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 선함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겠니
타락한 세상을 바꾸고 구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다. 다만 성스러운 라짜로는 현실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한 라짜로’가 되려면, 세상이 신성함을 알아보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글ㆍ사진 정은숙(마음산책 대표)
2019.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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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 포스터
 

 

이 영화는 우화다. 아름답고 슬픈 계시록 같은 영화를 본 날 밤, 달을 향해 늑대 소리를 내고 싶었다. ‘라짜로’가 내 앞에 나타나면 알아볼 수 있을까. 이 ‘성스러운 바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까. 잡아먹으러 다가왔다가 너무도 낯선 선한 존재의 냄새에 도망치듯 사라지는 늑대의 감각에는 못 미칠 것이다. ‘늑대와 성자’의 이야기를 아들에게 들려주던 영화 속 여인 안토니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돈다.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행복한 라짜로>는 1980년대 이탈리아의 산간벽지 ‘인비올라타’ 마을의 아름다운 풍경과 공동체 생활의 모습을 비추며 시작한다. 전등은 말할 것도 없고 공간과 먹을 것도 늘 부족한 마을, 한 방에 여러 명이 살을 비비며 살아가야 하는 가난한 살림에 웃음소리와 수줍은 구애의 풍경과 노래는 마치 전설 속 시골을 보여주는가 싶다. 그러나 이 마을이 ‘데 루나 후작 부인’이 경영하는 담배 농장이고, 그들은 빚에 허덕이는 소작농인 것을 알게 되면 아름다움의 풍경은 낯설다. 마을의 청년 라짜로는 부모 없는 순박하고 착하고 일 잘하는 천사. 아이들마저도 일거리가 생기면 놀리듯 라짜로를 불러댄다. 마을에서 라짜로는 사람 이름이 아니라 노동가의 후렴구 같다. 라짜로 라짜로 라짜로......
 
후작 부인에게 속아 임금제의 시대에 고립된 채 노예처럼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사건이 벌어진다. 후작 부인의 아들인 탄크레디가 요양 차 왔다가 어머니의 착취에 저항하게 되고, 스스로도 답답한 구속에서 벗어나려고 납치 자작극을 벌인다. 뜻밖에도 현금을 요구하는 소동은 여자친구의 신고로 헬리콥터를 탄 경찰을 벽지에 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이렇게 현대판 노예제인 ‘후작 부인 대 사기극’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자유를 찾아 마을을 떠나는 사람들과 라짜로는 함께하지 못한다. 라짜로는 자신이 파둔 동굴에 탄크레디가 숨어 있는 것을 알기에 그를 찾아가다 절벽에서 추락한다. 일할 때는 그토록 찾았던 라짜로를 마을 사람들은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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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행복한 라짜로>의 한 장면
 

 

시간이 한참 흐르고 쓰러진 라짜로가 부활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우정을 보여준 탄크레디를 찾아 걸어걸어 도시로 온다. 마을을 떠났던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을 벗지 못한 채 도시의 빈민으로 도둑질이나 사기를 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 앞에 홀연히 나타난 라짜로를 사람들은 유령으로 인식하지만 안토니아는 “오 신이시여”라며 무릎을 꿇는다. 안토니아는 마을에 있을 때도 침대 밑과 장롱 서랍에 순교한 성녀의 그림을 붙여놓고 입맞춤하던 여성. 그는 단박에 라짜로의 성스러움을 알아본 것이다.
 
로르바케르 감독은 절대 착함의 영역에 존재하는 라짜로를 만들고 세속의 풍경을 비춘다. 아무도 이용하지 않고 아무도 착취하지 않고 모두에게 도움만을 주는 존재. 라짜로를 부활시켜 자본주의 세속의 인물들에게 대면시킨다. 알아보겠는가, 라짜로의 존재를? 묻는 것이다.
 
과거와 현재, 봉건적인 시대와 금융자본주의 시대까지, 시간이 흘러도 불변하는 ‘거룩한 바보’ 라짜로는 서로 욕망하고 속이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순수하고 신성한 존재로서 그들을 비추는 거울 같다.
 
<행복한 라짜로>의 마술적인 두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나는 라짜로의 부활이고 두 번째는 음악이 라짜로 무리를 따라오는 순간. 길거리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음악이 듣고 싶어 잠깐 들어간 교회에서 라짜로 무리는 성직자들에 의해 쫓겨난다.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이 쫓겨난 그들을 따라온다. 황망한 성직자는 떠나가는 음악을 잡으려고 손을 뻗어보는데......종교마저도 세속화되어가는 현실에서 아름다움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타락한 세상을 바꾸고 구할 수 있는 영웅이 아니다. 다만 성스러운 라짜로는 현실에서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한 라짜로’가 되려면, 세상이 신성함을 알아보는 감각을 회복해야 한다. 영화는 우화를 통해 계시한다. 당신 곁의 라짜로를 알아보라고. 그 절대 선함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때, 라짜로도 세상도 행복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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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숙(마음산책 대표)

<마음산책> 대표. 출판 편집자로 살 수밖에 없다고, 그런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일주일에 두세 번 영화관에서 마음을 세탁한다. 사소한 일에 감탄사 연발하여 ‘감동천하’란 별명을 얻었다. 몇 차례 예외를 빼고는 홀로 극장을 찾는다. 책 만들고 읽고 어루만지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