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우리 생각만큼 나쁘지 않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팩트풀니스(Factfulness)』 의 공동저자 안나 로슬링 뢴룬드가 한국을 찾았다. 안나 로슬링은 시아버지이자 통계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故 한스 로슬링(1948~2017), 남편 올라 로슬링과 함께 14개국 약 1만 2,000명을 만나 질문을 던졌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13가지 문제’를 풀게 한 것인데, 결과는 놀라웠다. 평균 정답률은 16%. 침팬지가 무작위로 정답을 고를 때의 33%보다도 낮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세 사람은 ‘느낌을 사실로 인식하는 인간의 비합리적 본능’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그리고 ‘팩트풀니스-사실 충실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실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
지난 7월 1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안나 로슬링은 “20년 전에 시아버지, 남편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서 목표로 삼았던 것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세계의 큰 경향성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며 현재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13개의 사실 질문들’을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이들은 극빈층의 비율, 여성의 교육 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 평균기온 변화 등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세상이 더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과 관련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은 대답을 했지만 ‘세상이 더 좋아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실’에 대한 질문에서는 오답률이 높았다. 안나 로슬링은 우리가 ‘과도한 극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왜 우리가 세계를 잘못 보고 있는지, 어떻게 하면 과도한 극적인 성향을 컨트롤할 수 있는지, 그에 대한 팁을 주는 책”이 『팩트풀니스』 라고 말했다.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 두뇌가 가진 단점들에 대해서 겸허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데이터가 우리 앞에 있는데도, 우리 두뇌는 그것을 왜곡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이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여야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크고 중요한 일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의 부제는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다. 안나 로슬링은 ‘우리의 생각만큼 세상이 나쁜 곳은 아니’라는 사실을 거듭 강조했다.
“저희는 사람들이 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게 되기를 희망합니다. 특히 기업이나 국가의 리더들이 본능이나 이념에 기반한 결정이 아니라 데이터에 근거한 결정을 내려주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이 그렇게 나쁜 곳은 아니다’라는 걸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충실성’을 얻게 된다면 여러 가지 일들을 제대로 보게 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지금도 좋지 않은 상황들이 많이 있지만, 과거보다는 좋아졌다는 것이고 앞으로도 우리가 상황을 개선할 여지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개선하는 과정이 느리고 험난할 수 있겠지만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걸 알게 되면 우리의 과도한 극적 본능을 더 잘 컨트롤하면서 스트레스를 덜 받고, 보다 중요한 것들을 개선시키는 데 효과적으로 집중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안나 로슬링은 스웨덴에서 태어나 룬드대학교에서 사회학으로, 예테보리대학교에서 사진으로 학위를 받았다. 2005년부터 남편 올라 로슬링, 시아버지 한스 로슬링과 함께 비영리 재단 ‘갭마인더’를 세우고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으로 심각한 무지와 싸운다’는 사명을 실천하고 있다. 구글의 시니어 디자이너로 일했으며 갭마인더의 도표, 슬라이드, 무료 교육 자료, 소프트웨어 등을 개발했다. 2016년에는 50개국의 소득 수준에 따라 가족 단위의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달러 스트리트(Dollar Street)를 만들었으며, 이를 주제로 2017년에 테드 강연을 했다. 같은 해 올라 로슬링과 함께 ‘레주메 최고 소통상’, ‘황금알 티타늄상’을 받았으며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세계 변혁 아이디어상’을 수상했다.
가짜 뉴스, 변화로 가는 다리 될 수 있어
가짜 뉴스가 범람하는 탈진실의 시대 속에서 『팩트풀니스』 의 등장은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빌 게이츠는 미국의 모든 대학교와 대학원 졸업생들에게 직접 책을 구입해 선물했으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반드시 읽어야 할 책 목록’ 5권 중에 하나로 추천했다. <네이처>, <옵저버>,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유수 언론의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출간 6개월 만에 100만부를 돌파했다. 국내에서도 지난 3월 출간된 이후 약 8만 부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책은 영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40여 국가에서 출간됐다.
