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중세를 알아야 하는 이유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현세적인 것 같습니다. 육체적 힐링, 행복 등 삶의 모든 것이 현세에 맞춰져 있어요. 중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그게 전부인가요? 현세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없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한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ㆍ사진 성소영
201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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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석학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은 중세시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에서 일어난 의문의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을 다룬 소설이다. 소설의 배경인 중세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고 이성을 통제하는 어두운 사회로 묘사되어 있다. 비단 『장미의 이름』이 아니더라도 흔히 중세는 ‘어둠의 시대’나 ‘암흑기’로 여겨지곤 했다. 움베르트 에코는 『중세』를 통해 암흑기라고 알려진 이 시기의 풍요로움과 근현대의 철학,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가 정착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 기틀을 마련했는지 알려준다. ‘중세는 한 세기다’, ‘중세는 암흑기다’, ‘중세는 유럽 문명에만 해당한다’ 등 중세에 관한 일련의 오해들은 수백 명의 학자들이 참여헤 중세에 대한 자료를 총망라 한 책, 『중세』를 통해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중세』 컬렉션(총 4권)의 국내 완간을 기념하며 지난 5월 22일부터 6월 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예인홀에서 중세학교 인문학 강좌가 열렸다. 한 달여에 걸쳐 진행된 중세학교는 역사, 문화, 시각예술, 철학 등 각 분야 국내 최고의 중세 전문가들과 함께 ‘왜 21세기에 중세를 알아야 하는가?’라는 움베르트 에코의 질문에 응답하는 마지막 강좌가 열린 6월 22일에는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박승찬 교수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고대철학의 인간관이 중세에 어떻게 수용되고 발전했는지를 알아보며 현대사회를 성찰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박승찬 교수는 중세가 고전문화를 무시하고, 오로지 신학 연구에만 매달렸던 시대가 결코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며 중세에서 맞닥뜨린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또한 고대철학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 위에 세워진 것임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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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 철학, 인간의 보편적 정의에 대한 관심


그리스 시대 초기, 자연철학자들은 ‘인간’보다 ‘생명력’ 자체에 관심을 두었다. 운동 변화를 하는 것, 움직이는 것은 생명력을 지녔고 이것들은 혼을 가진 것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것의 원리는 원자’라고 하면서 영혼이란 정신조차 물체, 즉 유물론적으로 생각할 수 있음을 탄생시켰다. 반면 ‘피타고라스’는 영혼 불멸, 윤회 등을 믿으며 흰옷을 입고, 성교를 금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박승찬 교수는 자연주의 철학자들과 달리,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은 인간 규명에 관심이 있었다며 고대 철학의 인간관을 설명했다. 플라톤이 생각한 ‘인간’은 곧 ‘영혼’이었다. 신을 모독하고, 청년들을 부패시켰다는 누명을 쓴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어 죽음을 선택한 것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플라톤은 ‘윤리적 행위의 주체, 인간 영혼이야말로 진정한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리라의 화음과 같다’고 말했고, 더 나아가 ‘배의 선장’ ‘감옥에 갇힌 죄수’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플라톤에게 가장 이상적인 꿈은 육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죠. 그리고 철학은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순간을 훈련시켜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독배를 마시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이 현대인에게는 다소 이해가 가지 않을 수 있겠지만 그 안에는 영혼의 불멸에 대한 믿음이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가 평생을 가르쳐온 것에 대해 죽음을 앞둔 마지막 훈련의 순간, 그 진리를 증명하지 못한다면 소크라테스의 삶은 의미가 없게 느껴졌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인간이 윤리적 행위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플라톤의 사상은 인간의 영혼에만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아쉬움이 있다. 박승찬 교수는 뒤이어 플라톤에서 더 나아가 영혼과 육체의 결합을 이야기 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에 대해 설명했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나에게는 최고의 친구가 둘 있다. 하나는 진리고, 하나는 플라톤이다.”라고 했을 만큼 플라톤을 존경하고 따랐습니다. 하지만 인간관에 있어서만큼은 그를 비판했어요. 아리스토텔레스는 육체와 영혼으로 활동하는 것이 전인적인 인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혼과 육체는 연결되어 있으며, 이들의 합일관계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데 온 힘을 쏟게 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아픈 동물과 인간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보았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점을 ‘지성’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로써 인간에 대한 잊을 수 없는 정의가 탄생하죠.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다.’ 여기에서 생각할 부분이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적인 인간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죠. 개개인의 각기 다른 특성을 세세히 알게 된다 하더라도 보편적 학문에 적용할 수 없었기에 인간의 고유성과 차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갖지 않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강연의 주제인 중세시대로 넘어가면서 이전까지 나타나지 않았던 개념이 인간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변화를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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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초기, ‘인간’을 넘어 ‘인격’으로


중세 시대에 접어들면서 고대철학의 보편적 인간관을 넘어, 철학자들은 인간의 개별성에 주목하게 된다. 박승찬 교수는  『중세 Ⅰ』에서 심도 있게 다루어지는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상을 예로 들며 강연을 이어갔다.


