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청춘을 찬양한다. 생물학적 나이가 어리다는 것, 젊다는 것은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난다. 청춘과 멀어지고 찬란하던 젊음이 희미해지는 건 달갑지만은 않은 일이다. 어린 시절, 어른들을 보며 ‘나이 들면 대체 무슨 재미로 살아갈까? 이미 경험해본 것 투성이일 텐데’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살아보니 나이 들수록 사는 게 더 재미있다”고 말하는 작가가 있다. 20대에는 20대 여성을 위한 책을, 30대에는 30대 여성을 위한 책을 썼던 남인숙 작가다. 늘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고찰하고, 위로하는 글을 썼던 남인숙 작가가 이번에는 자신과 함께 ‘노숙해진 독자’들을 위한 책을 냈다.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라는 도발적인 제목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한 인간으로서의 불안함, 인생의 조연으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헛헛함,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풀어놓았다.
책 제목이 정말 도발적이에요. 『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는 어떤 책인가요?
언뜻 보면 도발적인 선언인 듯하지만 실은 자신에 대한 질문이기도 해요. 여기서는 결혼을 '삶'이라는 것에 대한 확장의 의미로 사용한 셈이지요. 만약 다시 선택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떤 삶을 선택할 거냐는 이 물음에 우리는 의외로 쉽게 답하기가 힘들어요. 삶은 부분의 사건이 아니라 전반적인 태도에 의해 결정되니까요.
저는 청춘을 벗는 시기를 지나면서 바라보게 되는 새로운 세상과 그것을 즐기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읽는 이들과 함께 유쾌하게 이 시기를 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우리 세상에서 '청춘예찬'은 거의 진리처럼 여겨지잖아요. 앙드레 지드는 '분별 있는 연령보다 청소년 시절을 사랑한다'라고까지 했고요. 그런데 이번 책에서 작가님은 '청춘'에 대해서 약간 다른 시각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우리가 나이 들고 노화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하셨어요.
저도 앙드레 지드처럼 청춘 시절을 사랑해요. 짧고 아름다우니까요. 하지만 청춘의 아름다움과 그에 대한 사랑은 대상화되어 있는 것이어서 그 시절 안에 있는 이들은 자신의 아름다움도, 그에 대한 사랑도 느끼지 못하지요. 마치 봄날에 만개한 꽃처럼요. 우리는 그저 감탄할 뿐 꽃이 부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러면서도 꽃 같았던 젊은 날들의 고통은 잊고 아름다웠던 것만 기억하고 그리워하지요. 그게 현재를 살찌우는 추억에서 그치면 다행인데 자꾸 현재를 비하하며 못나게 나이 들어가곤 해요.
젊음의 종말이라고 믿었던 마흔이라는 이 시간 안에는 진정한 행복감을 결정짓는 요소인 자아에 대한 확신이 자리 잡고 있어요.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는 시기지요. 저는 성숙해 가는 사람일수록 자신들보다 무력한 청춘들을 안쓰럽게 여기고, 자신이 이제 갖게 된 것들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고 봐요.
책에 쓰인 것처럼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간에 많은 여자들이 육아와 집안일, 시댁과의 갈등 등으로 힘들어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젊은 층을 중심으로 점점 '비혼주의'를 외치는 여자들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저 '때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 시기요. 역사상 언제나 보이콧을 외치는 사람들은 기존의 관습에서 보다 더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었지요. 여자들이 유독 비혼을 많이 선택한다면 분명 이제까지의 결혼문화에서 여자들의 희생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되지요. 여자들이 이기적이 되어서 비혼을 선언한다는 비난도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이기적이에요. 각 집단의 이기적인 욕구들이 부딪히고 타협하고 절충지점을 만들어내는 게 건강한 사회 아닌가요? 다행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은 것도 우리 인간들의 이기적인 욕구인 만큼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도 곧 찾아내겠지요.
'비혼주의'까지는 아니지만 '결혼을 망설이는' 여자들도 있어요. 행복한 결혼생활을 바라고, 사랑스러운 아이도 낳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결혼이 두려운 거죠. 예를 들면, 남편의 무책임함이나 폭력, 바람, 집안일 분담, 독박육아, 시댁과의 갈등 등등. 이 모든 것을 피해가거나 이겨낼 수 있을지, 아니면 함께 이겨낼 남자를 잘 고를 수 있을지 걱정이 많은 것 같아요. '이거 하나만 체크하면 그래도 망하는 결혼은 안할 수 있다' 하는 게 있을까요?
우선 폭력, 무책임, 인격 장애, 도박, 바람기, 각종 중독 등 명백한 문제를 갖고 있는 남자는 무조건 피합시다. 뒤늦게 알았다 해도 단호하게 돌아서서 자신을 구원해야 하고요.
