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유방의 요리서』는 14세기 중반에서 후반까지 프랑스 왕의 요리장으로 일했던 기욤 티렐, 일명 ‘타유방’의 이름으로 시작하는 중세 최초의 요리서다. 거세한 닭으로 만든 흰 수프스튜, 신선한 칠성장어, 초록색 달걀 수프 등 목차만 보면 맛을 상상하기 힘든 요리가 많다. ‘고기를 비계에 튀긴 다음 덜 익은 포도즙을 끼얹’어서 내놓는 요리라니, 과연 무슨 맛일까?
이 책의 역자인 황종욱은 불어불문학과를 나와 개발도상국의 특혜무역체제와 경제개발 간 관계를 주제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외교부 아프리카미래전략센터, OECD 대한민국 정책센터 등에서 근무하고 지금은 로스쿨에 재학 중이다.
책을 낸 이유는 중세 ‘덕질’이었어요. 특히 중세 책문화를 좋아했는데, 트위터에서 만난 이무영 철학박사가 먼저 중세의 여러 잡학 서적을 번역해보자고 제안해서 시작했어요.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지금의 인식 체계나 학적 체계에 포섭되지 않는 책들이 있거든요. 그중 하나가 『타유방의 요리서』였는데, 그야말로 요리학의 삼국사기 같은 느낌의 책이기 때문에 번역했을 때 많은 층위를 가질 수 있고, 특히 당대의 미식 문화가 어떤 의미였고 어떤 양상이었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적힌 대로 요리를 하면 음식이 되는 게 별로 없어요. 실제로 몇 개 시도해 봤는데 먹을 수 없는 수준의 결과물도 나오고요. 그건 그만큼 중세 유럽인들과 현대 사람들의 미각의 범위가 전혀 다르다는 뜻이거든요.
처음부터 큰 출판사에 접촉하겠다는 마음이 없었어요. 스스로 합리적 판단을 내리더라도 이 책은 정말 상업성이 없는 책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요리책도 아니고 역사서도 아닌 내용을 책으로 내는 건 독립출판사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일 거예요.
스스로 이렇게 말하기는 웃기지만, 저 자신이 독립출판을 좋아하면서 독립출판으로 책을 냈으니 성공한 ‘덕후’라고 할 수 있겠죠. 독립출판을 출판의 한 형식이라고 본다면 역사서를 번역해서 내더라도 큰 문제가 아니고, 오히려 문학 쪽은 독립출판이 일반적인 출판 시장의 틈새를 성실하고 빠르게 메워준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독립출판사 ‘frame/page’에서 쥘 베른의 『녹색광선』이 나오기도 했는데, ‘덕후’가 아니라면 번역해서 낼 엄두가 내지 않는 책이죠.
책과는 상관없는 공부를 많이 했어요. 번역도 이제까지 제 이력과는 상관없는 일이었죠. 직장에 다니면서 번역을 하고 주석과 해제를 쓰는 작업을 했습니다. 지금 책은 1쇄가 다 팔리고 2쇄가 나왔고, 저는 로스쿨에 합격해서 다시 다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비슷한 중세 덕질을 하려고 합니다. 번역하려는 책이 몇 가지 있는데요. 최대 우선순위는 제가 봤을 때 재밌는 책입니다. 지금 하는 공부가 끝나고 나면 다시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겠죠?
중세의 수고본을 읽고 번역한다는 것은 우리가 한 권의 책에 당연하다는 듯 부여하는 단일성(unity)과 유일성(uniqueness)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은 다른 하나의 책의 일부일 수도 있고, 다른 책을 제 안에 품고 있는 하나의 총체일 수도 있다. 그러한 관계들이 필연보다는 오히려 우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 그 궤적을 추적하는 과정을 어느 정도는 낭만적으로 만드는 것도 사실이다. - 『타유방의 요리서』, 72쪽
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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