기자간담회 현장의 열기도 뜨거웠다. 안나 로슬링은 사실과 인식, 세계와 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앞으로의 활동과 관련해서 “갭마인더 재단에서는 항상 ‘어떻게 하면 세상을 쉽게 이해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해왔다. 그 결과 데이터에 스토리텔링을 입혀서 전달하는 방법을 고안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다. 기후 변화나 환경 문제와 관련된 일들을 사실에 기반해서 쉽게 이해시킬 수 있는 작업도 계획하고 있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짜 뉴스가 넘쳐나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어떻게 보시나요?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은 어떤 것이 있을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각국 현황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는 이미 1950년대부터 수집,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대중이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인류의 대부분이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우리가 어떻게 데이터를 읽고 이해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이제 배워야 하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접하는 뉴스들의 대부분은 가짜 뉴스가 아닙니다. 정확한 사실과 데이터에 근거한 뉴스가 훨씬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전히 세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 오해가 가짜 뉴스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인류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법에 더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가짜 뉴스에 대한 논쟁이 있다는 것을 희망적으로 봅니다. 가짜 뉴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옴으로써 어떻게 하면 정보를 제대로 처리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더 빠르게 배우고 수정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변화가 더 빨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가짜 뉴스라는 것이 변화로 가는 다리가 되어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팩트풀니스』 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첫째는,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일들, 굉장히 큰 줄기들에 대해서 상당히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일들에 대해 쓴 책은 많지만 이렇게 전반적인 큰 그림을 쉽게 보여주는 책은 아직까지 없었다는 것이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희가 이 책을 쓸 때 모든 학문적인 용어, 전문적인 용어를 빼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세계의 현황에 대해서 쓴 책은 많습니다. 우리의 두뇌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해서 심리학적 관점에서 쓴 책도 많습니다. 저희 책은 두 가지를 모두 담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왜 우리의 두뇌는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는가’ 이 두 가지를 함께 담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다 쉽게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책의 세계관이 굉장히 낙관적입니다. 그것이 변화를 가로막을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실제로 그런 비판이 있었습니다. 현재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미래의 가장 큰 위협들에 대해서 더 이야기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기는 했습니다. 저희가 작업을 하면서 100개가 넘는 사실 질문들을 해봤는데, 긍정적인 세계의 성향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일관되게 틀린 답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의 오류가 가장 큰 부분에 집중하다 보니까 책에서 보다 긍정적인 부분에 대해서 다루게 된 것입니다. 사실 저희가 이야기하는 것은 ‘세상이 좋다’가 아니라 ‘세상은 우리 생각보다는 좋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이 과도하게 부정적일 때의 위험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우리가 뭘 해도 나쁠 텐데, 해서 뭐 하겠어?’라는 태도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낙관주의자도 아니고 비관주의자도 아닙니다. 저희 시아버지 한스 로슬링이 늘 말씀하신 것처럼 ‘가능성 옹호주의자’입니다. 저희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두 가지입니다. ‘사실에 기반해서 판단하라’, 그리고 ‘사실에 기반해서 가장 효과적인 결정을 하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낙관주의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빌 게이츠로부터 책에 대한 피드백을 직접 받기도 했나요?
처음 책이 나왔을 때쯤 이메일을 받기는 했습니다. 긍정적인 이야기였던 것은 기억이 나는데, 오래 돼서 자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빌 게이츠가 왜 이 책을 좋아했느냐’는 질문에는 오히려 쉽게 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그리고 갭마인더 재단에서 집중하는 것은 ‘사람들이 보다 사실 기반으로 세상을 보게 하자’, ‘그렇게 함으로써 세상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NGO들이 고민하고 많은 역량을 기울이는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도 자신들이 무슨 일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사람들에게 이해시켜야 지지를 받고 지원을 끌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사람들이 세상과 사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힘듭니다. 어떻게 보면 저희는 같은 문제를 가지고 씨름한 것입니다. 갭마인더 재단의 경우에는 세상을 설명하고 쉽게 이해시키는 부분에만 집중한다고 할 수 있고요. 아무래도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실제로 실행하는 부분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서로 같은 문제로 고민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 일에 관심을 가지고 좋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각 나라에서 ‘13개의 사실 질문들’을 했을 때, 한국의 점수가 가장 높았는데요.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학문적인 분석을 한 것은 아닙니다만, 짐작한 바가 있습니다. 한국은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엄청나게 빠른 변화가 성장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이 빨리 좋아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분명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육열, 교육 수준이 높습니다. 실제로 배움에 대한 열망도 높고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좋다는 것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는, 지금까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자신들이 최고라는 자신감 넘치는 태도로 살아왔는데요. 최근에는 경제 성장도 많이 둔화됐고, 흥분되는 큰 굵직한 일들이 아시아에서 더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이 굉장히 부정적이고, 그런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그것도 하나의 원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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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한스 로슬링,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공저/이창신 역 | 김영사
우물 안에 계속 갇혀 살기보다 올바르게 사는 데 관심이 있다면, 세계관을 흔쾌히 바꿀 마음이 있다면, 본능적 반응 대신 비판적 사고를 할 준비가 되었다.
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