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 긍정, 또 긍정
프랑스는 베트남 식민지 시절 일찌감치 달랏을 휴양지로 점 찍으며 기어코 이곳에서 와인을 만들어 냈다.
글ㆍ사진 백종민/김은덕
20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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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랏엔 뭐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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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 현지인들의 달랏 여행법은 ‘쿨내 나는 카페 투어’


 

달랏은 별종 같다. 베트남인 건 맞는데 베트남이 아닌 것 같다. 호찌민에서 슬리핑버스(1, 2층좌석이 나뉜 버스로 다리를 쭉 펴고 누워 갈 수 있도록 만들었다)를 타고 8시간을 달려 달랏에 도착했다. 야자수가 침엽수인 소나무와 전나무로 바뀌었다. 같은 나라 안에서 지역을 이동했을 뿐인데 기후대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소나무숲이 만들어 낸 상쾌한 공기와 1500m의 고도가 달랏을 365일 덥지도 춥지도 않은 ‘봄의 도시’라는 별명을 가지게 했다.

 

“여기, 치앙마이 같지 않아?”


달랏에 도착한 후 우리의 첫 번째 반응이었다. 겨울임에도 따뜻한 햇살, 저렴한 물가, 내륙도시, 풍부한 농수산물, 느긋한 미소 등 태국의 치앙마이와 여러모로 닮았다. 호찌민의 표정 없는 상인들, 오토바이의 신경질적인 경적에 지쳐 있던 우리는 도착한지 하루도 안돼 달랏에 마음을 빼앗겼다. 내 얼굴이 베트남 사람 같다며 친근하게 베트남어로 인사한다. 내가 '씨익' 웃으면 상대방도 웃음으로 화답을 해준다. 겨울이면 물가가 오르고 방 구하기 힘든 치앙마이 말고 이제 달랏이면 되겠다.

 

이곳은 우리 같은 여행자뿐 아니라 현지인에게 사랑받는 도시다. 작년 한 해, 달랏을 찾은 관광객 수는 500만 명. 이 중 95%가 베트남 현지인이다. 그리고 나머지 5%에는 한국, 중국, 태국, 러시아인이 조금씩 지분을 나눠 갖는다. 비교를 위해 다낭을 살펴보면 비슷한 수의 관광객 중 50%만이 현지인이다. 수치로 본 현지인의 달랏 사랑이다.

 

그러나 현지인보다 먼저 이곳의 매력을 알아차린 이들이 있었다. 프랑스는 베트남 식민지시절일찌감치 달랏을 휴양지로 점 찍으며 기어코 이곳에서 와인을 만들어냈다. ‘달랏와인’은 도시의 이름을 상표로 내걸고 베트남 유일의 포도주 생산지가 되었다. 우리 돈 5,000원이면 마트에서 달랏와인을 맛 볼 수 있는데 특별한 매력이 있는 건 아니나 와인 맛을 내려고 노력한 프랑스인의 근성에 감탄하게 된다.

 

와인뿐만이 아니다. 베트남 커피의 주요 생산지가 이곳, 달랏이다. 참으로 부지런히 많은 걸 생산해내는 도시다. '날씨 좋고 재정까지 풍족하니 사람들 표정이 부드러운 걸까?' 도시와 관련된 온갖 상상이 펼쳐진다. 커피와 관련된 관광인프라도 부족함이 없다. 현지인들은 카페 투어, 외국인들은 커피농장지투어 등 커피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 달랏카페는 인테리어, 전망, 커피맛, 가격까지 한국의 내로라하는 카페 못지않은 장점을 가졌다. 달랏은 커피 애호가들의 마음을 훔칠 준비가 되어있다.

 

하지만!
'여러분, 달랏으로 오세요'라고 현혹하는 듯한 말들을 나열하고 있지만 그남자와 내가 달랏으로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나는 뛰고 너는 못 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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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캐니어닝, 짚라인 등 자연과 어울리는 액티비티가 사람들을 이끈다


 

그 여자가 달랏에 가자고 하면서 꺼낸 말이 기가 막히다. 겨울에도 꽃이 피는 온화한 기후라서가 아니고, 베트남 커피를 맛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아니었다.


“캐니어닝은 스위스와 베트남 달랏에서 밖에 할 수 없대. 물가 비싼 알프스에 가서 그거 할 수 있겠어? 나 진짜 캐니어닝이 하고 싶거든. 그러니까 저렴한 달랏에서 해보자 이거지!”

