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울리는 감동의 선율 -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괜찮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모든 것을 이겨낼 용기와 희망이 생긴다.
글ㆍ사진 임수빈
2018.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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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들어주는 것
 
무대 위 조명이 켜지면 한 남자가 등장한다. 세련되고 품격 있는 연미복을 갖춰 입은 남자는 이내 무대 한 켠에 놓인 피아노에 앉아 연주를 시작한다. 작은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고 오직 피아노 소리만 가득한 시간이 끝나고, 조명은 객석을 비춘다. 허나 객석에서는 박수갈채와 함성이 아닌, 야유와 비난, 조롱이 들려오고 남자는 상상하지 못했던 관객들의 반응에 당황하며 절망적인 현실을 부정한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는 실존 인물인 음악가 라흐마니노프의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된 작품이다.


어린 시절부터 천재라는 소리를 지겹도록 들으며, 제 2의 차이코프스키라는 수식어로 촉망 받던 라흐마니노프는 첫 번째 작품 발표와 동시에 뼈 아픈 실패를 겪은 뒤 트라우마에 빠진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 어떤 곡도 완성하지 못한 채 방안에만 틀어박혀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 그에게 어느 날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 박사가 찾아온다. 이미 수 많은 의사들을 만났던 라흐마니노프는 니콜라이에게도 냉소적이고 날 선 태도를 보이며 자신은 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치료를 거부한다. 니콜라이 박사는 그의 말에 동의하는 대신 매일 같이 그에게 찾아와 말을 건네고 비올라 연주를 들려주며 그와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다.

 

조금은 알쏭달쏭한 박사의 행동에 라흐마니노프도 조금씩 호기심을 갖게 되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치료 아닌 치료를 시작하게 된다. 니콜라이 박사는 자신을 천재라 여기는 주변의 기대감에 부응하고 다른 이들의 사랑을 받기 위해 대단하고 위대한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던 라흐마니노프에게, 그가 강박을 이겨내고 트라우마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최면을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과거를 되돌아가며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기억, 후회와 미안함으로 가득해 가슴 한 켠에 묻혀 두었던 스승과의 일화, 음악 그 자체가 라흐마니노프에게 주는 의미 등을 되짚으며 그가 스스로 마음의 상처를 이겨낼 수 있도록 만든다.

 

내면의 상처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은 우울과 고통의 감정으로 이어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는 우울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때, 누군가 내 손을 잡고 내 이야기를 들어준다면, 괜찮다는 따뜻한 말 한 마디를 건네준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모든 것을 이겨낼 용기와 희망이 생긴다. 대중의 비난,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스스로를 옭아매는 강박 등 그 모든 문제로 고통 받던 라흐마니노프에게 니콜라이 박사는 조용히 다가와 그를 다독여 주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를 위로해준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사랑 받는 존재라고,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고 너무 고통 받지 말라고. 당신의 상처와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박사의 진심 어린 위로는 라흐마니노프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는 다시 힘을 얻어 작품을 창작하게 된다.

 

사실 <라흐마니노프> 의 플롯은 단순하고 상투적이다. 하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건네는 진심 어린 위로는 관객들의 마음에도 깊게 자리잡는다.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따스한 위안이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잔잔한 여운을 남긴다.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의 또 다른 매력은 8중주 현악팀과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통해 들려주는 음악이다. 기존 6중주에서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추가되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채운다. 라흐마니노프가 부르는 노래와 그가 연주하는 피아노 곡은 실제 라흐마니노프의 곡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과 현악기의 화음은 90분의 러닝 타임 내내 귀를 황홀하게 해주고 마음에 큰 울림을 준다. 위로가 필요할 때 진심 어린 한 마디로 마음을 치유해주는 뮤지컬 <라흐마니노프> 는 4주동안 38회 공연 한정으로 7월 8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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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빈

현실과 몽상 그 중간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