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른 살. 여성. 미혼의 편집자다. 굳이 이렇게까지 밝힐 필요 없는데 왜 내가 이 이야길 하냐면 이십대 후반부터 줄곧 이어진 소개팅에서 혹은 엄친딸의 자랑을 듣는 자리에서 엄마 친구가 그다음으로 나에게 시선을 돌려 무슨 일하냐고 묻는 질문에 답하면 이어지는 질문은 그래서 출판사에서 정확히 무슨 일을 하냐고다. 몇 년째 말하면 답하는 스킬이 늘 것도 같지만 여전히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어떻게 이해를 시켜야 할지 더듬거리기만 한다. 사실 그 더듬거림에는 괜찮은 여성으로 보이고 싶은 마음과 엄마 자존심을 세워주는 좀 더 있어 보이는 단어를 고르는 시간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남의 시선 신경 많이 쓰며 살았다. 머리가 길어 나이 들어 보인단 친구의 말에 충동적으로 머리를 자르기도 해보고, 손이 안 예쁘단 다른 사람의 말에 네일샵에서 꾸준히 손톱 관리도 받아봤다. 그뿐인가? 일할 때는 어떤가. 제목 하나 지을 때마다 카피의 토씨 하나 바꿀 때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의견을 묻고 내 취향 아닌데,라는 대답이 돌아오면 그럼 다른 걸로 바꿀까 하는 마음이 일어난다. 취향 그거 참 다양한데. 꼭 다른 사람 의견에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데. 그건 네 취향이거니 하고 존중하면 그만인데, 남을 신경 쓰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건지. 나는 마감 때까지 전전긍긍하며 다른 사람 의견을 살핀다. 물론 겉으로는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는 양, 네 의견에 흔들린 게 아니라 난 다른 사람의 의견에 귀를 잘 기울이는 사람이야라는 듯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무튼 오후 2시 지금도 남의 시선 신경 쓰느라 밀려오는 잠을 숨기고 새어나오는 하품을 참아가며 키보드를 치고 있다. 졸리면 살짝 눈을 감을 수도 있고, 피곤하면 일어나서 스트레칭을 할 수도 있는데. 그 남의 시선이 뭔지. 내게 집중되는 여러 개의 눈을 피해. 이렇게 몰래 잠을 참아가고 있는 것이다. 한 번뿐인 인생. 내 맘대로 살아도 부족한데. 매 순간 이렇게 남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내 취향일랑 저 멀리 던져버리고 내 마음일랑 저 깊이 숨겨버리고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답답하고 갑갑하고 여기가 어디 내가 누구하는 멘탈 붕괴에 상황이 오는데 그때쯤이 퇴근 시간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또 내가 뭘했나 싶다가 사는 게 다 그렇지 뭐라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해보지만 머릿속으로는 슬그머니 이 사회의 틀에 반항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밀려 나오는 것이다.
이때쯤 꺼내든 원고가 있었으니 바로 『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 였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은 저자는 나와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으면서도 유연하고 균형 있게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나답게’를 잃지 않고 ‘부지런하게’를 외치지 않으며 다른 사람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적당히 즐거울 정도로 살고 있었다. 여기서 ‘적당히 즐거울 정도’가 포인트다. 너무 즐겁게 살고 있었다면 난 아마 이 원고에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적당히’가 현실적이어서 하루하루 내 삶에 포개질 수 있을 정도로 합리적이어서 그래서 이 원고가 좋았다.
그래서 또 나는 이 책을 읽으면 아마 사회의 틀에서 살고 있는 무료한 당신에게 반짝, 하고 힘을 주지는 못해도 적어도 나다운 게 뭔가라는 생각은 하게 해줄 거라고, 아니 적당히 즐거운 방법을 찾는 힌트는 줄 거라고, 그것도 아니라면 심심한 당신의 시간을 조금은 즐겁게 채워줄 것이라고 얘기하는 책팔이 편집자가 되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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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내키는 대로 산다이유미 저 | MY
우리가 다르지 않은 삶 아래에서 남들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나다운 게 뭔지 잊었다면 지금부터는 내키는 대로 하고 살라고, 그게 안되면 그러고 싶어하며 살면 되는 것이라고 툭툭 힘을 보태준다.
김경애(흐름출판사 편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