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섭, 조영주, 정해연, 신원섭 작가
망원시장 입구 건너편 낡은 건물, 작은 쪽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면 비밀스러운 공간이 펼쳐진다. 벽면을 가득 채운 책장에는 주인장이 엄선한 추리소설이 가득 꽂혀져 있고, 공간 곳곳 미스터리한 장식품들이 눈길을 끄는 ‘카페 홈즈’다. 셜록홈즈의 이름을 따 만들어진 이곳은 추리소설 작가들이 집필을 위해 주로 찾는 공간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카페 홈즈를 사랑하고 아끼는 네 명의 작가가 이 아지트를 배경으로 한 추리소설집 『카페 홈즈에 가면?』 을 펴냈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작가가 쓴 문학작품을 모은 선집 ‘앤솔로지’ 형태로 완성된 이 책에서는 카페 홈즈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사건이 펼쳐진다. 책의 출간을 기념해 지난 4월 3일에는 소설의 배경이 된 망원동 카페 홈즈에서 북토크가 열렸다. 유튜버 책읽찌라의 진행으로 시작된 이번 북토크에서는 작품에 참여한 신원섭, 정해연, 조영주, 정명섭 작가가 공간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 쓴 각자의 소설을 소개했고, 네 작가만큼이나 카페 홈즈를 사랑하는 깜짝 게스트가 방문해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 『카페 홈즈에 가면?』 참여 작가 소개
신원섭
글 쓰는 엔지니어. 2018년 장편소설 『짐승』을 출간했다.
정해연
2012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백일청춘」으로 우수상, 2016 예스24 e-연재 공모전 ‘사건과 진실’에서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로 대상을 수상했고, 2018 CJ E&M과 카카오페이지가 공동으로 주최한 추미스 공모전에서 「내가 죽였다」로 금상을 수상했다.
조영주
『홈즈가 보낸 편지』로 제6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우수상을 받으며 데뷔했다. 단편소설 「귀가」로 제2회 KBS 김승옥 문학상 신인상 추천우수상, 『붉은 소파』 로 제12회 세계문학상을 받았다.
정명섭
대기업 샐러리맨, 바리스타를 거쳐 전업 작가로 생활 중이다. 제1회 직지소설문학상 최우수상을 수상했고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NEW크리에이터 상을 받았다. 『상해 임시정부』 , 『살아서 가야 한다』 등 다수의 장편을 펴냈다.
추리소설 작가들의 아지트, 카페홈즈
책읽찌라 : 『카페 홈즈에 가면?』 에는 어떤 소설들이 담겨있는지, 다들 궁금해 하고 계실 텐데요. 옆자리에 앉은 작가의 소설을 대신 소개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명섭 : 처음 기획이 시작됐던 건, 우리가 자주 오는 ‘카페 홈즈’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였어요. 정확히 카페 홈즈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카페 홈즈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들이었죠. 책이 완성되고 세 작가님의 작품을 굉장히 흥미롭고 진지하게 읽어봤어요. 그중에서도 조영주 작가님의 작품은 과거에 대한 회상에 있어, 그 누구보다 훨씬 깊은 내면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으로 미루어볼 때 5년 후,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내면을 더 훌륭하게 통찰하는 작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짐작해요.
조영주 : 그렇지 못할 것 같은데, 갑작스레 칭찬을 들어서 부끄럽네요(웃음). 정혜연 작가님은 소설을 기획할 당시부터 방화사건을 쓴다고 하셨어요. 카페 홈즈에 불을 내도 되냐고 물어보기도 했는데, 다행히 카페를 불태우진 않았고요(웃음). 정해연 작가님의 「너여야만 해」는 방화사건, 살인사건, 성소수자 등 정말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워낙 인간의 심연을 건드리는 어둡고 찝찝한 부분을 아주 잘 쓰는 작가님이시잖아요. 이번 작품에도 그 매력이 상당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런 이면의 사건이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버닝썬 사건도 떠오르게 하는 작품이에요. 방화와 망원동이 어우러진 오직 정해연 작가만이 쓸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정해연 : 신원섭 작가님의 「찻잔 속에 부는 바람」은 카페 홈즈 안에서 소설가 지망생이 글을 쓰고 있는데 한 노인이 다가와서 계속 조언을 하고, 이걸 통해 좋은 반응을 얻는 내용으로 진행되는데요, 이 노인의 정체에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신원섭 작가님 작품을 읽으면서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많이 넣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작품은 『카페 홈즈에 가면?』 의 첫 번째 순서로 실린 소설인데요. 독자분들 모두 신원섭 작가님이 얼마나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인지 알게 되실 것 같아요.
