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모두 읽고 났을 때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소설의 첫 장에 등장한 야나체크의 ‘신포니예타’와 2권에 등장하는 정체불명의 단편소설 「고양이 마을」이었다. 주인공 덴고의 여정을 함께 하며 고양이들이 인간처럼 살아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읽자니, 이런 책이 실제로 한 권쯤 존재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문제의 책을 찾아내진 못했으나 뒤적이는 과정에서 비슷한 느낌의 책을 발견할 수 있었던 고로, 혹시 나처럼 『1Q84』를 읽고 나서 「고양이 마을」에 호기심이 생겼을 사람들을 위해 몇 권 소개해 보기로 한다.
후지와라 신야의 책 『인생의 낮잠』에는 고양이 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 책에 소개된 에피소드를 무라카미 하루키 덕후스럽게 표현하자면, ‘고양이가 없는 오키카무로 섬을 벗어난 후지와라 신야와 친구가 순례를 떠난 해’에 ‘총알택시를 둘러싼 모험’에 휩쓸렸다가 ‘나사케 섬 재습격’을 통해 ‘쿨하고 와일드한 고양이떼’의 ‘후와후와’한 풍경을 목격했다는 내용 정도 되겠다. 이렇게 말하면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지니(지난 회차 칼럼은 소개한 소설의 내용을 흉내낸 것이었으나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한 듯했다) 조금은 덕후의 등급을 낮춰 다시 한 번 줄거리를 소개하기로 한다.
후지와라는 친구와 함께 몇 년 전 본 신문기사 하나를 단서로 삼아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목적지는 야마구치 현에 있는 오키카무로 섬이다. 인구의 두 배 가까운 숫자의 고양이가 살고 있다는 사연에 호기심이 동해 어렵사리 섬을 찾았건만 이게 웬걸, 현지사정은 고양이섬이란 이름이 아까운 수준이다. 알고 보니 육 년 전 섬에 철교가 생긴 후 고양이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고 한다. 두 방문객은 허탈하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건지고 갈 수는 없다. 이 때, 두 방문객에게 또 다른 고양이 섬의 제보가 들어온다. 나사케 섬, 무려 갓 잡은 생선을 고양이들에게 던져주는 인심 좋은 곳이라는데. 그리하여 다시 먼 길을 떠난 두 방문객을 나사케 섬에서 맞이한 것은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는 고양이 떼의 풍경과 그 사이 낀 ‘어떤 생명체’였다. ‘어떤 생명체’의 정체는 책을 읽을 분들을 위해 비밀로 남겨두기로 하고, 다른 한 권을 마저 소개해 보기로 한다.
지난 2월 제주도에서 며칠이고 함께 그림을 그리며 노닥거린 게 인연이 된 일러스트레이터 김지은 작가가 3월 초 궁디팡팡마켓에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무작정 자원봉사를 빙자한 덕질에 나섰다. 김 작가가 고양이 초상화를 그리는 동안 나는 김작가가 자체 제작한 한정 배지 '쉼표 고양이'를 판매하는 둥 마는 둥하며 고양이 마을 같은 행사장을 돌아다니며 고양이 반지도 껴보고 고양이 드림캐처도 사보고 고양이 인증샷도 찍다가 책방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행사에 참가했다는 이야기에 부스를 찾아가 초면의 사장님께 책 추천을 강요하기까지 했다. 이렇게 얻은 책 『또 고양이』를 ‘야옹충만’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에 펴 보니 아, 이것이야말로 「고양이 마을」 그 자체였다.
이 책의 작가는 왕위팅, 필명은 미스캣으로 대만 출신이다. 그런데 묘하게 책안엔 일본풍의 고양이가 득시글하다. 어째 그럴까, 사연을 파고들어 보니 우키요에 형식으로 책을 그린 까닭이란다. 탁월한 선택이다. 야옹찻집, 고양이 과일 가게, 벚꽃 도시락, 묘욕탕 등을 보자면 정말이지 일본 어딘가에 이런 마을 하나쯤 숨어 있을 것 같다. 더불어 고양이 마을 풍경 한 장, 그와 관련한 고양이들의 이야기를 쓰다듬자니 묘한 상상을 하고 만다.
로또가 당첨될 확률로 내가 세계적인 작가가 되어 무라카미 하루키와 만난다면 이 책들을 선물하고 싶다. “당신이 쓴 『1Q84』를 읽고 이 책들 찾아냈어요.”라고 말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내 덕후겠거니” 하고 웃고 넘기려나. 아니면 함께 ‘신포니예타’라도 듣자고 청해주시려나. 후자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아. 그 정도로 성공한 덕후가 되려면 갈 길이 구만리로고.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
ne518
2017.05.15
희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