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톤 프로젝트 “솔직한 감정을 실었는지 항상 고민해요”
기술로 만든 음악이 있고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서 나온 음악이 있어요. 그렇게 감정을 담아 솔직하게 만든 곡이 듣는 분들에게 가장 전달이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글ㆍ사진 정의정
2018.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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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팠고, 모든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다른 계절의 바람이 불어오기를 기다렸습니다.
- 프롤로그 중


에세이는 좀 부담스러워요, 인터뷰 전 웃으면서 차세정이 말했다. 에피톤 프로젝트라는 이름과 차세정 사이, 작가라는 호칭과 에세이라는 단어를 부담스러워하는 그가 있었다. 에피톤 프로젝트는 토이와 015B의 뒤를 잇는 차세정 작곡가의 1인 밴드다. 한희정, 심규선, 선우정아 등의 쟁쟁한 객원보컬과 함께 두터운 마니아층을 형성한 에피톤 프로젝트는 '봄날, 벚꽃 그리고 너' 등 보컬이 없는 연주곡으로도 유명하다.


『마음속의 단어들』 은 에피톤 프로젝트의 솔직한 모습을 담은 에세이집이다. 신비주의는 아니었지만 노출을 꺼리는 편이었다. 에피톤 프로젝트 앨범 뒷면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은, 그의 일상을 담은  『마음속의 단어들』 이 반가울 법 하다. 동명의 앨범을 준비하기 위해 떠났던 런던과 파리에서 산책하고 곡을 만들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일기장을 훔쳐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감정의 물기’가 어린,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지우고 고쳐 쓴 마음속의 단어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앨범 속 가사와 함께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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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에는 담을 수 없는 텍스트


에피톤 프로젝트 이름으로 낸 첫 에세이에요.

 

에세이라는 단어가 아직 저에게는 좀 무거워요. 개인의 철학이 들어가야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아직은 그 정도의 철학이 없는 사람이라서요. 에세이보다는 경수필이라고 부르면 좋을 것 같아요. 공연 때 글을 쓴다고 말했던 게 커져서 책을 낸다는 이야기로 전해졌어요. 뱉은 말을 지켜야 하니까 앨범을 준비하는 중간중간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기록을 남기려고 했어요.


<마음 속의 단어들> 전 마지막으로 낸 앨범이 4년 전 <각자의 방>이었어요. 슬럼프에 빠진 기간었을까요? 가벼운 마음으로 썼다고 해도 글을 많이 고쳤을 것 같고요.


음반도 이제 정규로 넉 장째예요. 처음 음반 냈을 때는 그렇게 마음이 무겁진 않았는데, 모르는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감정을 느끼는 일이 누적되다 보니까 뭘 하나 하더라도 스스로 조심스러워지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낸다고 이야기까지 했으니, 아무래도 수정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어요. 단어 하나가 생각이 안 나면 빈칸으로 놓고 대체할 만한 어휘를 찾고, 고민이 많았죠. 가사 쓸 때도 비슷한 맥락인데, 산문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오해할 여지가 더 많다는 생각도 들고요. 하다못해 표지 고르는 것도 오래 걸렸어요.


파리에서 이병률 시인을 만난 이야기가 나와요. 이병률 시인 소개로 달 출판사와 만나게 됐나요?


여행을 주제로 한 북토크 행사에 이병률 시인과 같이 나온 적이 있어요. 제가 런던으로 갈 때 마침 파리로 가신다고 얘기를 들어서 연락 드렸더니 파리 오스터리츠 역에서부터 기차 타고 오는 방법을 보내주시더라고요. 하루 뵙고 신세를 졌는데 글을 쓰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달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좋겠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출간 소식을 알리는 인스타그램에 ‘일기장을 몰래 보는 기분’이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나름 오랜 시간 수정을 해서 초고를 보냈을 때, 출판사에서 사소한 개똥철학이라도 개인의 의견이나 감정이 들어가는 게 좋다고 하셔서 조금 더 개인적인 감정을 넣었어요. 어쨌든 책을 읽는 분들이 음반과 하나의 유기체로, 음반에는 담을 수 없는 텍스트가 담겨 있다고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댓글처럼, 일기의 담백함이 묻어나오더라고요.


제가 미사여구를 잘 쓰는 사람은 못 돼요. 어차피 방백이니까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어제 북토크를 했었어요.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이 오셔서 기분이 이상했어요. 제가 혼잣말로 살다 보니까 별걸 다 한다고 했었죠. 제가 이런 북토크를 할 사람이 아닌데 평일 저녁에 제 음악을 좋아하고 제 글을 좋아해 주신다는 많은 분이 모인 걸 보니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고요.

 

 

에피톤 프로젝트의 처음 느낌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에서도 계속 사랑이 나오지만, 책 속에서 사랑을 말하면 더 개인적인 일이라고 받아들여지거든요. 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음악과는 다른 결로 드러난 것 같아요.


