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제리 소녀시대』저자 김용희는 1992년 『문학과 사회』겨울호에 평론으로 등단했다. 등단 이래 평론집 『천국에 가다』 『페넬로페의 옷감 짜기-우리 시대 여성 시인』 『기호는 힘이 세다』 『우리시대 대중문화』 등 꾸준히 문학과 영화, 문화를 가로지르며 평론으로 대중과 만났다. KBS에서 같은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가 8부작 드라마로 방영하면서 『란제리 소녀시대』는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8년 만에 다시 대중과 만났다.
등단하신 이래로 평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해오시던 작가님께서 소설가로서 처음으로 선보인 장편소설이라고 들었는데요. 그 이후로도 꾸준히 소설을 써오고 계십니다. 평론가로 활동하실 때부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나요? 소설 쓰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소설을 쓰게 된 계기라, 이제는 눈치 보지 않고 살고 싶어 소설을 쓰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이론적이고 비평적 글쓰기를 했거든요. 지겨웠어요. 너무 오랫동안 비평을 했거든요. 고등학교 때도, 대학 때도 소설하고 시를 썼어요. 그런데 대학원에 가면서 문학 이론 공부를 시작했죠. 이어령 선생님과 김현자 선생님께 기호학이나 구조주의를 배웠어요. 점점 창작과는 멀어졌죠. 당연한 수순이었어요. 자연스럽게 평론가로 데뷔하고 비평 활동을 했죠. 그것도 17년 동안이나.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안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이야기에 대한 욕망을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었어요. 내 안에 물처럼 차올라서. 비평하는 인간이 창작을 하겠다고 하면 문단에선 ‘웃기고 있네’ 하면서 비웃는 거 다 알아요. 소설을 쓰겠다고 했을 때 뜯어말리는 사람들도 정말 많았어요. 그런데 더 이상 남들 눈치 보지 말자, 그렇게 맘먹었죠. 그동안 충분히 자기검열에 시달리며 살아왔거든요. 날 억누르고 살았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세상과 직접 만나는 느낌이 들더군요. 삶과 내가 일체가 되는 느낌 같은 거?
소설은 1979년 대구 정화여고 2학년생 ‘정희’와 ‘혜주’ 그리고 친구들을 통해 유쾌 발랄한 여고생들의 일상을 선명하게 다뤄냅니다. 문득 작가님은 고등학생 시절에 어떤 모습이었을지 약간 궁금해져요. 학창 시절, 작가님은 쾌활하고 호기심 넘치는 말괄량이 ‘정희’에 가까웠나요? 아니면 수줍음 많은 문학소녀 ‘혜주’에 가까웠나요?
어느 쪽일 거 같은가요? ‘정희’가 저예요. 실은 이 소설, 자전적인 이야기예요. 대구 섬유 공장집 둘째 딸. 대구 정화여고 2학년 8반이었죠. 정화여고 문예반 ‘알암’에서 시도 썼지만 천방지축 왈가닥이라 오락부장이었어요. 응원단장도 도맡았고요. ‘알암’에 혜주처럼 예쁘고 똑똑한 친구가 있었는데 남학생들에게 엄청 인기가 많았거든요. 남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당시 남학생들과 유일하게 ‘공식적’으로 볼 수 있는 자리가 대구 YMCA 2층 시화전 공간뿐이었어요. 아무튼 그 친구를 되게 부러워했죠. 제 마음이 질투 반 부러움 반인 줄도 모르고 그 친구는 성격까지 좋아서 아주 털털하게 절 대해줬어요.
여고생들의 일상을 다루었다고 해서 소설이 마냥 밝고 명랑하게 흘러가지만은 않는 것 같아요. 특히 수학 문제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고 해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긴다던지 하는 장면을 읽다 보면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여고생들에게 가해진 체벌이 얼마나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됩니다. 작가님께서 기억하시는, 그 시절 여고생들의 삶에 대해 듣고 싶어요.
얼룩덜룩한 교련복을 입고 총을 쏘았다니까요. 그것도 여고생들이. 정말 대단한 시절이죠. 사격훈련도 했고 수류탄 멀리 던지기 연습도 했어요. 간호병 임무를 위해 붕대를 감는 훈련도 했죠. 완전 전시(戰時) 훈련이었어요. 브래지어 끈을 새총 줄처럼 잡아당기는 체벌은 박정희 정권 말기 군부 체제가 가장 순수한 여고생의 일상에까지 얼마나 내면화되고 생활화되었나를 보여주는 실례죠. 성적 수치심을 주는 체벌이고 폭력이죠.
대구는 가부장제가 가장 엄격하게 작동하는 도시죠. 여고생에게 사격훈련과 제식훈련을 시키는 한편 ‘가정 가사’ 시간에는 한복을 입고 다소곳이 앉아 차를 마시고 어른께 절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일명 ‘생활관’ 훈련이었어요.
