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것이 손해?
우리는 뉴스나 신문에서 ‘손해’라는 단어를 쉽게 접할 수 있습니다. “손해가 발생했다” 또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겠다”라는 말이 나오는 기사가 거의 매일 신문의 한쪽 면을 채웁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손해란 과연 무엇일까요? 실제로 사건이 벌어졌을 때 손해가 발생했는지, 손해가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그 손해액이 얼마인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선 사례를 하나 살펴보고 손해의 개념에 대해 더 이야기해봅시다.
이영희는 대학 동창인 김철수와 오랜 연애 끝에 결혼했습니다. 결혼 1년 뒤 이영희는 아이를 임신했지만, 마냥 기뻐할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영희의 오빠와 여동생은 모두 일명 ‘A증후군’이라고 하는 심각한 유전 질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그 유전 질환으로 큰 고통을 받고 있었죠. 오빠와 여동생의 고통을 보고 자란 이영희는 어렸을 때부터 A증후군을 가진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영희는 김철수와 오랜 상의 끝에 태아가 A증후군을 가지고 있다면 임신 중절 수술을 받기로 결심했어요.
이영희는 산부인과 의사 나실수를 찾아가 태아에게 A증후군이 있는지 검사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나실수는 피 검사를 한 뒤 태아가 A증후군이 없는 건강한 아이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이영희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았고, 이름을 김똘똘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이영희는 김똘똘에게 A증후군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알고 보니 나실수는 실수로 A증후군이 아닌, B증후군에 대한 검사를 했던 것입니다.
김똘똘은 병원에서 계속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의사의 과실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김똘똘은 의사를 찾아가 당신이 아니었다면 자신이 태어나지 않았고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을 거라며, 지금 너무나 고통스러우니 그 손해를 배상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자 나실수는 김똘똘의 A증후군이 자신의 실수로 생긴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 것이 태어나지 않은 것보다 손해라고 볼 수 없다며 맞섰습니다. - 사례 1
사례에서 의사 나실수에게 과실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의사 나실수의 실수로 A증후군을 가진 김똘똘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볼 수도 있고요.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과연 김똘똘에게 손해가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 사례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 유럽에서도 논란이 된 적이 있는 이야기입니다. 의학의 발전으로 여러 검사를 통해 태아에게 유전 질환이 있는지 여부를 알 수 있게 되면서, 이와 같은 문제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번에는 〈사례 1〉을 염두에 두고 다른 사례도 함께 보며 차근차근 손해의 개념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민법 제750조는 “고의 또는 과실로 인한 위법행위로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그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규정합니다. 즉 피해자는 가해자를 상대로 가해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죠. 이때 손해는 ‘위법행위가 없었을 때 존재했을 이익 상태와 가해가 행하여진 현재의 이익 상태의 차이(차액설)’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적극적 손해’란 위법행위로 인해 존재했던 이익이 없어지거나 감소되는 것을 의미하고, ‘소극적 손해’란 위법행위로 얻을 수 없게 된 이익을 의미하며, ‘위자료’란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뜻합니다.
30세인 A는 연봉 6,000만 원을 받으며 ‘미래자동차회사’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미래자동차 회사의 정년은 60세로, A는 정년까지 30년을 더 다닐 수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A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결국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수술비는 1,000만 원이 들었어요. A의 배우자는 교통사고 가해자 B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사례 2
〈사례 2〉에서 A의 적극적 손해는 얼마일까요? 교통사고라는 가해자 B의 위법행위가 없었다면, A는 1,000만 원의 수술비가 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차액설에 따라 치료비 1,000만 원이 손해임은 분명하죠.
문제는 소극적 손해, 즉 교통사고로 A가 얻지 못한 이익이 얼마인가입니다. A가 계속해서 미래자동차회사를 정년까지 다녔다면 A는 최소한 18억 원(연봉 6,000만 원?30년)을 벌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18억 원을 전부 손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A가 미래자동차회사를 다니기 위해서는 밥도 사 먹어야 하고 옷도 사 입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A가 미래에 사용할 돈 가운데 생활에 필수적인 금액이 얼마인지 산정하는 일은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보통 이런 일이 있을 경우 통상 연봉의 3분의 1이 생활에 필수적인 금액이라고 하여 공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A가 입은 소극적 손해는 12억 원입니다. 이 문제는 사망 사고 이외에는 발생하지 않습니다. A가 사망하지 않았다면, 어차피 먹고 입는 돈이 장래에 지출될 것이기 때문이죠. 그런데 여기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친구가 있을 것입니다. A가 정년까지 잘 회사를 다닐지 어떻게 알 수가 있죠?
A가 평소 딱 10년만 열심히 일하고 그 이후부터는 죽을 때까지 여행만 다니겠다는 말하고 다녔다면 A의 소극손해를 4억〔(연봉 6,000만 원?10년)?(2/3)〕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반대로 A가 정년까지 회사를 다니면 계속해서 연봉이 상승할 텐데 그 상승폭을 반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A가 정년 이후에 다른 자영업을 통해 돈을 벌 가능성은 고려할 수 없을까요?
차액설의 가장 큰 장점은 손해의 산정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차액설에 따라 손해를 산정하더라도 결국 ‘가해행위가 없었을 때의 이익상태’를 추측할 수밖에 없고, 특히 소극적 손해의 경우에는 가해행위가 없었다면 미래에 어떤 일이 생겼을지 예측해야만 하기 때문에 그 판단이 어려워집니다.
위자료는 판단이 더 어렵습니다. A의 배우자가 남편의 사망으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점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A의 배우자는 가해자 B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A의 배우자가 입었을 정신적 충격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요? A가 배우자와 사이가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A의 배우자가 받는 정신적 충격이 달라질 텐데 이를 어떻게 평가하며 나아가 금전으로 산정할 수 있을까요? 실무는 사망사고의 경우 정신적 위자료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일률적으로 지급할 것을 명하고 있습니다(다만, 사고의 원인을 구분하지 않고 위자료를 명하던 실무에 대한 반성에서, 법원은「전국민사법관 포럼」, 「사법발전을 위한 법관세미나(민사)」 등을 거쳐 2016년 말 ‘불법행위 유형별 적정한 위자료 산정방안’을 마련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일반적인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사고의 위자료는 1억 원, 음주운전 등으로 인한 사망사고의 위자료는 2억 원, 그 외 가해자에게 비난가능성이 큰 경우에는 위 금액을 더 증액할 수 있다.) 문제는 사망사고 외의 다른 사고의 경우입니다. 이는 결국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평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변호사들이 어떻게 주장?증명을 하는지에 따라 그 금액이 달라질 수밖에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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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정에 서다허승 저 | 궁리출판
법학도를 꿈꾸는 청소년뿐 아니라 법학에 관심이 있는 대학생, 법이 어렵게만 느껴지는 일반 성인들에게도 법과 친해질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허승(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