 

그 여자는 몸도 잘 쓸 줄 모르면서 격한 움직임을 좋아한다. 격투기 선수의 파괴적인 주먹질에 감탄하고, 스턴트맨의 위험한 연기에 물개 박수를 친다. 아마도 자신은 몸이 따라주지 않아 할 수 없기에 그 어렵고 버거운 움직임을 동경하는지 모르겠다. 그런 이유인지 여행지에서 액티비티 활동을 할 수 있다면 몸이 움찔움찔한다. 그러고는 나를 꼬시기 시작한다. 해 보고 싶은데 혼자서는 할 용기가 나지 않으니 나를 핑계 삼는 거겠지.

 

계곡에서 밧줄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그 액티비티를 스위스 어딘가와 베트남 달랏 두 군데서밖에 할 수 없다는 말은 애초에 믿지 않았다. 하지만 군말 없이 믿고 따라 온 것은 올 한 해 동안 지켜보자고 약속한‘ 긍정’이란 단어 때문이다. ‘긍정, 긍정, 또 긍정’이 2018년 나의 좌우명 되시겠다.(궁금할지 모르니 그여자의 올해 좌우명은 ‘다정, 다정, 또 다정’ 되시겠다. 쌀쌀맞은 그 성격 고쳐보라고 내가 제안한 거다)

 

매사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나이다. 가까운 사람마저도 믿지 못하는 게 나라는 사람이다. 좋은 점이면 죽을 때까지 가져가도 좋겠지만 이런 성격은 더 늙기 전에 고쳐보고 싶다. 그래서 올 한 해는 매사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마음먹었는데 그 여자가 마침 캐니어닝 이야기를 꺼낸 것이다. 나도 평소에 하지 않는 일로 새해의 다짐을 이어가고 싶기도 했고.

 

이른 새벽 15인승 승합차에 제일 먼저 올랐다. 예약자들을 호텔마다 픽업하는 차 안에 앉아‘ 얼마나 다양한 나라에서 모인 여행자들과 함께 이 험한 놀이를 하게 될까?’ 궁금했다. 승합차에는 놀랍게도 9명의 한국인이 올라탔다. 한글만 가득한 승합차 안에서 가이드만 영어로 자기소개를 하고 오늘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이상한 풍경이 펼쳐졌다.

 

“난 네가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힘들면 못하겠다고 해!”

 

시작하기도 전에 그 여자는 내가 걱정된다며 안절부절못한다. 가끔 보면 그 여자는 나와 사이가 너무 가까워서 내가 본인보다 육체적 능력이 낫다는 점을 잊곤 한다. 거기뿐이면 괜찮은데 자기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엄마 같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나도 줄 잡고 벽을 타고 내리는 훈련을 받아 봤는데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다. 첫 번째 계곡부터 작은 폭포를 따라 내려간다. 시작하자마자 그 여자의 손가락은 물에 젖은 밧줄에 밀려 찢기고 쓸려 깊은 상처가 생겼다. 도대체 누가 누굴 걱정하는지.

 

폭포 위를 줄을 타고 내려오기도 하고, 급류에서 미끄럼틀도 타면서 반나절을 계곡을 따라 움직였다. 힘이 들긴 하지만 이 정도는 할 만한 액티비티라고 생각했다. 그 마지막을 보기 전에는. 마지막 코스는 10m 높이의 바위에서 폭포 속으로 시원하게 다이빙하기였다. 10m 우습게 보지 마시라. 나 같은 쫄보에게는 천 길 낭떠러지처럼 보인다. 내가 무엇을 위하여 여기서 뛰어내려야 한단 말인가!


마침 가이드는 나를 꼭 집어서 제일 먼저 해보라고 부추겼다. 그와 친구 하자며 말을 트는 게 아니었다. 내가 안 뛰면 그 여자를 비롯해 다른 이들도 못 뛸 거 같았다. 하지만 다른 사람 걱정보다는 올해는 좀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고 싶은 내 욕심이 먼저였다. 그렇게 캐니어닝을 예찬했던 그 여자는 결국 못 뛰었지만 나는 뛰었다. ‘긍정, 긍정, 또 긍정’을 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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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달랏 #캐니어닝 #해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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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종민/김은덕

두 사람은 늘 함께 하는 부부작가이다. 파리, 뉴욕, 런던, 도쿄, 타이베이 등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도시를 찾아다니며 한 달씩 머무는 삶을 살고 있고 여행자인 듯, 생활자인 듯한 이야기를 담아 『한 달에 한 도시』 시리즈를 썼다. 끊임없이 글을 쓰면서 일상을 여행하듯이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