런던에 스튜디오를 구하고 어떤 날은 비 오는 것만 종일 찍었어요. 멍 때린다고 하죠. 그러다가 착안한 게 있으면 조금씩 적는 거죠. 뭔가가 음악으로 오는지 글로 오는지는 그날의 분위기마다 다른데, 작업하면서 두 개의 텐션을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 옛 기억을 꺼내서 더듬고 헤집어야 할 때도 있었고, 지금도 사실 괜히 썼나 싶은 부분도 조금 있어요.

 

항상 창작자는 글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표현해낼 방법을 고민하죠.


도구에 대한 고민을 항상 해요. 글 쓸 때도 기기를 바꾸면서 했었어요. 워드는 호환이 되니까 노트북에서 쓰다가 핸드폰에서 쓰기도 하고요. 특히 음악 쪽은 유행이 빠르거든요. 어쨌든 저는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니까 대중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요. 질문과 논외의 이야기지만 장르적으로 강요당할 때가 있어요. 외부에서 작업이 들어오면 정해진 스타일로 해달라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런 스트레스를 힙합이나 EDM을 만들면서 반대로 풀어요. 제 음악은 주로 템포 120 이하의 느린 음악이지만 드럼 머신 같은 장비도 작업실에 놔둬요. 감각을 유지하려고 그런 걸 쓰는 것 같아요. 막상 비트 만들고 나면 제가 랩은 못 하니까 다시 발라드로 오죠. 분위기 전환이랄까요.


슬럼프에 빠져 음악 기기에 집착하던 때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이번 앨범에서는 욕심을 버리고 예전 느낌으로 가보고 싶었다고요.


한창 장비 병이라고 불리는 증상이 있었어요. 특히 노래가 너무 안 써져서 힘들어할 때 하이 엔드 장비에 대한 집착이 있었죠. 주변 지인이 작업실에 놀러 와서 제가 예전에 만들었던 느낌이 더 좋다고 하더라고요. 저의 예전 느낌이 뭘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번 앨범은 제 처음 느낌을 많이 강조했던 것 같아요.


직접 찍은 사진도 책에 실렸어요.


런던에서 제 몸에 항상 붙어있던 게 카메라였어요. 늘 매고 다녔더니 허리가 안 좋아지기도 했어요.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를 만들 때는 프라하에서 빈까지 보름 정도 짧은 여행을 했었는데, 항상 여행한 도시에서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앨범은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의 심화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스튜디오도 구하고 카메라를 항상 들고 다니면서 제가 있는 모든 순간을 기록하려고 노력했어요.


글과 음악과 사진 중에는, 사진이 제일 마음 편한 창작 방법인가요?


글쎄요. 셋 다 녹록하진 않아요. 사진은 막 찍을 순 있는데 만족이 어려운 것 같아요. 잘 찍으시는 분이야 핸드폰으로 찍어도 잘 찍으시겠지만 순간을 담아내는 작업이 너무 어렵고, 모두 만만한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비해 자기 기대치가 높은 편인가요? 흔히들 완벽주의라고 불리는 성향이 있나 해서요.


자기 걸 하면 그럴 수밖에 없어요. <긴 여행의 시작>을 내고 아마추어리즘적이라는 댓글이 달린 적이 있어요. 그 순간 ‘그럼 네가 해봐’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열이 조금 받은 거죠. (웃음) 그때부터 더 기술적인 면으로 파고들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두고 보자는 마음도 있었고요. 커피를 레드불과 섞어먹어 가면서 엔지니어와 만든 앨범이 <유실물보관소>였어요. 하지만 이번 앨범 만들면서는 그렇게 날을 세우면서까지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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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사랑이다


책에 은근 싫어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많아요. 고구마튀김, 좀비, 단 거 등등요.


까탈스럽죠.


까탈스럽다고 표현하는군요. 저는 호불호가 분명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아하는 게 많아야 하는데, 싫어하는 게 많다고 적어놨군요. 모난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사실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요. 그냥 그런 점을 적어놓은 거죠. 좀비는 정말 끔찍해 해요. 누가 <워킹데드>를 추천해주길래 봤는데 도저히 못 보겠더라고요.


왜 싫어한다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냐면, ‘밤은 밤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1은 1이다’라는 문장도 많았거든요. 어떤 개념은 그 단어 그대로 봐야 한다는 마음과, 내가 싫어하는 것은 이런 것이라는 문장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이라는 낱말에 이런저런 많은 미사여구를 붙일 수도 있겠죠. 그냥 본질은 사랑인데, 화려한 미사여구를 쓴다거나 붙이고 싶지 않았어요. 제 성격 자체가 그렇기도 하고요. 저는 단순한 게 때로는 명쾌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사랑은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게 조금은 싫었어요. 사랑은 사랑이지 왜 포장하려 하냐는 생각 때문에 그런 문장을 썼던 것 같아요. 사랑은, 사랑이죠.


인터뷰를 힘들어하는 성정도 그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이미 작품으로 이야기했고 그 이후 말을 보태기 힘든 느낌이 들 때가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저는 독자들이 더 듣고 싶어 한다고 이해했어요. 음반을 통해 다 담지 못했던 이야기를 책에 넣으려고 했고, 좋아해주시면 사실은 감사하죠.


