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호텔 파라다이스』 에는 작가가 인도, 네팔,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수집한 기억들이 담겨 있다. 입에 맞지 않는 음식과 낡고 열악한 시설, 속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시달리며 어렵사리 도착한 사막에서 맞이한 경이로운 평화가 그를 계속 여행하게 한 것이다. 광활한 벌판 위 무수한 별빛 아래 스스로 모래알이 되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잠들 수 있었던 그 밤은 많은 것들이 무서운 속도로 변해 가는 지금, 진실한 여행의 무게에 대해 말해야만 하는 이유가 되었다.
몇 장의 그림에서 발아한 『호텔 파라다이스』 의 아이디어가 한 권의 그림책으로 탄생하기까지는 3년여의 시간이 필요했다.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탄생한 이 그림책은 이제 탐스러운 과육을 입고 독자들에게 건네진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배낭을 꾸린다. 그의 새로운 여행 또한 서로의 신에게 건네는 인사로 시작될 것이다.
『호텔 파라다이스』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보통 그림책들보다 긴 이야기이고, 그림 한 장 한 장의 밀도도 무척 높아서 한동안 몰입하셨을 것 같아요. 완성된 책을 받아들었을 때 소감이 어떠셨어요?
길고 긴 산통 끝에 새 생명을 받아든 기분이었어요. 상투적인 말이긴 하지만 이 표현은 저에게도 절절하게 와 닿네요. 특히 이번 그림책은 장편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저로선 많은 노동력이 들어간 작업이라 감회가 남달랐어요. 일반 그림책의 두 배인 6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고 펜선 작업을 마무리하는 데만 일 년 반의 시간을 썼어요. 나머지는 채색과 원고작업으로 총 삼 년의 시간 끝에 출간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인쇄감리를 보기 위해 인쇄소에서 함께 밤을 지새우고, 디자인 작업을 멋지게 해주신 편집부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드려요. 후련함도 잠시, 앞으로 이 책을 어떻게 알리고 잘 키워나갈지에 대해 출판사와 함께 고민해야 하겠지요.
지금까지 작가님의 그림은 주로 선이나 색을 여러 겹 쌓아올려서 독특한 느낌을 주었었는데, 『호텔 파라다이스』 의 그림을 보면 채색 방법이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어떤 변화를 주셨는지,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인지,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채색을 수채화나 컬러 잉크 등 수작업 방식으로 고민하고 있었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컴퓨터 작업을 제안하시더군요. 어차피 디지털작업도 배워둘 생각이어서 이번 기회에 시도해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포토샵으로 채색을 시작했어요.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에서 기법을 찾아가며 독학으로 컬러링을 하는 과정은 온통 초보자의 실수로 점철된 길이었지요. 일례로, 가장 큰 실수는 디지털 작업을 모두 RGB로 했다는 거예요. 출판 인쇄를 위해선 CMYK 모드로 작업을 하는 게 기본이거든요. 나중에 CMYK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색보정이 쉽지 않아서 원하는 색을 구현하는데 엄청 애를 먹었어요. 결국 처음부터 하나하나 레이어마다 색보정을 다시 하는 방법밖에 없었지요. 하던 대로 수작업을 할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어요. 결과적으로, 디지털의 가볍고 화려한 색채와 수작업으로 깊이를 쌓은 펜선 작업이 잘 어우러져 저로선 만족스럽습니다.
여행이라는, 우리들에게 친숙한 주제를 가지고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전해 주셨어요. 이 이야기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저는 한국에서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직후에 대학에 들어간 세대예요.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 처음으로 배낭여행을 간 곳은 인도였어요. 한국인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이 가장 큰 나라가 인도라고 하더군요. 온통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더러움과 아름다움, 문명의 숭고함이 공존하는 신비한 나라였어요. 그 후로 저는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까지도 여행은 제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어요. 어떤 여건이어도 거의 매년 다른 나라로 여행을 계획하고 다녀오고 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류전체를 보자면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해요. 그만큼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생을 마감하는 삶을 살아가요. 이 그림책은 여행자로서 순수한 자연과 원주민들의 삶을 해치지 않는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호텔 파라다이스』 는 전작 『레스토랑 Sal』 과 나란히 읽히는 지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을 의도하셨는지, 두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놓고 읽으면 좋을지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레스토랑 Sal』 은 화려한 요리를 통해 인간이 무분별하게 희생시키고 있는 생명들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판타지예요. 어떤 상태의 생명들을 먹고 있는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지요. 『호텔 파라다이스』 는 자본의 논리로 인간이 인간에게 끼치는 해악과 약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여행지와 휴가지는 결국 어느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을 거예요. 과거 누군가의 보금자리였으며, 지상낙원이었겠지요. 『호텔 파라다이스』 의 화려한 표지를 보고 즐거운 여행과 신나는 모험이 펼쳐질 거란 생각에 책을 집어든 독자라면 예기치 못한 반전에 마음이 무거워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레스토랑 Sal』 만큼 충격적이지는 않은, 안전한 방식의 결말입니다. 두 책 모두 현대인들이 당연하게 누리는 소비문화가 무엇으로 만들어진 신기루인가를 저만의 방식으로 얘기해 보고 싶었습니다.
