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인 이소호의 이야기
상황과 선택에 의해서 선이 되고 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경진이와 경진이란 이름을 가진 모두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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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캣콜링』이 민음의 시 253번으로 출간되었다.(심사위원 김행숙, 정한아, 조재룡) 2014년 《현대시》로 등단한 이소호 시인은 첫 번째 시집 『캣콜링』을 통해 가장 새로운 ‘고백의 왕’을 선보인다. 2018년에 탄생한 ‘고백의 왕’은 성폭력의 유구한 전통과 끔찍한 일상성을 폭로한다. 『캣콜링』을 통해 세상에 나온 시적 화자 “경진”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까지 낱낱이 펼쳐 보이며 가부장제와 폭력적인 일상에 거친 조롱을 뱉어 낸다.

 

고발과 폭로를 통한 심리적 진실이 시집의 한 축이라면 다른 한 축에는 내면의 고통을 예술 작품으로 분출해 내는 ‘전시적’ 진실이 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니키 드 생팔 등 현대 여성 미술가들에게 영감을 받은 시편들을 미술 작품처럼 배치하고 사진과 그림, 타이포그래피 등 시각적 효과를 적극 활용한 이미지를 통해 독자들이 고통과 폭력의 현장을 다층적으로 마주하도록 한다. 거칠고 공격적이면서도 지적인 이소호의 시 세계는 격정적이고도 이지적인 시인들의 계보를 새롭게 이어간다. 이제 시집  『캣콜링』 이 놓아 둔 카펫을 따라 경진의 전시관으로 입장할 시간이다.

 

 

제37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과 첫 시집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시를 쓰겠다는 마음을 갖게 된 뒤부터 첫 시집을 내기까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대학 졸업 이후였습니다. 당시 저는 아주 작은 광고 회사를 다니고 있었고 우연히도 회사 앞 길 건너에는 유명 문학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퇴근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었기에 틈틈이 문학 낭독회를 다녔고. 거기서 만나게 된 학교 선배의 응원으로 다시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는 시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단순히 등단하고 싶다는 욕망에 목말라, 한 편 한 편 쓰는데 급급했다면, 등단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는 시를 쓴다는 게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겨울밤 망망대해의 부표처럼 어디로 닿을지 모르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나는 사라질 수도,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버티는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어디까지 온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이 한 권의 책으로 인해 조금 더 먼 곳으로 갈 수 있는 여력이 생겨 기쁩니다.

 

시로써 비로소 할 수 있는 말들에 대한 고민이 많으신 것 같아요. 수상 소감에서도 “내가 시인이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다고 하셨고요. 시라는 형식과 시로써 말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소호 시인의 생각이 듣고 싶어요.

 

사실 ‘시’라는 형식을 통해야만 말할 수 있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아요. 목소리를 내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수반하는 일이잖아요. 저는 SNS에서 글 쓰는 것도 자기검열이 아주 심해서 몇 번을 망설이다 업로드 하지 않을 정도인데 시를 쓰면 이상한 용기가 솟아요. 위로도 되고요. 문학이라는 특성상 다양한 해석의 여지가 있기 때문인 거 같아요. 어떻게 보면 빠져나갈 구멍이 여러 개 생기는 거잖아요. 발언은 제가 하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독자의 영역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괜찮아 이건 시잖아.’라고 생각하면 못 쓸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시는 나에게 있어 최후의 변명이며 최선의 자기주장이 아닐까 늘 생각해요.

 

김수영 문학상 심사 시 ‘한 권으로의 구성이 좋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경진’이라는 화자를 설정하고 그의 유년 시절부터 성인이 된 후의 삶까지 풀어내는 구성이 흥미로워요. 처음부터 전체적인 구상을 하신 건지요?

 

등단 직후 뉴욕에 다녀왔어요. 예전에 1년간 살았던 곳이었는데요. 한 달간 머물면서 무엇을 써야 할지 오랫동안 고민했어요. 처음엔 ‘나’에 대해서 써야지, 다음엔 그냥 ‘나’는 별로 재미가 없겠다 싶었고, 그래서 진실과 허구가 뒤섞인 인물이 필요했어요. 오랜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은 ‘경진’이라는 과거의 제 이름이었어요. ‘경진’이는 과거의 ‘나’지만 더 이상 내가 아닌 인물이잖아요. 또 중성적이고. 엄마 세대부터 제 세대까지 오랫동안 흔하게 사랑받은 이름이기도 하고요. 이만한 게 없다고 판단했던 순간부터, ‘경진이네’라는 소제목을 얹어 놓고 연작시를 쭉 써내려 나갔어요.