신원섭 : 정명섭 작가님의 작품은 독자들이 단편집에 기대하는 것을 잘 보여주었다고 생각해요. 추리 단편집을 펼쳤을 때 독자가 생각하는 형태에 가장 가까운, 정석적인 작품을 쓰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스터리한 사건을 던지고 그걸 해결해나가는 주인공 콤비가 나오고, 예상치 못한 반전이 펼쳐지는 거죠(웃음). 정말 프로다운 단편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책읽찌라 : 네 작가가 모여서 『카페 홈즈에 가면?』 소설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정명섭 : 카페 홈즈란 공간은 우리 모두에게 아주 특별한 공간이예요. 서교동에 있을 때부터 지금 망원동 이 자리에 올 때까지, 단순히 미팅을 하는 장소가 아니라 탐정의 혼이 돌아다니고 있는 상상을 하게 되는 곳이죠. 이곳에서 약속을 잡으면 일이 더 잘되는 경험도 많이 했고요. 그렇게 소중한 공간인데, 자주 드나들며 영업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웃음).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카페 홈즈를 배경으로 한 앤솔로지 이야기가 나왔고, 맨 처음으로 나머지 세 명의 작가분이 생각났어요. 마침 제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손안의 책’ 박광운 대표님께 제안을 했더니 감사하게도 출간을 긍정적으로 검토해주셔서 얼른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책읽찌라 : 그럼 단편소설집과 앤솔로지는 어떤 면에서 다른가요?
조영주 :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 각 작가가 작품을 쓰는 걸 앤솔로지라고 해요. 소재가 같더라도 작가마다 생각은 다르니 색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재미를 느낄 수 있죠. 정명섭 작가님께서 앤솔로지 집필 제안을 많이 해주셔서 감사히 받고 있습니다(웃음).
정명섭 : 개인이 쓴 단편을 모은 것을 단편집이라 부르고요. 앤솔로지는 하나의 주제에 얽힌 다양한 장르의 글을 볼 수 있는 선집이라 생각하시면 쉬울 것 같아요. 음식점으로 치면 뷔페 같은 느낌이랄까요. 요즘은 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많이 줄어들었잖아요. 이러한 추세에 맞는 형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편은 작가 본인의 색이 진하게 묻어나는 반면, 단편에서는 각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거든요. 동료 작가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게 제게 힐링이자 도전이어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집필 방식이에요. 저는 나이가 많아서(웃음) 작가들의 초창기 모습을 다 기억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앤솔로지를 진행하다 보면 각 작가의 성장 단계를 볼 수 있어요. 때로는 감동적이고, 스스로 반성이 되기도 합니다. 제가 앤솔로지를 좋아하는 이유죠.
책읽찌라 : 이중 카페 홈즈에 가장 많이 오는 사람은 조영주 작가님이시라고요. 이곳이 어떤 공간인지 소개해주세요.
조영주 : 저는 남양주에 살고 있는데, 매일 카페 홈즈로 출퇴근을 합니다(웃음). 운 좋은 날은 왕복 3시간, 평균적으로는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인데 제게는 이곳이 도피처예요. 글쓰기 싫은 날 도망가기 가장 좋은 장소죠(웃음). 여기 제 지정석이 있는데요, 늘 사장님 책상 맞은편 자리에 엎드려서 쭈꿀쭈굴한 표정으로 있다가 갑니다. 류시화 작가의 책 중에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에 이런 내용이 나와요. 투우장의 소들은 자신이 죽을 걸 알면서도 경기장에 나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꼭 한 군데로 돌아가려는 습성이 있대요. 자기가 죽을 걸 알기 때문에, 특정한 장소에서 가만히 스스로를 위하는 시간을 보내는 거죠. 그곳을 ‘케렌시아’ 즉, 마음의 안정을 얻는 곳이라고 한다는데요. 제게는 카페 홈즈가 케렌시아입니다.
책읽찌라 : 책에 실린 작품의 순서는 어떻게 정해진 건가요?