최근에 전작 『콤비combi』 가 스페인에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또 올해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작으로 선정되기도 했죠. 작품이 다른 나라의 독자들이나 관람자들과 만나게 되는 것을 보는 느낌은 어떠신가요?
저의 작업은 늘 경계에 서있다고 생각해요. 『콤비combi』 는 순수미술가로서 활동하던 저와 출판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해온 또 다른 제가 만나 결합된 그림책이자 드로잉 화집이예요. 유럽의 경우는 그림책을 예술품으로서 감상하고 소장하는 문화가 있어서 다양한 독자층이 있어요. 스페인 출판사들이 관심을 보인 걸 보면 저와 어떤 부분에서 연결되는 감성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하지만 이 작업이 만들어진 사회적인 배경과 면지에 들어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인간의 이상향을 품고 있다는 걸 그들이 이해할 수는 없었겠지요. 스페인 출판사는 그로테스크하고 SF적인 느낌을 오히려 더 잘 살려낸 듯합니다. 책이라는 것은 결국 독자의 해석과 상상력이 완성해 가는 것이니까요.
오는 9월7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의 전시 주제는 ‘상상된 경계들’인데 이는 지정학적 경계를 넘어 정치, 경제, 심리, 감정, 세대 간의 경계 없음을 표현하고 있어요. 『콤비combi』 에서 인류와 비인류의 경계 없음이 전시 주제에 부합하는 내용이라 출품작으로 선정된 듯합니다. 아마도 그림책의 원화가 현대미술 비엔날레에 출품되는 일은 처음일 거예요. 그림책 작가들의 상상력이 틀 안에 머물지 말고 다양한 매체로 움직여 나아가길 바랍니다.
오랫동안 그림책 작업을 해 오셨고, 굵직한 작품들이 이제 꽤 쌓였습니다. 이쯤에서 작가의 감회가 어떨지 궁금합니다. 이 길을 같이 걷는 동료들이라든지, 그림책을 기꺼이 즐기는 어른 독자들을 만날 때 애틋한 마음이 들 것도 같은데, 혹시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그림책은 아직까지 한국에서는 ‘어린이책’이라는 인식이 강해서 청소년과 성인 독자층이 많이 형성되어 있지 않아요. 한국에서 아동코너를 벗어난 그림책은 현실적으로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지요. 저 또한 그림책으로서 어린이 독자뿐 아니라 청소년, 성인, 노인층까지 전 연령의 독자들을 만나고 싶지만 아직은 시기상조가 아닌가 생각해요. 주변 작가들의 격려와 소수의 독자들이 알아봐주는 것만으로도 감개무량합니다. 그림책의 독자층이 다양해져야만 저같이 낯선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도 계속 작업을 이어갈 수 있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장르로 발전해 나갈 수 있어요. 그림책 인문학 강연들과 행사들이 활성화되어 여러 연령대의 독자층이 생겨나길 바라고 있고 저 또한 이를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태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소윤경 작가의 파라다이스는 무엇인가요?
재미난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리는 일상이 저에겐 파라다이스이지요. 정원을 가꾸는 일도 텃밭에서 자라는 채소들로 소박한 한 끼를 차려 먹는 것도 오래전부터 꿈꿔오던 저만의 파라다이스였어요. 가끔은 배낭을 꾸려 신비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면 그 길이 곧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이예요. 굳이 시간과 경비를 크게 들이지 않고도 여행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참 많아요. 그중 책은 손만 뻗으면 되는 저의 가장 가까운 파라다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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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파라다이스소윤경 저 | 문학동네
본이 건설해 놓은 인공의 낙원 바깥에 마구잡이로 적재된 욕망의 폐기물과 그 틈에서 계속 살아가야만 하는 수많은 삶들. 엄연히 그곳에 있지만 가려졌던 이야기와 막막한 의문이 귓전을 두드린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
찻잎미경
201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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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작가님은 파라다이스를 이룩한 분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