 

그리고 시가 15편 남짓 모였을 때 제본기를 하나 샀어요. 시를 순서대로 놓고 보면 어떻게 될까 너무 궁금해서요. 묶어 놓고 나니, 제 기대와는 다르게 세상살이에 잔뜩 화가 난 미친년 일기 같았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지금 이 시들 사이사이에 들어갈 또 다른 시를 써야겠다 생각했고, 그렇게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진’이의 이야기로 묶인 한 권의 시집이 탄생하게 되었어요. 집에서 손수 제작한 ‘캣콜링’ 베타 버전이 무려 14권이고요, 베타버전에 있던 거친 배치와 사라진 원고들 덕분에 ‘한 권으로의 구성이 좋았다’는 평을 듣지 않았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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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폭력의 양상을 집요하게 그려내는 시편이 많습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내밀한 관계 속에 있을 것이므로 크고 작은 폭력은 그만큼 일상적이고 흔할 텐데요. 언뜻 눈에 잘 띄지 않는 일상적 폭력에 대해 어떤 고민과 발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예전에 동생을 따라 심리 상담 센터에 간 적이 있었어요. 시간이나 때워 보려고 가족 이야기를 했었는데 상담사가 제게 “부모님이 동생을 소호 씨에게 방치한 거나 다름없네요.”라고 했어요. 저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우리는 가족이니까 당연히 함께 살아가고 이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결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마음이 많이 힘들던 그 당시, 단순히 던진 그 말 한마디는 제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어요. 갑자기 무난하기만 했던 내 삶에서 어떤 지점을 불편하게 느끼고, 억울한 마음이 들고 나중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 자신에 대한 원망이 느껴지기도 하였어요. 그리고 그때 ‘내가 일상에서 자각하지 못했던 어떤 순간이 사실은 엄청난 사건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고 이것을 시로 쓰기로 마음먹었어요.

 

제 시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시 사이사이 일상적인 대화가 정말 많이 나와요. 저는 말과 말 사이에서 많은 것을 짐작하기 때문에 그래요. 가장 일상적인 폭력이 대화라고 생각하거든요. 상대와 협의되지 않은 침묵도 포함돼요. 그러다보니까 아무래도 나와 내 주변의 이야기를 적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당장 시가 되려면 제가 ‘불편’을 느껴야 되기 때문이에요. 물론 아무리 선의에 의한 것이라 해도 저의 이 같은 발화가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항상 조심하고 있고,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키는 것이 제가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집 안에서 ‘경진’은 폭력적인 일상 한가운데 놓여 있어요. 경진은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다리를 잘리는 등 피해자가 되기도 하지만 동생의 손목을 대신 그어 주기도 하고 언니를 씹어 먹기도 합니다. 경진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리고 경진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먼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좋은 사람이기를 꿈꾸거든요. 매번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고요. 그렇게 살면 착한 사람으로 널리 널리 미담이 퍼져야 마땅한데, 현실에서는 세상에 더 없을 나쁜 년이 되어버린 적이 종종 있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요. 이건 ‘경진’이도 마찬가지인 거 같아요. 동생에게 폭력을 당한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 그 누구보다 ‘시진’의 사랑을 완강히 거부하고 심지어 동생이란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관계의 소멸을 바라는 아주 나쁜 사람이거든요. 입체적이죠. 그런 의미에서 경진이는 모두가 될 수 있어요. 사람이란 원래 그런 존재니까요. 절대 선도 악도 없이. 그저 앞에 놓인 삶을 살아갈 뿐인 거죠. 상황과 선택에 의해서 선이 되고 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저는 경진이와 경진이란 이름을 가진 모두에게 죄책감을 가지지 말고 지금 잘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진과 그림, 타이포그래피 등을 활용한 독특한 시들도 눈에 띕니다. 시각적 요소들을 활용하면 시가 더욱 다층적이고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요?

 

첫 번째 시집에서 미약하게 시도했던 일이지만 아쉽게도 능력 부족으로 못 한 것이 꽤 있어요. 바로 포토샵을 열심히 배워서 타이포그래피로만 된 시집을 내보고 싶어요. (물론 가독성을 고려해서) 제가 쓴 흐름과 감정 그대로 배열된 글자들로 독자분들도 같은 마음을 느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예를 들어 ‘무너진다’라고 쓸 때 진짜 글자들이 와르르 무너져 버리는 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면 한층 더 독자분들에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이 작업이 성공한다면 텍스트만으로도 끝없는 절망도 희망도 느끼게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렇게 하려면 디자인 감각을 키우는 동시에 그걸 실현할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해요.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만,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에요.

 

시를 써 오면서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으시다면 독자분들께 소개해 주세요.

 

최승자 시인의 『이 시대의 사랑』 과 박서원 시인의  『아무도 없어요』 라는 시집을 정말 좋아합니다. 두 작가로 인해 시가 가진 고백의 힘과, 그 용기 있는 고백이 가져온 위로가 얼마나 낯설고 거대한지 다시금 알게 되었거든요. 시를 쓰며 어떻게,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주저하게 될 때 꼭 다시 읽어보는 시집입니다.


 

 

캣콜링이소호 저 | 민음사
일상 속 크고 작은 폭력의 사슬은 영원히 끊어 낼 수 없을 것처럼 주위를 맴돈다. 폭력의 아카이브에서 위태롭고 아슬아슬하게 폭력의 경험들을 쓰는 경진의 기록은 잠복된 에너지를 시로 표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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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