또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들어와야 했어요. 자전거 타는 것도 금지했죠. ‘처녀막’이 찢어질 수도 있고 그럼 시집가기 글렀다 생각했으니까. 대학 갈 때 전공은 ‘가정과’나 ‘식품영양학과’를 가는 게 최고라 생각했어요. 그러면 시집가서 살림도 잘하고 잘 살 거라 생각했던 거죠.
앞서 언급한 주인공 ‘정희’나 ‘혜주’ 이외에도 얄미운 모범생 ‘언주’나 폴 매카트니를 닮은 정희의 짝사랑 상대 ‘손진’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작품에 등장합니다. 많은 등장인물들 가운데에서도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으신가요?
제가 좀 전에 자전적인 소설이라 말했죠? ‘손진’은 실제 제가 좋아했던 선배 이름이에요. 무척 좋아했던 선배. 헉, 그런데 이거 우리 남편이 보면 안 되는데. (웃음) 그냥 예전에, 그랬던 때가 있었죠.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말해주셨어요. “몸을 죄고 꽉 눌러야 여자로 성장한다는 소녀들의 란제리를 생각한다”라고요. 제목을 직접 구상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목의 “란제리”에 담긴 의미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란제리는 소녀들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의미해요. 당시는 중학교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데요. 처음 영어를 배우면서 배우는 문장이 있어요. “Boys, be ambitious!” 그때 전 생각했죠. 그럼 소녀들은 뭘 품어야 하지? 라고.
소녀에서 여자로 성장하기 위해 브래지어나 코르셋을 하게 되잖아요. 여성으로 성장하기 위해 남성 시각 혹은 사회적 관습이 ‘만들어놓은 육체’에 대한 요구를 받게 되죠. 소녀에서 성인 여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육체를 옥죌 수밖에 없고 또 사회가 요구하는 심리적이고 정서적인 억압, 일테면 조신함이나 순종적인 얌전함 같은 따위를 강요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죠. ‘란제리 소녀시대’는 여자가 되기 위해 신체적, 정서적 억압을 통과해야만 하는 소녀에 대한 은유이고 메타포입니다.
그리고 1979년을 특별히 잡은 이유는 박정희 시해사건이 있었던 해기 때문이에요. 오랜 군부시절의 종말과 함께 다시 1980년 광주 사태가 일어나죠. 절망이 희망으로 다시 희망이 환멸로 바뀌던 시절이었는데, 이 시대적 정치적 무의식의 메타포죠, ‘란제리’란 단어는. 그 무거웠던 시대에 발랄한 소녀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것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소녀들도 똑같이 무거운 시간들을 통과하고 있었던 거죠. 혜주에게 일어난 일이 그 시대에 대한 상징이죠.
드라마 얘기를 안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지난 9월 11일부터 『란제리 소녀시대』를 원작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KBS에서 방영되면서 원작 소설 또한 주목받고 있는데요. 혹시 작가님께서도 드라마를 보셨나요? 원작 드라마를 볼 때의 재미 중에서도 역시 ‘싱크로율’을 보는 재미가 클 듯한데요. 원작자로서 보시기에 드라마와 소설의 싱크로율은 어떠한가요?
첫 방송을 보면서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조마조마했어요. 그런데 1회와 2회를 보면서 너무 좋았어요. 연출, 극본, 연기, 다 너무 훌륭했어요.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드라마라는 매체의 특징을 아주 잘 살리고 있었어요. 특히 2회에서 주인공 ‘이정희’의 감정선을 아주 잘 이끌어가더군요. 우정과 사랑이라는 십대 소녀들의 중요한 감수성을 절묘하게 잘 표현해주었어요.
드라마가 소설과 똑같은 내용으로 가면 드라마는 망하는 거거든요, 매체가 달라지면 분명 이야기도 달라져야 해요. 드라마가 원작 인물들의 캐릭터를 잘 살리고 원작이 내포한 세계에 대한 이해도 정확하면서 드라마로서의 재미와 감동을 주고 있더라고요. 대본을 집필한 윤경아 작가에게 감사했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소설을 쓰실 계획이 있으신가요?
희망에 지칠 때까지 쓸 것 같아요. 사실 잘 모르겠기도 하고요.
올해 상반기, 포털 다음에서 제 네 번째 장편소설을 연재했어요. 『나의 마지막 첫 경험』이라고. 주변에서 『란제리 소녀시대』의 후속작을 써달라는 요청을 꽤 오랫동안 받아왔거든요. 많은 분들께서 주인공 ‘이정희’가 1980년대 대학에 가고 난 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고 그러더군요. 초고는 이미 탈고를 마쳤습니다. 단행본으로는 내년쯤 출간되지 않을까 해요. 요즘은 다섯 번째 장편소설 구상을 하고 있고요. 소설 쓰기는 자기탐닉의 극치 같아요. 계속 쓸지 어떨지도 모르겠어요. 그냥 쓰고 싶은 욕망이 있다면 정직하게 욕망을 따르고 싶을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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란제리 소녀시대김용희 저 | 은행나무
절망 없이 오로지 사랑하라.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의 청춘은 계속 전진한다! 보나?채서진 주연 KBS 드라마 [란제리 소녀시대] 원작 소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우수 문학 도서 선정작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