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 보다 계속
내가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나의 눈에 든 책을 파는 일에 오래 공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있어야만 하는 책’이 ‘나오면 팔리는 책’으로 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글ㆍ사진 김성광
2018.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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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경험자 일곱 사람과의 인터뷰를 담은 책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를 읽고 있다. 며칠째 들고 다니면서도 페이지를 통 넘기지 못했다. 여덟 살에 큰 사고를 겪은 나영이와 엄마의 이야기가 처음에 나오는데 마음이 찢어진다. 출근길 지하철의 인파 사이에서 혼자 표정을 관리하지 못한 채 책을 펼쳤다 덮었다 반복한다. 차창에는 그저 안타깝다고, 가슴 아프다고 몸을 떠는 내가 비친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라는 제목은 아마도 어떤 동정이나 왜곡된 시각이 아닌, 같은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같은 동료로 바라봐 달라는 외침일 것이다. 그런 책을 들고 있으면서도 나는 ‘사고의 순간’에만 온 감정을 집중하고, 사고 이후 ‘한 사람이 겪는 삶’에 귀 기울이지 못하고 있었다. 제목을 멍하니 바라보다, 어느 순간 죄송스러워졌고, 더디게나마 한 장 한 장 읽고 있다. “나는 그냥 다른 아이들보다 그런 상처가 좀 많을 뿐이잖아.”라는 나영이의 말이 어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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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막연하니까 책을 찾아봤어요. 그때 제가 시간은 많았잖아요. 그런데 화상 환자에 대한 책이 너무 없는 거예요. 어느 병원에서 낸 화상 관련 책이 있긴 한데 거기에는 일반적인 상식 같은 것만 나와 있고, 정작 궁금했던 사항에 관한 내용은 없어요.


하다못해 아이에게 뭘 먹여야 하는지도 나와 있지 않고요. 아무거나 먹이면 안 될 것 같은데 말이죠. 식이요법 관련한 건 다 암환자 책이에요. 그나마 적용할 수 있는 게 피부건조증에 관한 책 정도고요.”
- 송효정 외,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중에서 (28쪽)

 

서점에서 10년을 일해도 ‘좋은 책’이 무엇인지는 명료하게 설명할 수 없다. 다만 ‘좋은 책’의 정의를 어떻게 세우든 ‘있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개념은 꼭 ‘좋은 책’의 범주에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생명 아닌 것, 그리고 그 각각이 놓인 넓은 세계와 저마다의 상황에 대해 책은 꼭 다룰 수 있어야 하고, 다루어야만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 어떤 대상은 너무 많은 책이 다루고 있고, 어떤 대상은 어느 책도 다루고 있지 않다. 어느 책도 다루고 있지 않을 때, 아직 충실한 책이 없을 때, 그 빈자리를 채워주는 책이 필요할 때 나는 “있어야만 하는 책”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그런 책을 만나길 늘 고대한다.

 

