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밤의 중심에서 ‘용서’라는 말을 생각한다. 그것은 도꼬마리 풀씨처럼 팔랑팔랑, 내 쪽으로 날아오는 중이다. 해파리처럼 내 귀를 향해 헤엄쳐오는 중이다. 그러나 그 말은 나를 통과하지 못하고, 늘 그렇듯이 흘러내린다.
이 글에서 모든 것을 말할 수 없지만, 내겐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한 명 있다(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더 이상 그를 미워하지도, 화가 나 있지도 않다. 그저 ‘용서’라는 말이 내 몸을 통과하지 못했을 뿐이다. 오래 전 나는 시 한 편을 읽고, 한곳에서 얼어붙은 적 있다.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방금 어디에서 놓여 난 듯하다. 어디를 갔다 온 것일까. 한기까지 더해. 이렇게 묶여 있는데, 꿈을 꿨을까. 그 눈동자 맑은 샘물은. 샘물에 엎드려 막 한 모금 떠마셨을 때, 그 이상한 전언. 용서. 아, 그럼. 내가 그 말을 선명히 기억해 내는 순간 나는 나무 기둥에서 천천히 풀려지고 있었다. 새들이 잠에서 깨며 깃을 치기 시작했다. 숲은 새벽빛을 깨닫고 일어설 채비를 하고 있었다.
- 이진명 『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 , 표제작 부분. (38쪽)
‘용서’의 얼굴을 상상한다. 5년 만에 밖으로 나와, 나무를 본 사람의 눈빛 같을까? 일어서는 새벽의 숲처럼 느리게 열고 닫히는 마음 같을까? 저 시인은 용서의 얼굴을 본 적 있는 것 같다. 용서란 무엇인가. 용서를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나는 생각한다. 잘못을 저지른 한 사람과 잘못을 기억하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 잘못은 잘못인 채로, 상처는 상처인 채로 견딜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고통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서로’가 필요하다. 용서를 구하려는 이와 용서를 하려는 이. 울고 싶은 이와 울 수 있는 이가 필요하다. 변할 준비를 마친,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무엇이 없을까? 무엇이 모자란 걸까, 용서하기에.
그때, 내가 어린 아이였기 때문일까?
동물과 어린 아이에게 ‘각인’이란 ‘세계의 각인’이라서, 그들에게 상처를 입히면 돌이킬 방법이 ‘별로’ 없다. 일례를 들어보자. 친구가 강아지를 분양 받았는데, 어머니가 강아지를 몹시 싫어했다고 한다. 말썽을 부릴 때마다 친구 어머니는 신문지를 말아 강아지를 때리거나 겁주었다. 강아지는 그때마다 소파 밑에 숨었다. 시간이 흘러 친구의 어머니는 강아지를 (비로소) 사랑하게 되었다. 강아지에게 닭을 삶아 먹이고, 산책과 목욕을 시키고, 온갖 애정을 쏟았다. 하지만 강아지는 성견이 되어서도 그녀를 거부했다. 그녀가 주는 밥을 먹고, 같이 산책을 다녀왔지만 그뿐이었다. 온 가족에게 뽀뽀를 하고 살갑게 굴어도, 친구 어머니에게만은 거리를 두었다. 그녀가 강아지를 끌어안으려 할 때마다 강아지는 뒤로 펄쩍 뛰어, 피했다.
녹지 않는 마음이 있다.
풀리지 않는 자물쇠처럼, 맞지 않는 열쇠처럼 덜거덕거리는 관계가 있다. 어느 날은 풀린 척, 어느 날은 잠긴 척, 하다가 피로해지는 마음. 잘못한 사람은 자기 잘못을 잊은 채, 오히려 이쪽을 원망할 지도 모른다. ‘용서’라는 말을 매만지며 얼어붙어 있는 이쪽을, 시작도 못한 이쪽의 ‘용서’를 책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밤중에 ‘용서’라는 말을 들고, 아예 그쪽에서 집행하려 할지도 모른다. 잘못한 사람은 용서를 준비하고 상처받은 사람은 용서를 구하는, 불편한 시차가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용서가 필요한 사이라면, 이미 글러먹은 게 아닐까? ‘용서’라는 말은 무겁고 어려워서, 사용하려다 떨어뜨리게 되는 게 아닐까. 진정한 용서라는 게 있을까? 사랑은 용서를 우습게 타고 넘어, 그런 건 필요로 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한때 나는, 신은 ‘질투의 신’이라서 오직 자신만을 사랑하라고 명하는 존재라는 말이 거슬려 자꾸 삐딱해졌다. 신이 있어 이 세계와 미천한 우리를 만들었다면, 크고 작은 우리 죄를 미리 알았다면…. 그러니까 당신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나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나를 사랑하라. 내가 아니라, ‘당신이’ 나를 사랑하라. 나를 한없이 불쌍히 여기고, (제발) 조건 없이 사랑하라. 나를 위해 울고 나를 위해 기도하라. 나를 믿으라. 내가 누구인지 나보다 더 잘 아는 당신이, 믿으라. 당신도 밤의 중심에서, 외로이, ‘용서’라는 말을 들으라.
물론 투정이다. 그렇지만 커다란 신이 필요하다. 용서를 모르는 나와 상처받은 저 강아지. 우리 무지렁이들에게 무엇도 바라지 않는, 너그러운 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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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용서라는 말을 들었다이진명 저 | 민음사
시인은 삶의 쓸쓸함과 덧없음, 그 내면의 아픔을 오래 응시한다. 그리하여 시는 백단향과 같은 향기를 지닌다. 그 향기는 슬프고, 은은하고, 아름답다.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