일동 : 나이 역순 아니야?(좌중 웃음)
정해연 : 출판사 대표님께서 말씀해주셨는데, 원고 마감 순이에요(웃음). 신원섭 작가님이 1등으로 마감을 했고, 제가 2등, 조영주 작가님이 3등, 정명섭 작가님이 맨 마지막에 마감을 하셔서 대미를 장식했죠.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유쾌한 글, 무거운 글이 순서대로 배치돼서 조화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책읽찌라 : 『카페 홈즈에 가면?』 의 독자 반응은 어떤가요?
정해연 : 다행히 책은 꾸준히 팔리고 있고요. 카카오페이지에서도 놀랍게 랭킹 10위 안에 들어서 꽤 괜찮은 별점과 댓글을 받았습니다(웃음). 카페 홈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재밌게 참여한 프로젝트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요.
각양각색 네 가지 이야기들
- 신원섭, 「찻잔 속에 부는 바람」
책읽찌라 : 신원섭 작가님의 작품 「찻잔 속에 부는 바람」이 첫 번째로 실렸어요. 카페 홈즈에서 어떤 청년이 열심히 글을 쓰는데 한 노인이 와서 계속 참견을 하며 소설이 시작됩니다. 자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맞나요?
신원섭 : 그런 면이 아주 없진 않아요. 카페 홈즈를 배경으로 본격 추리물을 쓰는 것보다 자전적인 느낌의 소설을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면 작품 안에 있는 노인의 존재가 장편을 쓰던 시절의 저 자신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이렇게 써야 하는데, 이게 과연 맞을까?’라는 고민을 하던 저의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쓴 소설이에요.
책읽찌라 : 실제로 이렇게 참견하는 노인을 만나면 어떨 것 같으세요? 그분의 피드백을 받아들이시겠어요?
신원섭 :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마냥 틀린 얘기가 아니라면, 설사 이야기를 듣더라도 ‘내가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티는 안낼 것 같습니다(웃음). 그냥 그 말을 곱씹어보며 다시 잘 써봐야겠다고 생각할 거예요.
책읽찌라 : 엔지니어 일과 작가 생활을 겸업하고 계시잖아요. 힘들진 않나요?
신원섭 : 회사 다니면서 언제 글 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주말에 쓰거나 따로 휴가를 내서 글을 써요. 그래서 좀 힘들죠. 재충전이 안 되는 느낌이에요.
책읽찌라 : 책이 잘되면 전업작가를 하실 의향이 있는지 여쭤봤는데, 그때 안 하겠다고 하셨었어요. 왜 그런가요?
신원섭 : 네, 전업은 일단 위험할 것 같고(웃음) 쉬운 길일 아닌 것 같아서요. 역량이 있는 작가님들께서는 다작을 하시고 다양한 활동도 병행하며 글을 쓰는데, 저는 그럴 자신이 없어요. 그리고 지금 하는 일도 되게 재미있거든요. 엔지니어로서 뭔가를 설계하고 개발하고 시운전하는 게 적성에도 잘 맞고 보람도 있어요. 그래서 제 작품이 아무리 잘 되더라도 회사를 그만 두진 않을 것 같아요.
- 정해연, 「너여야만 해」
책읽찌라 : 이번에는 정해연 작가님께 여쭤볼게요. 작가님 작품에서는 카페 홈즈 사장님이 추리의 키를 제공하는데요. 실제로 추리소설을 많이 읽으면 추리 능력이 생기나요?
정해연 : 제 개인적으로는 전혀 아닌 것 같아요(웃음). 물론 뉴스나 <그것이 알고싶다>같은 프로그램의 미해결 사건을 보면 어떤 단서가 포착되기도 하는데요. 그 추측을 말로 뱉진 않는 편이에요. 실제 사건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우리가 접하는 정보는 극히 일부일 수 있기 때문이죠. 작가는 그러한 것들을 글로 풀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읽찌라 : 좀 어려운 질문일 수 있는데, 세계 시장에 비춰봤을 때 한국 미스터리 소설이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정해연 : 음 100m 직진해서 우회전하시면 되고요(웃음). 제가 세계 시장의 흐름까진 예측할 수 없지만, 예전에 가수 박진영 씨가 원더걸스로 미국에 진출했을 때, 남자가수였다면 가능성이 없을 거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싸이가 대성공을 거뒀어요. 그 다음은 방탄소년단이 있죠. 이처럼 세계의 방향이나 추세가 어떠하니 그에 따라야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각자의 길에서 각자의 재밌는 이야기를 쓰면 될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모정, 부정이 있듯 외국도 마찬가지잖아요. 사람이 감동하는 부분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장 재미있는 걸 쓰면 우연히 각자의 복에 의해 세계로 뻗어나가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요?