그리고 지금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라는 이름을 가진 ‘있어야만 하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의 출판사는 온다프레스(Onda Press). ‘온다onda’는 이탈리아어로 ‘파도’를 뜻한다. 나의 인지 밖에 있던 화상경험자들의 삶이 파도를 타고 인지 속으로 들어왔다. 덕분에 나는 편견을 한 꺼풀 벗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한 한 걸음을 디딜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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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많이 팔고 싶다. 내가 한 사람의 장인으로서, 나의 눈에 든 책을 파는 일에 오래 공들일 수 있으면 좋겠다. ‘있어야만 하는 책’이 ‘나오면 팔리는 책’으로 되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 하지만 마음과 달리 쉽지 않다. 마음은 내게 ‘장인으로서의 일’을 요구하지만 회사는 내게 ‘산업으로서의 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나는 당장 독자가 많이 찾는 책에, 이미 많은 책을 팔아본 전력이 있는 저자의 책에 오래 시간을 써왔다. 나는 산업의 내부에 있고, 이 큰 산업의 한 부속품이기 때문이다. 내가 이 사실을 꼭 부당하게 느낀다거나, 이 현실에 무력감을 느낀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이 산업에는 많은 사람이 종사하고 있고, 많은 형태의 업체들이 협력관계를 맺고 있다. 산업의 규모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규모있는 매출이 필요하고, 내 마음에 꼭 들어온 책들에 매진하는 것 만으로는 이 규모가 감당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납득하고 있다. 제왕절개술보다 겸자분만이 더 우월한 방식임에도, 겸자분만을 모든 의사에게 터득하게 하기는 어려워서 제왕절개술이 보편화되었듯, 몇몇이 하는 일과 산업이 움직이는 일은 다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하지만 의학이 산업이라면 어떨까? 미국에서만 매년 신생아가 400만 명 가량 태어나는데 그들 모두에게 가급적 가장 안전한 분만술을 제공해야 한다. 그러려면 새로운 이해가 필요하다. 초점도 바뀐다. 중요한 것은 신뢰다. 4만 2000명에 달하는 미국의 산과 의사가 과연 모든 기술을 안전하게 터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임상의들이 그렇게 많은 수련을 받았어도 겸자분만으로 태아와 산모가 끔찍한 부상을 입었다는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나오면 이를 간과할 수 없다. 아프가(신생아 건강척도로 사용하는 방법) 이후, 산과 의사들은 진통 중인 산모가 곤경에 처했을 때 비교적 간단하고 예측 가능한 의료 처치가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래서 찾은 것이 제왕절개술이었다.
- 아툴 가완디, 『어떻게 일할 것인가』  중에서 (2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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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의 논리를 납득한다는 것이 내 일의 방향을 그리로 잡겠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 상황을 즉각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다른 결의 일을 도모할 능력을 키우겠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내게 일을 잘한다는 것은 산업의 부품으로 작동하는 와중에 내가 팔고 싶은 좋은 책에 관심 쏟을 시간과 에너지를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와 관련 있다. 그러려면 산업이 요구하는 일에 능숙해져야 한다.

 

책의 포인트를 캐치하고, 도서의 판매 추이를 예측 하며, 적정 재고를 판단하고, 핵심독자와 확산독자를 짚어내어, 마련된 여러 프로모션/홍보툴을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규모로 사용하는 일에 훈련되어야 한다. 사고가 아닌 거의 직관에 가깝게 이런 일들을 수행하게 되면서 점차 이런 일에 할당하는 시간을 줄여갈 수 있다.

 

능숙함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열심’보다는 ‘계속’이다. 열심히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지만, 무엇보다 여러 케이스를 겪어봐야 하고 같은 케이스를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해야 한다. 능숙해지면서야 비로소, 내 일의 시간에서 내가 사랑하는 책에 열심을 쏟을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다. 계속이 열심을 가능케 한다.

 

중요한 건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 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긴 하다. 나 역시 이 말을 좋아한다. 이 말은 돈 받고 일하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이야기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잘 하는 게 아니라 계속 하는 게 중요하다"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계속 하는 것과 열심히 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문제다. 계속 하다 보면(언제나 열심히는 아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르게 되는 어떤 경지가 있다. 당장의 '잘함'으로 환산되지 않더라도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고 믿고 싶다).

- 제현주,  『일하는 마음』  중에서 (127쪽)

 

서점에서 일한 지 거의 10년이지만 아직도 나는 충분히 능숙하지는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능숙해졌고 조금은 산업과 매출의 논리 바깥의 책을 매만지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더 높은 어떤 경지를 원한다. “꾸역꾸역 들인 시간이 그냥 사라져버리지는 않는다”라는 말에 기대어 내 일을 계속, 계속 해가고 싶다. 아직 채 다 읽지 못한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 가 일을 잘 하고 싶은 마음을 불어 넣는다.

 


 

 

나를 보라, 있는 그대로홍세미, 송효정, 박희정, 유해정, 홍은전 저 | 온다프레스
일 년이 넘도록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그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꿈을 꾸었다. 그들이 깨어났을 때 그들 앞에 놓인 건 이전의 자기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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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광

다행히도, 책 읽는 게 점점 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