흔히 에피톤 프로젝트를 ‘1인 그룹’이라고 표현해요. 요즘은 흔히 1인 크리에이터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에피톤 프로젝트도 그 당시 그런 단어가 없었다뿐이지 1인 크리에이터의 개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그런 성향이 있어요.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고 내성적이에요.


하지만 이제는 합주도 하고, 책을 내면서 출판사 사람들과 같이 작업하는 등 협업이 점점 늘어났잖아요.


지금도 이런 성격이지만 제가 먼저 인사를 받거나 건네야 할 때가 생기고,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녹음실에 가면 한정된 시간 내에서 최대한 집중해서 뭘 해내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녹음실 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태도를 가르쳐주기도 하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출판업계 계신 분까지 만나서 일을 하게 됐는데, 열심히 살아야죠. “잘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하면서요.


다른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신가 봐요.


그렇진 않아요. 도움받을 때는 받아야 하죠. 연주자, 조명팀, 영상 팀, 무대 팀과 같이 공연을 하다 보니 배우게 됐어요.


혼자서 작업했던 10년 전과 지금의 환경은 많이 달라졌나요?


회사와 미팅하다가 제가 유튜버가 되어야 할지 물어본 적이 있어요. 미디어가 너무 많아지고 세상이 달라졌으니 저도 적응해야 할 텐데, 어떤 식으로 맞춰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요새는 참 번뜩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음악하는 사람으로 아까운 건 크리에이팅이라는 범주에 음악이 흡수될까 봐 아쉬워요. 저는 어쨌든 음악이라는 가치가 소중한데, 환경에 발맞춰 살아야 하면서도 이렇게 재밌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음악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도 되고요.


책에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담겨 있어요. 음악가는 진심을 전해야 한다고요. 진심이라는 게 뭘까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은 아마 그냥 알 거예요. 기술로 만든 음악이 있고 자기 안에 있는 감정을 있는 대로 끄집어내서 나온 음악이 있어요. 저도 이게 정말 내 감정이 맞아? 솔직한 내 감정이 맞아? 하면서 끄집어져 나오는 감정을 그대로 실었는지 항상 고민해요. 그렇게 감정을 담아 솔직하게 만든 곡이 듣는 분들에게 가장 전달이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에피톤 프로젝트를 떠올리면 ‘감성’의 대표주자예요.


요즘은 ‘걤성’이라고 많이들 하죠. (웃음) 감성을 조롱하는 듯한 말투로요. 하지만 이건 시류고 분위기인 것 같아요. 트렌드는 거스를 수가 없잖아요. 저는 요새 사람들이 솔직한 마음을 드러내기 겁내는 것 같아요. 슬프면 슬프다, 좋으면 좋다고 이야기하면 되는데 말을 못하는 것 같고요.


자기 감정을 말하지 못 하는 사람들이 에피톤 프로젝트의 음악으로 대신 울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렇게 느껴주시면 감사하죠. 어쨌든 창작하는 사람은 진심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를 영화관에서 보고 펑펑 울었는데, 그 음악이 지금도 들리잖아요. 영혼까지 넣었기 때문에 ‘보헤미안 랩소디’가 지금까지 들리는 걸 거예요.


작곡하는 사람은 한 곡 정도는 시대에 남는 곡을 만들고 싶어 하죠. 에피톤 프로젝트의 최종목표도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곡을 만드는 것일까요?


최종목표라고 하긴 그렇고, 모든 음악가의 꿈이 아닐까요. 한 세기를 관통하는 곡을 만드는 것?


이번 앨범은 객원 보컬을 쓰지 않고 직접 불렀어요.


본질로 돌아가려는 노력이었죠. 열심히 노래를 부르기는 했는데, 다음번에는 전곡을 다 피처링으로 노래를 할까 싶기도 해요. 음반 하나 내면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들죠.


앨범과 책을 어떻게 듣고 읽어줬으면 하나요?


에피톤 프로젝트 음악을 계속 좋아해 주셨던 분들이 그래도 차세정이 아주 무뎌지지 않았구나, 그래도 아직은 자기 감성과 느낌이 있다고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비록 ‘걤성’으로 불리는 세상일지라도요.


앞으로도 에피톤 프로젝트 이름으로 책이 나올까요?


아뇨. (웃음) 책이 참 어렵더라고요. 음반이랑 같이 나왔는데, 만약 다음에 뭔가 또 쓸 일이 있다면 지금보다 준비 기간이 훨씬 더 길어질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뮤직비디오에 수지 나온 거? 그건 자랑하고 싶네요. (웃음)


 

 

마음속의 단어들에피톤 프로젝트 저 | 달
각자의 마음속에는 어떤 단어들이 머물다 떠나갔으며, 지금은 또 어떤 단어들이 남아 있는지 들여다보았으면 좋겠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마음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모른 척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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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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