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에게 온 편지
저는 판타지를 좋아해요. 만화도 좋아하고 오락도 꽤 즐겨 해요. 노래도 잘해서 한때 전공을 하라고 추천받을 정도였고, 나름 책을 많이 읽어서 책 추천을 해달라는 얘기도 듣고 살았죠. 페미니스트에 가까운 본성과 그런 경향을 가지신 부모님의 양육으로 여성 우월주의자로 살다가 결혼하고 아이를 둘 낳아 키우면서 대한민국 사회가 애 키우며 직장 생활하는 여성에게 여성 우월은 고사하고 여성 평등도 힘든 곳임을 극명하게 깨달았어요. 그뿐 아니라 페미니스트로 살기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전통적 가치관에 너무 사로잡혀 있는 제 자신을 깨달았죠. 저도 모르게 말이에요. 그리고 페미니즘을 실현하기에 저는 모성애가 너무 강하더군요.
어쨌든 지금은 더 이상 삶이 판타지가 아니고 만화도 오락도 삶의 뒤편으로 물러난 지 오래랍니다. 꿈을 꾸어요. 나는 아직 쓸 만하다. 나는 아직, 아니 여전히 예쁘다. 마흔의 나도 여전히 사랑받을 것이다. 혼란스러워요. 회사에서 가정에서 나 스스로에게 나란 존재가 얼마나 가치 있는지. 언제나 피터팬 옆의 팅커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만 현실에서의 저는 자신이 없네요. 팅커벨은 늙지 않지만 저는 나이 들어가고 결국 할매가 될 거니까요. 아름답게 나이 들어간다는 게 이렇게 많은 혼란의 터널을 지나야 하는
거라니…. 익어간다는 게 이렇게 서럽고 때로는 분노하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려야 하는 것이라니….
멋지게 나이 들고 싶네요. 얼굴 가득, 온몸 가득 허허벌판에서 칼바람 맞으며 서 있지만 말이에요. 이것이 멋지게 나이 듦의 조건이라 해도 팅커벨이라면 나만큼 서럽지는 않을 테죠. 아줌마 되기 참 힘듭니다. 함부로 울 수도 없고 감정을 내보일 수도 서러움을 표출할 수도 없으니까요. 아니 아직 적응이 안 되니까요.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싶습니다. 마음이 좀 더 단단해지고 싶네요. 그런데 잘될지 모르겠어요. 사춘기부터 지금까지 인생은 살면 살수록 참 어렵습니다. (이미현)
편혜영 소설가가 쓴 처방전
-
사는 게 뭐라고사노 요코 저/이지수 역 | 마음산책
긍정적으로, 활기차게 살아가야 한다는 등 아름답게 꾸민 단어로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책이 아닌, ‘밥이나 지어 먹자’는 생각이 들게 한다.
편혜영(소설가)
찻잎미경
2019.0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