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앙마이 예찬1
예술인 공동체 마을, 반캉왓. 우리도 여기에서 한 번 살아볼까?
성탄절 분위기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는 점을 빼면 겨울을 보내기에 치앙마이만 한 곳은 없다. ‘치앙마이에 대체 뭐가 있나요?’라고 묻는 이에게 ‘오늘같이 추운 날 그곳에 가면 알게 될 거예요’라고 말한다. 계절이 반대인 호주와 남미를 가기에는 부담스럽고 동남아시아의 다른 도시는 겨울이라고 하지만 여름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라서 축축한 기분을 벗어나기 힘들다. 태국 북부, 고산지대에 위치한 치앙마이의 겨울은 때론 습습한 봄바람마저 느껴지니 스쿠터 뒤에 앉아 ‘사람 살기 참 좋네’라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이 도시의 따뜻한 겨울을 맘껏 즐겨본다.
선선하고 온화한 기후를 가져 살기 좋은 치앙마이지만 태국 내에서 자살률 높은 도시인 건 여간 이상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현지인 친구는 치앙마이 사람들의 감수성 때문일 거라며 조심스레 의견을 내놓았다. 이곳 3명 중 한 명은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창작 활동을 하는 예술가이고 실제로 도시 곳곳에 ‘예술인 공동체 마을’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 환한 미소 뒤에 예술가의 예민함과 감수성을 동시에 품은 이들이 치앙마이의 조용하고 느린 삶의 속도를 만들어 가고 있다.
치앙마이 대학교 내 ‘로열 프로젝트 Royal Project’는 우리가 매일 같이 들리던 상점이다. ‘골든 트라이앵글’로 유명한 태국 북부의 고산족 마을은 1960년대 이전까지 미국에 공급되던 헤로인의 60~80%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의 양귀비를 재배했다. 사람도 마을도 피폐해진 이곳을 살리기 위해 태국 왕실재단은 ‘로열 프로젝트’라는 지역회복 계획을 진행하며 유기농산물을 재배하고 이들을 교육 해 새로운 일거리를 제공했다. 그 남자에게 다이어트는 오랜 염원이었는데 식단을 조절해야 한다며 샐러드 구입을 위해 간 곳이 ‘로열 프로젝트’ 였다. 아무래도 재래시장보다는 비쌌지만 남자가 먹겠다는 모듬 샐러드는 2인분에 천 원도 안 된다. 남자가 하루에 두 끼를 유기농 채소와 함께 우아한 식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치앙마이라면 돈 없는 여행객도 원하는 식단으로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다. 물론 ‘로열 프로젝트’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중산층 이상이거나 좋은 물건을 잘 알아보는 일본인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로컬식당에서 음식을 사 먹는 돈이나 이곳에서 유기농 식재료를 사 먹는 돈이 큰 차이가 없으니 선택하기 나름이다.
럭셔리 고급빌라에 살 수 있었던 것도 치앙마이 한 달 살기의 매력이었다. 빌라 주민들만 사용할 수 있는 야외수영장은 흡사 휴양지 리조트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체육관에서는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운동하는 척 사진만 찍고 가는 허세녀를 실제로 목격할 수 있었다. 게다가 빌라 밖을 나서 길 하나를 건너면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거대한 백화점이 우리의 일상을 불편함 없이 만들었다. 서울에서 30년 된 고옥 빌라에 살 수 있는 월세를 들고 치앙마이에 왔더니 이런 놀라운 삶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보다 저렴한 숙소도 구할 수 있지만 장기 여행을 하는 외국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숙소는 한정적이고 보통은 이 정도 금액(월 50만 원 / 2인)선이 정해져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치앙마이로 이주하는 젊은 분들의 이야기가 솔찬히 들린다. 양질의 건강한 식재료로 소박하게 음식을 만들어 오던 망원동의 어느 식당 주인도 얼마 전 모든 걸 정리하고 치앙마이로 향했다. 입소문이 나면서 장사도 제법 잘 되었고 단골손님도 많았는데 처음에는 그가 왜 식당을 접는지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그곳이 ‘치앙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제야 수긍이 간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예술가들로 넘쳐나는 치앙마이의 어느 공동체의 일원으로 참여해 그곳에서도 식당을 열 거라고 했다.
