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미스터리 시리즈 ‘밀레니엄’은 스웨덴의 기자였던 스티그 라르손이 애초에 10권을 기획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3권까지 집필을 마치고 출판사에 원고를 넘긴 그는 출간 6개월을 앞두고 심장마비로 돌연 사망한다. 그후 유족과 출판사는 다비드 라게르크란츠를 공식 작가로 지정하고 중단된 시리즈를 이어간다. ‘밀레니엄 시리즈’를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회자되는 스토리이다.
1년여의 편집 과정 끝에 출간된 책 네 권의 분량은 2904쪽. 290쪽짜리 책을 열 권 만든 셈인데, 편집자 한 사람이 1년간 책임편집 하는 종수를 생각해보면 적지 않은 분량이다. 2001년에 구상을 시작해 2005년에 첫 출간된 이 막대한 소설은 2017년 현재 우리 사회의 맹점들을 정확히 짚어내는데, 돌이켜 생각할수록 라르손의 앞서 나간 시각에 감탄할 뿐이다. 강력한 매력을 지닌 두 주인공 ‘리스베트’와 ‘미카엘’을 중심으로 라르손이 설계한 정교한 세계가 있었기에 오히려 작품의 강한 생명력이 새 작가를 발굴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실제 작가의 모습(혹은 희망사항?)이 투영된 캐릭터다. 사회고발 잡지 <밀레니엄>의 발행인이자 정의로운 탐사기자인 미카엘은 훈훈한 외모와 이성을 편안하게 해주는 센스를 갖췄다. 상대와의 선을 지킬 줄 알고, 모르는 일에는 나서지 않으며, 성희롱이나 혐오하는 언행을 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낄끼빠빠’를 아는 남자로서, 히로인 리스베트를 아주 적절하게 보조한다.
리스베트 살란데르는 사진기억력을 지닌 천재 해커다. 현대판 정의의 사도를 ‘여성 해커’로 설정한 라르손의 지혜에 다시 한번 감탄한다. 한편 그녀와 그녀의 엄마는 젠더권력과 여성혐오의 피해자다. 하지만 남성들이 가하는 폭력과 유린 앞에서 리스베트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들을 증오하는 여자’가 되어 자신을 괴롭힌 남자들에게 반드시 잔혹한 복수의 맛을 보여준다. 전 세계 여성 독자들은 여기에 열광했고, 리스베트의 명대사는 피해자인 그녀를 ‘미친년’으로 간주하는 남성들을 향해 부메랑이 되어 날아간다. “기억해둬,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소설에는 현재 한국 사회와 비교해볼 장면들도 많다. 국정농단 사건,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강남역 살인 사건과 여성혐오 범죄, 소아성애자와 혐오 세력이 운운하는 표현의 자유…… 사실 전 인류적 문제라고도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밀레니엄 시리즈를 이어나갈 라게르크란츠는 6권까지 집필할 예정이라고 한다. 신작 4권과 함께 국내에 새롭게 출간된 시리즈가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큰 이변 없이 6권까지 선보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밀레니엄 시리즈스티그 라르손 ,다비드 라게르크란츠 저/임호경 역 | 문학동네
강력한 매력을 지닌 두 주인공 '리스베트'와 '미카엘'을 중심으로 라르손이 설계한 정교한 세계
고선향(문학동네 편집자)
문학동네에서 해외소설을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