책읽찌라 : 소설을 기획할 때 카페 홈즈에 불을 내겠다고 하셨다고요(웃음). 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건가요?
정해연 : 저는 좀 잔인한 걸 좋아해서 전부 다 불태워버리겠다(웃음) 그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불은 하나의 장치였을 뿐, 하나의 사건을 가운데 두고 두 가족이 나오는데 이들이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썼어요. 하지만 카페에 불을 낼 순 없었죠. 카페 홈즈를 배경으로 소설을 쓰기로 했을 때 사장님께서 내세운 조건이 ‘이 건물 안에서는 살인이나 어두운 일이 일어나선 안 된다’였거든요. 건물주가 따로 계시기 때문에요(웃음). 가상의 이야기이지만, 혹시 모를 피해가 가면 안 되니까요.
- 조영주, 「죽은 이의 자화상」
책읽찌라 : 조영주 작가님 작품에는 귀촌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귀촌 생활이 어떤가요?
조영주 : 아주 만족스럽습니다. 만족스러워요(웃음). 아침에 일어나면 개랑 산책하고 글 쓰고 밥 먹고 도서관 가고 자고 딱 이렇게만 하며 지냈어요.
책읽찌라 : 작품에서는 어떤 편지가 도착하면서 과거를 회상하며 사건이 이어져요. 그 와중에 PC통신 시절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당시에 만난 친구들 중 연정의 상대가 있었던 건가요?
조영주 : 없었습니다. 제 동생이 결혼을 했는데 처가가 망원동이에요. 그래서 지난 일요일에 여기서 동생 부부를 만났는데, 동생 처가 제게 한 첫마디가 “정말 여기에 자화상이 도착했어요?”라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개뻥이지” 그랬거든요(웃음). 실제로 어릴 때 PC통신을 했던 건 사실이고 사건에 등장하는 것처럼 군대에 갔다가 죽은 오빠가 있긴 했어요.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꾸며낸 이야기입니다. 어떤 분께서 자신의 환상이 깨지지 않도록 진지하게 이야기 해달라고 말씀하셨는데 아쉽게도 다 뻥이에요. 아, 잠수 탄 것은 좀 비슷하겠네요. 사실 그것보다 조금 더 찌질하지만요(웃음).
책읽찌라 : 조영주 작가님께 카페 홈즈란?
조영주 : 아까 이야기했는데, 제게 카페홈즈는 케렌시아입니다. 글쓰기 싫어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 때, 궁지에 몰렸을 때 도망치는 곳이에요. 늘 여기 앉아서 아무 것도 안 하고 놀다가 갑니다.
- 정명섭, 「얼굴 없는 살인마」
책읽찌라 : 정명섭 작가님 작품의 주인공은 안면인식 장애가 있잖아요. 이분에게는 달걀귀신처럼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고, 손동작이나 목소리로 사람을 구분한다고 했는데 실제로 안면인식 장애가 있으면 그런가요?
정명섭 : 대부분의 사람에게 안면인식장애가 있어요. 얼굴은 아는데 이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는 일이죠. 저는 바리스타할 때 이게 많이 치료됐는데요. 손님을 기억해야 먹고 살 수 있었거든요(웃음). 저도 작품을 쓰며 궁금해서 한 번 조사를 해봤는데 아주 심한 경우에는 얼굴이 아무 것도 안 보이는 수준도 있고, 아니면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대요. 장애 정도에 따라 증상이 다양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주인공을 영악하게 보여주기 위해 얼굴이 아무 것도 안 보인다고 설정했어요. 사실 의학적으로는 가능한 일이지만 실제로 보고된 사례는 거의 없죠.
책읽찌라 : 며칠 전 망원시장을 지나다가 작가님과 마주쳤는데요. 실제로 망원동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는지, 혹은 소설에 등장한 실존 인물 중 망원동 주민이 있는지 궁금해요.
