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과 삶의 아름다움을 찾아서
이 책은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아니다. 나는 파인만에 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메모도 하고 녹음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길게 인용한 대목들은 이런 메모와 녹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글ㆍ사진 레너드 믈로디노프
2017.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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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계에서는 해마다 약 8백 명에 약간 못 미치는 숫자의 미국인이 박사학위를 받는다. 전 세계로 보자면 그 숫자는 아마 수천 명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소수의 집단으로부터 우리의 생활방식과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발견이나 혁신이 나온다. 엑스레이, 레이저, 전파, 트랜지스터, 원자력, 우주관이나 시간관, 우주의 본질에 대한 관점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이 이 헌신적인 사람들의 노력으로부터 나왔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물리학자가 된다는 것은 세계를 바꿀 만한 엄청난 잠재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것은 또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공유하게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물리학자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는 대학원 시절과 그 직후다. 이때 물리학도는 자기 자신을 찾고, 자신이 할 일의 기초를 닦는다. 이 책은 1981년에 학부를 졸업한 직후 나 자신이 겪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당시 나는 세계 최고의 연구시설로 꼽히는 칼텍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칼텍으로 갔을 무렵 나는 풀이 죽어 방황하고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나의 미래에 대한 생각이 분명치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다행스러운 일은 내 연구실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리처드 파인만의 연구실 근처에 있었다는 점이었다. 1986년 우주왕복선위원회의 위원으로 일할 때 미국의 유인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의 폭발 원인이었던 부서진 오링(O-ring)의 수수께끼를 명쾌하게 풀어냄으로써 전 세계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던 바로 그 파인만이다. 그는 오링을 얼음물에 담갔다가 탁자 위에서 산산조각 내어, 그것이 저온에서 부서지기 쉽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것은 컴퓨터에 대한 상식의 승리, 방정식에 대한 통찰력의 승리를 보여주는 큰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1년 전에는 그의 매혹적인 회고록 『파인만 씨 농담도 잘하시네! Surely You’re Joking, Mr. Feynman!』가 출간되어 폭발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파인만은 1988년에 사망한 이후 대중의 마음속에 현대의 아인슈타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내가 칼텍으로 간 1981년에는 아직 바깥세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물리학계에서는 수십 년 전부터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내가 쓴 무한차원에서의 양자이론을 다룬 박사논문이 몇몇 유명한 물리학자들의 눈길을 끈 덕분에 칼텍의 특별연구원 자리를 얻게 되었다. 내 연구실과 같은 복도에 노벨상 수상자 두 명의 연구실이 있고, 전국 최고의 학생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과연 내가 이곳에 맞는 사람일까?’ 하는 의문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계속 연구실로 출근을 했고, 아직 답이 나오지 않은 물리학의 큰 문제들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내 머릿속에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전에 내가 거둔 성과는 요행이었으며, 앞으로는 두 번 다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 칼텍이 전국의 대학 가운데 자살률이 가장 높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용기를 내어 파인만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놀랍게도 파인만은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는 막 2차 암 수술을 끝낸 참이었다. 결국 나중에 이 암 때문에 죽게 되지만. 이후 2년간 우리는 자주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나는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할 수 있었다. 나의 아이디어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과학자는 어떻게 생각할까? 창조성의 본질은 무엇일까? 결국 나는 죽음을 목전에 둔 이 유명한 과학자로부터 과학 및 과학자의 본질과 관련하여 내가 궁금해하던 문제들의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했던 것은 내가 그를 통해 새로운 각도에서 삶에 접근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1981년 겨울부터 이듬해까지, 칼텍에서 보낸 나의 첫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한 젊은 물리학자의 이야기이며, 인생의 끝에 다가선 상태에서 깊은 지혜로 그를 도와준 한 유명한 물리학자의 이야기다. 그러나 이 책은 또한 리처드 파인만의 말년, 역시 노벨상 수상자였던 머레이 겔만과 파인만의 경쟁, 지금은 물리학과 우주론을 개척해나가는 중요한 이론으로 자리잡은 끈이론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야기이지만 소설은 아니다. 나는 파인만에 대한 경외감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메모도 하고 녹음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길게 인용한 대목들은 이런 메모와 녹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책은 나에게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을 토대로 쓰여졌다. 그러나 나는 나의 경험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사건들을 조합하고 바꾸었으며, 역사적 인물들이나 내가 구체적인 연구 작업을 언급한 인물들, 즉 파인만, 머레이 겔만, 헬렌 터크, 존 슈워츠, 마크 힐러리, 니코스 파파니콜로 이외의 등장인물들은 이름과 성격을 바꾸어놓았다.

 

나는 칼텍에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칼텍은 활기차고 열띤 분위기로 연구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였으며, 또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나를 신뢰해주기도 했다. 더불어 삶에 대하여 많은 가르침을 준, 이제는 고인이 된 리처드 파인만에게 특별히 감사를 드리고 싶다.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레너드 믈로디노프 저/정영목 역 | 더숲
『파인만에게 길을 묻다(FEYNMAN'S RAINBOW)』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20세기 최고의 물리학자로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제자와 나눈 학문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다. 미국에서 출간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지식은 물론, 이론물리학의 새로운 장이 열린 20세기 후반 풍경을 흥미진진하게 담아내며 국내외 많은 과학책 독자들에게 과학 분야의 명저로 꼽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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