문제는 보통 범주의 남성들인데요, '이 남자가 나를 1순위로 놓을 수 있는 사람인가.'만 확인할 수 있다면 나머지 문제들은 어느 정도 해결 가능해요. 현대사회에서는 부부중심의 가족형태가 가장 안정적이거든요. 자신의 파트너보다 부모나 자식에 더 가치를 두는 남자와 함께하는 결혼생활은 정말 힘들어요. 여러 관계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줄타기하려는 사람 말고 아내를 가장 우선시할 수 있는 사람을 택하세요. 아이러니지만 이런 관계일수록 고부관계도 좋더라고요.
좋은 남자는 대체 어떻게 알아보나요? 그리고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삶을 함께할 좋은 남자'란 어떤 사람인가요?
저는 자신을 잘 알수록, 그리고 자존감이 높을수록 좋은 남자를 알아볼 능력이 생긴다고 봅니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여자들은 함께해서 행복할 사람을 금방 알아볼 수 있을 뿐더러, 판단이 틀렸다는 걸 알았을 때 재빨리 방향을 틀 줄도 알거든요. 내면에 힘이 없는 여자들은 잘못된 걸 알면서도 자꾸만 나쁜 것을 선택하고 상대방이 이끄는 대로 끌려가게 돼요.
'삶을 함께할 좋은 남자'의 가장 좋은 조건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열등감이 없는 남자'를 꼽고 싶어요. 이걸 능력 있는 남자, 조건 좋은 남자, 혹은 잘생긴 남자 등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전혀 별개의 문제예요. 객관적인 여건과는 별개로 남과 자신을 건강하게 분리시켜 인식하고 꿋꿋하게 자기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게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 여자를 괴롭히는 것으로 열등감을 해소하려 드는 경향이 있어요.
흔히 여자의 우정은 얄팍하다고들 하잖아요. 또 결혼과 육아를 맞이하면서 주변의 친구가 많이 바뀐다고도 하고요. 작가님께서는 어떤 우정을 가꾸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여자의 우정이 남자의 우정에 비해 얄팍하다는 말의 출처가 어디일까요? 친구라는 말에 대한 각자의 정의를 내려 보면 이런 오해에 대한 답이 나와요. 여자들은 감정적인 관계를 정말 중요시 여겨요. 그래서 친구란 감정을 교류하는 관계예요. 따라서 감정적인 접촉이 잦다 보니 불편한 감정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고요. 여자들은 마음이 불편한 관계를 지속시킬 필요를 못 느껴요. 겉보기에 아웅다웅 피곤하고 시끄러워 보이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남자들이 생각하는 친구란 서로에게 기꺼이 도움을 줄 수 있는 관계예요.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안토니오와 바사니오의 관계처럼요. 이런 우정의 신화 때문에 과거 수많은 가장들이 아내 동의도 없이 친구 보증을 '기꺼이' 서 주었다가 가정이 풍비박산 났고요. 이런 '싸나이들의 우정'은 술이나 취미 등 만남의 목적이 분명하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려워요. 의외로 친구가 한 명도 없는 중년 남자들이 아주 많답니다. 종류가 다를 뿐 남녀의 우정의 깊이를 논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친구나 우정이라는 게 꼭 깊고 심오할 필요가 있나요? 이제 우리는 사람의 한계를 알 수 있는 나이가 되었어요. 누구나 자신 몫의 십자가밖에는 질 수 없고 서로의 삶에 들어가는 데에도 일정한 선이 있지요. 생활 범위 내에서 마음 가는 사람과 마음 가는 깊이만큼만 교감하고 만족하는 것도 우정을 누리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점차 깨닫게 되더라고요. 근원적인 외로움은 받아들이고 자기 자신을 가장 좋은 친구로 만드는 것, 그게 제가 우정을 가꾸는 방법이에요.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책 속에서 정말 인상 깊은 구절이었어요. 저와 느낀 것이 비슷했는지 출판사에서도 책 뒤표지 메인카피로 뽑았더군요. 작가님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걸 이 시점에 예측할 수 있다면 ‘내 인생의 가장 좋은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말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이제까지 제가 맞았던 좋은 순간들은 항상 알 수 없는 순간에 상상력을 뛰어넘는 방법으로 찾아오더라고요.
저는 신의 위대함이 창의력에서 나온다고 느껴요. 앞으로도 계속 갱신될 ‘나의 가장 좋은 순간’ 역시 제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형태로 올 것 같아요. 문득 이런 질문을 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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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면 당신과 결혼하지 않겠어남인숙 저 | 소담출판사
이 책은 여자가 여자에게 건네는 다정하고 솔직한 수다 모음이다. 늙어간다는 것에 대한 한 인간으로서의 불안함, 인생의 조연으로 밀려나는 것만 같은 헛헛함, 아내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지극히 현실적인 고민들을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풀어놓는다.
채널예스, 출판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