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 Retweeted
Carpe diem@Quintus Horatius Flaccus
생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바빌론의 점성술에 묻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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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생각을 하라. 술을 내려라. 짧은 우리네 인생에
긴 욕심일랑 잘라내라.
말하는 사이에도 우리를 시샘한 세월은 흘러갔다.
내일은 믿지 마라. 오늘을 즐겨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새로 부임한 키딩 선생은 규율과 전통, 주입식 교육에 짓눌려 있던 명문 기숙학교 학생들에게 외친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겨라... 오늘을 잡아라... 오늘을 살아라.
‘카르페 디엠’이란 소리가 들리지 않니?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
시간이 있을 때 장미 꽃봉오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은 라틴어인데 우리말로는 ‘오늘(현재)을 즐겨라’쯤으로 해석되는 말이다. 영어로는 ‘Seize the day’다. 이 말을 최초로 유행시킨 장본인은 고대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다. 호라티우스의 시집이 리뉴얼된 민음사 ‘세계시인선 시리즈’로 출간됐다. 반갑다.
어쨌든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크게 인기를 끌면서 우리에게도 ‘카르페 디엠’은 즐겨쓰는 말로 자리 잡았다. 영화가 만들어진 지 26년이 지났건만 지금도 <죽은 시인의 사회>를 통과의례처럼 보는 청소년들이 끊이지 않어서일까. 여기저기서 카르페 디엠을 외치는 소리가 들린다.
블로그나 트윗, 혹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의 문패글로 가장 흔히 쓰는 말 중 하나가 ‘카르페 디엠’이라고 한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얼마나 오늘을 즐기면서 살지 못하면 ‘문패글’을 카르페 디엠이라고 써놓았겠는다. 오늘을 즐기는 일, 말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이다.
호라티우스가 살았던 로마시대에도 미래는 늘 두려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아마 사람들은 앞다투어 점성술사를 찾아갔을 것이다. 그들이 점성술사를 찾아간 이유는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 분명하다. 별고 없이 얼마나 오래 살 수 있는 지, 오래 살려면 뭘 조심해야 하는지. 자식들은 잘될 것인지. 뭐 이런 것들을 물었을 것이다. 현세를 중시하는 쾌락주의적 입장에 섰던 에피쿠로스 학파에 속한 호라티우스는 아직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전전긍긍하는 대중들을 지켜보며 ‘카르페 디엠’을 외치는 연작시의 한 부분을 썼을 것이다.
이해가 간다.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부식시키는 건 인간들의 오랜 작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생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는 환자들에게 가장 후회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도 비슷한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미래를 걱정하느라 현재를 낭비했던 것.”
그렇다. 죽음 앞에서도 사람들은 대부분 바로 그 순간을 즐기지 못했던 걸 후회한다고 한다.
카르페 디엠. 오늘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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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페 디엠 호라티우스 저/김남우 역 | 민음사
『신곡』의 단테에서 밀턴의 『실락원』까지, 철학자 몽테뉴에서 시인 워즈워스까지, 서양 문학의 거장들이 숭배하는 시인 호라티우스 라틴어 서정시
허연(시인,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