일상이 흔들릴 정도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운 요즘, 어디서 살면 좋을지 그동안 다녀온 나라들을 떠올리는 횟수가 많아진다. 인생을 휴양하듯이 느긋하게 즐기며 예술적인 감각도 뒤지지 않는 치앙마이라면 어떨까?
치앙마이 예찬2
치앙마이 구심지는 붉은색 성벽과 해자로 둘러쌓여 있다. 오래전, 도시를 지배했던 왕조가 세운 정방형 건축물을 한 바퀴 돌면 5km 남짓. 길을 따라 가로수가 심겨 있어 뛰기 좋은 코스이다. 주말마다 그곳을 달렸는데 ‘성벽이 온전했던 시기에 치앙마이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해졌다.
때마침 달리기에 취미를 붙인 그 여자와 함께 반듯한 사각형 트랙을 뛰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단번에 거절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성벽을 돌며 치앙마이의 과거를 알고 싶어 했던 것처럼 내가 자신의 지난 시간을 물을까 애초에 잘라낸 것이거나, 함께 하는 것은 공부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무튼 달리기는 따로 했지만 태국어 공부만큼은 함께 했다.
우리는 치앙마이에서 지낸 한 달 동안, 매일 아침 스쿠터를 타고 슬로틀을 있는 힘껏 당겨 치앙마이 대학교 어학원으로 향했다. 내 뒤에 앉은 그 여자는 뜨롱빠이, 리우싸이(태국어로 직진, 좌회전)하며 익숙하지 않은 태국어 단어를 혀끝에서 또르르 굴렸다. 학교에 도착해서는 옆자리에 앉아 선생님이 건네 오는 질문에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수업이 끝나면 교내식당에서 학생들 사이에 앉아 밥을 먹었다. 배릿한 맛은 부담스러워 간장게장도 먹지 못하는 내가 입에 넣을 수 있는 태국의 맛은 똠얌꿍이나 팟타이, 카오카무까지 이다. 그에 반해 맛있다며 민물 생선으로 담근 젓갈과 그것으로 양념한 쏨땀 같은 이상한 음식들을 입에 넣는 그 여자는 주변의 학생들과 이질감이 없었다. 자기가 먹는 음식이 맛있다며 수저를 들이밀면 나는 인상을 찡그리고 그 여자는 까르르 웃었다.
학생 식당 옆 커피 가게에서 담뿍 연유를 넣은 커피 한 잔을 사서 그늘진 캠퍼스 구석을 향해 느릿느릿 걸었다. 벤치에 앉아 수업시간에 배운 어색한 발음, 쉽게 떠오르지 않는 단어를 복습해보고 숙제를 하며 익숙지 않은 문장을 만들고는 서로 맞는지 몰라 킥킥거린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갈 때면 다시 스쿠터에 올라타 시내로 향하여 저녁 찬거리를 사거나 작은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온다. 잠들기 전, 내일은 무슨 내용을 배울까 궁금해하는 그녀를 보는 게 좋았다.
학창 시절 그 여자의 모습이 궁금했던 것은 어떤 책을 읽고 있었는지, 누구를 만나고 있었는지 그리고 무엇에 열광하고 있었기에 지금의 당신이 되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한 번쯤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그때 우리가 만났어도 지금처럼 잘 지냈을까'라는 물음이었다.
유난히도 추위를 타는 그 여자를 위해 한국을 떠나 있기로 했고 그렇게 찾아간 따뜻한 남쪽 나라가 태국 북부의 치앙마이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서로의 학창 시절로 돌아가 상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공부했고, 알콩달콩 연애하듯 캠퍼스를 거닐었다. ‘그 시절에 서로를 만났다면 이런 모습이었겠지’ 생각하며 아련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치앙마이 성벽이 온전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지금 사랑하는 그 여자의 학창 시절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삶이라는 긴 호흡 속에서 잠시나마 살아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시 치앙마이로 가고 싶다.
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