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서 2015년 사이에 쓰여진 10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윤성희의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가 출간됐다. 소설 속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어느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유행하는 말로 해보자면) 윤성희 소설을 한 편도 안 읽은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단 한 편만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말이 전혀 유행 따라 그저 해본 말이 아님을, 또한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윤성희 작가는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나,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레고로 만든 집」이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레고로 만든 집』, 『거기, 당신?』,『감기』, 『웃는 동안』, 장편소설 『구경꾼들』이 있다. 현대문학상, 올해의 예술상, 이수문학상, 황순원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수상했다.
여보, 난 엑스트라가 되어야겠어
『웃는 동안』(2011) 이후 5년 만에 소설집 『베개를 베다』가 출간되었습니다. 2012년에서 2015년까지 발표된 단편소설 열 편이 묶여 있고요. 한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오는데요, “제 십대와 이십대는 소심과 소화불량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다정한 핀잔」) 그걸 빌려서 말해보자면 선생님의 이 시기는 “베개를 베다”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자연스럽게 읽혔다가, 읽을수록 담백하면서도 담담한 느낌이 진해지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설집의 제목을 이렇게 정하신 이유에 대해 들려주세요.
소설집 제목을 ‘베개를 베다’로 했더니 제목의 의미를 묻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베개를 베고 거실에 누워 잠깐 낮잠을 자는 것, 그리고 잠깐 꿈을 꾸는 것, 그런 느낌의 소설집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예요. 낮잠을 잘 때의 그 심심함과 평화로움. 그런 감정을 주인공에게 선물처럼 주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그냥 이유 없이…… ‘베개를 베다’라는 말이 좋아요. 자꾸 발음해보면 무슨 주문처럼 느껴져요.
슬픔을 슬프다고 말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표현하는데 그것이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 슬퍼서 놀랐습니다. 예컨대, “여보, 난 엑스트라가 되어야겠어”와 같은 말이 그랬어요. 갑작스러운 이 문장이 발설되기까지 이 남자에게 일어난 사건과 마음의 변화 같은 게 짐작되었거든요. 핵심적인 정보랄까, 그러한 것들이 생략되어 있어서, 뒤늦게 이런 지점들이 발견될 때 감정이 더욱 깊어졌던 것 같습니다. 이런 스타일을 팬들은 ‘윤성희 스타일’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의도된 것인지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그냥 제 느낌으로 쓰는 것뿐이에요. 달리 말하면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고나 할까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 방식이 있고 또 싫어하는 이야기 방식이 있는데, 그 지점을 고민하다보니 그렇게 써지는 게 아닐까요?
소설에서 남자들보다 여자들의 유대관계가 더 돋보인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마 긴 시간 살아오면서 생긴 상처를 품고 사는 고모나 엄마, 언니 등 연장자의 여성을 관찰하는 여성 화자의 목소리에서 이런 느낌을 받게 된 것 같아요. 세세하게 말하지 않아도 무뚝뚝한 듯 서로를 배려하는 유대가 인상 깊었는데요. 이런 유대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 어떤 상황이나 계기가 있으셨나요?
여자들의 유대가 소설에서 더 많은 것은 제가 남자들의 유대를 상상하는 것을 더 어려워해서 그래요.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남자들의 유대는 좀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좀 있고요. 저는 여자들의 연대보다 이 부분에 더 관심이 있긴 해요. 그리고 이런 유대를 떠올린 상황이나 계기는 없고요…… 저는 소설에서라도 인물들을 수평적인 관계로 그리고 싶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그거야말로 판타지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소설 속 인물들이 가족들과 참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가족들, 먼 친척들까지 한데 모인 칠순잔치, 팔순잔치 같은 상황들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아주 살갑지는 않아도 ‘가족’만이 알고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을 생생하게 짚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윤성희의 소설에 있어서 ‘가족’이란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가족’을 많이 그리는 이유는…… 그것을 제하고 인물을 그리는 방식을 제가 아직 모르기 때문이에요.
인물을 자식에 비유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한지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하게 됩니다. 특히 선생님의 소설 속 인물들에는 유독 쓰는 사람의 다정다감한 마음이 스며 있는 듯해서요. 깨물어 안 아픈 ‘인물’이란 당연히 없겠지만, 이번 소설집에서 유독 마음에 남는 인물이 있다면요?
「베개를 베다」의 주인공. 그리고 「날씨 이야기」의 언니. 두 인물이 마음에 남아요. 둘의 미래는 제 바람과 달리 행복해질 것 같지 않아요.
음식을 먹는 모습이 굉장히 현실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그려지는데요. 특히 서서 밥을 먹는 장면 같은 것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낮술을 마시는 장면들도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을 소설 속으로 옮겨놓으니 더 특별하고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아무렇지 않게 스치는 순간들을 어떻게 기억해두었다가 옮기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라고 말해주셔서 기쁘네요. 저는 아무것도 아닌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는 게 삶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의미 있는 순간들이 쌓이는 게 아니라요. 무료하고, 의미 없고, 시시하고…… 그런 것들이요. 그런 장면들을 기억해두었다가 옮기는 게 아니라 그냥 인물의 심심한 하루에 대해 생각하면 자연적으로 그런 장면들이 떠올라요.
윤성희의 소설은 우리의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모든 소설이 그렇지만, 그럼에도 윤성희 소설은 남다를 정도로 그것이 느껴집니다. 이것은 사실적인 묘사로 이루어진다기보다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해설에서 백지은 평론가가 말한 “삶의 의례” 같은 말들이 떠오르기도 하고요. 그래서 소설을 읽다보면 삶의 질감 같은 것이 아주 생생하게 만져지는 것 같습니다. 소설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 무엇인가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답하려니 할말이 없어지는 데요. 그냥 써요. 이게 가장 정직한 대답인데 이렇게 말하니 성의 없게 느껴지네요. (웃음) 인물과 함께 노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즉, 문장으로 옮긴 것 말고 문장으로 쓰지 않는 나머지 삶에 대해 상상해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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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개를 베다윤성희 저 | 문학동네
열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다섯번째 소설집 『베개를 베다』에는 시간의 결과 마디를 살아나게 하는 이야기들이 넘실댄다. 어느 봄에서 시작하여 다시 어느 봄으로 끝나는 이 소설집을 읽으며 우리는 “낮술을 마시고 길을 걸을 때처럼 무엇이나 환하고 선명하게 보이게 한다”(문학평론가 백지은)는 말이 그저 비유에 그칠 뿐이 아님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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