정명섭 : 다른 작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제가 창조한 주인공 캐릭터를 어디서 따온 경우는 없는데 조연이나 지나가는 캐릭터 같은 경우는 실제로 보았던 인물을 묘사하는 경우가 있어요. 이번에 나오는 노숙자는 실제 노숙자를 보고 쓴 건 아니고, 식당 같은 데서 가끔 정체가 의심스러운 사람을 보곤 하잖아요. 가게 같은 데서 큰 소리를 내며 나오는데 빈손이라던가. 노숙자는 그런 사람들을 모델로 삼았고요. 공간 자체는 카페 홈즈를 모델로 하긴 했지만 100% 따온 것은 아니에요. 그러면 이야기를 창조할 때 제약이 생기니까요.
책읽찌라 : 페이스북에 맛집 포스팅 많이 하시잖아요. 망원동 맛집 좀 알려주세요(웃음).
정명섭 : 사실 남이 사준 커피와 음식이 최고 맛있죠(웃음). 망원동 근처는 식당보다 집에 포장해서 가져갈만한 음식이 괜찮은 게 많아요. 특히 족발집은 어딜 가든 실패할 확률이 적고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은 월드컵시장 안쪽에 들어가면 어묵을 파는 가게가 있는데 밀가루를 안 넣고 만들어서 굉장히 쫀득하고 맛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엔 맛도 맛이지만 망원시장에 와서만 느낄 수 있는 게 있거든요. 사람들이 카페 홈즈를 좋아하는 것도 여기서만 느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 때문인것처럼. 망원 시장도 독특한 분위기가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요. 오래 유지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카페 홈즈의 또 다른 주인공을 만나다
카페 홈즈 이연실 사장
책읽찌라 : 네 분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카페 홈즈 사장님의 이야기도 궁금해지네요. 사장님, 어떠셨어요? 카페를 무대로 소설이 나왔는데요.
사장님 : 즐거웠어요. 작년부터 작가님들과 농담처럼 하던 이야기가 구체화되면서 현실에서 일어난 거라 그 과정을 다 지켜봤거든요. ‘이렇게 책이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고 즐거웠습니다.
책읽찌라 : 카페를 배경으로 하는데, 걱정되는 부분은 없었나요?
사장님 : 그래서 처음 모였을 때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어요. 카페 사장이 내려준 커피를 먹고 죽으면 안 된다, 창고 문을 열었을 때 좀비가 나와서는 안 된다(웃음). 이 공간은 사건을 해결하고 추리하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어요. 제가 건물주가 아니기 때문에 커피에 비소를 섞는다던가 그런 건 절대 안 된다고 했죠(웃음).
책읽찌라 : 결과물을 보고 어떠셨나요? 우려했던 결과가 있진 않았나요?
사장님 : 네 그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작가님 모두 각자의 스타일이 분명한데, 그 스타일대로 재미있게 잘 써주셔서 감사했습니다. 특히 정해연 작가님 작품은 읽으면서 계속 ‘이것은 소설인가 PPL인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책읽찌라 : 굉장히 기쁘셨을 것 같아요. 이런 시도가 외국에는 있지만, 한국에선 처음이라고 들었거든요.
사장님 : 작가님들께서 카페 홈즈 운영의 어려움에 대한 이야기를 앞서 해주셨는데, 항상 ‘1년 후에는 알 수 없다’는 마음으로 7~8년째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도 카페 홈즈가 망하기 전까지 책이 꼭 나오길 바랐어요. 작년에 출판사 대표님께 언제 출간되냐고 여쭤보니, 올해 여름에 나온다고 하셔서 “그전에 없어질 지도 몰라요”라고 말씀드렸었거든요(웃음). 근근이 유지하는 상황이었는데, 그 와중에 이런 즐거움이 생겨서 너무 행복합니다.
김탁환 소설가
책읽찌라 : 이번에는 정말 스페셜한 게스트 한 분을 모셔볼게요. 카페홈즈의 지박령, 김탁환 작가님이십니다. 카페홈즈는 작가님에게 어떤 곳인가요?
김탁환 : 이상하게 퇴고가 잘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초고를 쓸 때는 잘 안 오고, 마감에 쫓기거나 초능력을 발휘해야할 때 주로 오고 있습니다. 제게는 퇴고하는 곳이죠.
책읽찌라 : 여러 작가가 방문하는 곳이니까 인사를 나눌 일도 많으실텐데, 퇴고할 때 흐름이 끊기진 않으세요?
