선현 교수는 한 기사를 살펴보았다. OECD 국가 중 한국이 1위를 한 목록을 다룬 내용이었다. 한국은 자살률, 산업재해 사망률, 이혼 증가율, 저출산률 등의 항목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굉장하죠? 놀랍지 않으세요? 우리 사회가 이렇게 많은 부분에서 1위를 하고 있어요. 그러니 트라우마가 안 생길 수가 없죠. 특히 요즘 청년들이 굉장히 힘든 게 ‘먹고사니즘’ 문제예요. 생활하기도 힘든데 연애를 어떻게 하고, 결혼을 어떻게 하고, 거기에 자녀까지 어떻게 낳느냐는 거예요. 굉장히 심각한 사회적 현상입니다.”

 

노인 인구의 자살이나 가정 폭력, 영아 살해 등 한국 사회의 문제는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김선현 교수는 한국 사회가 이토록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트라우마를 겪는 가장 큰 이유로 ‘프로세스와 시스템의 부재’를 꼽았다.

 

“트라우마나 재난 위기 시스템이 없어요. 염전 노예 사건이 있었잖아요. 제가 치료를 하면서 놀랐던 게 있었어요. 장애를 가진 분들이 많았고, 이들이 가족들에게 다시 돌아와서 기사도 크게 나왔죠. 문제는 가족들이 너무나 힘든 거예요. 치매 걸리신 분은 인지기능이 떨어져서 괜찮은데 가족들이 너무 고통을 받는 것처럼요. 결국 가족들이 외면했어요. 이 사람들은 어떻게 됐을까요? 13년 간 그를 노예처럼 부려먹은 염전 주인에게 연락해 다시 돌아갔어요. 이런 경우, 국가에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면 최소한 이들이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왔겠죠. 그런 게 없었고, 이건 정말 너무 창피한 일입니다.”

 

 

어떻게 극복하는가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교수가 내놓은 것은 ‘잘 먹고 잘 자라’였다.

 

“무조건 잘 먹고, 잘 주무시려고 하고요. 움직이셔야 해요. 뭔가 활동을 하셔야 하고요. 트라우마의 정체를 알면 빨리 회복할 수가 있어요. 사람과 자신을 고립시키려 하고, 자꾸 잊으려고 하고, 움츠리게 되고, 외모도 안 꾸미게 되고, 이런 것이 트라우마의 정체거든요. 이런 걸 극복하면 훨씬 더 빨리 밖으로 나올 수가 있어요. 우리가 어떤 사건을 겪든 우리 삶은 조금 주춤거릴지라도 계속 진행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김선현 교수는 마지막으로 그림을 한 편 보여주며 말을 마쳤다. 쥘 바스티앵 르파주의 ‘다 여문 밀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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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굉장히 슬프고 힘들지만 그때 여러분 일을 하지 않으면 나중에 거둘 게 없어요. 우울증에 걸린 산모가 있었어요. 3년을 우울증 치료를 받았어요. 치료가 끝나고 아이를 돌보려고 보니 아이가 반응도 느리고, 지적 능력도 떨어져 있더라고요. 그 후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아이와 병원에 다니는 일뿐이었어요. 여러분이 실연을 당해 슬프고, 입시에 실패해 슬프고, 아무리 슬퍼도 지금 해야 할 일을 하셔야 해요. 울면서 자기 일을 하는 거예요. 울면서 씨를 뿌리는 거예요. 다 울고 나서 가을에 씨를 뿌리면 절대 싹이 자라지 않거든요. 여러분에게 굉장히 힘든 일이 많으시겠지만 그래도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우시면서 일을 하셔야 합니다. 찰리 채플린도 얘기했잖아요. ‘매 순간 비극이다, 그러나 인생 전체를 보면 희극이다’라고요. 어렵겠지만 자꾸 극복하려다보면 극복이 돼요. 여러분의 트라우마를 잘 극복하시길 바랍니다.”

 

강의가 끝나고 참석자 모두에게 종이와 연필, 지우개가 지급됐다. 김선현 교수와 함께 온 차병원 미술치료진은 3개 조로 인원을 나누고 이들의 심리를 그림으로 파악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참석자 한 사람, 한 사람 빠짐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난 뒤에도 그림을 가운데 놓고 이야기를 계속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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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김선현 저 | 웅진지식하우스
《누구나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는 국내 미술치료계 최고권위자인 김선현 교수가 지난 20년간의 현장에서 많은 이들의 아픔을 치료했던 경험을 토대로 트라우마를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다. 프리다 칼로, 빈센트 반 고흐, 에드바르 뭉크 등 그림으로 트라우마를 극복했던 화가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었던 명화 30점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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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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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뤼쭌

2016.05.02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쌓이다보니 실제 엄청 큰 상처가 되버렸는데...
이런 기회를 통해 뭔가 해소된 느낌이 들어서 좋았습니다.
트라우마는 바로 바로 해소해야 한다는것도 알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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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