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사람을 위한 초간단 뇌과학
중독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변연계가 중요합니다. 변연계는 사랑, 질투, 분노, 행복, 흥분, 공포, 기쁨, 욕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는 곳이기에 ‘감정의 뇌’라고 하지요.
글ㆍ사진 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2018.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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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에 수면과 스마트폰에 대해 썼습니다. 요즘 부모님들은 스마트폰과 게임에 대해 걱정이 많죠. 주로 이런 것들에 “중독”이 되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입니다. 그런데 “중독”이 정확히 뭔가요? 안 그런 분야가 있을까 싶지만 중독 현상에 대해서는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지식이 쌓입니다. 분명한 것은 중독은 술이나 담배든, 마약이든, 스마트폰이나 게임이든 모두 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란 겁니다. 그래서 뇌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갖고 있으면 훨씬 이해하기 쉽습니다. 뇌는 상당히 복잡한 장기지만 최대한 간단하게 알아봅시다.

 

뇌는 무슨 일을 하나요? 생각하고, 판단하고, 계산하고, 기억하고, 상상하지요. ‘머리가 좋다’라든지 ‘머리를 써라!’는 표현은 이렇게 고차원적인 사고기능이 뇌에서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감각이나 운동도 뇌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하얗고, 실바람이 불어 오는 것은 모두 뇌에서 알아차리는 겁니다. 기막힌 슛을 날려 공을 골인시키거나, 그냥 서 있기도 힘든 빙판에서 높이 뛰어올라 멋진 트리플 악셀을 성공시키는 것도 다리가 아니라 뇌입니다. 사실 심장이 뛰고, 숨을 쉬고, 체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도 모두 뇌에서 하는 일입니다. 우리 몸 자체가 뇌에서 내리는 명령을 수행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지만 아주 일리가 없는 말도 아닙니다.

 

뇌는 어떻게 이런 일을 할까요? 우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뇌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만큼 기가 막히게 복잡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한 개의 신경세포, 즉 뇌세포에서 출발합니다. 신경세포를 뉴런(neuron)이라고 하는데, 뇌 속에는 약 1천억 개의 뉴런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뉴런 자체가 무슨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뇌의 기능은 뉴런과 뉴런 사이의 연결에서 나옵니다. 배가 고프다는 걸 느끼고, 라면을 먹을지 떡볶이를 먹을지 결정하고, 음식이 너무 뜨겁다고 판단하여 후후 불고, 입으로 가져가 씹어 삼키고, 음식값을 계산하고, 시계를 보고, 약속에 늦었다는 걸 깨닫고, 급히 가방을 집어 들고, 약속 장소까지 뛰어가는 것이 모두 정해진 뉴런들이 정해진 순서로 연결되어야 가능합니다. 뉴런과 뉴런이 연결되는 곳을 시냅스(synapse)라고 합니다. 뇌 속에 있는 시냅스는 수조 개에 이릅니다. 뉴런 한 개가 동시에 수천 개의 다른 뉴런과 시냅스를 통해 신호를 주고 받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머리 속에 슈퍼컴퓨터를 한 대씩 가지고 다니는 셈입니다. 그림을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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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뇌는 크게 대뇌, 소뇌, 변연계, 뇌간 등 4부분으로 나눕니다. 그림에서 중뇌, 뇌교, 연수를 합쳐 뇌간이라고 하고, 시상, 시상하부, 편도체, 해마를 합쳐 변연계라고 합니다.

 

뇌간은 생명을 유지합니다. 즉 의식이 깨어있게 해주고 호흡 및 심박동, 혈압을 유지합니다. 대뇌나 소뇌는 어느 정도 손상되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뇌간의 심한 손상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대뇌나 소뇌의 기능은 마비되었으나 뇌간의 기능은 남아 호흡과 심박동이 유지되는 경우를 ‘식물인간’, 뇌간마저 손상되어 인공호흡기를 떼면 곧 죽는 경우를 ‘뇌사(腦死)’라고 합니다. 한편, 소뇌는 움직임, 자세, 몸의 균형을 조절해줍니다.