김탁환 : 서로 모른 체 해요(웃음). 노동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고생하는 거 엿보면 좀 그렇잖아요. 저도 다른 분들이 작업하고 있으면 인사를 거의 안 하는 편이에요.
책읽찌라 : 작가님은 카페 홈즈를 어떻게 알게 되셨어요?
김탁환 : 예전에 『노서아 가비』라고 커피를 주제로 한 소설을 쓴 적이 있거든요. 그때부터 7~8년째 제게 커피를 주시는 분이 카페 홈즈 가까이 살았는데, 커피 받으러 갔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됐어요. 그런데 카페에 꽂힌 책들이 예사롭지 않더라고요. 여긴 그냥 앉아만 있어도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주 오게 됐어요. 특히 퇴고할 때 집중이 잘 됐거든요. 그리고 여기서 계약도 몇 번 했죠. 제게 아주 유리한 조건으로(웃음). 작가들에게는 굉장히 좋은 기운을 주는 카페예요.
책읽찌라 : 『카페 홈즈에 가면?』 의 추천사를 써주셨는데, 어떤 소설이 제일 재밌으셨나요?
김탁환 : 오늘에야 고백하지만, 저는 처음 연락받았을 때 제게 소설을 써달라고 하는 건 줄 알았어요. 그랬으면 썼을 것 같아요. 여기서 퇴고를 하면서 초능력을 발휘한 적이 많으니까요. 제가 좋아하는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한 소설을 읽었는데 전부 즐거웠습니다. 한 명을 지목하면 나머지 세 명에게 적이 될 것 같아요(웃음).
정명섭 : 오늘 김탁환 선생님께서 작품을 쓰시겠다고 확답을 주셨네요(웃음). 지금 2편을 기획하고 있는데 김탁환 작가님께서 참여하는 것으로 진행해도 되겠죠? 감사합니다. 여기 증인도 많고요(웃음).
김탁환 : 네, 뭐 쓰도록 하겠습니다! (좌중 박수)
책읽찌라 : 2편이라니 너무 기대가 됩니다. 이곳은 단순히 작가님들이 집필하는 공간이 아니라 지키고 싶은, 애정의 공간이어서 이런 소설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장소를 기반으로 한 앤솔로지 시도에 대해 선배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탁환 : 작가들이 힘을 합쳐서 책을 한 권 썼다는 게 참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소설가들은 구력이 쌓일수록 하나의 섬이 되거든요. 시인들에 비해 같이 모여 뭔가를 도모하는 경우도 드물고요. ‘저 사람 바쁠 거야’ 이런 생각 속에서 각자도생 하는 거죠. 소설 쓰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어떤 고민을 공유하고 작업하는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과거에는 문학지를 중심으로 이런 작업이 돌아갔는데,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고요. 공간을 지키자는 건 좋은 이슈 같아요. 함께 가야죠.
정명섭 : 사실 저희가 감히 김탁환 선생님과 어떤 일을 도모할 수 있는 위치는 아니거든요(웃음). 그런데 글을 통해서 성별, 연령에 관계없이 같은 공간을 공유하고 만날 수 있다는 게 참 뜻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제가 카페 홈즈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읽찌라 : 김탁환 작가님,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자리를 함께 해주셨는데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탁환 : 카페 홈즈가 망하면 되게 슬플 것 같아요. 퇴고할 때마다 생각이 나겠죠. 잘 유지가 되어서 다음 단편 퇴고할 때도 꼭 여기서 하고 싶습니다. 이런 공간이 작가들에겐 참 귀해요. 그러니 카페 홈즈 사장님께서 멋지고, 건강하게 계속 이곳에 계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사장님 :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 너무 좋아서 이제 카페 닫아도 여한이 없을 것 같아요(웃음).
김탁환 : 절대 안 됩니다(웃음). 사실 속편이 출간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왔는데, 준비 중이라고 하니까 기대가 되네요. 같이 힘을 합쳐서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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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홈즈에 가면?신원섭, 정해연, 조영주, 정명섭 공저 | 손안의책
그 북카페는 이야기꾼들이 자신의 작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찾는 곳이기도 하고, 수많은 미스터리/추리소설로 벽면을 가득 채워 독서의 향연에 빠질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성소영
쓸수록 선명해지는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