훗날 고전이 될 조건, 앨리샤 키스
대중성과 인기를 걷어내고 돌아온 뮤지션이 노린 자리는 차트가 아닌, 누군가의 시린 마음이다.
글ㆍ사진 이즘
2017.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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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명실상부 최고의 '소울 디바'로 군림하던 앨리샤 키스가 돌아왔다. 한때 음악계 유행을 선도하던 그가 4년 만에 선보인 신보는 그야말로 '안티-트렌드(Anti-trend)'의 대행진. 이후 계속된 부진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 노련한 아티스트는 대중의 입맛보단 자신의 음악적 지향을 선택했다. 그리하여 팝의 색을 덜어낸 앨범엔 그 자신의 삶과 목소리가 폭넓게 담겼다.

 

부터 이어진 힙합, 록 등 장르 간의 결합은 눈에 띄게 줄었다. 대신 어쿠스틱 기타, 피아노, 드럼을 중심으로 미니멀하게 구성을 꾸리고 곡에 따라 적절하게 트로피컬 사운드와 블루스를 풀어낸 모양새다. 과하지 않은 구성 탓에 다소 헐렁할 수 있던 만듦새는 그의 보컬을 만나 힘 있게 나아간다. 5개나 되는 간주곡(Interlude) 역시 바로 앞, 뒤 곡의 멜로디를 이어받아 앨범의 주제를 유기적으로 이어준다.

 

완벽하게 이야기를 위한 장을 풀어낸 뒤 써 내려간 가사는 자전적이다. 뉴욕 할렘가 출신의 흑인이자, 여성이고, 자신이 낳지 않은 아이의 엄마이자 한때 사회적 약자였던 그는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명확하게 드러낸다. 날카로운 메시지는 유려한 멜로디와 만나 시너지를 이룬다. 같은 리프의 피아노와 둔탁한 드럼 비트만으로 구성된 「Pawn it all」이 어떤 곡보다 파워풀하게 다시 시작할 용기를 주는 건 이 때문이리라.

 

어쿠스틱 기타의 스트로크와 커팅을 통해 경쾌한 리듬을 만들고 피아노와 베이스를 쌓아 빈틈을 메꾼 「Girl can't be herself」는 밝은 분위기와는 반대로 여성의 외모에 대한 사회 편견을 지적한다. 블루지한 구성을 바탕으로 소울풀하게 울부짖는 「Illusion of bliss」는 그의 훌륭한 보컬 실력을 보여주는 앨범의 백미! 래퍼 에이셉 라키(A$AP Rocky)와 함께 남편의 전 애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에게 바치는 「Blended family」에는 그의 자전적 외침이 담겼다. 이는 곡을 통해 그 자신을 비추고, 그를 통해 퍼져, 결국에는 상처받은 누군가의 마음을 위로하는 앨범의 구조를 잘 드러낸다.

 

과거의 영광이 무색하게도 앨범은 발매 이후 빠르게 차트에서 사라졌다. 연일 터져 나오는 세련되고 자극적인 곡들 사이에서 힘을 빼고 사회를 노래하는 곡이 설 자리가 적어도, 차트에는 없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상관없다. 대중성과 인기를 걷어내고 돌아온 뮤지션이 노린 자리는 차트가 아닌, 누군가의 시린 마음일 테니. 지금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긴 해도 앨범은 훗날 고전(古典)이 될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박수진(muzikis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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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