“삼위일체 이론을 설명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페르소나(페르소나)’, 즉 인격입니다. 이것에 대해 아주 깊이 성찰한 사람이 바로 아우구스티누스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라톤의 사상을 최고의 철학적 사상이라고 받아들이는 신플라톤주의였으나, 인간의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주장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영혼과 육체의 관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체가 된 것이라는, 보다 통일성을 강조하는 쪽으로 파고들었지요. 아우구스티누스를 구성하는 절반의 요소는 그리스도교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는 단어가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 초기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과 같은 표현이 등장합니다. 각각의 개체를 바라보는 생각이 그리스도교 안에 있었던 것이죠. 더불어 육체는 부정적인 게 아니었어요. 영혼을 하나님이 만들었다면, 이 육체와 피조물 등 모든 것들을 창조주가 선한 목적으로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일원으로, 플라톤처럼 육체를 경시할 수 없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중적 상태에 도달합니다. 그 고민이 ‘인격’으로 나타난 것이죠. 그는 인격에서 가장 중요한 게 ‘관계’라고 생각했고, 개인에게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철학적으로 성찰하기 시작한 학자였습니다.”


이는 고대 철학에서 훨씬 나아간 개념인 동시에, 인격이라는 말로 단일 개체를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후 철학자 ‘보이티우스’가 인격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게 된다.


“보이티우스는 그리스도교의 영향으로 개별자에 주목해 ‘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이다.’라고 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한 말의 짝퉁 같죠?(웃음)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이다’는 얼핏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더 이상 보편적 인간에만 관심을 두는 게 아니라, 강의를 듣고 있는 여러분 한 명 한 명이 소중하게 여겨질 수 있는 경험을 보이티우스가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고대로부터 내려온 정의를 조금 더 발전시킨 것이고, 그도 이게 무얼 의미하는지 사실 잘 몰랐습니다. 그저 좀 더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위해 이야기한 것인데, 이 정의가 중세에 계속해서 이어지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가 바뀌는 놀라운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뒤이어 철학자 ‘성 빅토르의 리카르두스’는 새로운 정의를 통해 보이티우스의 정의를 반박한다. 그의 정의에 모순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개별성과 구분되는 교환불가능성이라는 개념을 사용해 인간의 고유한 속성을 더욱 명확히 한 것이다.


“빅토르의 리카르두스는 보이티우스의 정의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다’라는 정의를 삼위일체에 반영하면, ‘세 이성적 본성을 지닌 개별적 실체’라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세 개별적 실체가 하나의 실체라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그는 새로운 정의를 내립니다. ‘위격(인격)은 이성적 본성을 지닌 교환불가능한 실존이다.’라고 말입니다. 철학자들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말을 지어낼까 고민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웃음) ‘무엇’과 ‘누구’를 구분하면서 실체와 구분되는 개인의 존재, 즉 ‘실존’이라 표현했고, ‘개별적’이라는 말을 ‘교환불가능한’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여러분, 교환불가능한 것이 뭘까요? 예를 들어 세월호에 탔던 아이들은 그 부모들에게 무엇으로도, 어떤 보상으로도 교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교환불가능성을 지니는 것은 각각의 인격이 고유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들은 더 이상 교환불가능해집니다. 중세시대의 철학자들은 인간에 관해 이 정도의 성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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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균형 잡힌 인간관으로 현대를 돌아보다


플라톤은 줄곧 서구 철학사의 중심으로 다루어진 인물이다.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렇지 못했다. 박승찬 교수는 본격적으로 중세 철학자들의 인간관을 알아보기 위해, 앞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을 요약해 설명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서양사상사 안에서 잊힌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랍의 철학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운동을 펼쳤습니다. 덕분에 그의 사상이 서구에 역수입돼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죠. 이것을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이라고 부릅니다. 덕분에 12세기부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세상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당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그리스도교와 충돌을 일으키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중세 학자들은 이것이 걱정되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핵심 내용을 강의하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리죠. 새로 알려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들이 그리스도교 세계에 대한 도전으로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1210년, 1215년, 1231년, 1246년까지 계속해서 금지령을 내렸지만 잘 지켜지지 않았어요. 오히려 아리스토텔레스의 효용가능성이 많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결국 1255년에 강의금지령이 풀리게 됩니다. 그때부터 200년간 아리스토텔레스의 시대가 시작됐어요. 당시에는 아무 수식어 없이 ‘철학자가 말하기를’이라고 쓰면 모두 아리스토텔레스를 지칭하는 것일 정도로 서구 철학사의 주도권이 바뀌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아리스토텔레스를 그리스도교를 위협하는 존재라고 생각한 ‘보수적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절대적으로 추앙한 ‘극단적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이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개방적인 태도로 아리스토텔레스를 받아들이고 진리와 멀어진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과감히 수정했던 사람들이 있다.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다.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대표자였고, 그의 제자인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그 태도를 이어받은 철학자였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인간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자신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있고, 행위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기 행위의 지배권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존경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영혼관을 따라가지는 않았죠. 인간은 생물 자체이면서, 육체와 영혼이 통합된 것으로서 윤리적 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을 계속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윤리적 주체로서 올바른 행위를 하려면, 죽음 이후에도 인간의 모든 것들은 머물러야 한다며 단일지성론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만약 죽는 순간, 인간의 모든 게 사라진다면 죽음 이후에도 윤리적 책임을 묻는 그리스도교 또는 여타 종교의 태도가 무의미한 것이 되니까요. 그리고 플라톤처럼 정욕혼, 기개혼, 이성혼 등으로 영혼을 나누어 이야기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반대론을 펼쳤습니다. 인간이 여러 영혼으로 나뉜다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영혼을 통합된 단일체로 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퀴나스는 영혼이 활동을 하는 공적 기관이면서도 지적인 활동에서는 기관으로서의 육신을 반드시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육신이 없어진 이후에도 생존하는 인간 영혼의 특권을 주장했다. 따라서 그는 영혼이 실체적 형상이라는 사실과 실체적인 형상이(영혼이 모든 육신을 가질 수 있다는 인식, 보편적인 인식, 자의식과 같은) 활동을 수행한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독자적인 존재를 가짐을 지적했다. 지성적 영혼은 순수한 형상인 만큼 위에서 언급한 영혼의 활동들에 있어 육체의 기관들에 예속되지 않으며, 존재론적인 독립성을 유지하고, 지성적 영혼이 육체와 함께 부패된다는 사실을 배제했다.
- 『중세 Ⅲ』 395쪽

