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갈라놓은 평범한 사람들의 운명을 그린 - 연극 <세상친구>
아버지 때문에 수사보조원이 된 만석과 미안함 때문에 소작쟁의에 참여한 천석은 역사가 뒤바뀔 때마다 운명이 바뀌는 어처구니없는 삶을 살게 된다.
글ㆍ사진 이수연
2019.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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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는 역사 속에서 우연히 다른 길을 선택한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였다가 이념 때문에 총을 겨누는 사이가 된다. 순사보조원이 된 만석은 일본 경찰 제복을 입고 등장한다. 만석과 죽마고우인 천석은 소작쟁의에 참여했다가 수배자가 돼 만석의 집 광에 숨어든다.


만석이 순사보조원이 된 것은 아버지의 뜻을 따른 것이었고, 천석이 수배자가 된 것은 미안함 때문이었다. 천석은 지주인 자신의 어머니 땅에서 소작농으로 일하던 친구 소출이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것이 늘 미안했다. 그때 소출은 독학으로 글을 배워 마르크스를 읽었고, 땅이 없고 가난한 사람도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천석은 마르크스는 잘 몰랐지만, 미안함은 아는 사람이었기에 소출을 돕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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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운명을 만든 사소한 선택


연극  <세상친구> 의 배경은 줄곧 만석의 집 옆에 있는 광이다. 순사보조원이 된 만석은 언젠가는 ‘보조원’이라는 글자를 떼고 순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아직 출근도 전인데 제복을 입고, 출퇴근용 자전거에 기름칠하려고 광에 들어갔다가 숨어든 천석을 발견한다. 쌀가마 더미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천석은 만석과 눈을 마주치자 환하게 웃는다.


만석은 천석을 보고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한다. 수배자가 된 천석을 체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천석은 순사보조원이 된 만석이 기특하기도 하고, 어차피 잡힐 거라면 만석에게 잡히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두 팔을 쭉 만석에게 내민다. 그런데 만석은 차마 천석을 붙잡지 못한다. 결국 천석에게 자전거와 순사 제복을 넘겨주고 멀리멀리 도망가라고 말한다. 그때 만석은 세상은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니 다시는 여기에 올 생각을 말라고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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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허무하게 뒤바뀌는 운명


다시 만석의 집 광에 헌병보조원이었던 덕수가 팔을 묶인 채 붙잡혀 있고, 소작쟁의를 일으켰던 소출이 등장한다. 소출은 그동안 덕수가 저질렀던 잘못을 읊으며 덕수를 추궁한다. 덕수는 자신보다는 순사보조원이었던 만석이 사람들에게 더 나쁜 짓을 많이 했다고 말한다.


마을은 평등을 꿈꾸던 인민들에게 점령당했고, 소출과 천석은 인민위원회의 대표가 되어 마을로 다시 돌아왔다. 순사보조원이었던 만석도, 지주였던 만석의 아버지도 인민위원회의 적이다. 그런데 이번엔 천석이 만석을 숨겨 주고, 도망가도록 돕는다. 도망간 만석은 미군 부대에 들어가고 천석과 다시 이념으로 대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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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상친구> 는 한 사람의 사소한 선택이 역사 속에서 거대한 눈덩이가 되어 운명의 방향을 바꾸는 모습을 보여 준다. 어쩌다 선택한 길 위에서 그저 걸었을 뿐인 두 사람은 뒤돌아보니 서로에게 총을 겨누어야 하는 위치에 서 있다.


두 사람이 걷던 길은 어느새 ‘천석’이라는 사람, ‘만석’이라는 사람 자체가 된다. 만약 두 사람이 반대되는 선택을 했다면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까. 어쩌면 무대 밖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사는 우리들도 거대한 착각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전혀 다른 시공간을 사는 등장인물들을 보며 무대 밖의 수많은 선택이 떠올랐던 이유는 만석이나 천석, 소출이나 덕수, 덕자나 순옥이라는 인물 모두가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과 닮아서였던 것 같다. 연극  <세상친구> 는 3월 17일까지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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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세상친구 #역사 #평범한 사람들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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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연

재미가 없는 사람이 재미를 찾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