 

중독 현상을 이해하는 데는 변연계가 중요합니다. 변연계는 사랑, 질투, 분노, 행복, 흥분, 공포, 기쁨, 욕망 등 온갖 감정을 느끼는 곳이기에 ‘감정의 뇌’라고 하지요. 주로 어떤 행동이나 경험을 했을 때 기분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를 기억합니다. 어떤 방식으로 기억할까요? ‘기분이 좋다’는 것도 뇌에서 느끼는 감정입니다. 뇌에서 기분이 좋다고 느끼는 부위를 쾌락중추라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자극은 예상보다 기분이 더 많이 좋은 경우가 있어요. 뇌는 이런 자극을 특별히 소중하게 생각하여 따로 잘 기억해둡니다. 여기 관련된 부위를 보상중추라고 합니다. 보상중추를 자극하는 것은 도파민(dopamine)이란 물질입니다.

 

저는 콜라를 처음 마셨던 때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차가운 병에 맺힌 물방울, 병마개를 땄을 때 나던 경쾌한 뻥! 소리, 컵에 따를 때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솟아오르다 꺼지던 수많은 기포들, 한 모금 마셨을 때 달콤하고 시원하고 알싸하고 짜릿하게 입안과 목구멍을 자극하던 희한한 맛… 뭔가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 순간 뇌 속에서는 도파민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을 겁니다. 그리고 보상중추에게 “야! 이건 대단하다. 아주 중요한 거니까 잘 기억해 둬야 해!”라고 말했을 테지요. 그 뒤로는 콜라병만 봐도, TV 광고에서 병마개 따는 소리만 나도, 날씨가 조금만 더워도 콜라 생각이 납니다. 그때마다 도파민이 보상중추를 자극한 거지요.

 

한때는 도파민이 쾌락중추를 자극하여 기분을 좋게 해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도파민은 일부 쾌락에도 관여하지만 주 역할은 보상중추를 자극하여 갈망을 일으킵니다. 어떤 행동을 하도록 동기를 제공하는 거지요. 배고프면 음식을 먹고, 섹스를 하여 자손을 낳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며 친목을 다지는 등 생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은 모두 도파민과 보상중추의 작용에 의해 그런 일을 하면 기분이 좋다고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그 행동을 학습하게 되는 거죠. 쾌락중추와 보상중추는 모두 변연계에 있습니다. 그러니 변연계는 감정을 통해 생존에 꼭 필요한 행동을 학습시키는 곳이라고 정리해둡시다.

 

대뇌는 언어, 추상적 사고, 시각과 청각, 문제해결, 기억, 주의집중 등의 기능을 수행합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은 대뇌가 발달한 덕에 생긴 거지요. 주목할 것은 대뇌의 전전두엽 피질(prefrontal cortex)이라는 부위입니다. 이곳은 주어진 정보를 종합하여 판단을 내리고 일을 계획하는 곳입니다. 변연계에서 강한 감정을 바탕으로 어떤 행동을 해야겠다는 충동이 들 때 상황을 파악하고, 위험을 평가하고,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예측하여 그 행동을 할지 말지 결정합니다. 그래서 전전두엽 피질을 ‘뇌의 최고경영자(CEO)’라고 합니다. 모든 정보를 종합해서 최종 판단을 내린다는 거죠. 한마디로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것은 전전두엽 피질 덕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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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철(소아청소년과 전문의,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대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소아과 전문의가 되었다. 2005년 영국 왕립소아과학회의 ‘베이직 스페셜리스트Basic Specialist’ 자격을 취득했다.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살고 있다. 도서출판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의 대표이기도 하다. 옮긴 책으로 《원전, 죽음의 유혹》《살인단백질 이야기》《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존스 홉킨스도 위험한 병원이었다》《제약회사들은 어떻게 우리 주머니를 털었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