 

토마스 아퀴나스는 통합적인 인간관을 바탕으로 물질적인 영혼관을 극복한 것이다. 또 영혼과 인간을 동일시하는 플라톤의 영혼관을 비판하며, 인간을 윤리적 주체이자 유일한 영혼을 가진 존재라고 생각했다. 박승찬 교수는 토마스 아퀴나스를 포함한 중세의 인간관을 통해 현대의 인간을 다시 생각하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갖기를 바란다는 뜻을 전하며 강연을 마쳤다.


“우리는 남에게 의존하거나 끌려가서 갈가리 찢어지는 존재, 감각의 다발이 아니라 통일된 하나의 전체로서 스스로 삶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중세의 인간관으로부터 이러한 뜻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중세 철학의 주장을 그대로 답습하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보화가 있다면 그걸 확장하여, 인류 전체의 문화유산으로부터 지혜를 얻어내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만 더 강조를 하겠습니다.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현세적인 것 같습니다. 육체적 힐링, 행복 등 삶의 모든 것이 현세에 맞춰져 있어요. 중세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과연, 그게 전부인가요? 현세에서 이룰 수 있는 것을 넘어서서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것은 없을까요?’ 이 질문의 답은 토마스 아퀴나스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모두 인격이란 개념 안에서 누구에게도 대체될 수 없는 소중한 개인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꼭 안아주면서 이렇게 말해보세요. ”이 교환불가능한 자야! (웃음)“ 사랑하는 이와 함께 인간의 고유성, 교환불가능성, 인격의 소중함을 나누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2016년 2월 19일, 움베르트 에코는 별세했지만 4,000쪽이 넘는 『중세』 시리즈를 통해 우리에게 중세의 진정한 정수를 남겼다. 6월 말, 『중세 Ⅳ』 출간을 끝으로, 국내 중세 전문가들의 철저한 감수가 이루어진 중세 컬렉션이 완간되었다. 이제 국내에서도 움베르트 에코의 중세』 시리즈를 모두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중세 컬렉션움베르토 에코 편/박승찬, 차용구 감수/최병진, 김효정 역 외 2명 | 시공사
중세에 대한 우리의 오해와 편견들을 깨고 그 시대가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지, 우리 시대와는 무엇이 다른지를 역사, 철학, 과학과 기술, 문학과 연극, 시각예술, 음악 분야로 나누어 증명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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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움베르토 에코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처락 #인격 #종교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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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

2018.07.08

책이 아니라 백과사전, 가독성 제로, 다읽기에 시간이 아까운듯, 중세관련서적 쓰거나 영화찍을 거 아니면 안보는게 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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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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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

철학자이자 기호학자 및 소설가. 1975년부터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로 건축학, 기호학, 미학 등을 강의했다. 유럽과 미국의 여러 대학에서 총 42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예 훈장을 받았다. 유럽 문명의 역사를 다룬 멀티미디어 백과사전 엔사이클로미디어Encyclomedia를 기획, 제작했다. 에코의 이름을 알린 소설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국에 번역돼 3천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이 소설로 프랑스 메디치 상을 비롯해 각종 문학상을 휩쓸며 세계적 작가로 발돋움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학문적 출발점은 철학이었다. 토리노 대학에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볼로냐 대학에서 기호학 교수가 되었고, 『일반 기호학 이론』, 『구조의 부재』 등 기호학 분야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책을 펴냈다. 소설가이자 학자로서 그는 스스로를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진지한 철학자’라고 생각했고, 자신의 백과사전적 지식을 분야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펼쳤다. 작품으로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과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 , 이론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미학의 문제』, 『대중의 슈퍼맨(대중문화의 이데올로기)』, 『논문 잘 쓰는 방법』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